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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3일 전 저녁을 먹는데 갑자기 사장님 왈.

 사장님 : 그려. 결심 혔어.

 일동 : ?;;;;;

 사장님 : 제 2 외국어 위로 올리자구.

 일동 : -ㅁ-;;;;;;;;; (왕 경악의 표정)

 

 제가 근무하는 서점은 가로로 퍼진 형이 아니라 세로로 솟은 형입니다. 지하에는 제 2 외국어와 참고서, 만화, 아동서적이. 1층에는 교양, 소설, 잡지, 시집 등등 문학이. 2층에는 대학 교제, 법학, 경제, 광고, 인문 사회 토익토플 서적이. 3층에는 수험서와 예술서가. 4층에는 취미, 육아, 여행, 자연과학, 종교 서적이 있었더랬습니다.

 
 분류 보시면 아시겠지만, 각 층은 포화상태. 그런데 갑자기 제 2 외국어를 위로 올리자면 어쩌자는 겁니까?

 사실 이 안건은, 좁아 터지고 좁아 터진 (저희 서점은 역피라미드 형으로, 원래는 3층 건물이었던 것을 밑을 뚫어 지하를 만들고, 무허가 건축으로 4층과 5층을 올려버렸다는 무시무시한 전설이 있습니다. 무슨 이유에선가 단 한번 저희 서점 도면을 본 일이 있는데, 4층과 5층, 식당과 옥상이 없어서 히껍 했던 일이 있군요) 지하가 많은 종수 때문에 드디어 책 진열대와 창고가 포화가 되어 버려서 벌써 1년 전 부터 지하 담당 과장님 입으로부터 계속 건의되어 오던 것이긴 합니다만. (그 보다 더 되었죠. 저 처음 들어왔을 때 부터니까 가설라무네...) 갑자기 이 무더위에.

 2층 책 진열대 일부를 비우고 지하책을 올리라굽쇼?

 당연히 모두 망연자실...


 사장님 : 뭐. 2층에서 다 못 받을 테니까 3층으로 좀 올리고...

 3층 팀장 P 언니 : (특유의 간드러진 고음으로) 네에에에에에에에~~~?

 사장님 : 3층에 공간이 없으면, 3층 예술 서적을 4층으로 올리고...

 4층 막내 C 양 : 콜록. 콜록 콜록 콜록! (밥 먹다 목에 걸림.)

 사장님 : 좋다구. 어이. L 과장. 빨리 먹고 시작하자구.


 순식간에 식당을 화장터 분위기로 만들어 놓으시고, 사장님은 흘려서 지저분해진 밥 그릇과 주변 잔해를 남기신 채 의욕 만땅으로 퇴장.


 그런데.

 
 문제는 저희 사장님은 항상 '의욕만 만땅' 하신 채 힘든 일은 전혀 하지 않으신다는 점에 있고. 게다가 일하는 모습을 남에게 과시하시기를 엄청 좋아하셔서, 이것저것 참견하시면서 페인트칠을 하시거나 라커칠을 하시면서 주변에 '이거 다 내가 했거든?' 하는 티를 내는 것을 좋아하신다는 것에 있겠죠...

 
 목이 쉬도록 직원들이 말해보았지만, 일단 결심하시면 성질 급한 사장님의 마음을 돌리기란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 부터 1층을 제외한 전 직원들이 땀을 흘리며 책을 옮기고 새로 진열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첫 날 (늦으면 어쩐지 혼날 분위기라 일찍 출근.)

 다섯 시간 반 동안 2층에서 3층으로 법학계열, 생활법률, 대학 교제와 사회복지학, 광고, 신문 방송학 책을 옮겼습니다. 제가 근무하기 훨씬 전에 고장나 온풍기 수준이라는 에어컨은 꺼졌다 켜졌다를 계속하며 난리 부르스를 췄고, 전혀 환기가 안 되는 2층은 후덥지근한 공기를 천장형 선풍기가 계속 돌려줘서 더더욱 덥기만 하더군요. 이 날의 에어컨 측정 실내 최고 온도는 32도. 서점 문 닫아가면서 대대적인 이동을 하는 일은 죽어도 없으므로 (저희 사장님은 그런 일을 하실 분이 아니죠.) 저와 2층 직원 한 명이 입고와 판매를 겸해서 옮겼습니다.

 둘째 날. (정시 출근.)

 자고 일어나니 팔이 뻐근해서 제대로 들리지도 않더군요.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옮기긴 해야지. 그치만 어제처럼 일찍 나가면 계속 혹사당할 것 같아서 정시에 갔습니다.

 그리고 약 네 시간 반 동안 2층과 3층을 오가다가 지하와 2층을 오가면서 열심히 책을 날랐습니다. 게다가 이 날은 저희 층에 직원이 둘 밖에 없어서, 혼자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더 뷁이었죠. 이 날의 에어컨 측정 실내 최고 온도는 35도. 무슨 아열대 기후도 아니고...;;;;


 셋째 날 (에라 모르겠다. 내 몸 편하고 보자. 지각.)

 모종의 일 때문에 밤을 세우고 그래도 일찍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아침잠을 자지 않았습니다만, 생각해 보니 일찍가면 정말 손해. 돈을 덜 벌더라도 몸을 아끼겠다고 결심한 저는 일부러 시간을 끌면서 늦게 갔습니다. 어제 혼자 4시간 동안 책을 나르던 악몽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죠. 

 룰루랄라 도착해 보니 역시 모두들 절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 보고 판매나 하라네요. 생각해 보니, 진열을 하는 일은 앞으로 저와 전혀 상관이 없고, 층 직원들이 알아서 할 문제니까 제가 굳이 늦게 올 필요가 없었습니다. 웬 뻘짓거리를...;;;;

 어쨌든 오늘은 판매와 입고를 겸업했군요. 게다가 사장님이 나이스하게도 새 에어컨을 하나 달아주셨습니다. 그래 봤자, 입고쪽과도 판매쪽과도 정 반대인 어두운 구석에 틀어박혀 있는 에어컨이라 특정 지역만 시원하다는 문제가 있군요. 오늘 제가 있는 곳의 에어컨 측정 실내 최고 온도는 33도. 구석쟁이 새 에어컨 측정 슬내 최고 온도는 24도 였습니다. 같은 곳인데도 온도차가 10도나 났군요...;;;;

 아직 정리가 끝나지 않아, 내일 일부 책을 반품에서 공간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내일도 일찍 출근입니다. 오늘 늦게 출근해서 정직원들의 원성을 한 몸에 받았으니, 내일은 일찍 출근해야 할 텐데. 더위가 남아서 잠을 잘 수 없어요... OTL

 심란한 밤이네요...

 

 

Miney

2005.07.23 11:41:59

심심한 묵념을... 살아남으십시오!!! ㅡ.ㅡ;;   [01][01][01]

tooduree

2005.07.23 17:24:06

씨엘님 혹시 널리 이롭게 하는 서점에서 근무하세요..?
서점 묘사가 비슷하야..;;;;;;;;;;;;   [0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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