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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감히 주인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주제에 하는 짓이라고는 말장난뿐인 무능력하고 천하고 더러운 게 어디서 똑바로 쳐다보는 거냐?”
차라리 예나가 노려봐서 화난 말투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자의 목소리는 지극히 건조하고 높낮이란 게 없었다. 술술 말하지만 한마디 한마디를 말이 되도록 이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기도 했다. 덕분에 듣는 사람은 무척 어색했다. 마치 글을 낭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예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진 채로 일어나 앞으로 나갔다. 머리에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데도 방향을 똑바로 잡아서 그 작자에게 걸어갈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사실은 분노라는 다른 주인이 예나의 머리를 차지하고 이것저것 계획을 세우고 팔다리에 명령을 내리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예나가 아무 말 없이 걸어서 그자 앞에 서자, 그자도 영주님도 반쯤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예나를 보았다. 예나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자 앞에 똑바로 서서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예상대로 그자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입술을 삐뚤게 일그러뜨렸다.
“아드리아누트, 자네 소유물은 주인과 감히 눈을 맞추는 게 허용된단 말인가? 도대체 소유물을 어떻게 다루는 거야? 시간이 흘렀다고 이토록 기강이 물러져서야 우리가 어떻게 자네를 수장으로 인정하고 따르겠나? 자네 소유물이 자네에게 하듯이 우리가 그렇게 대해야 할까? 그렇게 오랫동안 수장 노릇을 해 왔으면 그 정도 뒷감당은 할 수 있다는 뜻인가? 안타깝게도 내가 보기엔…….”
“상관없어.”
“천한 것, 네가 지금 내게 존칭을 생략한 건가?”
응당 영주님에게서 흘러나왔어야 할 말을 예나가 하자, 그자의 표정이 떨떠름하고 삐뚤어진 반항에서 분노와 경악으로 바뀌었다.
“그래, 했다, 왜.”
“아드리아누트!”
“자꾸 틀린 이름으로 부르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직접 해.”
“나보고 소유물과 직접 대화하라고? 자네 제정신이 아니군. 어떻게 그렇게 치욕적인 행동을 감히 입에 담을 수가 있단 말인가? 지금 이 천하디천한 것과 마주 보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굴욕적인지 몰라서 그러는 건가?”
“그러면 직접 비키면 되잖아!”
말하는 게 아니라 짖는 듯한 기분으로, 으르렁대는 듯한 기분으로 예나는 내뱉었다.
“뭐 이런 소유물이 다 있어? 아드리아누트, 정말로 내버려 둘 텐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자네가 이 소유물에 대한 의무를 포기한 줄로 알고 그에 걸맞게 대접해 줄 수밖에 없어.”
“걸맞은 대접을 받아야 할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네. 남에 대해서 그 따위 식으로밖에 말하지 못하는 인간이 받을 대접이란 게 난 더 궁금한걸? 사람을 앞에 놓고 천한 것 운운 하면서 무시하는 태도는 뭐지? 당신은 남이 그러면 기분 좋아? 치욕이나 굴욕이 뭔지 당신이 진짜로 알아? 지금 굴욕을 당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당신에게 존칭을 붙여야 하는 이유가 뭔데?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당신 지금 태도를 보면 절대로 내가 진심으로 존경의 의미를 담아 존칭을 붙일 인간이 못 돼. 최소한 사람이 이 나이까지 자라서 어른이 됐으면 어른답게 굴 줄 알아야지. 진심은 눈곱만큼도 담지 않고 그저 기계적으로 존칭을 붙이라고 하면 해 줄 수는 있어. 그래 줄까? 잘나신 나리, 그래 어디가 그렇게 불편하신가요? 기저귀 갈 시간이라도 되셨나요? 조금만 더 얌전하게 굴면 우유도 갖다 드리죠!”
잠깐 동안 침묵이 흘렀다. 평소의 두 배 속도로 말을 쏟아내고 나서 가쁘게 몰아쉬는 예나의 숨소리와 장작이 타면서 타닥 터지는 소리만이 홀을 메웠다. 그리고 다음 순간.
예나의 눈앞에서 파란 불꽃이 튀었다. 예나는 자기 몸이 빙글 돌면서 난로 쪽으로 돌아서는 것을 남처럼 바라보고 있다가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움직이는 것조차 보지 못했는데 그자가 지팡이를 들어 예나 쪽으로 뻗고 있었고, 그 앞을 어느 틈엔가 영주님이 팔로 막아서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자는 한손으로 여전히 지팡이를 짚고 있었고, 다른 손으로 거기에서 뽑은 칼을 내지르는 중이었다. 너무나 빨리 뽑아서 불꽃이 튀는 그 칼은 방금 전까지 예나가 서 있던 자리를 향해, 정확히 그 목이 있었던 부근을 향해 똑바로 뻗어 있었고, 그 일격을 대신 맞은 영주님의 팔뚝에서 나온 피가 방울방울 칼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영주님!”
“아드리아누트!”
예나와 그자가 동시에 같은 사람을 불렀다. 그러나 그 소리에 담긴 감정은 상당히 달랐다. 놀라 기겁하며 매달리는 예나를 등 뒤로 둔 채, 증오스럽다는 듯이 노려보는 그자를 정면으로 마주 보면서 영주님이 말했다.
“그러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직접 하라고 했을 텐데. 내 말을 무시하는 거야 참아 줄 수 있지만 내 소유물에 손을 댄다면 나를 노린 거라고 간주하겠다.”
“제정신인가, 아드리아누트? 나에게 적대하고 저 소유물을 감싸겠다고?”
“오래 알아도 이름 하나 제대로 부르지 않는 누군가보다는 내 소유물이 귀하지.”
“하! 후회하진 않겠지? 네 소유물에 손을 대는 게 널 노리는 거라면, 네 소유물이 한 모욕은 네가 한 거라고 간주하겠어!”
“마음대로. 모욕을 받았으니 이대로 붙겠나?”
“장갑을 준비해 드릴까요, 세르자크 님?”
갑자기 이 상황에 루치안의 명랑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자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루치안은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였지만,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면서 홀로 걸어왔다. 예나가 보기에도 얄미울 정도로 흠 없이 완벽한 태도였다. 세르자크라고 불린 그자는 뒤를 흘긋 보더니 이를 드러냈다.
“아직 그 목이 잘도 붙어 있군.”
“제 안부를 궁금해하셨다니 영광입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예정일은 모레로 알고 있어서 미처 마중을 못 나갔으니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정말 장갑은 필요 없으십니까?”
잠깐이나마 루치안을 향해 말을 건네는 줄 알았더니, 세르자크는 다시 고개를 돌려 영주님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래, 잊고 있었군. 네 소유물은 언제나 이 모양이었어. 소유물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네가 우리의 수장이라는 게 나는 언제나 불만이었지.”
“불만이면 정식으로 안건을 제기해. 그럴 자신이 없으면 힘으로 덤벼도 좋고. 아니, 자신이 없는 건 힘으로 누르는 쪽이었던가?”
“네까짓 것, 힘이 없어서 그대로 두고 보는 줄 아는가!”
“그게 아니라면 아직까지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게 설명이 안 되지 않나? 입으로만 읊어 대는 꼴은 볼 만큼 본 것 같은데.”
그 점은 예나도 몹시 동감하는 바였다. 실제로 자신이 어떻게 하는지는 하나도 보여 주지 않으면서 말로만 기강이 어쩌느니 하는 것도 모자라서, 예나를 향해서는 그렇게도 재빨리 뽑았던 칼을, 영주님을 상대로는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꼴까지, 그야말로 꼴사나웠다. 그에 비해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앞을 막고 서 있는 영주님이나, 시종일관 정중한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비웃고 있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 주고 있는 루치안은 얼마나 비교가 되는가.
“입으로만 읊어 대는 게 누가 될지는 봐야 할 일이지. 이번에야말로 네체르가 참석하기로 했으니, 너야말로 각오를 해 두는 게 좋을 거야. 이제까지처럼 쉽게 나를 무시할 수는…….”
“루치안, 손님을 객실로 모셔.”
지금까지 영주님이 한 말 중 내용은 가장 정중하지만 말투는 가장 싸늘한 말이었다. 기세 좋게 말을 퍼부으려던 세르자크도 말없이 칼을 지팡이 검집에 집어넣고 뒤돌았을 정도였다. 루치안은 얌전히 따라오는 게 피차 말썽 없는 길일 것 같다는 분위기를 풀풀 풍겼지만, 세르자크가 따라가는 모양을 보면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예나는 자신이 세르자크에게 말을 퍼부은 바로 그 다음 순간과는 조금 다른 침묵에 잠깐 떨었다.
“너.”
과연, 이렇게 될 것 같아서 떨린 모양이다.
“첫날부터 할 짓 안 할 짓 가리지 못하고, 갈 데 안 갈 데 못 가리고, 물러서야 할 때랑 나가야 할 때가 언젠지도 모르는 멍청이인 줄은 알았지만, 죽고 싶어서 안달이라는 점까지는 생각하지 못했군.”
첫날 들은 것보다 더한 독설에 더한 한기였지만, 예나는 지금 이 순간은 할 말이 없었다. 그저 고개를 떨어뜨리고 들을 뿐이었다. 머릿속에 남은 열기를 모조리 퍼부은 다음 순간에 바로 자기 목이 날아갈 뻔했을 때, 자신이 또 사고를 쳤음을 깨닫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어떤 모진 소리를 하더라도 영주님은 그럴 자격이 있었다.
“네가 이제 내 소유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그자는 멍청하긴 해도 자기가 한 말 정도는 지킬 수 있는 능력자다. 네가 한 행동 때문에 죽는 건 너만이 아니다. 알겠나?”
“네.”
짧고 간명하게, 최대한 진심을 담아서 예나는 답했다. 영주님은 아직도 그 일로 피를 흘리고 있다.
“너에게 줄 벌은 모두 앞에서 발표하겠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영주님, 어서 상처를…….”
치료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려고 고개를 드는 순간 예나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영주님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약간 숙이고 어딘지 모를 곳을 보는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었는데,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는 듯했지만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고 눈에 이채로운 열기를 띤 모습이 왠지 모르지만 그렇게 가슴에 콱 박혀 왔다.
“어쩌면 잘됐을지도 모르지.”
예나를 보지 않으면서 영주님은 말했다.
“변하지 않는 건 지긋지긋하니까. 끝은 환영이야.”
“상처를…… 치료해야 해요, 영주님.”
자기 목소리에 예나도 잠깐 놀랐다. 영주님은 퍼뜩 정신이 든 듯 고개를 돌려 예나를 바라보았고, 그 얼굴은 이제 조금 전과 달리 서늘하고 무표정한 보통 때의 얼굴로 돌아가 있었다. 예나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다시 한 번 반복해서 말했다.
“치료해요, 영주님.”
“필요 없다. 금방 낫는다.”
“하지만…….”
“여기나 닦아.”
그렇게 말하고 영주님은 다시 의자로 가서 앉았다. 다치지 않은 쪽 손으로 다친 팔목을 감싼 자세였지만, 그 자리에서 의자까지 가는 데에는 피가 떨어지지 않았다. 예나는 얼른 주변을 살펴서 쓸 만한 걸레를 찾았다. 그리고 열심히 닦았다.
자신 때문에 흘린 피라고 생각하니까 다시 가슴이 메어 왔고, 지긋지긋하다는 단어를 발음할 때 영주님 눈에 떠오르던 환멸의 불길이 뇌리에 남아 결정타를 가했다. 그저 하던 말을 이으려고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고 했던 건 아니었다. 정말로 그때에 영주님이 상처를 입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팔이 아니라 어딘가 다른 곳에. 어딘가 더 깊은 곳에. 예나는 알지 못하는,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도 알지 못할 어떤 오랜 상처가 드러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영주님은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예나도 열심히 걸레질만 했다. 자국을 지우고 피가 묻은 걸레를 숨겨 놓은 다음에야 사람들이 홀로 모여들기 시작해서 다행이었다. 사람들이 웬만큼 모이고, 마지막으로 루치안이 쾌활한 목소리로 인사를 나누면서 홀을 가로질러 오자, 그제야 영주님이 일어섰다. 처음에 들어왔을 때 예나가 그랬듯이, 영주님이 안 계신 줄 알고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영주님은 잠깐 다 왔는지 세기라도 하듯 사람들을 한 번 훑어보고 입을 열었다.
“두 가지 일이 있다.”
예나는 새삼스레 영주님이 평소에는 말을 참 짧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 말시장에서 말 사는 것 같다고, 가축 취급하지 말라고 했던 것도 그 짧은 말투 때문이었다. 단어를 최대한 축소하고 제멋대로 잘라서 붙이니 그런 기분이 드는 것도 예나 탓만은 아니었다. 예나는 다시 한 번 새삼스레, 영주님이 이제까지 한 가장 긴 말은 조금 전에 자신에게 했던 꾸중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아마도 정말로 화가 나서였을 것이다. 아니면 일부러 그랬던 것일 수도 있었다. 비록 엄청난 독설이긴 했지만, 야만스러운 짓을 한다거나 하지 않고 말로만 한 꾸중인데다 지금 돌이켜보니 상당히 준엄하기도 했다. 역시 영주님은 처음에 보고 학을 뗀, 그런 사람이 아닐지도 몰랐다.
“첫째, 일주일 뒤에 연회가 열린다. 손님은 내 친구들이자 위원회원들이다. 이들을 맞이하는 데 대한 주의점은 이제 모두 알리라 생각한다.”
“예!”
“오늘 제일 먼저 도착한 손님은 특히 심기가 꼬여 있으니 알아서 잘 처신해라.”
사람들 사이에서 수근거림과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했다. 개중에는 진지한 얼굴로 끄덕이는 파울도 보였고, 귀찮다는 듯, 못 말린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젓는 레이낙스도 보였다.
“둘째, 새 식구가 있다. 얼굴들은 봤을 테지. 나와라.”
멍하니 있던 예나는 누군가 뒤에서 밀어서 앞으로 나갔다. 주어를 빼놓고 말하니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있느냐고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예나 클로비츠다. 길도 잘 잃고 사고도 잘 치니, 모두들 한시도 눈을 떼놓지 말고 자기 영역을 잘들 수호하길 바란다.”
그 말에 예나는 하마터면 입 밖으로 크게 불평과 부정의 신음을 낼 뻔했다. 한시도 눈을 떼놓지 말라니,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나 덩치만 크고 사고뭉치인 강아지 같은 걸 소개하는 것 같지 않은가. 게다가 자기 영역을 수호하라니, 그러면 예나가 할 일은 뭐란 말인가?
“배치는 좀 복잡하니 잘 들어 둬라. 특히 너. 두 번 묻는 게 특기인 것 같은데 그냥 한 번에 잘 들어 두는 게 좋을 거다.”
이젠 기억력도 없는 바보 취급까지 한다!
“아침과 저녁때에는 주방 조수의 조수다. 미오리타와 파울이 관리를 담당하고 총 책임은 소네틴이 진다. 아침과 점심식사 사이 시간에는 바느질을 돕는다. 역시 헬라와 메둘라가 관리를 담당하고 총 책임은 네이트가 진다. 점심식사와 저녁식사 사이에는 마구간에서 일한다. 다미엘이 기본적으로 관리하고, 다미엘이 나갔을 때는 데르첸이 대신 보도록. 저녁식사 이후에는 내 방을 치운다. 안나가 처음 사흘만 일을 가르치고 이후에는 잘하나 못하나 검사만 한다. 주방에서 하인 방, 마구간으로 이동할 때에는 루치안이나 루치안이 그때그때 지정한 다른 사람이 동행한다. 손님 방에는 얼씬하지 못하게 한다.”
영주님의 말을 들으면서 열심히 끼워 맞추던 예나는 사색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면서 돌면, 남는 시간이 정말 없었다. 게다가 이동하는 때까지도 사람을 붙인다니, 동행이 아니라 감시가 아닌가, 이 정도면. 그러고 보니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너에게 줄 벌은 모두 앞에서 발표하겠다.’고 했던 영주님의 말. 어쩌면 첫날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장담한 것 때문에 이런 식으로 시험을 해 보는 것일지도 몰랐다. 뭐가 됐든 간에 이건 너무 살인적인 계획표다. 게다가 손님 방에는 얼씬도 못하게 하라니, 그 말을 듣고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고 있지 않은가. 세르자크 일 때문인 모양인데, 설마 왜 그러는 건지 사람들에게 밝히진 않겠지?
“손님 방에 머리가 보일 정도로 가까이 가게 한다거나, 밖에 혼자 내보내는 순간 이 목은 아마 날아갈 거다. 겁도 없이 세르자크에게 반말로 대들면서 갓난아이 취급을 했거든. 그 녀석 성질머리는 다들 잘 아는 바일 테니 부언하진 않겠다. 전달할 이야기는 여기까지니 각자 위치로 가도록.”
그러나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평소처럼 무심하고 객관적인 투로 말하니 오히려 예나 꼴이 더 우스워졌다. 예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히 뒤돌아서서 가는 영주님을 애처롭게, 죽일 듯이 쳐다봤다. 누군가가 날카롭게 내뱉는 혼잣말이 귀에 들어왔다.
“관심 끌고 싶어서 미쳤군그래. 죽으려면 혼자 죽지.”
여자의 목소리라는 것 말고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어조만은, 깔보고 경멸하는 듯한 그 어조만은 너무나 선명해서 예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때 누군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예나는 자기 어깨에 얹힌 탄탄한 손가락에서부터 툭 튀어나온 손목, 근육질의 팔로 눈을 옮겨 가다가 마침내 진지한 파울의 얼굴을 보았다.
“손님에게 실례를 저질렀다고?”
“네,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반성하는 중이…….”
“정말 멋져.”
“에?”
“우리도 여러 번 본 손님인데 완전 투명인간 취급하거든. 아니, 투명인간이 뭐야. 빨리 오물을 치우란 식으로 우리만 보면 난리친다고. 정확히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녀석이 난리 칠 만한 말을 해 준 거겠지?”
“아, 네. 너야말로 걸맞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존칭 못 써 주겠다고 하기도 하고…….”
“진짜? 속이 다 시원하다!”
옆에서 끼어 든 건 네이트였다.
“주인님이랑 같은 급이라고 잰체하지만 볼 거 하나도 없는 놈이잖아. 언제나 꼴 보기 싫었는데 잘됐네, 뭐! 걱정 마, 걱정 마, 우리가 무슨 일 안 생기게 돌아가면서 지켜 줄 테니까.”
바느질만 하는 손인데, 어깨를 탁탁 두들기는 손길이 어찌나 매운지 하마터면 눈물이 나올 뻔했다. 예나는 황급히 눈가를 만졌다. 그리고 파울과 네이트에게 감사하다는 표시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생각만큼 그렇게 고달픈 나날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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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새벽에 스리슬쩍 빨리 올리고 도망-
금요일에 또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