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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제가 얼마나 자주 구걸인생에 돌입하는지 아시는 분은 아실겁니다. 그것도 그 구걸인생은 매번 어머님의 부재중에 일어나는데요.

 제게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1. 어머님이 감귤농장 견학을 가셨다.

 어머님의 절친한 친구분이 최근에 4혼(...)을 하셨는데, 그 상대가 애 없는 홀아비 감귤농장주라고 합니다. 해서, 한 번 놀러오라는 연락이 왔습죠.

 어머님 : 얘. 얘.

 나 : 응?

 어머님 : 가두 돼? +_+

 ... 아. 정말 실제로 보지 못하신 분은 몰라요우~ 어머님의 그 반짝이는 눈과 귀여운 모습...;;;; (자식으로서 하면 안 될 말이라는 것은 압니다만...;;;)

 나 : 다녀오세요... 대신에 여름 휴가 전엔 돌아오셔야 해요. 전 휴가 기간 동안에 집에서 홀라당 벗고 문 열어놓고 잠잘 생각이니까.

 어머님 : 응. 응.

 저에게는 귀여움 + 애교 공격을 퍼부으신 어머님. 뷁수라서 한 입거리도 되지 않는 아들에겐 아예 묻지도 않으신 모양. (어머님의 부재 며칠 후, 간만에 얼굴을 부딪힌 동생이 '엄만 어디 갔어?' 하고 질문하는 바람에 알았다는...;;;) 그리고 아버님께는.

 어머님 : 얘. 얘.

 나 : 응?

 어머님 : 빨래는 세탁기에, 김치는 김치 통에.

 나 : 양파 장조림은 베란다에. 계란과 국은 알아서.

 어머님 : 알겠죠? 얘는 교육이 잘 되어 있으니까. 알아서 할 거에요. 괜히 밥 밖에서 먹어서 생활비 떨어지게 하면 큰 일 날 줄 알아요.

 ... 결국은 이렇게 됐습니다...;;;

 그치만요...

 2. 낭비 인생은 고달프다.

 지난 달에 스트레스를 죄다 잠으로 푸느라고, 한 시간씩도 두 시간씩도 팍팍 늦어줬...;;;;거든요...;;; (게다가 요즘 직장이 아주~ 장사가 안 되는지라, 오히려 늦게 오는데에 대해서 별 말도 안하고 나름대로 응원을 해 주시는 사장님... OTL;;;;) 그랬더니만...

 나 : 꺄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울~~~

 S 언니, P 언니, K 양 : 왜 그래?

 나 : 워... 월급이... 월급이 2/3 밖에 나오지 않았어욧!!!

 일동 : 그럴 줄 알았지이이이~

 그런데다 덧붙여. 입도 늘었고 아버님 월급이 아직 통장으로 들어오지 않은데다가 결혼식 네 건과  장례식과 기타 등등이 겹쳐서.

 월급 탄 지 꼴랑 일주일만에.

 나 : 김치 떨어질 때까지 반찬은 없어...

 뷁수 김군 : 왜?

 나 : 이번달 월급, 컴 값으로 좀 떼어놓고 나니까 잔고에 2처넌 남았다... 아. 핸드폰 요금 어떡하지? 그리고 인터넷 요금은?

 뷁수 김군 : 거 참 안됐수...

 나 : 너. 그러고 보니까 모 플러스 그만둔 지 얼마 안 됐지? 월급은? 어서 내놓지 못하게쓰?!

 뷁수 김군 : 안 돼. 한 푼도 없단 말야.

 나 : 왜?

 뷁수 김군 : 그게. 나 쫓겨난 거였거든.

 나 : 왜?

 뷁수 김군 : 아. 디오스를 해먹어서.

 ... ...

 잠시 기나긴 침묵...

 나 : 아. 그러셔?

 뷁수 김군 : 그거, 얼마짜린지 알지?

 나 : 그래. 고소 안 당한게 다행이구나.

 뭐, 이런 저런 사정으로 거지가 되어 출퇴근도 직장에서 매일 나오는 음료수값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만. 핸드폰 요금 고지서가 나오니까 더 이상은 어쩔 수 없겠더군요 그래서 친우 J 언니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나 : (전화 걸어서 다짜고짜) 언니. 5만원만 꿔줘.

 J 언니 : 너 월급탄 지 얼마 안 됐잖아. 그거 어디다 다쓰고?

 나 : 이유는 묻지 말고 빌려줘어어어어~

 
 3. 인복은 천복.

 돈을 받기로 한 당일날, 스트레스성 몸살이 나 버려서 직장에 늦어버렸는데, 그 다음 다음날 받기로 했더니,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더군요. 이런 저런 사정을 따지자면 출근 전엔 만나지 못할 것 같아서 직장으로 와 줬으면 하는 바램을 피력했더니만. 

 J 양 : 아. 너 내일 영화 안 볼래?

 나 : 땡전 한 푼 없는데?

 J 양 : 얘기 들었어. 내일 J 도 나오니까 같이 영화 보고 밥이나 먹자. 내가 보여줄게.

 나 : 정말? +_+

 올해 첫 영화로 '미스터&미세스 스미스' 를 보았습니다... (뭐 조조를 보기 위해 밤을 샜지만 그런 것 따위는 상관 없습니다.) 그리고.

 간만에 고기를 먹었어요... (아 바베큐립... ㅠ_ㅠ)

 이 얼마만에 먹는 고기였는지... (죽어도 조아요... ㅠ_ㅠ)

 그리고 5만원 빌렸습니다. 이거 가지고 핸드폰 요금 내고 약간의 국거리를 사게 되면 이번달은 정말 위험천만하게 넘어갈 것 같네요. 그러니까 아버님 통장에 언제 돈이 들어오드라...?



 덧말 : 어머님. 제발 올라오실 때 귤좀 얻어오세요. 귤로 비상식량해야 할 거 같습니다...


 

tooduree

2005.06.18 02:26:41

왠지 처절한데..
전 왜 이렇게 웃음만 나오죠..?
너무 귀여운 가족이에요..^^   [01][01][01]

변신딸기

2005.06.18 10:55:26

저두요.
특히 어머님~~~ >.< (너무 귀여우심)
처절한 절규의 ciel님의 일상이 제겐 너무 즐겁게 느껴줘요~ (헐...-_-;;; 요상한 성격의 소유자 같군요.)   [05][05][09]

릴리

2005.06.20 19:16:04

아하하하~ 우울한 하루였는데 시엘님 글 보고 기분이 혹 좋아져버렸어요. 어머님, 아버님, 김군은 여전하시군요.(너무 좋은 가족들이세욧!)   [0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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