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95

4.세계는 기억 한다

 

내가 처음 사건을 인지한 건, 잠깐 우리 부서에 근무했던 후배가 가져온 사건 파일로부터야.”

그의 이야기는 단순했다. 비록 청소년 실종사건이었지만, 사체가 연속으로 나왔기 때문에 사건은 강력반으로 옮겨졌고, 그 중 특수현상처리반에 로테이션 근무를 한 적이 있는 형사가 사건파일에서 특이성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때는 아직 시체가 3명 발견되었을 때였어. 살인인 것조차 명확하지 않았지만 죽은 사체가 같은 연령대에 거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채 발견되었다는 공통점 때문에 눈여겨 본 경관이 있었어. 특별히 강력반에 부탁했다가 특이점이 발견된 거지.”

사인은?”

공식적인 사인은 심장마비지만, 검시관의 말로는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고 하더군. 그런 경우는 다 심장마비야. 결국 죽어서 심장이 멈췄다는 의미 그 이상도 아니었지.”

나는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천천히 주의 깊게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느리지만 질문도 잊지 않았다.

의문사?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특이점이라는 게 뭐였죠?”

의민은 확대된 사진을 내게 펼쳤다. 그것은 다양한 노트 혹은 일기장의 내용을 찍은 사진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시선을 빼앗을 듯한 특이점이 있었는데 거칠 필기체와 단정한 필기체가 교차하는 기묘한 내용이었다. 마치 두 사람이…….

마치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문체지?”

다른 사람과 교환일기라도 나누었나보죠.”

나는 반론을 제시한다.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봐, 얘는 일기를 안 쓰는 타입이었어. 근데 평소 다른 과목을 필기하는 노트에 이렇게 거친 글씨로 대화를 나누고 있지. 그리고 얘는 평소 일기를 쓰지만, 이 일정 시점, 즉 행방불명이 되기 직전에만 이런 전개로 일기장에 쓰고 있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상대의 필기체가 모두 같아. 즉 모두 같은 인물과 대화를 나누고 있지.”

…….”

강력반에 소속되어 있던 이 친구가 잠시 우리 부서에 근무한 적이 있어. 약간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어. 때문에 동일 필체를 발견했을 때 의심을 갖고 나한테 문의를 해 왔어.”

그래서 사건을 인지하셨군요.”

나는 다른 반론을 할 수도 있었지만, 내가 여기 있는 이유 자체가 논리적이지 못했다. 그리고 단순히 반론을 위한 반론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의민은 나를 바라보더니 한숨을 쉬듯 말했다.

물론 유령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바로 이 특이점을 유령과 연결하지 않았겠지. 나나 그 후배가 특수현상과 접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의심을 했고, 우리는 바로 유령, 특히 스내처 현상을 의심했어.”

스내처 현상?”

, 너희는 잘 모르겠지만 바디 스내처라고 유명한 소설이 있거든. 신체강탈자라고 내용은 중요하지 않고, 유령 중에는 신체를 강탈해 사용하는 유령이 있어. 하지만 육체라는 건 원래 주인이 아니면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그 한계점을 49일로 지정하고 있어. 실제로는 더 길거라고 생각해 서로 주도권싸움을 하느라 시간이 걸리니까.”

주도권 싸움.”

나는 내 기억을 되돌아본다. 나도 주도권싸움을 했다면 기억이 남아있을 텐데, 그런 기억은 없다. 하지만…….

저는 그런 기억 없습니다.”

하지만 의심스러운 부분은 있지?”

물론 기억이 애매한 부분은 있지만, 그건 기억상실이 있는 2개월도 포함해서 후유증이라고.”

그래, 그렇게 볼 수도 있지. 다만, 너는 영능력이 강한 편이었어. 때문에 주도권싸움에서 아마 넌 쉽게 지지 않았을 거야.”

…….”

짐작컨대 아마도 네가 자고 있을 때만 네 몸을 차지했을 가능성이 높아.”

?!”

나는 내 몸을 감싸 안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네 경우에는 그렇게 점점 의식을 빼앗는 시간이 길어졌을 거라더군. 그러니까 넌 완전히 몸을 빼앗긴 이후에도 금방 네 몸이 있는 장소를 따라갈 수 있었을 거야.”

그리고…….”

내가 여기까지 설명을 들은 중요한 문제가 드디어 나온다.

그리고 가영이를 만났지.”

그렇군요.”

가끔씩 떠오르는 어떤 학교의 풍경, 그리고 긴 생머리의 얼굴이 자세히 등장하지 않는 소녀의 모습. 잃어버린 기억 대신 위화감이 드는 장면이 자꾸 내 머리 속을 자극했다. 그와 동시에 뭔가 알 수 없는 초조함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가영이는, 그러니까 유령을 볼 수 있군요. 그래서 날…….”

물론, 일주일 동안 무시했다고 하더구나.”

…….”

그랬더니 네가 다른 학생을 공격하려고 해서…….”

잠깐! 제가 지금 다른 사람을 공격하려고 했다고요?”

황산으로.”

그것도 황산으로. 나는 책상에 머리를 처박고 싶어졌다.

, 너처럼 영력이 강해서 물건을 움직일 수 있는 유령이 드물긴 하지만 있긴 있으니까. 가영이는 거기에 익숙한 편이고.”

하아? 그럼 걔는 유령을 만날 때마다 같은 상황을 겪는다는 건가요?”

같진 않지만, 비슷한 상황을…….”

어떻게 애를 그런 상황에 방치할 수 있어요!”

나는 벌떡 일어나 의민을 비난했다. 그러자 의민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유령의 존재 유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 거니?”

…….”

난 네게 유령의 존재를 증명할 방법이 없어. 물론 보여줄 수 있지만, 그것을 유령이라고 믿게 만들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걸 넌 그냥 마술이나 디지털 영상이라고 생각하면 끝이니까. 무조건적 부정에 대해서 증명은 불가능 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논리적인 의심과 유령의 존재에 대해서 일단 고려해보라는 것 뿐이야.”

전 이미 비논리적인 부분은 겪었습니다.”

나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대답했다. 의민은 호오하며 의문이 섞인 감탄사를 내뱉었다.

전 가영이를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분명히 처음 보는 아인데 그 아이의 표정을 다 이해합니다. 손에 잡힐 것 같이 그 아이의 태도가 뭘 뜻하는 지 알 수 있어요. 그리고 그것은 육친처럼 친근하게 느껴져요. 이건 처음 만난 사람에 대한 감정이 아닙니다.”

나는 침을 삼키며 잠시 쉰 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설사 첫눈에 반한 거라고 생각해도 비논리적이에요. 첫눈에 상대의 행동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의미 가영이는 단순하니까.”

본인이 들으면 발끈할 말은 아무렇지 않게 한다. 거기에 나 역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아이가 방방 뛰며 화를 내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제 자신이 가영이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 제가 잃어버린 기억 동안 가영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넌 아마도 그 부분을 절대 기억해 낼 수 없을 거야. 그건 네 영혼이 기억하는 부분이고, 네 육체가 기억하는 건 널 공격한 유령이 한 행동이니까.”

……제가 점점 기억해내고 있는 건 서현이라는 아이와 함께 한 기억입니다. 그리고 전 그 기억에 혐오감을 느낍니다. 그게 마치…….”

의민은 내가 좀처럼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을 끈기 있게 기다렸다.

전 무력감을 느끼고 저항할 수 없는 고통을 느껴요.”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의민은 내 머리에 손을 얹어 쓰다듬었다. 누군가에게 그런 식의 위로를 받은 건 처음이었다.

넌 가영이를 좋아했고, 가영이도 아마 널 좋아하겠지.”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물론, 그 아이는 내가 이런 말을 한 걸 알면 화를 내겠지만. 네가 가영이를 좋아한 건 사실이야.”

그걸 어떻게 아세요?”

그러자 그는 갑자기 입을 닫았다.

아아, 이건 진짜 말 할 수 없어. 진짜 가영이가 불쌍해지니까.”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이나 그 아이에게 확실하게 표현한 건가요.”

나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어서 시선을 피한 채 절망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의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충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군. 난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확실하게 그 애에게 표현한 거구나.’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걸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믿고 싶지만, ……완전히 믿을 수가 없어요.”

…….”

기억해 냈으면 좋을 기억은 나지 않고, 자꾸 위화감만 느껴지는 기억만 생각나니, 화가 나요.”

나는 한숨을 쉬고 덧붙였다.

아무튼, 형사님의 의도와 사건의 의문점은 논리적으로 말이 되요. 그 가능성은 고려해보겠습니다

나는 확신이 필요했다. 실질적인 기억이 필요했다.

 

일단 난 유령에 대해서 깊게 고민했다.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내가 들은 얘기는 말짱 헛소리에 불구하다. 하지만 공신력 있는 경찰, 그것도 경감이라는 고위직함을 가지고 있는 경찰이 나에게 이렇게 고급 설정을 가진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짜고 치는 몰래카메라치고는 너무 공을 많이 들였다. 나는 믿고 싶은 마음을 최대한 눌러 있는 사실과 합리적 의심을 자아내는 의문점을 고민하기로 했다. 내가 처음 보는 여자애한테 너무 반해 객관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제일 높은 장애물이었기 때문에 되도록 냉정하고 싶었다.

냉정은 개뿔!”

나는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서현의 손을 뿌리쳤다.

미안, 얘기는 다른 날 하자.”

이 소녀에게서 난 혐오감 외에는 느낄 수가 없었다. 단 둘이라니, 가능할 리가 없다. 나는 뒤돌아서 가영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촤아악!

가영은 벌써 수십 번은 뒤집어 쓴 물벼락에 푹 젖어버린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왜 시작점이 다리야!”

그녀는 허공을 향해 외쳤다. 그래서 나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 잠깐! 거길 갈 거면……, 무시냐! 무시야?”

그녀는 갑자기 다리 난간을 붙잡고 주먹을 높이 들고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칠흑처럼 어두운 강 너머를 바라보며 화를 내고 있었다.

난 못 나니까 거기 못 간다고! , 이 무뇌아야!”

가영은 한강대교 중간에서 실컷 외쳐대더니 바람에 뒤집어진 우산과 한동안 씨름을 하고 나서 간신히 우산을 접은 채 다시 내가 있는 방향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허둥지둥 어떻게 얼굴을 숨길까 고민했지만, 그녀는 나는 신경도 안 썼다. 어지간해서 사람이 오가지 않는 대교 중앙에서 마주쳤지만, 비도 오고 짙은 색깔 우산을 뒤집어 쓴 나를 가영은 알아보지 못했다.

자기 몸이 발견된 장소로 갈 거면 처음부터 거길 가라고 왜 다리 중앙까지 와서 다시 한강뚝방이냐고. 넌 대각선으로 갈 수 있지만, 난 돌아가야 되잖아. 붕 날아서 넌 가겠지만, 난 못 간다고. 아 참 비는 뭐 이렇게 많이 와서 완전히 푹 젖었잖아. 내 옷이 소비재다, 소비재. 뭐 며칠을 못 가.”

그저 내 곁을 지나며 중얼중얼 비 맞은 중 마냥 투덜대고 있었다.

.”

나는 간신히 입을 틀어막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았다.

애가 왜 이렇게 귀엽냐.’

더 이상 비를 피하는 것을 포기한 가영은 축 늘어진 어깨를 다시 일으켜 세우더니 또 난간을 붙들고 이마에 경례하듯 손을 펴 저 멀리 강둑을 바라보았다.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마음을 다잡은 듯 그녀는 재빨리 뛰어서 다리 아래 한강공원을 향했다.

한강대교.”

나는 가영이 다리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확인하고 방금까지 가영이 서 있던 자리에 걸어갔다.

무겁지 않았나.’

나는 파편처럼 흩어진 기억을 그러모은다. ‘그것을 들고 안개 낀 다리 위를 걷는다. 때때로 곁을 지나는 자동차들은 아무 신경도 쓰지 않는다. 나 역시 무겁다는 의식이 없다.

.”

한 달 동안 기브스 하고 있었던 오른팔과 왼손이 욱신거린다. 부러진 뼈는 모두 완벽하게 붙었지만, 때때로 기억을 자극하듯 상처는 잊어버린 통증이 되살아난다.

아니, 그 때의 기억인가?’

나는 왼손을 쥐었다폈다하며 생각한다. 기억의 파편과 감각은 연결되지 않았지만, 내 팔은 그 감각을 호소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아.”

이 분리된 감각이 제법 짜증난다. 그 기억이 사실이라면 나는 분명히 나와 비슷한 체구의 그것을 무겁다 자각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감각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다만 내 팔이 저리다. 고개를 드니 가영이 벌써 다리 아래에서 점이 되어 이동 중이다.

놓치기 전에 쫓아가야지.’

나는 짜증나는 감각을 털어내며 다시 철벅철벅 빗속을 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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