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95

너에게 닿기를

 

1.애상(哀想)

 

끈적끈적한 8월 중순,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한강의 산책로로 시체 한 구가 밀려나왔다. 물난리로 복구로 바쁜 와중이라 그렇게 시선을 끌지는 못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우리 학교는 달랐다. 한강에서 밀려나온 시체는 우리 학교, 연라 고등학교의 교복을 입은 십대 소년이었던 것이다. 방학이 끝나고 기분이 늘어지기도 하고 어수선했던 아이들은 사복을 입은 경찰, 즉 형사들이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보며 새로운 괴담이라도 생산하듯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사실 죽은 아이가 누구인지 실제로 궁금했던 건 아니었다. 아무생각 없이 흥미본위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즐겼다.

!

형사들도 일주일 새 두 번 정도 방문했을 뿐이다. 그러나 괴담은 새로운 이야기가 덧붙여져 성적비관의 단순자살 사건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사제 간의 금단의 사랑이라느니, 학교에 숨겨진 저주라느니, 연쇄살인이라느니 점점 다양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도 가볍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던 여자아이들 사이에 있던 책상이 붕 날아오르더니 뒤집어져서 떨어졌다. 바로 눈앞에서 본 여자아이들은 너무 놀라서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하지만 각자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있던 아이들은 실제로 일어난 일에 눈을 의심하고 믿지 못했다. 그래서 가볍게 지나가버린 그런 일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다.

! ! !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서 바닥이 울린다. 게다가 그것은 학교라면 어디에서든지 일어났다. 칠판지우개가 날아다닌다든가, 문이 제멋대로 열렸다 닫혔다하든가. 여러 가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아이들도 선생들도 드디어 눈치 채기 시작했다. 학교가 귀신들린 곳이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사실은 그랬다. 지금도 내 옆을 지나 죽은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곳으로 가 가만히 이야기를 듣다가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그 아이들의 책상 위의 노트나 교과서를 집어던지는 유령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인데 소년은 죽은 아이의 이야기를 하는 곳에 나타나 깽판을 친다. 이쯤되면 아무리 무관심한 나도 눈치 챘다. 저 소년이 바로 한강에 떠밀려왔다는 우리학교 교복을 입고 죽은 소년...이라는 것을.

가영아, 가영아. 너 방금 봤어?”

소년은 자신이 하고도 신경이 쓰이는지 곧바로 반응하는 내 친구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제껏 일부러 유령소년이 나타나면 그 곳만 외면하고 있었던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니, ?”

뭐라니! 너 정말 둔감하다! 어떻게 타이밍 좋게 너만 놓쳐?”

또야? 그냥 신경과민 아닐까? 실제로 본 애들도 많지만 못 본 애들도 많잖아?”

요즘은 이 신경질적인 유령소년 덕에 같은 대화의 반복이다. 빨리 빨리 성불해버리지 왜 학교에 들러붙어서 소란스럽게 만드는 지……. 나는 턱을 괴고 유령소년으로부터 시선을 회피한 채 친구와 대화를 계속했다.

이렇게 노골적인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그냥 어쩌다 일어난 일에 애들이 장난치느라 더 그러는 게 아닐까? 아님 소문에 한 다리 걸쳐 만들어내는 얘길 수도 있잖아. 지겹다.”

나는 불신 가득한 눈으로 친구를 바라보았다.

원래 못 보는 사람은 평생 못 보고 산다더니, 네가 그런 타입인가보다.”

그러든지 말든지.”

마주한 친구의 입장에서는 나는 영감 0%의 둔감녀다. 그러나 내가 방금 서술하고 있던 바와 같이 나는 영감 100%의 유령을 보고 들을 수 있는 희귀체질의 고등학생이다. 아니 50%라고 해야 하나, 나는 오로지 보고 들을 수만 있는 체질이다. 드물지만 동시에 종종 실례가 보고되고 있는, 병을 심하게 앓고 난 뒤 유령을 볼 수 있는 체질이 된 사례 중 하나다. 어렸을 때는 유령에 대한 대처방법을 잘 알지 못해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아는 사람을 통해 대처방법을 배우고 여러 가지 물건을 통해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방법을 익혔다. 그 중 하나가 가장 기본적인 대처방법으로 유령을 무시하는 것이다. 죽은 자의 기본 속성은 산 자에게 집착하는 것이고, 거기에 자신을 보거나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라면 더 더욱 들러붙기 쉽다. 그래서 유령을 보기 시작하고 10, 난 유령이라면 이제 진저리가 난다.

야야, 근데 오늘은 뭐할까? 오늘 화학, 과학실에서 하잖아.”

…….”

좀 무섭긴 하지만, 역시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으면 이렇다. 난 이렇게 현상을 무시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다경이가 부러웠다.

, 가봐야 알지.”

조금은 서글펐지만 나는 애써 평온함을 가장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화학 책을 챙겼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오한을 느끼고 나는 뒤를 돌아봤다.

왜 그래?”

함께 자리에서 일어서던 다경이 나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의문을 표시한다. 나는 깜짝 놀라 나를 노려보던 유령소년의 시선을 무시하고 손을 저었다.

아무것도 아냐. 그냥 좀…….”

어느 의미 평범하다는 것은 귀찮은 감각이다. 백퍼센트 유령의 기척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은 없다. 때문에 때때로 이런 식의 오한에 평범하게 반응해도 된다는 사실을 잊곤 하지만 반사적인 행동이라 시선처리에 곤란할 때가 있다.

방금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겠지? 눈 마주친 기억은 없어. , 좋아, 오케이!’

나는 혼자 반성을 곱씹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좀 오한이…….”

그러자 다경이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웃었다.

너도 전혀 못 느끼는 건 아니나보네. 요즘 괴담 얘기하다가 그런 느낌 든다는 애들 많아.”

난 아무 말도 안했거든?”

어쨌든 간에~.”

아니, 방금 한 말은 지금도 날 노려보는 유령에게 하고 싶다. 난 정말 아무 말도 안했거든? 도대체 왜 아직도 날 노려보는 건데?’

나는 아직도 느껴지는 시선에 몸서리치며 서둘러 교실을 나섰다.

 

, 이렇게 가열하면 색깔이 나타나지?”

알콜램프를 가운데 놓고 화학 선생님이 시범을 보인다.

이제 너희들도 조심하면서 한번 해봐.”

이미 준비되어 있는 알콜램프에 각자 불꽃반응을 보기 위해 그룹별로 소란스러워진다. 아이들은 다양한 색깔이 나는 여러 가지 물질에 정신이 빼앗겨 우와라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하지만, 나는 은근히 긴장하고 다른 아이들이 앞 다투어 해보겠다고 나서는 걸 지켜보고만 있었다. 교실을 나설 때는 따라오는 기척이 없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정신을 들고 보니 유령소년은 실험실 구석에서 한 아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교실에서 책상을 뒤집어엎거나 발을 구르는 것과 실험실에서 난동을 부리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더구나 오늘은 알콜램프를 사용해서 그런지 유독 선생님도 눈을 부라리며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나는 불길한 예감에 실험에 집중할 수 없었다. 소년은 전형적인 유령이었다. 전형적이라는 것은 죽은 직후, 혹은 자각 직후의 유령은 처음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고 안달하다가 분노를 기점으로 물건을 던지거나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들리고 보이는 가영의 입장에서는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지만, 뜬금없이 물건이 날아다니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당연히 공포를 느낀다. 사실 절반 정도는 물건을 던질 정도의 힘을 갖고 있지 않는데, 소년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더 나빠.’

현실에 힘을 구사하기 시작하면 실제로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고, 악령으로 변할 수 있다. 거기에…….

사람을 죽이기라도 하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소년이 부드럽게 다른 사람 눈치 못 채게 약장문을 열고 있었다. 크게 황산이라고 쓰여 있는 병이 슬금슬금 밑에 앉아있는 아이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위험해!”

나는 급하게 달려들어 막 그 아이의 등으로 떨어지는 병을 받았다. 다행히 뚜껑은 제대로 닫혀있었는지 심하게 흔들린 황산병은 요동치는 것에 비해 한 방울도 흘러내리지 않았다.

?”

아이는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멈칫하다가 다음 순간에는 반응하기 너무 늦어버려서 입만 벌리고 나에게서 물러섰다.

괜찮아? 다치지 않았니?”

선생님이 놀라서 나에게서 황산병을 빼앗고 내 몸을 확인했다. 나는 두 손과 두 팔을 내려 보다가 선생님을 올려보았다.

, 괜찮은 거 같아요.”

그래도 모르니까, 일단 양호실에 가자. 민수영, 너도 모르니까, 같이 갔다 와.”

선생님은 방금 황산을 뒤집어 쓸 뻔 한 남자아이를 가리키며 이름을 불렀다.

전 괜찮은데요?”

알아, 근데 선생님은 얘들 감독해야 되니까, 네가 대신 가영이 데리고 가라고.”

수영은 잠깐 귀찮은 기색이 들었지만, 수업을 빠지는 게 그렇게 나쁘지 않은지 곧 수긍했다.

알았어요. 가자, 가영아.”

.”

나는 유령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방금은 너무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아는 척을 할 뻔했지만, 혹시 유령이 눈치 채지 못했다면 그냥 지나가자고 생각이 들었다. 한껏 시선집중 중인 지금은 미친 취급 받지 않으려면 입을 다물어야 했다.

가자니까? 너 괜찮아?”

잠깐 내가 넋을 놓고 있으니까, 수영이가 내 팔을 붙들고 흔들었다.

, . 괜찮아. 미안, 가자.”

나는 유령을 남겨두고 가는 것이 불안해 과학실을 빠져나가기 전에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그것이 잘못된 일이었다. 아니, 그때는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뒤를 돌아본 순간 유령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씨익 웃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덫에 걸렸다는 생각과 동시에 온 몸에 털이 곤두서는 감각을 느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요령 있게 만들어가던 일상을 파괴한 원흉과 눈을 마주한 기분은 정말, 더러웠다.

 

차르륵!

양호 선생님은 나를 침대 위에 앉혀놓고 커튼을 쳤다. 일단 황산병을 껴안았던 내 상태를 먼저 살피기로 했다. 선생님은 너무 놀라 아파도 모를 수 있다며 일단 상의를 벗어 상처가 없는지 확인했다. 다행이 상처는 없었지만 교복에 구멍이 나 있었다.

!”

순간적으로 생각한 건 언니한테 혼나겠구나였다.

, 아마 실험하느라 사용했을 때 병 겉에 묻은 게 옷에 달라붙었나보다. 다행히 피부는 다치지 않았어. 그치만 중화시켜야 되니까, 체육복 있니? 다른 옷을 입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제 체육이라 세탁하려고 집에 가져가서 오늘은 없다. 양호선생님은 잠깐 고민하더니 자신의 책상 옆 옷걸이에 걸려있는 쇼핑백에서 반팔상의를 꺼내서 나에게 주었다.

일단 잠깐 입고 있어. 중화시키고 좀 지나면 네 옷은 입을 수 있으니까. 구멍은 크게 눈에 띠지 않으니 다행이다.”

선생님은 내게 상의를 주고 이번엔 수영이를 살피러 커튼 밖으로 나갔다.

오늘 화학수업은 못 듣겠구나.’

사실 그게 문제는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생각이 든다.

넌 문제없어. 자 다시 수업 들으러 돌아가.”

? 벌써요?”

넌 사실 그냥 쟤 데려다 주려고 온 거잖아.”

그래도 이왕 온 건데…….”

여기가 놀이터인 줄 알아? 자 여기다 이름 쓰고 빨리 가.”

나는 상의를 갈아입고 커튼을 젖혔다. 수영이는 마침 일지에 이름을 쓰고 있었고, 나는 나도 써야 되냐는 의미로 양호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나를 잠깐 보더니 수영이에게 말했다.

쟤 이름 알지? 걔 이름도 쓰고 가. 같은 반이지?”

... 너 주가영 맞지?”

.”

넌 같은 반 친구 이름도 잘 모르니?”

별로 얘기 안 해봤으니까 그러죠.”

반년이나 같은 반이었으면 좀 기억해라.”

양호선생님은 수영의 뒤통수를 가볍게 때리며 핀잔을 주었다. 그리고는,

넌 여기서 한숨 자고 가, 종 치면 깨워줄게.”

? 왜 쟤는요? 쟤도 멀쩡한 거 같은데.”

어차피 내 옷 입고 교실로 돌아가긴 그렇잖아. 게다가 난 얘를 모르니까.”

그게 무슨 소리에요?”

양호실에 온 적 없는 애라는 소리지. 그럼 수업 하나는 그냥 제껴도 괜찮아.”

, 횡포다.”

…….”

수영과 양호선생님이 서로 말장난을 하는 사이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조용히 웃으며 난처해했다.

참 재미있게 노네.”

갑자기 뒤에서 들린 목소리. 그러나 나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 웃음을 보고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예상대로의 사태에 나는 태연히 무시했다. 유령은 화가 나는 듯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자신의 몸이 수영과 겹쳐졌는데도 태연하다. 나는 찰나의 순간 그를 바라보고 다시 무시했다.

너 나 무시하는 거야? 다 알고 있어. 너 나 보이지? 근데 일부러 무시했지?”

완전히 비틀리고 꼬인 목소리다. 최소한 남들 없을 때 달려들면 덧나나? 예의도 엿 바꿔먹은 마냥 꼬투리 하나 잡았다고 길길이 날뛰는 유령소년을 곁눈으로 보며 난 한숨을 쉬었다.

그럼 전 좀 잘게요.”

, 넌 사양도 안하냐?”

수영이 분한 듯 말했다.

, 나 양호실 침대에서 자는 거 한번 해보고 싶었어.”

수영은 약간 삐치긴 했지만, 양호선생님과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나 역시 마주 웃으며 침대로 갔고, 수영은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양호실을 나갔다. 선생님은 내가 편하게 자게 다시 커튼을 쳤고, 나는 일단 한숨 자기로 했다. 어쩐지 앞으로 잠자기 힘들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 무시하지 마!”

아직은 보이기만 하고 안 들리는 거로 속여 넘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난 유령의 목소리를 철저히 무시했다.




***

뭘쓸까 고민하다가(시작만 한 글은 여러편....OTL) 결국 이걸로 결정했습니다.

이것도 예상은 대략 100page 전후라...

그리고 아시겠지만, 전 이러고 방치플레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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