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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밥 시간에 부쳐.

 제가 일하고 있는 직장의 저녁 시간은 유감스럽게도 -_- 제가 가장 바쁜 시간입니다. 직장 내의 구내식당 (이랄지 간이 부엌이랄지;) 의 자리는 항상 하나나 둘 씩 부족하고, 그렇게 되어 늦게 올라가게 되면 유감스럽고 짜증나지만 사장님과 약간 눈치가 부족한 식당 아주머니와 셋만 밥을 먹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상당히 곤혹스럽죠-_-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올라가서 자리에 앉으면 사장님이 직설적으로 반찬 타박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장님 : 돈이 썩어요? 고기는 또 왜 샀어요?

 아줌마 : 싸게 샀어요. 어서 드세요.

 사장님 : 그러니까 요즘 같은 불경기에 (... - 약 10여분 소요 - ...) 그러니까 우리 가게가 항상 매상이 안 오르고 (... - 갑자기 밥 잘 먹고 있는 저에게 시선을 주시며) 안 그러냐 그러냐?

 이런 경우. 전 눈치가 아주 없지는 않지만, 고민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하루 한 끼 식사를 직장에서 해결하는지라 식당 아주머니께 밉보이면 밥이 적게 나오거나, 한 동안 계속해서 고등어 구이만 나온다든지 (익힌 고등어에 알레르기 있습니다-_-) 혹은 늦게 올라가면 밥이 없으니 다시 내려가라든지 하는 말을 듣기 때문에 편을 잘 들어야 하는 거지요. 이럴 때에 저의 가장 좋은 방법은.

 C 양 : (마지막 남은 한 수저를 허겁지겁 삼키여) 잘 먹었습니다.

 가 되겠지만, 불행히도 아줌마와 사장님의 싸움의 끝 무렵에 올라가서 막 밥을 퍼고 있을 때면 무척이나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거든요. 대개는.

 C 양 : 아. 계란말이 정말 맛있네요.

 이런 식으로 거의 억지스럽게 말을 돌립니다만, 그게 되지 않을 때는 혼자서 미친듯 괴로워하다가 거의 30여명의 씨름 선수와 고깃집에서 고기를 먹듯 밥을 먹어치우고는 쏜살같이 내려갑니다. (뭐 이 정도면 저의 사람 대하는 바보 같은 센스가 다 나오는군요.)

 그래도 그나마 요즘은 책이 많이 일찍 들어와서 안심하고 밥 먹기 전에 일을 대부분 끝내놓고 있었는데, 며칠 전엔 아차 하는 순간에 타이밍을 놓쳐버렸습니다. 사장님 심기도 안 좋아보이시고, 올라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식당에서 인터폰이 왔더군요.

 (새로 입사한) A 양 : C 언니. 식당 아줌마가 밥 안 먹느냐는데요.

 C 양 : (수준급에 오른 바디 랭귀지로 사인을 보낸다) - 다 내려 왔어? -

 A 양 : (역시 수준급에 오른 바디 랭귀지로 사인을 보낸다) - 네 -

 C 양 : (수준급에 오른 바디 랭귀지로 사인을 보낸다) - 없다 그래. 없다 그래. 없다 그래! -

 A 양 : 언니 지금 없는데요. 오면 전할게요.

 전화를 끊고 난 후.

 A 양 : 언니 괜찮겠어요? 부모님 생신이 겹쳐서 이번달엔 파산했잖아요. 아. 그리고 월급 타면 교통카드 충전비 만원 갚아요.

 C 양 : 인생사 그런 거지. 한 일주일 정도 사장님과 아줌마와 셋이 밥 안 먹었더니 그 과정 거치기 싫어. 굶으면 굶었지...

 A 양 : 그렇게 끔찍해요?

 C 양 : 한 번 당해 봐.

 굶으면 굶었지 하는 마음으로 그 날을 무사히 넘기고 오늘 머리를 빗으며 출근해 보니, A 양의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C 양 : 무슨 일이야?

 A 양 : (심각하게) 요즘 계속해서 카레만 나와요.

 C 양 : 카레에?

 A 양 : 자취할 때 귀찮아서 하도 그것만 먹었더니 물려서 못먹겠단 말이에요. 그런데 아줌마가 자꾸 점심에 카레만 해 줘요.

 C 양 : 너 혹시 사장님이랑 아줌마랑 셋이만 남아서 밥 먹었을 때 사장님 편 들었어?

 A 양 : 그거 어떻게 아셨어요?

 C 양 : 인생사 그런 거지. 이제 왜 내가 시간 놓치면 밥 먹으러 가기 싫어하는지 알았지?

 A 양 : 설마요.

 C 양 : A 양. 저녁땐 카레 안 나와.

 A 양 : ∑(T□T) 

 순간적으로 저는 A 양과 동지애를 느꼈습니다... (그런데 아줌마와 사장님의 전쟁 때 어느 편을 들어야 할 지는, 2년 넘게 근무한 지금까지도 감이 안 잡힙니다. 이 정도면 제가 눈치가 없는 거 아닐까 고민 중... orz)

 2. J 배본대행 아저씨의 독립.

 배본대행 아저씨들은 참 자주도 바뀝니다. 근무하는 동안 얼굴만 익힌 배본대행 아저씨들만 해도 약 20여명 정도 되니까 거의 1년에 10명 꼴로 바뀐 거군요. 세월이란... ┐(  ̄ー ̄)┌ 

 그런데 어제 밥을 먹고 내려와 보니 경리 언니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경리 언니님 :  H 배본대행 아저씨가 바뀐다더라.

 C 양 : 아. 지난번에 같이 온 그 호빵맨 체형의 아저씨로요?

 경리 언니님 : 그럴 것 같아.

 체형은 호빵맨 체형이지만, 일단 배본의 생명인 정확과 큰 목소리 신공이 상당히 부족한 듯 하여 불만이었지만,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크게 마음 쓰이지 않았습니다. 원래 이 바닥이.. ┐(  ̄ー ̄)┌ 

 경리 언니님 : 그리고 J 배본대행 아저씨 (이 때쯤 다른 배본대행 아저씨들이 한꺼번에 셋이나 들이닥쳐 말이 끊김) 란다. 그래서 (역시 또 끊김) 알겠니?

 C 양 : (뭐가 뭔진 모르지만 일단 바쁘니까) 예. 예. 

 ... 이래놓고, 나중에 물어보려고 했다가 까먹었습니다 -_-a

 그런데 오늘 아무 생각 없이 CJ 쇼핑몰 트럭을 보고

 C 양 : H 배본대행 아저씨 오셨어요.

 ... 뚜껑을 열어보니 J 배본대행 아저씨 -_-

 C 양 : 아. 아저씨 또 뵙네요. (이런 일도 흔합니다. 알고 보면 좁디 좁은 바닥이지만, 회사 크기나 월급 때문에 옮기는 경우죠.) 전 그만 두신 줄 알았잖아요.

 ... 라고 말을 꺼내 보니...

 아. 그럼 원래 J 배본대행 아저씨가 그만 두신건가?

 바쁘게 일하면서도 대 쇼크였어요... ㅠ_ㅠ

 입사 이래로 여러 아저씨들이 저를 스치고 지나가셨었지만 이 아저씨 같은 분도 없었는데...

 이제 제가 입사때 부터 일하시던 아저씨가 한 분 줄어드셨군요. J 배본대행 아저씨로 말할 것 같으면, 넉살 좋고 약간은 심할 정도로 만담 기질도 있으신데다가 (가장 중요한 건) 추워지기 시작하면 군고구마 장사를 하셔서 남는 고구마를 항상 얻어먹을 수 있었는데 말이죠 (궁시렁 궁시렁)

 약간은 센티멘털한 하루였습니다. 그 아저씨 정말로 보고 싶을 거에요... ㅠ_ㅠ

 

 

노리코

2005.10.20 08:13:32

씨엘님이 하시는 대처가 참으로 슬기롭습니다..-0-
저같아도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안올수도 있겠습니다.
밥을 먹자니 일하는 것이 힘들어질수도 있고, 그렇다고 그냥 하는 일에 밥이 괴로워질수도 있는 문제이니 말이죠..
그냥~ 지금처럼 하시는 것이 쵝오의 방법인듯~
화이팅이요~ ㅎㅎㅎ
+
그나저나 씨엘님 글은 너무 심각하시기는 한데 읽는 저는 너무 웃겨서..... -_-(<---웃음 참고 있음)   [01][01][01]

Miney

2005.10.21 12:11:43

거 참, 밥 먹을 때는 *도 안 건드려야 한다는데 왜 씨엘님 소화기관의 안녕을 다들 생각해 주시지 않는 건지...;; 역시 사회생활은 힘들어요. 미묘한 시간 조절과 미묘한 인간 관계 조절의 묘수가 필요하니 말입니다. ㅡ.ㅡ;; 힘내세요!   [01][01][01]

Junk

2005.10.21 14:37:28

식사 때까지 그런 미묘한 신경전을 신경써야 한단 말인가요;;;   [01][01][01]

ciel

2005.10.22 14:14:41

노리코/ 슬기로운겁니까..? OTL + 맘껏 웃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개그 인생... ┐(  ̄ー ̄)┌ )

마이니/ 식당에서는 식당 아주머니가 왕, 저희 직장에서는 사장님이 왕이십니다. 왕들이 백성을 생각해 주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지요 ┐(  ̄ー ̄)┌

정크/ 먹고 사는 문제라서 그렇겠지요 ^_^ (웃고는 있지만;;;)   [0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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