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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너에게 닿기를
“윽…….”
유령이 되고나서 피곤을 느끼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 그것이 얼마나 기분 나쁜 느낌인지는 죽어봐야 안다. 살아있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는 증거였다. 그녀는 유령은 점점 기억을 잃어간다고 했다.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감각의 대부분이 사라져서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심지어 지루하다. 단순 반복 업무만 하다가 연쇄살인범이 된 집배원의 기분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안에서 유일하게 시끄러운 목소리가 가영의 목소리였다. 반쯤 정신이 사라진 기분과 무의식이 섞여 인간에게 해를 입힐 찰나에 그녀의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지금은 왜 그런 행동을 하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정신이 맑다. 가영이 내 정신을 붙잡고 있다는 실감이 든다. 그런 그녀가 어젯밤 소리죽여 울었다.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유령이 싫다, 싫다 했지만, 가영은 입 밖으로 내뱉는 말투와 달리 사실은 굉장히 다정하다. 정말 이기적으로 생각했다면, 처음부터 내게 상관할 필요 없었다. 그 뿐 아니라 내가 따라왔었어도 자신의 방에서 나를 무시했으면 되었다. 카페의 방어막 성능 같은 것도 말할 필요도 없었겠지. 하지만, 그녀는 결코 날 무시하지 않았다. 굳이 밖에 나와 수학문제를 푸는 미련한 행동을 할 때부터 난 그녀가 보기와 달리 상당히 다정한 성격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니까 난 그녀에게 어리광을 피울 수 있었다. 차마 뿌리치지 못하는 그녀의 약점에 파고들어 나는 그녀에게 달라붙었다. 이건 내 정신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일이야 라고 자기기만을 하면서.
“하아.”
나는 한강 뚝방에 앉아 멀거니 넓은 강을 바라보았다. 우리나라 한강이 넓긴 넓다. 그렇지 않았다면 난 멀거니 물을 바라보는 짓은 하지 않았겠지. 계곡에 떨어지는 거친 물이나 좁은 강을 바라보며 멍 때리는 취미는 없다.
“하아.”
오늘은 토요일이다. 아주 희희낙락하며 사람들이 한강공원을 즐기고 있다. 어른 아이 없이 즐거워 보이는 구나. 가영이 없으니 다시 새삼 인간에 대한 시샘이 솟아오른다.
‘난 죽었는데, 니들은 즐겁냐?’
그래, 애초부터 이런 기분이 나를 날뛰게 했다.
“하아.”
그렇다고 지금은 날뛰고 싶지 않다. 가영이가 울었다. 나는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 그 애가 유령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으리라는 건 눈치 깠다.’
유령을 보는 소녀, 그리고 유령을 싫어한다.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있는 법. 가영에게 사정이 있으리라는 건 얘기를 들어보지 않아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런 특이한 체질이 사정이 없는 게 더 이상하겠지.
“강~도~훈~.”
‘역시 내 탓이겠지? 내 탓인가? 정말 내 탓?’
“무시냐!”
휙휙 소리를 내며 나의 투명한 몸에 발길질이 통과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에 빠져 미처 눈치 채지 못했다.
“강도훈! 사람이 부르면 대답을 해! 이 빌어먹을 귀신아!”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해 모여든다. 아니, 정확히는 아무것도 없는 데서 혼자 길길이 날뛰며 소리치는 소녀를 향해 모여들었다. 아무리 생각에 빠졌다하더라도 주변의 시선이 따갑게 자신을 쳐다보는 기세에 나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었다. 머리는 거의 산발같이 어지러운 상태로 하나로 묶고, 온 몸은 땀에 젖어 비 맞고 온 사람처럼 푹 절어있는 소녀가 씩씩거리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 원래 몸에 돌아가면 한번 먼지 나게 패게 해줘.”
“하?”
“너는 영체 상태에서도 물건을 만질 수 있는데, 난 보이는데도 아무것도 못하다니 정말 불공평하니까.”
“하아?”
나는 가영의 말의 문맥을 못 알아듣고 물음표만 날렸다. 그러자 가영이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찾았어, 강도훈! 네 이름 말이야!”
“뭐? 어떻게?”
나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튀어 오르듯 일어났다.
“그보다 더 좋은 소식은! 넌 아직 안 죽었다는 거야!”
“하아?”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 나는 가영이가 제정신인가 싶어 쳐다봤지만, 가영은 마냥 기뻐하며 내 의심스러운 기색을 눈치 채지 못했다.
“일단 카페로 돌아가자. 내 몸이…….”
그러자 순간 가영의 몸이 비틀, 흔들렸다.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긴 했지만, 뚝방 위라 위태로워 보여 나간 내 손은 허무하게 가영의 몸을 통과해버렸다.
“할 수만 있으면 네 귓방망이를 잡고 끌고 가고 싶은 심정이지만.”
어차피 통과할 거 가영은 분한 표정으로 빈손을 한번 들어 올리는 몸짓으로 허무함을 표현했다.
“그리고 보니…….”
나는 그제서야 온 몸을 땀으로 목욕한 가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을 살펴보니 벌써 까맣게 물든 밤이었다.
“혹시 하루 종일 찾아다닌 거야?”
“지금이 몇 시인지 알아? 무려 8시간이나 찾아다녔다고! 거기에…….”
가영은 뭔가 덧붙이려다가 한숨을 쉬고 입을 다물었다.
“됐다. 아무튼, 빨리 가자. 택시 타자, 나 이제 더 이상 못 걸어.”
가영은 나를 향해 손짓하더니 바로 주차장을 향해 걸어갔다. 그 걸음걸이가 상당히 위태로워보였지만, 유령인 난 그녀를 부축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가영은 비틀거리며 간신히 주차장에서 빠져나가려는 택시를 잡아타고 카페로 향했다. 무척 지쳐있었지만, 그보다는 무언가 괴로운 듯 가끔 인상을 썼다.
“괜찮아?”
나는 가영이 이상해 물었지만, 가영은 앞좌석의 운전사를 힐끗 보고 의자 위에 얹어있는 손을 흔들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말 못하는 거였지.’
이제는 익숙해져서 완전히 의식하지 못했지만, 나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가영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물렸구나.”
택시에서 내리자 낮선 목소리가 들렸다. 가영이는 익숙한 듯 쓴웃음을 얼굴에 띄운 채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
선생님이라 불린 남자는 거침없이 가영에게 다가와 그녀의 등을 가볍게 쳤다. 그리고 어깨에 먼지라도 털어주듯 어깨를 털었다. 나는 그 순간 살짝 불티같은 반짝임을 보긴 했지만, 너무 순식간이라 눈의 착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순간.
“고마워요.”
가영은 그렇게 말하고 무너져버렸다.
“가영아!”
나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앞서 말한 듯이 내 손은 허무하게 그녀를 통과하고 그 남자의 팔이 가영을 지지했다.
“네가 그 문제의 생령이구나.”
남자는 조금 화가 난 듯, 그리고 동시에 가영을 내게서 보호하듯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겨 안았다. 나는 조금……, 아니 많이 화가 났다.
“가영이가 왜 그래?”
남자는 뭔가 불만인 듯 눈썹을 꿈틀거렸지만, 난 무시했다. 내 시야에는 가영이만 들어왔다. 물론, 그 남자도 무지막지하게 신경 쓰였지만, 그 보다 쓰러진 가영이가 더 걱정되었다. 뭔가 알 수 없는 이 열 받는 기분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너 때문이야.”
화난 표정을 지은 남자는 나를 향해 말했다.
“너 때문에…….”
남자는 무언가 더 말하고 싶어 했지만, 카페의 문이 딸랑하고 열렸다.
“앗! 가영아!”
가영이 연하라 부르는 여성과 연우아저씨라 불리는 남자가 튀어나왔다. 그 뒤로 이 가게의 오너라는 중년의 여성과 처음 보는 두 남녀가 서 있었다.
“이 땀 좀 봐, 도대체 이 더운 날 한나절 내내 그러면…….”
연하라는 여성은 걱정스럽게 말하다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입을 다물고, 연우라는 남자에게 말했다.
“이하, 가영이를 지아 방에.”
“알았어.”
‘응?“
가영은 분명히 저 남자를 연우라고 불렀는데, 왜 이 여자는 저 남자를 이하라고 부르지? 문득 그런 의문이 스쳐지나갔지만, 곧바로 날아온 주먹에 내 의식은 살짝 날아갔다.
“우왓! 자인씨!”
뒤에 서 있던 낮선, 긴 생머리를 절반은 핀으로 고정하고 나머지는 어깨에 늘어트린 단정하게 생긴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나는…….
‘이 자식, 자인이라고 하는 구나.’
이 놈의 이름을 기억했다. 얼굴은 곱상하게 생겼지만, 기세는 험악하기 이를 때 없었다.
“너 날 때렸냐?”
나는 길바닥에 앉아 자인을 노려보았다.
“난 너같이 민폐 끼치는 새끼가 제일 싫어.”
‘윽.’
뭐, 자각은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나와 같은 신음소리를 내며 슬그머니 가게 안쪽으로 도망가는 인물 하나가 있었다.
“뭐하는 거야. 지금 옛날일 들쳐 내서 도망갈 때야?”
적화라는 여성이 슬쩍 자리를 피하던 장년의 남성의 뒤통수를 치며 제지했다. 자인도 그 소리를 들었을 텐데, 오히려 표정은 더 차갑게 변해 무시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다가와 가볍게 팔을 잡은 여성이 있었다.
“다인아.”
그녀를 보고 감정을 가라앉힌 자인은 ‘쳇’하고 몸을 돌려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남아있던 다인이라는 여성이 나를 향해 말했다.
“일단 들어와요. 음, 강도훈 학생?”
‘아, 그리고 보니 내 이름을 찾았다고 했지. 아까도 가영이가 강도훈이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나는 내키지 않은 걸음으로 다인이라는 여성을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여러 가지로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난 일단 제일 궁금한 것을 묻기로 했다.
“가영이는?”
“아, 괜찮아요. 자인씨가 붙어있는 영체들은 다 털어냈으니까. 그리고 이 가게의 결계는 특별한 거라 기력은 금방 돌아올 거예요.”
다인은 다정하게 나에게 말했지만,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붙어있는 영체라니?”
“아?”
다인은 잠깐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주었다.
“당신은 다른 유령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군요. 음, 생령이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애초에 그런 체질일 수도 있고.”
“흥.”
자인은 다시 불만스러운 신음을 내고는 팔짱을 끼고 가게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살짝 한숨을 쉬고는 파일을 펼치는 장년의 남자가 있었다.
“가영이는 당신을 찾으려고 당신을 본 유령들에게 물어보고 다닌 모양이에요. 근데 유령들이라는 게 원래 산 사람에게 집착하는 존재라 그 과정에서 가영이에게 달라붙은 유령들이 제법 있었겠죠. 뭐, 유령을 찾으려면 별 수 없었겠지만.”
“……그럼, 나 때문에.”
“괜찮아요, 가영이가 좋아서 한 일인데.”
“…….”
가영이가 오면서 계속 괴로워했던 건 자신한테 달라붙어있던 유령 때문이었다. 나는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애초부터 네가 가영이한테 집적거리지 않았으면 이런 일은…….”
나는 아프게 자인의 말을 듣고 있었는데, 다인의 표정이 살짝 굳더니 차가운 목소리가 그 다정한 얼굴에서 흘러나왔다.
“자인씨, 짜증나.”
그 순간 자인이 땡하고 얼어붙었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적화가 바 뒤에서 음료를 준비하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진심으로 느끼는 건데, 다인이의 독설이 이 집 여자들 중에 제일 세. 넌 어떻게 같이 사냐?”
맡은 편에 앉은 장년의 남자가 자인에게 속삭였지만, 자인은 완전히 얼어붙어서 반응하지 않았다.
“에, 또…….”
나는 이 얼어붙은 공기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그러자, 다인이 바의 의자를 하나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앉아요, 할 얘기가 많죠?”
‘무시다. 무시하고 있어.’
완벽하게 무시당한 자인은 움찔 꿈틀거리더니 한숨을 쉬고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일단 인사부터 할까? 난 특수현상처리반 반장, 권의민이라고 한다.”
아까부터 파일을 펼쳐놓고 뒤로 물러서 있던 장년의 남자가 나를 똑바로 보고 인사했다.
“아, 예. 안녕하세요. 근데 그 안경은 도대체…….”
권의민은 핫핑크의 양 끝이 나비처럼 뾰족한 어떻게 봐도 여성용으로 보이는 작은 안경을 쓰고 있었다.
“아, 이거?”
의민은 쑥스러운 듯이 안경을 만지작거렸다.
“유령을 보기 위한 아이템이야. 나는 원래 영력이 없어서 유령을 듣지도 보지도 못하니까. 이건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특수 아이템.”
“하아.”
“아, 참고로 난 안 보이고 안 들리니까, 내 반응은 무시하렴.”
적화가 아이스커피를 다인 앞에 내 놓으며 끼어들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그녀는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지만, 사람들의 대화를 통해 내가 하는 말을 유추하고 대화의 문맥상 끼어든 것 같았다.
“그럼 이 사람들은.”
내가 다인과 자인을 가리켜 말하니, 다인이 대답했다.
“나하고 자인씨는 원래 영력이 있어. 안경이 없어도 보여.”
“아, 네.”
근데 왜 핫핑크의 나비안경?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안 묻는 게 좋겠다는 기묘한 위기감이 들었다. 어떻게 봐도 그 핫핑크 나비안경을 무척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얼굴이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