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unk paradise
- 소설
- 연재소설
“나는 서다인, 영력이 있어 유령을 볼 수 있고, 위 사무실에서 가끔 사무보조를 해요. 저기 방금 학생을 때린 남자는 이자인, 내 남편. 그리고…….”
“남편?”
나는 놀라서 다인과 자인을 번갈아가며 쳐다봤지만, 다인은 그런 나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카페와 사무실 주인인 이모, 연적화예요. 그리고 가영이는 알겠고, 가영이를 데리고 간 커플은 라연하씨와 박연우씨. 두 사람은 영력이……, 음……, 암튼 유령을 못 봐요. 어차피 둘은 가영이 지켜보느라 안 내려 올 거고, 대충 알겠어요?”
“아, 예.”
“자, 그럼 강도훈 학생? 뭐 기억나는 거 있어요?”
“아니요. 아무것도.”
“그렇군요.”
다인은 생각하는 표정으로 끄덕였다.
“할 일은 어차피 똑같을 테니까. 그 아이가 기억 못하는 건 큰 지장은 없어.”
핫핑크 나비안경을 쓴 장년의 남자, 즉 권의민 반장이 말했다.
“우리 중에서 주술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정민 언니뿐이니까요.”
내가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다인이 깜박했다는 듯이 덧붙였다.
“이정민, 특수현상처리반 고문이자 연구원이에요. 뭐, 반장님 부인이기도 하고, 저기 뚱한 자인씨 누님이시기도 하고, 곧 제 올케언니죠.”
‘가족 전원이 관련자구나.’
나는 무심히 그렇게 생각했다.
“저기, 제가 아직 살아있다는 게 정말인가요?”
나는 다인에게 물었다. 다인은 잠시 깜박거리더니, ‘앗’하고 감탄사를 흘렸다.
“아, 우리는 일상적인 일이라 설명하는 걸 잊었군요. 도훈 학생은 아직 안 죽었어요. 서둘러야 하긴 하지만요.”
“서둘러요?”
“다른 혼이 몸을 차지하고 49일이 지나면 그 몸은 죽어요. 빨리 몸을 구속해서 혼을 교체하지 않으면 안 되죠. 근데, 주술은 준비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당장 내일 몸을 바꾸기는 불가능해요.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요.”
다인은 초조한 듯이 말했지만, 나는 아직 실감이 안 났다.
‘내가 살아있다니.’
내가 멍하니 내 손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다인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이만하고 내일 얘기할까요? 지금은 가영이도 없고, 학생도 아직 실감이 안 나는 것 같으니까.”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의민이 아쉽다는 듯이 말했지만, 다인은 고개를 저으며 제지했다.
“오늘은 늦었어요. 일단 집에 들어가요. 언니가 걱정할 걸요. 전화는 하셨어요?”
“……아니.”
“먼저 전화나 해.”
이제껏 입을 다물고 있던 자인이 일어서며 의민에게 핀잔을 주었다. 가족치고는 꽤 무심하다고 해야 하나, 나이차도 꽤 있어 보이는데 자인은 의민에게 쉽게 반말을 했고, 의민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너도 이 가게에서 되도록 나가지마. 여긴 결계가 있어서 생령인 너를 보호해줄 테니까.”
아직은 화가 나 있는 것 같았지만, 마치 지시사항처럼 내게 그런 말을 던지고 자인은 다인을 데리고 가게를 나갔다.
“미안, 자인은 이 중에서 제일 힘이 있는 편이라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과보호 성향이 있어.”
적화가 사과하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유령인 나를 때리는 게 가능하다는 것은 가영이의 말대로라면 상당한 영력의 소유자라는 의미다. 애초부터 그러니까 나는 보이지도 않는 유령들을 가영이에게서 털어낼 수 있었겠지. 나는 시선을 적화를 향했다. 중년의 그녀는 자신이 내놓았던 컵을 씻고 있었다. 내게 시선을 향하지도 않았고, 그저 조금 즐거워보였다.
‘저 사람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고 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내게 미안하다 사과했다.
“이모! 제가 할게요.”
2층 계단에서 연하라는 여성이 내려오며 말했다.
“괜찮아, 다 끝났어.”
“그럼 난 이만 가 볼게. 내일 봐.”
의민이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그는 안경을 들고 있던 가방에서 안경집을 꺼내 넣더니, 다른 서류들도 정리해 가게를 나섰다. 연하를 뒤이어서 내려온 연우가 내 앞에 있는 바의 의자에 앉았다.
“가영이는 자고 있으니까 보러 가도 돼.”
내가 보이지 않아 시선은 딴 곳이 있었지만, 내가 있으리라 짐작하고 배려하는 것 같았다.
“그럼.”
나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반사적으로 대답하고 말았다. 그러자 연우가 슬며시 웃는 것 같았다.
‘착각인가?’
나는 2층 계단을 향해 걸어 올라갔고, 연하는 의자를 치우며 가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머지는 제가 정리할테니, 이모는 이제 올라가서 쉬세요. 벌써 12시에요.”
“그럴까? 그럼 부탁해.”
나를 뒤이어서 계단을 올라오던 적화는 지금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참, 지아방은 위층 다락방이야. 저 칸막이 뒤에 문이 내 침실과 부엌에 같이 있고 침실과 부엌을 가르는 계단이 다락방으로 가는 계단이니까 그쪽으로 가렴.”
이 사람은 보이지 않는 나를 상대로 참 익숙하게 대화한다. 나는 조금 놀랐다. 나는 닫혀있는 문을 통과해 침대 옆에 나무로 만들어진 넓은 계단을 통과했다.
“…….”
다락방은 천장이 낮았지만, 나무로 만들어진 낮은 책장과 제법 넓은 침대와 작은 탁상 및 푹신한 소파 등등, 아기자기한 통나무집 같은 분위기의 아담한 방이었다. 그리고 그 침대 위에 가영이 조금 피곤한 표정으로 자고 있었다. 나는 넓은 침대에 걸터앉았다.
“미안.”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보다 가영이 나 때문에 유령들이 들러붙었다는 사실이 더 신경쓰였다. 내가 이상한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내가 살아있다니까 넌 좋니?”
나를 찾아 헉헉거리며 밝게 웃던 가영의 얼굴이 생각난다.
“유령인 나보다 살아있는 내가 더 좋나?”
나는 조금 복잡한 기분으로 뺨을 긁었다. 어쩐지 유령인 나와 살아있는 나는 별개의 존재처럼 느껴졌다.
“뭐하는 건지.”
가영과 만나기 전에는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증오로 날뛰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나를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화가 났다. 근데 이제 와서 그렇게 싫어하던 유령이 살아있다니까 웃는 가영이 조금 속상했다.
‘내가 왜 이러지.’
나는 머리도 식힐 겸 침대 옆 창문가로 향했다. 창문가는 넓은 나무판이 붙어있어 창가에 앉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나는 창문을 통과해 다락방에서 카페 앞으로 뛰어내렸다. 무게가 없는 부유감과 함께 난 지상에 서 있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감각이다.
“……그러니까, 그 애는 자고 있어. 정 그러면 내일 아침에 그 애 핸드폰에 전화하면 되잖아. 지금은 배터리 나가서 충전중이야.”
가게 안에서 난폭한 말투가 흘러나온다. 지금 가게 안에 있는 사람은 연하와 연우뿐이다.
‘뭐지?’
각도에 의해 어그러진 현관문 너머로 화가 난 연우의 표정이 보인다.
“…….”
무언가 참는 듯이 침묵하고 있던 연우가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그렇게 여동생이 중요하면 곁에 있으면 되잖아! 혼자 위험에 뛰어들게 하지 말고!”
그리고 난폭하게 전화를 끊는다.
“그 자식은 그랬으니까.”
연우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그런 연우를 연하가 불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하.”
그녀가 그의 또 다른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그가 조금 놀란 표정으로 입을 막는다. 그러나 곧 연하를 똑바로 바라본다.
“……네가 설사 죄책감으로 견딜 수 없다 해도…….”
연하가 움찔 몸을 굳혔다. 그런 연하의 손을 연우가 잡았다.
“난 널 놓지 않을 거야.”
잠시 굳어있던 연하는 고개를 살살 저으며 대답했다.
“사랑해, 이하.”
그녀는 구름 한 점 없이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거기까지 듣고 발길을 돌렸다. 분명 이쪽에 외부 계단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다 해도, 이 분위기를 통과해 다시 가영의 곁에 갈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난…….
‘난 아마도 널…….’
“난 괜찮아. 걱정말라니까.”
가영이 다락방 문 너머에서 전화를 하고 있다. 어제일로 미루어볼 때 가끔 전화를 한다는 출장 중인 언니겠지. 그 언니하고 이 가게의 사람들도 서로 잘 아는 사이 같다. 하긴, 여동생 혼자 생활하는데 봐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은 일이다. 그 덕에 싸움도 하는 것 같지만. 나는 가영이 옷 갈아입는 동안 다락방 계단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이집 주인인 적화라는 여성도 연화나 연우라는 사람도 이미 가게를 열 준비를 하고 있다.
“……나 참,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걱정 말고 일 보고 돌아와. 중간에 돌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가영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하아? 그만둬! 그런 짓하면 두 번 다시 안 볼 거니까. 절대! 안 볼 거야!”
그리고 전화를 끊고는 휴대폰 전원을 꺼버렸다. 가영은 더러운 거라도 만지듯 스마트폰을 집게와 엄지만으로 덜렁거리며 들고 계단을 내려왔다.
“왜 그래?”
“언니가 이상한 농담을 하길래.”
“무슨 농담이길래, 그렇게 기겁을 해.”
가영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생각에 잠기더니 대답했다.
“뭐, 진담은 아니겠지. 지나가는 비행기라도 납치해 당장 돌아오겠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던지.”
“아아, 네 언니라면 그것도 가능하겠지.”
사무실로 향하는 문 앞에 자인이 서 있었다. 가영은 실소하며 말했다.
“선생님도 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뭐, 그런 걸로 하자. 나와, 모두 모여 있으니까.”
“…….”
가영은 잠깐 멈칫하더니, 스마트폰의 전원을 켜고 맹렬하게 문자를 입력했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뭐라고 썼어?”
“법률적으로 하자 없이 돌아오지 않으면 절교하고 가출할 거라고 썼어.”
“…….”
자인을 따라 나오니 어제 보지 못한 인물이 추가되어 있었다.
“언니, 언니.”
조그만 여자애가 팔을 벌려 가영에게 걸어왔다.
“우와, 지민이 많이 컸네.”
가영은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여자애를 안고 뺨을 부볐다.
“오랜만이지?”
낮선 여자가 손을 흔들며 가영을 바라봤다. 가영은 정말 기뻐하며 웃었다.
“오랜만이에요, 정민 언니!”
은테 안경을 쓴, 긴 머리를 틀어 올려 핀으로 고정한 여성을 향해 가영은 정민언니라 불렀다.
‘이 사람이 반장 아저씨의 부인? 그럼 얘는…….’
“투명한 오빠가 있다.”
나를 똑바로 보고 있다. 그럼 주술을 쓸 수 있는 이 정민이라는 여성의 딸, 즉 반장 아저씨와의 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작아도 영능력자다.
“저런 건 지지야, 모른 척 해.”
자인이 열 받는 소리를 하며 지민이를 가영에게서 받아 안았다.
“외삼촌.”
지민은 자인을 반가워하며 호칭을 부른다. 그러나 그 와중에 정민이라는 여성이 그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애한테 이상한 선입견 가르치지 마!”
“아, 아파! 생존을 위한 지식이야.”
“저기, 이제 회의를 해도 될까?”
덩치는 이 중 가장 컸는데도 왠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경찰 아저씨. 아무리 생각해도 이 집 여자들 기가 장난 아니게 세구나 싶었다.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사람은 경찰 부부와 딸, 자인과 다인 부부, 그리고 가영과 나 였다.
“지아는?”
“지아는 안 돼, 전화 연결 안 되는 거 보니까, 지구에 없는 것 같다.”
하아?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들었지? 나는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서 가영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가영은 익숙한 듯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잘 모르지만, 그냥 은어 같아. 연락 안 된다는 의미.”
자인이 한숨을 쉬었다.
“하아, 지아가 제일 빠르고 간단한데.”
“지아가 무슨 간단 편리한 도구냐? 지아한테 기대는 건 금지다.”
왠지 자인에게 대체로 약한 모습을 보이던 의민은 지금 언급된 화제에 대해서는 완고하게 거부반응을 표명했다.
“알고 있어. 그냥 누나가 직접 움직이는 게 마음에 안 들 뿐이야.”
“적당히 해, 내가 애니? 그리고 이거 내 직업이거든?”
“그래, 알았어.”
자인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럼 일단 현재 상황을 강도훈, 너한테 설명해 줄게.”
의민이 핫핑크 안경을 끼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네가 살아있다는 사실은 인식하고 있어?”
“일단 그렇게 들었습니다.”
“실감은 없고?”
“네.”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전혀.”
“상대의 이름을 기억 못하면 좀 곤란한데.”
정민이 중얼거렸다. 의민은 정민의 중얼거림을 무시하고 이야기를 계속 진행했다.
“넌 지금 네 본래 몸을 빼앗긴 상태야. 원래 몸을 잃은 혼령은 자아를 잃고 떠돌아다니지만, 넌 원래 영력이 강한 것 같아, 그래서 일단 제정신으로 범인이 다니는 학교에 떠돌아다니고 있었던 거지.”
“별로 제정신은 아니었는데요.”
“뭐, 확실히.”
가영이 추임새를 넣는다. 살짝 화가 나간 했지만, 사실이라 참는다. 범인이라는 말이 신경 쓰이지만, 그 전에.
“제가 살아있는 건 어떻게 확신하세요?”
“지금은 그 여자애를 감시 중이니까, 사진보고 확신했어.”
“‘지금은’이라는 건 처음에는 몰랐다는 건데 어떻게?”
“여기 이 가게, 선택적 결계가 쳐져 있거든. 정확하게는 잘 모르지만, 몇가지를 걸러서 방어진이 쳐져있다고 들었어. 그 중에 생령도 포함되어 있어. 실제로 생령이 들어오지 못하게 결계가 쳐져있으면 곤란하기도 하고. 근데 유령인 네가 가게 들어온 걸 보고 가영이 눈치 챈 거지.”
가영이 쑥스럽다는 듯이 나한테서 고개를 피했다.
“처음엔 몰랐어, 구체적으로 이 결계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못 들었으니까. 다만 어렴풋하게 생령은 들어올 수 있다는 말을 들었던 걸 기억해냈지. 뭐 그 계기도 아저씨가 신체강탈이라고 하니까 연결된 거고”
“알았어, 그럼 이제 범인이네. 내 몸을 빼앗은 놈 그게 누군지 알죠?”
“학생들 몸을 차지한 범인의 이름은 우리도 아직…….”
“내가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