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95

그렇게 아프지 않았는데.”

놀라서 모르는 걸 수도 있어. 가자.”

한 선생님이 가영의 팔을 잡고 양호실로 인도했다. 가영은 아무말하지 않고 신경 쓰이는 듯 피가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피를 닦아낸다.

.”

하얀 교복 소매가 붉게 젖었다. 반소매긴 했지만 뚝뚝 흘러내리는 피가 가영의 팔의 움직임 따라 더 번지고 퍼졌다.

다행이네, 그냥 좀 찢어진 거야.”

양호 선생님이 가영이의 두피를 보고 말했다. 가영은 양호 선생님이 건네준 수건으로 피를 닦아내고 그녀는 두피를 소독하고 커다란 거즈를 가영의 상처에 붙였다. 까만 머리카락에 하얀 거즈가 두드러졌다.

오늘은 일단 조퇴해서 집에서 움직이지 마. 현기증이나 머리가 아프면 반드시 병원으로 가고, 보호자는…….”

, 제가 전화할게요.”

그럼 데리러 와달라고 해.”

그 정도는 아니에요. 집에 가면 사람 있으니까.”

그래? 그래도…….”

아뇨, 괜찮아요.”

가영은 극구 사양하며 교실을 향해 걸어갔다.

괜찮아?”

심한 상처가 아니라고는 해도 하얀 교복에 물든 피를 보고 있자니 내가 아픈 것 같이 무서웠다. 가영이 그런 나를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 보기보다 심한 상처 아냐. 그렇게 아프지도 않고.”

그 자식……, 그거 나인거지.”

네가 아냐.”

알아, 어쨌든 내 몸이 그런 거잖아.”

신경 쓰지 마.”

어떻게 신경을 안 써!”

네가 다쳤는데, 그것도 나에 의해서.

중요한 건 그게 아냐.”

가영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

왜 굳이 날 공격했냐 야.”

…….”

소녀는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한다. 나는 그런 그녀가 낯설어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가 사냥꾼도 아니고 좀 이상하게 굴었다고 해서 이렇게 예민하게 굴 건 없는데.”

가영이 비틀거리며 벽을 짚었다.

뭘 무서워하는 거지?”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당연히 그녀의 집에는 아무도 없다. 가영은 지나치게 하얀 교복에 물든 피 때문에 행인들의 주목을 받으며 레드 플라워 카페를 향했다. 주변을 보지 않고 혼자 중얼거리며 이동하는 그녀 덕에 나는 안절부절 어쩔 줄 몰랐다. 사실 이제 충격은 거의 사라진 듯 가영의 발걸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에 잠겨 멍하니 걸어가는 가영의 몸은 길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보기만 해도 아찔했다.

거긴 도로야! 좀 길 좀 보고 걸어!”

가끔 내가 외치는 소리에 응?하고 멍하니 얼굴을 들고 다시 길 중앙으로 돌아간다. 그때마다 난 한숨을 쉬고 어서 빨리 카페에 도착하기를 기도했다. 카페 앞길에 다다라 나는 서둘러 카페 안으로 뛰어들었지만, 거기엔 유령을 볼 수 있는 인간이 아무도 없었다.

, ! 누가 나와 봐!”

나는 답답한 마음에 외쳤지만 아무도……, 아무도? 어 왜 저 인간이? 마치 내 외침에 응하는 듯이 연우가 바 의자에서 일어서 카페 문을 나섰다. 그를 뒤따라 나오니 그가 흔들거리는 가영을 보고 곧바로 가영의 몸을 양 손으로 안아 올렸다.

? 연우 아저씨?”

피 뚝뚝 흘리고 어떻게 된 거야?”

그리고 보니 내일 학교 가려면 교복 상의 챙겨야 되는데.”

연우는 질렸다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일은 쉬어.”

, 내일 토론 있는데.”

잘 됐네, 숙제 안 해도 되고.”

했으니까, 억울한 거예요! ……, 머리 울려.”

발끈하던 가영은 바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머리에 커다란 거즈 달고 잘도 소리 지른다.”

, 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요.”

어차피 오는 중일 걸, 합법적으로…….”

언니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데 아직 못 와?’

그때까지는 이 거즈 떼어야겠어요.”

그 피는 어떻게 해도 못 숨길 텐데?”

……소각해야죠.”

그보다 빨리 옮겨. 언제까지 안고 있을 거야.”

나는 연우 품 안에 얌전히 폭 안겨 있는 모양이 짜증이 나서 투덜거렸다. 가영은 살짝 갸웃하더니…….

뭘 화내고 있는 거야.”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대꾸하는 가영. 그리고 이어서 연우가 하고 짧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 인간은 안 보인다면서 왜 이렇게 타이밍 좋게 반응해?’

연우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가영을 달래듯 말했다.

이제 그만 눈 감아. 너 영체에 상처가 났어.”

?”

가영이 깜짝 놀라 연우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나도.

유령의 악의 섞인 공격을 받았으니, 아무리 물리적인 공격이었다 해도 영향을 받게 돼.”

연우는 가영이를 외부계단 앞까지 데려와 계단에 앉혔다. 그리고 거즈 위에 손을 얹었다. 그가 손을 떼고 가영이 감았던 눈을 뜨더니 놀라워했다.

?”

가영이 갑자기 나를 향해 손을 휘적휘적 휘젓고 귀를 막았다 열었다 했다.

잠깐 말해봐.”

?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가영은 한숨을 내리쉬었다.

이제 제대로 들리네요. 무슨 환상특급도 아니고 진짜 이상했어.”

환상특급이라니 너…….”

갑자기 난시나 근시처럼 사람이나 물건이 잘 안 보였지? 그게 영체에 상처가 났다는 증거야. 실제 물건은 제대로 보이겠지만 유령이나 그 관련된 물건은 뿌옇게 흐려보였겠지. 거리에 스모그 낀 것처럼 보이지 않던?”

가영이 뭐가 반가운 지 맞장구를 친다.

맞아요. , 난 연우아저씨는 힘만 쓰는 줄 알았더니, 이런 것도 잘 아시네요.”

내가 여기서 몇 년 굴러먹었는데……. 알기 싫어도 대략 알게 돼.”

그래도 영체에 상처가 났다느니 그런 건 못 볼 텐데요.”

가영이 문득 이상하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며 연우를 바라본다. 연우가 짐짓 당황하며 변명을 한다.

“‘같은 거야. 뭔가 이상한 낌새에는 민감해.”

영체에 상처 나는 게 이상한 낌새인가요?”

……따지지 마.”

가영은 수상하다는 표정으로 연우를 봤지만, 곧 피곤하니까 잔다며 사무실로 올라가버렸다.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지금 생각해보니까 여긴 수상한 사람들 천지다. 수년 간 가영이 알고 지낸 사람들이라고 방심한 게 아닌가 싶어 나는 긴장했다.

낌새는 둘째치고 치료는 어떻게 한 거야?”

엄청 수상하다.

영력 치료는 특기야.”

하아?”

방금 난 내 말의 대답을 돌려받았다.

잠깐 너 유령 못 본다면서.”

그러자 갑자기 성큼 성큼 카페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한다.

너 수상해, 잠깐 너 들리잖아. 내 말을 들어!”

내가 소리를 지르자, 그는 발을 멈추고 한숨을 쉬었다.

말했잖아, 난 낌새는 민감해. 네가 있고 없고는 구분할 수 있어. 너는 가영이한테 붙어있으니까. 나머지는 그냥……, 감이야. 분위기를 읽었다고 치자.”

거짓말이지.”

.”

…….”

…….”

연우는 다시 한숨을 쉬고 말했다.

난 거짓말 하는 거 싫어하고……, 게다가 솔직히 너한테 내가 중요한 건 아니지? 나한텐 연하 말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연하가 상처 입는 건 싫으니까, 연하한테 중요한 사람은 나한테도 중요해. 결론은 난 가영에게 무해해. 걱정 마.”

나는 눈을 부라리며 그를 째려봤지만, 그는 그런 나를 무시하고 카페로 향했다. 보이지 않는 건 사실인 것 같다. 아님 그냥 무시하고 싶은 건지. 그건 그거대로 열 받지만…….

주가영, 너 네 주변 남자들은 왜 이렇게 무신경한 거냐?”

가족은 언니 한명, 매번 유령에 시달려 유령혐오증 같은 거에 걸려있는 것 같으면서도 유령을 사람취급하는 고독하고 외로움 타는 정 많은 여자 아이. 나는 가슴이 좀……, 많이 아팠다.

근데 무신경한 주제에 왜 다들 이렇게 스킨쉽이 쉬워?”

그리고 짜증도 났다.

 

가영아!”

가영은 카페에서 자고 다음날 자택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낯선 여성에게 폭 안겼다.

언니?”

으악! 이 붕대는 뭐야!”

붕대 아니고, 거즈. 그냥 좀 다쳤어.”

구불구불 웨이브 진 긴 머리카락의 여성은 평범한 회사원 같이 하얀 블라우스에 남색 재킷에 남색 H라인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뭔가 수수께끼의 과격한 직업을 가진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정말 괜찮아?”

가영의 언니는 대체로 표정이 없는 가영과 달리 풍부한 표정의 소유자였다. 검은 머리칼 위에 얹어진 하얀 거즈를 보고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은 정말 걱정스러워 보였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가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괜잖다니까. ! 잠깐! 만지지 마! 덧나! 그런 것도 몰라?”

동생이 걱정되었는지 거즈를 들쳐보고 싶어 하는 언니의 손을 쳐내며 가영이 뒤로 물러섰다.

나도 일단 외과기술을 가지고 있어!”

불법이야. 그리고 그런 거 까지 필요 없어.”

무슨 직업인데 불법외과기술을 가지고 있어?”

…….”

입은 다물었지만, 표정은 묻지마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가영과 내가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있을 때, 가영의 언니가 살며시 거즈부분을 쓰다듬었다.

…….”

정말 괜찮은 거지? 요새 며칠 카페에서 잤잖아. 다른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그녀가 동생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진짜였다. 가영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괜찮다니까.”

기절했다고 해서 놀랐는데, 이번엔 다치고. 뭐가 괜찮아.”

그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가영을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보니 웨이브와 생머리의 차이만 있을 뿐, 꽤나 닮은 자매다. 나는 부드럽게 서로를 바라보는 자매를 보며 좀 부럽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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