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95

공립학교의 도서관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넓지 않다. 도서관이 아예 없는 학교도 없지 않다. 좁긴 하나 도서관이 있다는 것만으로 다행이라 생각해야 한다. 도서관은 한 달 동안 출입금지였다. , 원인은 나였다. 도서관의 낡고 오래된 나무 책장은 철제 책장으로 바뀌었고, 모든 책장은 바닥에 나사로 고정되었다. 동시에 책들도 정리되어서 신간도 제법 눈에 띤다. 도서관 입장에서는 전화위복? 자주 이용하는 나 역시 전화위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일 가는 학교 도서관이 더 편리한 건 당연하다. 나는 폐쇄되었던 한 달 동안 돌려주지 못했던 책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들렸다.

“9월 초에 빌렸던 책이구나. 제대로 가져와줘서 고마워.”

사서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 아직 안 돌아온 책이 많아요?”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아직 반납받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

사실 대대적인 공사가 시작하고 책들은 모두 서고로 이동했었다. 아무래도 중고교 도서관이라 서고도 작고 당시 빌려갔던 학생들에게 공사가 끝나면 반납하도록 공지가 있었다. 그래도 한 달이나 방치된 책을 기억하거나 잘 찾아서 무사히 회수될지는 걱정되긴 하다. 나는 사서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서가를 둘러보았다.

이 도서관에 조금만 더 넓었어도 난 책장에 완전히 깔렸겠지.’

물론 책장에 깔렸다 해도 운이 어지간히 나쁘지 않는 한 죽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산한 공포가 지나간다.

아픈 게 좋은 건 아니니까.’

철제 서가를 지나가면서 그 때의 공포를 생각한다. 책장이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광경, 훈련을 받았지만, 그 자리에서 주저앉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공포로 몸이 움직이지 않았어.’

내려다 본 손이 살짝 떨리고 있다.

내가 정말 이 경계의 세계를 살아갈 수 있을까?’

나도 두려운데 도훈을 이렇게 관련되게 해도 되는 걸까. 이미 이 세계를 살아가면서도 동시에 도망 다니는 나는 확신이 없었다.

가영아!”

그때, 내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걸어오는 인물이 있었다.

?”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웃으며 내게 말을 건 사람은 서현이었다.

내가 걸어오는 데도 몰랐지?”

, 미안. 내가 멍 때리고 있었어?”

그래! 사람을 보고 멍하니 쳐다만 보고. 반대쪽에서 열심히 어필하고 있었는데!”

철제 서가는 뻥 뚫려서 건너편 서가에 서 있는 사람이 보인다.

너 여기서 사고 났었지? 그거 생각하고 있었어?”

, .”

갑자기 그 때 부딪친 상처가 욱신거린다. 사고 때를 생각하니 다시 아픈 느낌이 든다.

혹시 그 때 다른 사람은 없었어?”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건 그때 다친 상처의 환상인가, 아님 눈앞에서 나를 탐색하는 서현에 대한 공포인가. 난 구분이 되지 않았다.

글세, 나 말고 다친 사람은 없지 않았어?”

……그랬지.”

서현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얼굴을 굳힌다.

괜찮아? 안색이 안 좋은데?”

서현이 내 얼굴을 향해 손을 뻗는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녀의 손을 피해 뒤로 물러섰다.

아냐, 괜찮아.”

……괜찮은 것 같지 않은데, 얼굴이 점점 하얘져.”

토할 것 같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아. 난 볼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

나는 본능적으로 옥상 문을 열고 옥상으로 튀어나왔다. 아직 햇살이 강한 가을의 따가움이 쏟아진다. 나는 벽에 기대 숨을 몰아쉰다. 진서현, 넌 지금 뭘 찾고 있는 거야? 그건 무의식적인 거니 아님, 의도적인 거니.

 

믿었는데…….

 

한기가 온 몸을 달린다. 그 모래는 내가 그 아이와 놀던 모래밭이다. 물리적으로 그 어린이 놀이터의 모래밭이 그렇게 깊을 리 없다.

찾지 마. 기억해 내지마.”

13살짜리 아이가 묻힐 정도로 깊지 않다.

제발……, 찾지 마, 기억해 내지마.”

나는 몸을 둥글게 말고 귀를 틀어막았다.

 

잠시 냉정함을 잃은 나는 나를 반성하며, 터덜터덜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던 중이었다. 습관적으로 카페 골목 입구에 들어선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서 고개를 들었다.

오늘은, 싫어.’

나는 서둘러 골목을 지나 점점 경사지는 주택가 골목에 들어선다. 카페 뒤쪽 주택가 골목은 제법 복잡해서 잘 이용하지 않지만, 오늘처럼 카페 앞을 지나고 싶지 않을 때는 유용하다.

운동 삼아 뛰지 뭐.’

어디 가!”

갑자기 뒤에서 튀어나온 손이 내 가방 손잡이를 잡아챈다.

기다렸는데, 왜 입구에서 홀랑 딴 길로 새냐?”

너 외고 아냐?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외고가 학원이냐? 종례시간은 같아.”

더 빠른 것 같네.’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내 가방 손잡이를 잡은 그의 손을 쳐냈다.

, 오늘은 무슨 일인데?”

내가 귀찮다는 듯이 대꾸를 하니, 도훈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날 내려 본다.

너 어제 내가 오늘 얘기하자고 한 거 기억 안나?”

?”

나는 조금 기억을 뒤져본 후, 깨달았다.

, 그랬지.’

생각은 났지만, 그렇게 중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뭐야, 그 표정! 중요한 얘기거든!”

, , 서현이랑 아주 잘 지낸 기억 이야기, 뭐 그런 거 아냐?”

나는 오늘 낮의 일도 있어선 지 괜히 심술이 나서 날카롭게 대꾸한다. 도훈은 흠칫 놀라더니, 내 기색을 살피며 눈치를 본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아무 일 없었어.”

나는 도훈을 몸을 치며 올라온 길을 다시 뒤돌아 내려간다.

그래, 피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훈련도 빼먹을 순 없고.’

 

, 이거 입어.”

도훈은 좀 냄새나는 운동복을 받아들고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난 좀 뛰어야겠어. 그러니까 너도 뛰어.”

나는 카페에 오자마자 연우아저씨가 처박아놓은 운동복을 꺼내 도훈에게 안겨주었다.

난 할 얘기가…….”

, 얘기.”

도훈은 운동복을 든 채 불만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나는 그런 그를 내버려두고 침실문을 닫았다. 나는 빠르게 학교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사무실로 나왔다.

안 가?”

여전히 운동복을 손에 쥔 채 서 있는 도훈에게 나는 물었다.

난 진지하게 할 얘기가 있어.”

아무래도 내 태도가 무성의하다고 느껴지는 모양이다. 나는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며 그에게 대꾸했다.

지금의 난 가만히 있는 게 더 고역이야. 정 그러면, 기다려. 뛰어와서 훈련 끝나면 이야기, 들을 테니까.”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사무실 밖으로 향하는 문으로 향했다. 그러자 도훈이 내 팔을 잡았다.

……잠깐, 기다려. 갈아입고 나갈 테니까.”

……그래.”

외부계단 밑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그를 기다리니 그에게는 좀 큰 듯 헐렁한 운동복 옷매무새를 만지작거리며 그가 내려왔다. 고등학교 1학년이니까, 아직은 덜 큰 건가.

평소에 운동은?”

별로…….”

천천히 스트레칭을 하자. , 방법 가르쳐줄테니까.”

도훈은 이상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런 게 더 귀찮지 않아?”

어제도 뛰는 거 잊어버렸으니까. 오늘은 꼭 뛰어야 돼. , 일단 관절부터 돌려.”

도훈은 내가 하는 모양을 따라하며 묻는다.

운동이 좋아서?”

별로 운동을 좋아하진 않는데. 이제는 양치질 같은 습관이지만.”

근데 왜 하는 거야?”

필요하니까.”

…….”

나는 내 자신의 몸을 풀며 도훈이 스트레칭 하는 걸 지켜보았다.

이제 슬슬 뛸까? 차나 자전거 조심하면서 잘 따라와.”

…….”

한동안 도훈은 말없이 내 뒤를 따라왔다. 그러나 코스의 절반쯤 되니까 헉헉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는 체력이 좋은 모양이다. 난 처음엔 다 뛰지도 못했는데.

머리를 비우고 싶었는데, 쟤 때문에 잡념만 느는 것 같네.’

나는 도훈을 신경 쓰며 한숨을 쉬었다. 속도가 처지기 시작한 도훈을 기다리며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으니 도훈이 내 옆까지 와서 숨을 몰아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역시 이야기 같은 건 하나도 안 되잖아.”

헉헉대면서도 용케 투덜거린다는 생각이 든다.

……서현이에 대한 기억이 난다면, 서현에게 물어보면 좋을 텐데?”

언제까지나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걔한텐 그런 기억이 없잖아, 그치?”

내게 확인을 요한다. 내가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거리니, 도훈은 이어서 말한다.

그리고 넌 내가 왜 이런 기억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 같고.”

……쉬었으면 다시 뛸까?”

헉헉, 하아, …….”

말 돌리는 거 아니니까, 안심하고 일어나.”

나는 천천히 걸으며 계속 말했다.

내가 너한테 설명해주는 건 아주 간단해. 근데, 네가 안 믿을 거야.”

네가 범인이라는 소리만 아니면 뭐든 놀라지 않고 믿을게.”

, 그럴 리가.”

그의 농담에 쿡하고 웃음이 터져 나온 나는 살짝 놀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의 진의도 알고 싶었다.

넌 유령을 믿어?”

……그게 네가 할 말과 관련 있는 거야?”

전제를 탐색하지 않으면 대답 안 할 거야?”

난 조금 화가 나서 대꾸했다. 결국 안 믿는다는 소리군. 내가 삐친 기색을 보이자 도훈이 한발 물러섰다.

그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니까.”

, 그래. 넌 그런 놈이었지. 유령이 되어서도 지나치게 현실적이라 현실적이지 못했던…….

얘기가 안 되네.”

나는 도훈을 내버려두고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 잠깐! 가영아!”

…….”

, 진짜! 그러니까 화낼까봐 물어본 건데!”

뒤에서 뭔가 꿍얼대고 있었지만, 난 무시하기로 했다. 골은 카페니, 알아서 오겠지.

 

, 훈련 중?”

카페 앞에 이르니 의민 아저씨가 또 파일을 잔뜩 들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 강도훈 학생은? 같이 갔다고 하던데?”

뒤에 와요.”

숨을 가라앉히며 마무리 운동을 하고 있으니 내 뒤로 무너지듯 뛰어 들어오는 도훈이 있었다.

갑자기 멈추면 안 돼, 천천히 움직이면서 쉬어.”

헉헉, 몰라. 헉헉, 너 왜 이렇게 빨라, 헉헉…….”

도훈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손사레를 치며 잔디밭에 주저앉았다.

갑자기 풀코스로 데려간 거야?”

외부계단에 앉아있던 연우아저씨가 기가 막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나는 좀 찔려서 의민아저씨와 연우아저씨의 시선을 피했다.

지가 따라 온 거니까.”

……!”

도훈은 대화 내용이 수상하자 두리번거리다 날 노려보기 시작했다.

누가 따라오래.”

니가 따라오라며.”

……선택의 자유는 줬어.”

초심자한테 갑자기 풀코스는 무리지. 너도 처음엔 3분의 1 거리를 뛰었잖아.”

연우아저씨가 드물게도 고개를 저으며 핀잔을 준다.

속도 조절은 했어요…….”

에잇! 왜 다들 몰아서 나에게 비난의 눈초리를 보내는 거야! 난 속 좀 달래려고 했을 뿐인데!

, 몰라! 죽겠다.”

도훈은 그대로 대자로 뻗었다.

여기 가게 옆이거든?”

내가 부끄러워 눈치를 주니 세 남자가 내게 비난의 눈을 향한다. 내 탓이냐!

근데 풀코스 잘 뛰네. 속도 조절만 잘 하면 처음부터도 나쁘지 않을지도.”

네네, 전 원래 운동신경 별로 였으니까요.”

원래 운동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운동신경이 엄청 뛰어났던 것도 아니다. 처음 훈련 시작할 때 연우아저씨한테 얼마나 구박을 받았던가.

~, 근데 내가 얼마나 뛴 건데?”

숨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는 도훈이 이제서 의문이 들었는지 물어봐온다.

…….”

?”

내가 웅얼거리듯 대답하니 도훈이 되묻는다. 그러자 연우아저씨가 킥킥거리며 대신 대답해준다.

“1/2 마라톤, 20km.”

……그렇게 길었어?”

같은 골목 자주 오갔지? 그거 거리 재서 루트 결정한 거야. 물론 풀 마라톤 코스도 짜 놨으니까.”

이번엔 내가 진저리를 칠 차례다.

징하시네요, 스승님.”

난 좀처럼 부르지 않는 호칭을 부르며 두려움 찬 존경을 표한다.

근데, 가영이랑 형사님……, 아는 사이세요?”

문서 첨부 제한 : 0Byte/ 2.00MB
파일 제한 크기 : 2.00MB (허용 확장자 :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395 너에게 닿기를 : 4.세계는 기억한다(1) 과객연가 2015-11-28
394 너에게 닿기를 : 3.살인의 기억(6) 과객연가 2015-10-30
393 너에게 닿기를 : 3.살인의 기억(5) 과객연가 2015-10-27
» 너에게 닿기를 : 3.살인의 기억(4) 과객연가 2015-10-10
391 너에게 닿기를 : 3.살인의 기억(3) 과객연가 2015-09-28
390 너에게 닿기를 : 3.살인의 기억(2) 과객연가 2015-09-25
389 너에게 닿기를 : 3.살인의 기억(1) 과객연가 2015-09-19
388 너에게 닿기를 : 2.너에게 닿기를(8) 과객연가 2015-09-18
387 너에게 닿기를 : 2.너에게 닿기를(7) 과객연가 2015-09-16
386 너에게 닿기를 : 2.너에게 닿기를(6) 과객연가 2015-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