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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File : 실험비행




완벽한 날씨였다.


실험비행을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날씨.


긴 무늬를 이룬 흰 구름이 그 아름다움을 더하는 푸른 하늘 속, 두 대의 전투기가 또 하나의 긴 뭉게구름을 그리며 날아가고 있었다.


한 대는 꼬리날개에 나비를 형상화한 것 같은 무늬를 달고 있고, 다른 한 대는 같은 자리에 붉은 천둥 그림을 그려놓은 모습이었다. 둘 다 아직 실전에 배치된 적 없는 최신예 전투기였다.


“여기는 버터플라이(Butterfly). 고도비행을 시작하겠습니다.”


나비무늬 기체의 파일럿이 보고와 함께 산소마스크를 착용했다.


“여기는 선더(Thunder). 마찬가지로 고도비행에 들어갑니다.”


천둥무늬 기체의 파일럿도 역시 산소마스크를 입가로 가져갔다.


“여기는 기지. 신중하게 진행하도록.”


무선을 통해 지시사항이 들려왔다. 기지에서 그들을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을 라인 대령의 얼굴이 눈에 환했다. 최신예 전투기 임페리얼(Imperial)의 고도비행은 오늘이 처음이었으므로. 산소가 희박하고 기압이 극히 낮은 초 고도를 날아가는 작업은 파일럿과 기체 양방에 상당한 부담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검증되지 않은 전투기라면 더욱 더 그러할 것이었다.


“가속, 시작합니다!”


두 대는 동시에 가속을 시작하여 차츰 고도를 높여나갔다. 어느 파일럿도 침착하게 조종간을 다루고 있었다. 해군에서는 그들보다 나은 실력자가 없다고 평가될 만큼 고르고 골라서 실험비행을 맡긴 에이스들이었다.


“이 녀석, 제법 괜찮은 것 같지 않습니까? 소령님.”


“글쎄.”


이태리 혈통이자 선더의 파일럿인 앨빈 베일리 중위의 질문에, 중국계 혼혈이며 버터플라이를 조종하는 후앙 후이안 소령은 짤막하게 대꾸했을 따름이었다. 후앙은 평소라면 그렇게까지 말수가 적은 타입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전투기에만 타면 무서울 정도로 성격이 달라지는 남자였다.


“현재 고도는.”


라인 대령이 질문했다.


“5만 피트에 가까워지고 있음.”


“으악!”


후앙의 침착한 목소리에 라인 대령이 끄덕인 찰나, 갑자기 무선을 통해 베일리의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여기는 기지. 선더? 응답하라!”


“제기랄! 컨트롤 불능! 기체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후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인 대령은 이를 악물면서 시선을 들었다. 레이더에 포착된 전투기들이 무서운 기세로 하강하고 있었다.


“버터플라이! 선더! 들리는가? 들리면 응답하라! 버터플라이! 선더!”


마이크로폰을 잡은 손에 축축하게 땀이 배어 들어가고 있었다. 지휘자인 라인 대령은 레이더 화면을 초조한 시선으로 지켜보며 두 파일럿에게 끊임없이 콜 사인(Call Sign)을 보냈다.


대답은, 없었다.




*




“제기랄! 컨트롤 불능!”


그렇게 대답한 것이 기억의 마지막이었다. 페이드아웃, 그리고…….


수초가 지났을까.


“으윽…….”


후앙은 신음소리를 흘리면서 눈을 떴다.


“소령! 괜찮은가? 응답하라!”


라인 대령의 목소리가 무선을 통해 고막을 아프도록 찔러왔지만 대답할 여유조차 없었다. 빠른 동작으로 조종간을 붙들고 그는 계량기를 잽싸게 훑어 내려갔다. 사방이 온통 구름으로 막혀 있어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고도계를 체크하며 그는 거의 동물적인 감각을 발동시켜 기수를 올렸다.


“기지, 들립니까? 여기는 버터플라이.”


“후, 후앙 소령! 무사한가?”


“당연히 무사…….”


대답하는 후앙의 눈앞을 선더가 빙글빙글 돌며 추락하고 있었다. 후앙은 아직도 의식불명인 채 조종석에 쓰러진 모습인 베일리 대위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버터플라이를 가속시켜 선더 쪽으로 움직여 갔다. 거의 무의식적인 동작이었다. 몇 초 후면 선더는 지면과 충돌할 것이다!


“베일리 중위! 중위! 후앙 소령! 어쩔 작정인가! 응답하라! 후앙 소령!”


후앙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입술을 꾹 다문 채 기체의 고도를 지면에 닿을 정도로 낮춘 다음, 바로 수직 상승하여 선더를 향해 돌진해 갔다.


“후앙 소령! 무슨 짓인가! 후앙 소령!”


후앙의 귀에는 이미 라인 대령의 목소리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거의 신기에 가까운 기술로 버터플라이와 선더를 슬쩍 어긋나게 한 다음, 버터플라이의 주익을 슬쩍 선더에 부딪쳐 선더의 기체를 한 바퀴 회전시켰다. 그 충격은 베일리 중위의 의식을 겨우 돌려놓았다.


눈을 뜨자마자 그의 앞에 보인 것은…….


“으악!”


“중위! 상승하라!”


“헉!”


후앙의 외침에 베일리 중위는 거의 지표에 충돌하기 직전에야 가까스로 조종간을 당겨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여기는 기지! 응답하라!”


“하아, 하아…….”


라인 대령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베일리 중위는 마스크를 입에서 떼어내고 격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조종간을 움켜쥔 그의 손가락이 저절로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괜찮은가, 중위.”


후앙은 침착하게 물었다.


“죄, 죄송합니다, 소령님.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베일리 중위의 대답이 들려온다. 후앙은 끄덕이고 기지를 향해 말했다.


“여기는 버터플라이. 2기 모두 건재. 이대로 바다로 나갑니다.”


“휴, 다행이군.”


라인 대령의 목소리는 조금 안도한 듯 했다.


“선더는 더 이상 비행불가. 베일리 중위는 베일아웃 시키겠습니다.”


“버터플라이는?”


“당연히 기지로 돌아갑니다.”


“위험하지 않겠는가? 무리하지 않아도 좋다, 소령.”


“원인을 찾기 위해 한 대는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후앙은 차갑게 말했다. 실은 입에서 욕이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었지만, 이럴 때야말로 도리어 과묵해지는 것이 후앙이란 남자의 성격이었다.


“조심하도록, 후앙 소령.”


라인 대령의 목소리에는 걱정기가 가득했다.




*




어쨌거나 추락 직전의 위기를 겪고 평정심을 잃어버린 베일리 중위는 더 이상의 조종이 불가능했다. 낙하산에 매달려 기체에서 벗어난 그를 뒤로 한 채 선더는 천천히 바다 속으로 가라 앉아갔다. 베일리 중위를 구조하기 위해 기지에서 보낸 헬리콥터가 저편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후앙은 무심코 가볍게 혀를 찼다.


‘역시.’


최악이었다. 아까 선더와 부딪쳤던 버터플라이의 주익이 계속 흔들리다가 드디어 날아가고 만 것이다. 실은 벌써부터 예측했던 일이었다. 후앙은 재빠른 동작으로 조종간을 움직여 기체의 균형을 돌려놓았다.


“여기는 버터플라이. 주익이 파손되었습니다. 이대로라면 기지까지 돌아가는 건 불가능합니다.”


“역시, 베일아웃 할 생각인가?”


라인 대령의 목소리는 힘이 풀려 있었다. 후앙은 대답했다.


“아니, 기체는 반드시 살립니다. 항공모함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연락해 주십시오.”


말하면서 동시에 그는 기체의 진로를 수정하고 있었다.


“무리다, 소령. 차라리 베일 아웃을 하는 게 어떤가?”


“괜찮습니다.”


“자네의 실력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기체 상태가…….”


“괜찮습니다. 연락해 주십시오.”


후앙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고집스런 놈. 라인 대령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




항공모함 가디언은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방금 코로나도(Coronado) 기지에서 무선 연락해 온 바로는 실험비행 중이던 전투기를 착륙시킬 예정이라고 했다. 그 준비 작업으로 갑판에 있던 연습기가 차례로 격납고에 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여기는 가디언. 버터플라이, 들립니까?”


약간의 소음과 더불어 조종사의 침착한 음성이 전달되어 왔다.


“여기는 버터플라이. 주익이 파손됐음. 덧붙여 스피드 브레이크도 손상. 착함(着艦) 속도까지 완벽히는 떨어뜨릴 수 없을 듯. 양해해 주십시오.”


“소령님, 괜찮겠습니까?”


관제탑에서 초조하게 물어온다. 후앙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준비해 주십시오.”


“롸저!”


갑판이 확장되었다. 초조하게 아래서 지켜보는 경비원들의 시선이 전부 창공으로 이끌린 듯 쏠린다. 이윽고 전투기의 폭음이 갑판 상공을 휩쌌다.


“고도 500 피트, 속도 200kt IAS. 내려가겠습니다!”


조종간을 쥔 손이 땀에 축축하게 젖어 들어간다.


“착하지? 너와 내가 살길은 하나뿐이다, 버터플라이. 널 믿어. 날 죽이지 마라. 알겠니? 귀여운 아가씨야. 착함하면 널 완벽한 여자로 만들어줄게. 그 때야말로 우리, 제대로 된 고도비행을 하는 거다?”


어린아이를 달래는 것 같은 말투로, 마치 노래하듯 음률을 붙여서 후앙은 흥얼흥얼 기체에게 말을 건넸다. 뭐라 해도 실험기다. 이제 갓 태어난 신생아인 것이다. 이 아기를 어떻게 달래서 내려가야 할까.


착함에 필요한 훅이 내려왔다. 이 훅을 와이어에 걸쳐 착함하는 것이다. 버터플라이는 선회해서 정면에 다가섰다. 착륙실패시의 데미지를 피하기 위해 연료는 이미 다 버린 상태였다. 통상의 착함 속도를 크게 상회하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다. 후앙은 조종간을 잡고 착함 동작에 들어갔다.


“자, 착한 아가씨. 잘 버텨 줘?”


그는 입술을 강하게 깨물고 기체를 갑판으로 돌진시켰다.




댓글 '9'

편애

2007.04.27 14:18:11

새 연재인가요^-^ 완전 반가워요~~   [01][01][01]

김은주

2007.04.27 16:36:43

오~내가 이걸 기다렸는데. 감사.   [09][02][03]

so

2007.04.27 16:39:36

우왕!! 후앙~ 우리 다시 만날 줄 알고 있었어요.ㅜ_ㅜ
너무 기뻐서 공중 삼회전 반 점프를 하려다 무거운 몸을 생각해서 간신히 참았습니다.ㅋㅋ   [01][01][01]

하늘이

2007.04.27 17:35:53

아닛~+.+ 정크님!!! 백만제곱 반가워요!!   [01][01][01]

박재희

2007.04.27 17:37:46

너무 반갑습니다..... 완전기대해봅니다...^^   [01][01][01]

푸하하

2007.04.27 18:51:05

천일야화에서만 연재된다고 해서 눈물을 흘렸었는데!!!
ㅎㅎ 읽는데 왜이리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모르겠네요~   [01][01][01]

시즈

2007.04.28 01:45:33

새연재, 너무 감사합니다. 정크님. 저도 푸하하님처럼 그림의 떡이라고 안타까워 했었는데 이렇게 볼 수 있어서 너무 좋네요.^^ 요즈음 너무 행복합니다.   [01][01][01]

하누리

2007.04.28 01:50:05

제목보자마자, 정크니임 ㅜ.ㅠ 하고 클릭했다는..+_+/   [01][01][01]

여름

2007.04.28 11:04:38

예전에 작은 아씨들에서 연재하던 글 아닌가요? 기억이 가물;;
박진감 넘치는 첫 회. 잘 읽겠습니다.   [08][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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