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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뭐야?”
나는 체육관 벽에 무릎을 끌어안고 기대앉은 채 옆에서 똑같은 자세로 앉아있는 유령에게 물었다.
“잘……, 모르겠어.”
유령은 말하는 게 힘든 것 같았다. 띄엄띄엄 힘겹게 단어를 말했다.
“괜찮아, 기억나는 것부터 말해.”
나는 슬쩍 유령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뇌도 물고기 밥이 된 것 같다. 뻥 뚫린 귓구멍 안에 흐물흐물 얼마 안 남은 뇌가 둥둥 떠다니고 있다. 영체라는 건 형상기억합금 같은 것이다. 현재는 죽은 자신의 시체를 반영하고 있지만, 온전히 자신의 기억을 되찾으면 깨끗한 몸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 물론 어색한 남의 학교 교복이 아니라 학생의 경우 원래 자신이 다닌 학교의 교복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입고 나타나게 된다. 아마도 이 아이는 자신의 시체를 본 상태로 굳어진 것이리라. 죽은 것도 충격인데, 이렇게 엉망인 상태를 반영하다니, 언어능력도 기억력도 엉망인 건 어쩔 수 없다.
“하앗!”
“스파이크!”
“와아!”
바로 앞에서 반 대항 배구가 한창중이다. 체육관의 두 개 필드에서 아이들이 남녀 나눠서 게임을 진행하고 있다.
통통통.
하얀 배구공이 내 앞으로 통통 튀며 굴러왔다. 서현이 내 앞으로 굴러온 배구공을 쫓아와 줍는다.
“가영아, 배 많이 아프니?”
나는 지금 마법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하고 유령과 대화하는 중이었다. 나는 살짝 찡그리는 척 하며 태연히 거짓말을 한다.
“응, 오늘이 첫날이라서.”
내가 생리 첫날 아픈 건 사실이다. 다만 생리중이 아닐 뿐.
“그래, 오늘은 배구시합이라서 네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 됐다.”
“난 신경 쓰지 마.”
서현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 옆에 고여 있는 물웅덩이를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아, 이건!”
“응?”
“천장이 새나봐.”
“어? 뭐가?”
“그러니까, 물이…….”
서현은 눈을 찌푸리며 내 옆 자리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얼굴이 확 붉어져서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 그래. 그렇구나.”
“응.”
내가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어서 그런지, 서현은 잘 쉬라며 서둘러 나로부터 멀어졌다.
‘왜 이렇게 당황하지?’
내가 갸웃하는 사이 내 옆에 앉아있던 유령이 추적추적 물에 젖은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내가 눈이 휘둥그레 걷는 유령을 바라보는 사이 그는 서현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아, 잠깐, 그러면 안 돼.”
“가영아?”
내 옆에 앉아있는 아이들이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본다. 나는 깜짝 놀라 입을 손으로 가리고 다시 주저앉았다.
“아냐, 잠깐 두통이 와서 이번 건 좀 심한 거 같아서, 이러면 안 되는데…….”
나는 진짜 괴로운 듯 한숨을 쉬었고, 아이들은 안됐다는 듯이 서로 그때의 경험을 주고받는다. 얘들아……. 우리 옆에 체육선생님이 허둥대고 있다.(참고로 남자다) 나는 아이들이 다른 화제로 시선을 돌렸을 때,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안 돼! 따라가지 마!』
그러자 물에 젖은 유령은 스르륵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그에게 급하게 손짓을 하며 제자리로 오라고 강조했다. 유령은 잠깐 망설이듯 서현을 바라보다 미련을 끊듯이 고개를 돌리고 내 옆 자리로 돌아왔다.
‘다행이다, 요 반년 간 거의 쓴 적이 없어서 잘 될지 몰랐는데.’
“이건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줄 생각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되지만. 넌 너무 많이 보이니까, 가르쳐 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유령에게 들리는 목소리? 유령은 그냥 말해도 듣지 않아?”
“평범한 유령은 그렇지, 하지만 대체로 다 망가져 있어서 실제 육성은 그들에겐 잘 안 맞는 주파수 같은 거야. 때문에 잘 맞는 주파수의 목소리가 필요할 때가 있지. 다른 사람은 망가진 유령을 보기 힘들지만, 넌 지나치게 눈이 좋으니까.”
“……그럼 저게 망가진 유령이야?”
“아니, 저건 더 이상 유령이 아냐. 자아도 기억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영체 덩어리지. 그러니까 이 목소리는 어쩔 수 없을 때만 사용해. 쓸데없는 것도 들을 수가 있으니까.”
“불렀어?”
‘힉!’
나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 했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늘어뜨리며 내 앞에 과학 선생님이 나타났다.
“과학시간 말고는 못 봤는데 불러주다니 기쁘다.”
스윽하고 그 과학선생님이 손으로 내 척추를 따라 훑는다.
‘이 변태가 귀는 밝아서. 여긴 체육관인데 거기까지 들리디?’
당연히 이 많은 사람 앞에서 당당히 성희롱 중인 이 선생님은 과학실에 상주중인 변태귀신이다.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르지만(당연히 외면하고 무시하고 가끔 밟아줬다) 옛날에 이 학교 선생이었던 것 같다.
“당신 안 불렀거든? 꺼져.”
“흐음, 이번에 새로 온 학생인가 보네.”
“얘 전학 온 거 아니야.”
이 선생 유령이 너무나 무심하게 말하길래 나도 모르게 딴지를 걸고 말았다.
“우리한텐 전학이나 마찬가지지. 어라, 교복도 입고 있네. 어려서 좋겠네.”
나는 찌릿 변태교사를 노려본다.
“어린 게 좋은 거니, 불쌍한 거지.”
“아무것도 모를 때 죽어서 차라리 나은 거지.”
“모르니까 불쌍한 거지.”
“…….”
이건 내가 한 말이 아니다. 가끔 언니들 대화 속에서 튀어나온다. 삶을 산다는 의미도 모른 채 죽어간 어린 영혼들에게 하는 말이다. 서현을 따라가다 말고 다시 내게 다가온 소년은 우리들의 대화를 보고 갸웃 고개를 기울인다. 텅 빈 눈동자가 제법 귀엽게 느껴진다.
“아냐, 여기 앉아.”
나는 물웅덩이가 있는 자리를 가리키며 얼버무렸다.
“진서현! 뭐하는 거야!”
아이들의 불만 섞인 야유가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유령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서현과 시선이 마주쳤다. 내 무심한 눈길을 마주한 서현은 얼어붙어있었다.
“……왜.”
입술을 달싹이는 거의 소리가 나지 않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정면으로 향한 그 얼굴에서 움직이는 입술을 난 읽을 수 있었다.
쓸데없는 것도 들을 수 있으니까
‘설마, 들었어?’
“흐응, 우리가 보이나?”
내가 당황해 있는 사이에 이 비틀린 변태교사가 서현에게 흥미를 보인다.
“가만있어, 이 변태야.”
“나도 이왕이면 예쁜 애가 취향이야.”
“……그러시겠죠.”
내가 살짝 삐져서 방심한 사이에 변태교사가 서현에게 다가갔다. 서현은 그 사이 아이들에게 사과하고 다시 경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변태교사는 흐응, 흐응, 하며 불건전한 신음소리를 내며 서현 근처를 돌아다니지만, 서현은 살짝 귀찮은 기색을 내비칠 뿐, 딱히 변태교사를 인식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얘 안 보이는 거 같은데?”
서현 옆에서 손가락질을 하며 나를 바라보는 변태교사. 저 변태는 알바 아니고, 이 위화감 언젠가 느낀 적이 있는데…….
“그래서 그 죽다 살아난 놈팽이랑 잘 지내냐?”
이 놈의 변태교사가! 나는 내 생각을 방해하고 쳐들어온 교사를 다시 노려본다.
“나한테 신경끄고 과학실에나 처박혀있어.”
“생각해보면 그게 다 그 놈 덕이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이번엔 내 귀에 숨을 불어넣는다. 한기가 목에서 발끝까지 쭈삣 달린다. 나는 내 주먹을 꽈악 쥔다.
“이 아저씨야. 당신 숨에서 나오는 건 냉기뿐이야. 성희롱해봤자 만져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기분 나쁠 뿐인데 왜 이렇게 포기를 못해?”
“최소한 반응은 있으니까. 넌 네가 얼마나 다이나믹한 반응을 보이는 지 모르는 구나? 이게 다 그 놈팽이 덕…….”
“퇴치해버리고 싶다.”
“…….”
“진심으로 퇴치해버리고 싶다.”
“알았다, 알았어. 오늘은 이만 하면 되잖아.”
곱슬머리에 빛바랜 카키색 실험가운을 입고 있는 변태교사는 나에게서 한걸음 물러선다. 이 유령은 지박령이라 학교 밖으로 못 나온다. 내가 작정하고 퇴치하고자 하면 꽤 간단하게 봉인할 수 있다. 본인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라 내가 진짜 화를 내면 물러선다. 물론 그 때만.
“당신의 그 끈질긴 집념도 대단하다. 내가 유령을 퇴치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 왜 자꾸 들러붙는 거야?”
이 유령은 수영이 우리들에 의해서 퇴치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수영은 볼 수 있는 힘이 없어서 다른 유령들을 인식하지 못했지만, 이 변태교사는 틀리다. 아니, 대체로 죽은 유령은 다른 유령을 인식한다. 그 놈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었으면 다른 유령을 인식 못한 거야? 도훈은 아직 안 죽었으니 대충 이해가 가지만…….
“인간이란 죽든 살든 자신의 낙을 포기 못하는 거야. 유일한 낙을 포기하고 살면 살던 죽든 그냥 죽은 거지.”
“말은 잘해요.”
난 굳이 당신은 이미 죽었어! 라고 딴지를 걸지는 않는다. 이 놈의 변태교사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변태교사가 된 인간, 아니 유령이다.
철썩!
“왓!”
“왜 그래?”
내 앞에 앉아있던 아이들이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돌아보더니 금세 질색하는 표정으로 변한다.
‘아아, 알았다, 알았어. 불러놓고 무시하지 말란 말이지.’
나는 차마 옆을 돌아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체육관 지붕이 새나봐.”
“…….”
아이들은 내 오른쪽 어깨가 푹 젖은 모양을 끔찍하게 바라본다. 지붕이 샌 것 치고는 좀 지나치게 젖어있다.
‘하아, 오늘이 비오는 날이라 다행이야.’
요즘은 조용해서 유령 핑계도 안 통한다. 유령 탓이지만.
“비도 오는데 웬만하면 쉬지 그랬어.”
비도 오는데 세탁기 돌려야 되나 싶은 심정으로 체육복을 가방에 쑤셔넣고 교문을 나섰건만, 무슨 개근상 받을 기세로 오늘도 교문 앞에 서 있는 강도훈. 비와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오늘도 카페에 가?”
의외로 말투에 기운이 없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가영아~!”
“힉!”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는구나.
“스톱!”
나에게 달려오는 서현을 손바닥으로 막으며 외친다.
“아, 몰라! 난 오늘은 누구하고도 어울릴 생각 없으니까, 차라리 니네 둘이 데이트 해!”
본의는 아니나 나에겐 오늘 물에 빠져 죽은 소년의 신분을 증명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 있다. 한마디로……, 니들하고 놀 시간 없어!
“그래도 돼?”
좋아한다. 나 오늘 너한테 많은 의문점을 발견했고, 너도 좀 나한테 빈틈을 많이 보인 것 같은데 그래도 사양은 안 하는구나. 나는 슬그머니 지그시 뚫어지게 서현을 바라보았지만, 살짝 굳은 표정으로 미소를 유지하는 그녀는 물러설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나는 도훈의 팔을 끌어당겨 귓속말을 속삭였다.
“네 기억을 되살리는데 많은 영향을 줄 거야. 아직도 거의 생각 안 나지? 쟤랑 데이트라도 해봐, 넌 쟤랑 같이 많이 있었으니까.”
“윽.”
도훈의 얼굴이 굳는다.
“왜?”
도훈이 이번엔 내 팔을 끌어당겨 내 귀에 속삭인다.
“그러니까 불편해.”
“…….”
나는 잠시 도훈을 올려다보았다. 그 와중에도 불안한 지 내 교복재킷 소매를 놓지 않는다.
“같이 가줘.”
“안 돼.”
“왜!”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어.”
“…….”
얼굴은 뭔가 말하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차마 할 수 없는 지 무의식적으로 내 소매를 끌어당긴다. 나는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 속삭인다.
“그럼 카페로 가. 단 둘 보다는 나을 거야.”
“카페는 좀…….”
그 이야기를, 사실 난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지만, 정황상 사실을 들었다면 진실인지 아닌지 구분도 안 되는 상황에서 이야기를 해준 상대를 찾아가긴 불편한 모양이다.
“너 나 도와줬다며.”
“하아…….”
내가 크게 한숨을 쉬니 도훈이 움찔거린다.
“난 원래 나한테 빚 있는 사람한테는 단호해.”
나한테 그는 유령의 연장선상에 있는 인물이다. 그러자 도훈의 표정이 급변했다.
“정말 내가 쟤랑 단 둘이 가도 되겠어?”
“…….”
아냐, 의민아저씨는 절대 그런 걸 얘기했을 리가 없다. 섬세한 청소년기의 여자애의 사생활을 훌렁훌렁 까발렸을 리가 절대 없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그래?”
이제 도훈은 화가 난 표정이다. 난 속으로 뭔가 안절부절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겉으로 드러내진 못했다.
“그래, 알았어! 데이트 까짓 거 하지!”
‘아니 뭐 그렇게 단호할 필요는…….’
“가자, 서현아.”
도훈은 우산을 들고 있는 서현의 팔을 잡더니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손까지 잡고 갈 필요는 없잖아.’
내가 씩씩거리며 걸어가는 도훈에게 팔이 붙잡힌 채 끌려가는 서현의 뒷모습을 보는데 그 뒤를 처벅처벅 느리게 뒤따르는 인물이 있었다.
『안된다니까!』
이 유령은 대체로 말을 알아듣지만…….
“알아, 너도 서현에게서 뭔가 느끼고 있는 거지?”
그 자신의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무언가를 본능처럼 따라가려는 성향이 있다. 이건 정신적인 인력, 혹은 트라우마 같은 것이다. 그 행동을 막으려하니 어쩔 수 없이 명료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 걸 수밖에 없다.
‘근데 왜 네가 이 주파수에 반응하는 거지?’
내 눈은 분명히 진지한 눈빛을 그녀에게 보내고 있을 것이다. 서현은 두려움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지금은 네가 우선순위가 아니니까, 뒤로 미뤄두겠어.’
나는 내 목소리에 반응했지만, 아직 망설이고 있는 유령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집에 가고 싶지?』
그러자 유령은 내 손을 향해 손을 내민다. 난 퀭하니 뚫린 눈을 바라보며 웃어준다. 서현이 봐도 상관없다. 만일 네가 무언가를 되돌리고 싶어 한다면, 넌 일어난 비극을 마주해야 해. 난 네가 그 기억을 되찾기를 바라지 않지만, 동시에 막지 못한 너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