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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오랜만에 조용한 일상을 보냈다. 나뿐이 아니라, 전교생이……. 물론, 심심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 옆에서 내내 감시하듯 서 있는 그의 기척을 느끼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지내는 건 모른 척 하던 때보다는 고역이었다. 조용한 학교생활로 돌아온 하루에서 나만이 오한을 느끼며 수업을 들었다.
“진도가 좀 늦는 거 같은데?”
수학시간이었다. 수학자체는 좋아하지만, 수업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혼자 생각에 빠지기 쉬우니까 수학을 좋아하지만, 수업은 재미없어서 싫어한다. 특히 도형문제는 좋아하지만, 함수문제는 쥐약이다. 나는 칠판에 선생님이 쓰고 있는 문제와 해설을 옮겨 적으며 생각했다.
“진도가 늦는 것 같다고!”
정정하자, 오늘 나만은 조용한 일상이 아니다. 웬일로 조용하다 싶었더니, 자신이 느낀 위화감에 공감해달라고 졸라댄다. 알게 뭐야!
사각사각.
[네가 죽은 다음이니까 그런가보지.]
나는 수학노트 귀퉁이에 끄적거렸다.
“그럼 빨라야지, 늦는 건 반대 아냐?”
[…….]
“그딴 거 적지 마!”
할 말이 없는데, 그럼 뭐라 하랴?
사각사각.
[넌 남의 눈이 신경 안 쓰이겠지만, 난 신경 쓰여. 할 말 있음 점심시간에 해.]
그는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입을 빠끔거렸지만, 곧 자기 성질을 못 이기고 내 책상 위에 있는 교과서와 노트, 필통까지 한꺼번에 날려버렸다.
“우왓! 뭐야!”
“꺄! 뭐야? 뭐야?”
“…….”
나의 전후좌우에서 실제 일어난 일을 지켜본 아이들은 놀라서 소리를 질렀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칠판에 분필로 문제해설을 쓰던 수학선생님이 날 노려본다.
“미리 말해두지만, 제가 그런 거 아니에요.”
“맞아요! 가영이가 그런 거 아니에요.”
“진짜에요!”
친구들이 내 편을 들어준다. 다행이다. 요즘 우리학교는 괴담이 만연한 학교다. 한두명 목격한 것이 아니니, 선생님도 한숨 한번 쉬고는 곧 수궁했다.
“빨리 다시 주워. 조용! 니들도 다시 수업에 집중해!”
“네~!”
아이들은 순순히 대답했지만, 조용조용 노트와 교과서를 줍는 내게 눈길을 보낸다. 이래서 난 유령이 싫다. 나는 내심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궜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친구들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누가 다혈질이냐. 남 말 하시네.’
나는 학교 옥상 문을 열고 나왔다. 들키면 곤란하니까, 옥상 문을 잠그고 햇볕이 드는 쪽 벽에 기대고 앉았다.
“…….”
그가 내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내게 다가온다. 나는 무시했다.
“야.”
“…….”
나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는 예상했다는 듯 한숨을 쉬고 말했다.
“나도 잘못했다고는 생각해. 근데 네가 날 무시하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비닐봉투에서 샌드위치와 오렌지주스를 꺼냈다. 별로 식욕이 없어 눈앞의 음식을 보고 한숨을 쉬고는 한입 물었다.
“……점심시간에 말하자고 했잖아.”
난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내 옆에 기대고 앉았다.
“쨍쨍한 햇살 아래 너랑 이야기하는 거 이상하다.”
“말 돌리지 마.”
“윽.”
그는 잠시 틈을 둔 다음,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넌 내 이름도 안 물어봤잖아.”
“……그런 거 알아서 뭐해?”
그는 바로 발끈했다.
“바로 그게 문제야! 넌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궁금해 하지 않아! 물어보지도 않고! 심지어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만 하면 다 막아버리고 딴 짓을 하지! 그러니까 화난다고!”
나는 지난 24시간동안 그에게 말하려고 생각했던 말을 속으로 정리했다.
“넌 유령이야.”
“근데?”
“넌 죽었다고.”
“……알아.”
“그럼 성불해.”
“…….”
많은 말을 생각해 논리를 타파하려 준비했지만, 그는 의외로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그게 그렇게 간단해? 내가 죽었다는 사실도 못 받아들이겠는데!”
“사실은 사실, 그냥 인정해.”
“내가 왜! 못해! 안 해! 난 알아야겠어, 내가 왜 죽었는지!”
나는 한숨을 쉬었다.
“넌 네가 그걸 다 알면 마음을 정리하고 저 세상으로 갈 수 있을 거 같지?”
“…….”
“솔직해서 좋네. 지금 죽음을 못 받아들이는데, 죽은 이유를 안다고 간단하게 성불 할 수는 없겠지.”
“그렇다고 내 이름도 모른 체 갈 순 없어.”
“……역시 이름도 기억 안 났구나.”
“눈치 챘어?”
“그렇게 떠들어대는데도 이름 한번 말 안 한 유령이 기억 못 할 거라 생각했지.”
“…….”
“그냥 포기하고 다음 세상을 기약해.”
“……너 너무한 거 아냐?”
“뭘? 생판 모르는 남자애에게 성불을 권하는 내가? 이 이상 어떻게 친절해? 내가 널 되살려놓겠니, 아님 탐정처럼 네 죽음의 미스터리를 해결할 수 있겠니?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널 대하고 있는 중이거든?”
“넌 날 볼 수 있잖아!”
“그게 뭐?!”
내가 지금 살아생전 가장 싫어하는 부속능력이다.
“그런 말 몰라?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어이구, 참도 큰 힘이다.”
“……어, 어쨌든! 넌 날 볼 수 있는 힘이 있으니 책임을 져야 해!”
이게 무슨 물에 빠진 놈이 물귀신 되는 소리야! ……어쩐지 당연한 소릴 비유한 기분이 들지만, 어쨌든! 얼토당토 하지 않는 말에 나는 기가 막혔다.
“본인이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자각은 있으시죠?”
“……갑자기 왜 존댓말이야…….”
자각이 없다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힘없는 딴지를 걸지는 않았겠지.
“…….”
내가 말없이 그를 노려보니, 그는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난 너 말고 부탁할 데가 없단 말이야.”
아, 젠장…….
나는 다시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주스도 마시고 있는데, 왜 난 이렇게 목이 멜까.
“기다려.”
나는 카페 앞에서 그에게 손바닥을 내밀며 말했다.
“내가 개냐? 뭐하는 거야?”
나는 그의 이름을 찾아주기로 약속했다. 그 이후로 그는 기운을 차렸는지 다시 쌩쌩하게 떠들기 시작했다.
“여긴 못 들어가. 유령 불가침 영역.”
“세상에 그런 영역이 있냐?”
“……얼마나 많은 지 정말 모르는 구나?”
“유령 인생 10일 됐거든?”
“그럼 알아둬. 세상에는 가짜도 많지만 진짜도 제법 있어. 이런 영역에 부딪치면 영체가 심하게 상해. 특히 여긴 100배는 강한 영역을 펼쳐놓은 곳이라 절대 접근 금지야.”
“유령 문제를 해결하는 곳 아냐? 왜 접근 금지야?”
“전문가긴 하지만, 전문가는 아니야.”
“응?”
“여긴 실종전문 흥신소와 커피 전문점이야. 유령문제를 다루는 곳이 아니야. 하지만, 그에 준하는 여러 가지 현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이지. 그러니까 유령문제도 가끔 다뤄.”
“유령문제도 다룬다며?”
“자의적으로 다루는 건 아냐.”
“타의적으로 다루는 거냐?”
“그러니까 실무담당자가 싫어해.”
“너랑 비슷하네.”
“……나랑은 좀 다른 것 같아. 나보단 능력이 좋아 보이는데…….”
나는 2층 사무실 위 다락방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암튼, 유령을 싫어해, 그러니까 접근금지 영역을 펼쳐놓은 거야.”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카페의 문을 바라보았다. 낮은 담에 둘러싸여 무성하지는 않지만 풀숲과 나무가 작은 정원에 들어서있다. 투명하지만 가장자리에 각도가 있어 잘 보이지 않는 격자무늬 현관문을 통해 희미하게 가게 안이 보인다.
“무슨 벽 같은 건 안 보이는데.”
“약한 영체는 접촉한 것만으로 사라져. 내가 경고할 때, 말 들어.”
“들을 거야.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지.”
“나 나올 때까지 안 보이게 숨어있어.”
“내가 그렇게 창피해?”
“……이게 아주 기가 살았구나?”
“사람이 농담도 못하냐?”
“……유령에게 인격은 없어.”
“알았다, 알았어.”
“…….”
그는 벌써 내 말투에 익숙해졌나보다, 이제는 그냥 넘겨버린다. 나는 그 부분을 무시하기로 하고 카페의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갔다. 문 상단에 위치한 도어벨이 울린다. 투박하게 생긴 구리빛 종은 생긴 것과 달리 맑은 소리로 운다.
“안녕하세요.”
나는 문 왼쪽에 있는 바 뒤의 연하언니에게 인사를 건넸다. 연하언니는 밝게 웃으며 내 인사를 받아주었다.
“안녕, 가영아.”
두 손은 커피를 내리느라 바빠서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한다.
“오늘은 수업이지? 이하는 사무실에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내부에도 2층으로 가는 계단이 있긴 하지만, 2층을 흥신소 사무실로 사용하면서 1층에 있는 계단은 막아 놨다. 카페 문의 맞은 편에 나무로 된 계단이 있지만, 그냥 장식처럼 ‘사용하지 않음’이라는 팻말이 서 있다. 2층 흥신소의 손님도 2층으로 연결된 외부계단을 사용한다. 나도 연하언니에게 인사만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알았다는 고개만 끄덕이고 바로 외부계단을 사용했다. 철로 된 외부계단을 올라 문을 열면 칸막이로 가려진 소파, 응접실이 있고, 집 정면을 향한 창문에는 현관에서 고개를 돌리면 바로 보이도록 사무용 책상과 사무용 의자가 있다. 원래는 사장님 책상이겠지만, 실제로는 공용으로 사무실 식구들 모두가 사용한다.
“저 왔어요.”
“어, 왔어?”
현관 옆에 있는 칸막이 너머에서 연우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늘 그렇듯 칸막이로 가려진 응접실 소파에서 자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은요?”
“지아는 붙어있는 날이 드물고, 사장님은 연하랑 밑에 있었을 텐데, 못 봤어?”
“카페 사무실에 계시나 보네요.”
여기서 사장님은 이 집 주인이자, 카페, 흥신소의 실제 주인이다. 그에 비해서 사무실은 거의 상관하지 않고, 카페 운영에만 관여한다. 근데 흥신소는 왜 만들었을까? 가끔 궁금하다.
“그럼 뒷마당에 갈까?”
연우아저씨는 자느라 굳은 몸을 풀며 말했다.
“옷 갈아입고요.”
“그럼 먼저 내려간다.”
나는 연우아저씨와 교대하듯 칸막이 뒤로 돌아가 청바지와 하얀 반팔T로 갈아입었다. 그리 길지 않은 단발을 끈으로 묶고 다시 외부계단을 내려간다. 계단을 다 내려온 뒤 나는 집 앞이 신경 쓰여 잠깐 둘러보았다.
‘잘 숨었나보네.’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일 때문에 자주 안 오지만, 다인언니는 가끔 서류작업을 하러 오는 편이다. 다인언니도 특이체질로 나와 같이 유령을 보는 체질이다. 선생님의 영능력은 공격적이라 보이더라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지만, 다인언니도 나랑 비슷하게 유령을 봐도 무력한 체질이다. 어떤 의미 나보다 나쁘다. 빙의체질이라 선생님이 매일 안절부절하니까. 그건 그거대로 재미있지만, 다인언니는 부드럽고 다정한, 밝은 연하언니랑 비슷하지만 다른 의미로 엄마 같은 느낌이라 좋아하니까, 다인언니가 위험한 건 나 역시 싫다.
“우선, 가볍게 동네 한 바퀴 돌아볼까?”
“아, 네!”
운동복차림의 연우아저씨는 먼저 달려 나간다. 늘 같은 코스를 도니 나도 길을 기억하고 있다. 실제로 대련을 하기 전에 체력단련을 위해 달리기는 필수코스다. 나와 연우아저씨의 주 2회 오후 달리기는 또 다른 명물이다. 남매라는 쓸데없는 오해도 받는 중이지만, 연우아저씨는 별로 상관안한달까, 오히려 좋아한달까. 이 아저씨는 나보다 20살이나 위라고! 나는 아저씨를 먼저 보내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그를 따라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