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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파크 9월 신간입니다. 작가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데, 다른 책과는 달리 뒤에 붙은 몽롱한 카피가 참 마음을 끌기에 다른 책 주문하면서 한꺼번에 질렀습니다. 린다 하워드의 <영원애>를 먼저 읽으려고 주문을 시작했던 것이지만 막상 책을 받고 보니, 어쩐지 이 책에 대한 독특함이 대체 어느 정도일까 궁금했기에 가장 먼저 읽게 되었지요.
감상은 - 아니, 감상보다는 제가 얼마나 이 책에 몰입했는지를 먼저 얘기하는 것이 좋을 듯 하군요. 근래 제가 이렇게 완전히 집중해서 읽어본 적이 전무했거든요. 첫장부터 보통 읽어본 로맨스와는 다른 참신하고 독특한 작가의 색채를 느꼈달까요. 번역소설임에도 문체에서 이런 '작가 고유의 느낌'을 받았던 예는 데니스 루헤인의 <살인자들의 섬>에서도 한번 그런 적이 있습니다.
처음 책장을 넘긴 게 출근길 지하철 역에서였는데, 그날 하루 종일 이 책 읽느라 아무 것도 못했습니다.(회사에서 하루 종일 놀았다는 얘기죠, 이 책 때문에-_-) 원래 버스 안에서 책 못 읽는데, 지하철에서 버스로 갈아타면서 뒤가 궁금해서 못 참겠는 기분에 일단 펼쳐들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내리 읽었습니다. 얼마나 집중을 해서 읽었는지 멀미하던 증상을 한번도 못 느꼈지 뭡니까.
어쨌거나, 로맨스가 "남녀 관계의 갈등을 플롯 최전선에 놓는다"는 전제가 기준이라고 보았을 때, <메아리>는 일반 소설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원래는 "장르 로맨스"가 아니었으나 영향받은 작가들이 많아 로맨스의 시초라는 식으로 얘기하기도 하는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 등의 소설과도 같은, 뭔가 고전적인 문학의 냄새도 풍겼던 것 같아요.
그저 인물들이 움직이는 모양새와 그들이 내뱉는 대사와 작가가 표현하는 간단한 묘사만으로도 가슴을 조이는 듯한 짜릿한 매력이 느껴졌기 때문에, 그토록 기다려왔던 합체 씬이 그리 세세하지 않아도 충분할만큼(...), 캐릭터의 매력을 그려내는 묘사력이 대단히 입체적이었습니다. 로맨스보다는 등장 인물들 간의 비밀스러운 과거 내력으로 엮인 사건이 차분하고 밀도있게 전개되어가는 팽팽한 긴장감은 상당한 몰입과 흡인력을 자랑합니다.
서부 개척 시대의 과거과 겹쳐진 플롯 구성은 현실과 겹쳐지는 과거의 비극적이면서도 애틋한 사랑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현재의 남녀 주인공인 테스와 그랜트의 차분하면서도 애틋한 이끌림도 매력이 있었지만, 이들의 전생에 해당하는 100년 전 이야기에 절절함을 뒷받침해주는 그릇과도 같은 캐릭터인지라, 애덤과 몰리에게 훨씬 감정 이입이 잘 되더군요. 가슴 아팠습니다.
여러 장르의 소설을 읽어왔다는 작가의 이력답게,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서스펜스적인 요소, 범인에 대한 윤곽을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는 미스터리적인 요소,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판타스틱한 요소 등은 작품 전반을 아우르는 로맨스라는 기본 틀에 얽매이지 않고 치밀하고도 자연스럽게 엮여 펼쳐집니다. 게다가 처음 뵙는 번역자의 문장이 상당히 깔끔하고 단정했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냥 생각할 것 없이, 저처럼 이 책에 끌리는 분들은 말없이 지르시고 후회없이 읽으시기 바랍니다. (물론 제 감상에는 당연하게도 주관적인 취향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제가 읽은 에린 그래디의 <메아리>에 관해서는 내용을 구구절절 나열하기보다는 그냥 손에 들고 직접 읽으시는 편을 권장하겠습니다. 로맨스로서는 꽤나 독특한 분위기와 세련된 심리 묘사를 자랑하는 축에 속하기도 했고, 흡인력은 말할 것도 없고, 읽고 나서 책장을 덮고 난 후에 먹먹한 여운마저 남습니다.
책장 덮으면서 눈물이 핑 돌아본 적도 정말정말정말정말 오랜만이군요. 한동안 다른 소설 못 잡을 것 같은 그런 기분과 비슷하게 말이지요.
사, 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