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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도는 이미 사상자가 나 있었다. 선우자양은 각궁(角弓)을 휘어지게 잡고 무형의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녀를 호위하듯 부채를 쥔 채 무형의 방어막을 만들어낸 미색도포의 남자가 서 있었다.
“……미친년.”
린은 자양을 보고 다짜고짜 욕설을 날린다. 그녀는 자신의 무기인 창을 휘어잡으며 자양과 대치했다. 잠깐 움찔했던 자양은 말없이 화살을 날리며 린에게 대응한다. 그러나 무형의 화살은 간단히 린의 창에 부러져 산산이 부서진다. 그녀의 무력은 압도적이다. 자양은 인상을 쓰며 린의 기합에 밀려 뒷걸음질 쳤다. 린은 그 틈을 노리고 창을 휘두르며 달려든다. 그러나 무형의 방어막에 린은 밀려나고 만다.
“당신도 연수가 만만치 않은 자군.”
다니엘이 린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기원전부터 존재한 악마를 향해 린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아가야, 누구 앞에서 주름잡는 거니?”
용왕을 제외하고 가장 오랜 세월을 살아온 신수 기린이다. 린은 자신의 청명한 기운을 압도하는 악마의 끈적끈적하고 혼탁한 기운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끼리끼리라더니. 넌 얼마나 많은 인간의 혼을 잡아먹은 거니?”
“안 세 봤어.”
조금의 거리낌도 없다는 얼굴에 린은 표정을 굳었다.
“미친놈.”
“린!”
갑자기 현무가 이변을 느끼고 린의 이름을 외쳤다. 린을 포함하여 피아 구분 없이 현무가 바라보는 곳에 시선을 옮겼다. 아무것도 없을 돌로 된 사각의 문에서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린은 긴장한 목소리로 자양에게 물었다.
“지금 이때 경계의 문이 열리는 건 우연이 아니야.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필요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자양의 말투는 무감정했다.
“그러니 길을 비키시지요.”
“멍청한 년, 이런다고 이하는 돌아오지 않아.”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저입니다.”
린은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괜히 일을 꼬는 것은 그런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주의였다. 때문에 아무리 운영의 바램이 있었다하더라도 이런 이변을 앞두고 숨길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녀는 입을 떼었다.
“넌 잘못 생각하고 있어. 그 아이가 경계의 땅에 있거나 우리가 숨겼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야.”
“이제 와서 어떤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습니다.”
자양은 린을 무시하고 전진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앞을 막으려 린과 현무가 앞을 나섰다.
“야, 이 바보야. 이하는…….”
린은 말을 끝내지 못했다. 조용히 일렁이던 경계의 문이 크게 흔들리더니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경계의 문의 공간은 닫혔다. 현무는 평소와는 뭔가 다른 느낌을 받았다. 사각의 돌문은 언제나와 같이 아무것도 없이 물길만이 흐르고 있었지만, 평소에는 그래도 이질적인 흐름이 섞여있었다. 그러니 지금은 마치 끊긴 것처럼 돌문은 그저 사물처럼 느껴졌다.
“이게 무슨……!”
현무는 당혹스러운 말을 외쳤다.
-무녀 운영이…….-
용왕의 염파가 신수들 사이에 흘러들어왔다.
“비켜!”
당황한 것은 자양 역시 마찬가지였다. 계획대로라면 무녀가 죽었다 해도 열린 문은 그대로야 했다. 자양은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린과 현무를 밀치고 돌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 돌문은 확인하지 않아도 그 저편은 바다일 뿐이다. 그러나 확인도 하기 전에 그 손은 다른 사람에게 잡혔다.
“그래 너야!”
모습은 청년이었지만 그 눈은 소년과 같이 맑았다. 그리고 그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자양은 자신의 손이 점점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거 놔!”
불타는 고통이 손에서 느껴진다. 그러나 청년은 그 손을 더욱 꽉 쥐며 고통과 슬픔이 뒤섞인 말을 내뱉었다.
“너 때문에 주인님이 돌아가신 거야!”
-무녀 운영이 죽었다. 계약이 소멸했다.-
그리고 청년, 세오의 몸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불길은 자양의 왼손을 태우고 더욱 더 커졌다. 자양은 간신히 세오로부터 몸을 빼내 물러섰다. 화상의 고통이 왼손 뿐 아니라 전신을 고통스럽게 했지만, 정신을 놓을 수 없었다. 불길에서 튀어나온 두 개의 날개, 새의 머리, 그리고 세 개의 다리. 불은 세 개의 다리를 가진 거대한 새로 변화했다.
“삼족오.”
자양은 멍하니 해 속에서 산다는 전설의 신수의 모습을 한 세오를 보며 중얼거렸다. 린은 운영을 잃은 슬픔에 조금은 자조적이긴 했지만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넌 언제나 타인을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구나. 세오.”
멍하게 서 있는 자양의 어깨를 잡으며 다니엘이 말했다.
“피닉스!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물러서야 할 때야.”
“이거 놔, 윽!”
이하를 포기할 수 없었던 자양은 다니엘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타들어간 왼손의 상처로 꼬꾸라졌다. 다니엘은 고통으로 몸을 부들부들 떠는 자양을 안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주인님, 윽…흑…!”
세오는 도망쳐버린 자양과 다니엘을 쫓는 것을 그만두고 이제는 그냥 돌문이 되어버린 경계의 문 앞에 돌아와 슬프게 울었다. 그저 계속, 해가 없는 불길로 이어도 주변을 일렁거리게 만들며…….
오르페우스는 운영의 집 마당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그의 모습은 여전히 선비의 모습이었지만, 본래의 갈색머리칼과 이국적인 이목구비는 돌아와 있었다.
“어째서!”
오르페우스는 실패했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고 화가 나서 주먹으로 땅바닥을 쳤다. 때문에 눈치 채지 못했다. 그의 눈앞에 검은 도포를 두른 한 남자가 서 있다는 사실을.
“……돌아보지 말라했다.”
목소리는 고요했지만 수면 밑에 잠재된 분노가 느껴졌다. 오르페우스는 누구인지 확인하려고 고개를 들었지만, 그 전에 그에게 멱살을 잡혔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내가 돌아보지 말라했다! 죽은 자는 죽은 자대로 떠나보내야 한다고 했다!”
오르페우스는 하데스의 얼굴을 확인하고 분노를 터뜨렸다.
“왜! 어째서! 고작 한번 밖에 못 만났어! 억울하잖아! 이럴 바엔 차라리 만나지 않게 했으면 좋았잖아!”
“멍청한 놈! 네가 방금 그녀를 죽였잖아! 그러니까 한 번 밖에 보지 못한 거다!”
“웃기지마! 한번 밖에 보지 못했으니까, 난……, 난…….”
오르페우스는 뒤엉킨 기억에 이상함을 느끼고 말을 더듬거렸다.
“난……, 난 왜 그녀를 한 번 밖에 못 봤지?”
뺨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분명 이번 대의 무녀의 수명이 다 할 때까지……, 일 년에 한번씩……, 이상하다. 왜 난 한 번 밖에 못 봤지.”
“봤었겠지. 그녀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하지만 넌 방금 그 시간을 네 손으로 죽인 거다.”
‘그리고 분명 그 횟수만큼 나 또한 당신을 만났었겠지.’
사라진 것은 오르페우스의 기억뿐이 아니다. 세계는 운영의 죽음으로 연결되었었던 시간을 조정했다. 그 수많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만남은 없었던 일이 되었다. 그리고 그 조정에서 어떤 만물도 벗어날 수 없다.
“아아악!”
오르페우스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하데스는 오르페우스가 고통에 몸부림치도록 놔주었다. 그러나 곧 그의 머리칼을 쥐었다.
“죽어라.”
“으흐흑!”
하데스의 한 쪽 눈에서 고여 있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어. 죽은 자를 만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널 죽였어야 했어.”
그리고 600년의 시간이 흐른다.
이지러지는 바닷물 속에서 소녀는 텅 빈 공간을 바라본다.
“정말 문을 열 수 있는 건가?”
긴 머리를 하나로 모아 올려 묶은 소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문을 여는 건 문제도 아니에요. 문제는 그게 아니었으니까.”
소녀는 가만히 자신의 가슴께를 쥐었다. 그녀는 목에 걸린 펜던트를 그러쥐고 있었다.
“후…….”
소녀는 겨우 결심이 굳은 듯 고개를 돌려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죠, 사신 하데스.”
하데스는 잠시 망설이다 그녀의 손을 잡았다. 생과 사의 경계 속에서 죽음의 손을 잡는다. 불길하기 짝이 없다고 소녀는 생각했다. 쓰디쓴 실소를 머금고 소녀는 경계의 문에 손을 뻗었다. 600년 간 미동도 없었던 문은 푸른빛을 내며 다시 그 단단한 문을 열기 시작했다.
운영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도 잊을 만큼 가슴이 뛰었다. 이미 죽어 혼만 남았는데, 가슴이 뛰다니 기묘한 기분이었다. 원래라면 혼마저 경계의 땅과 함께 소멸을 맞이해야 했다. 경계의 땅의 붕괴와 함께 틈새 세계에서의 죽음이라는 비정상적인 죽음은 혼은 윤회의 원 속에 속하지 못하고 경계의 땅에서 봉인된 채 함께 소멸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운영의 혼은 소멸하지 않았다. 이미 죽어버린 땅의 주인을 지키기 위해 경계의 땅은 그 붕괴를 일시 중지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순리를 거스르는 것. 원래 돌아가야 할 세계의 톱니바퀴 하나가 임의적으로 멈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의 변화를 멈추는 일. 신의 시대는 사라졌지만, 그 과정에서 신의 일부가 살아남았다. 사후세계를 지배하던 신의 지배력에서 벗어나야 했던 인간은 천계와 명계의 소실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죽음의 임무를 맡아야 할 인간이 태어나지 못해 죽은 자는 순조롭게 윤회에 들지 못한다. 죽은 자와 산 자의 혼란이 시작된 것이다.
바삭.
누군가가 이 경계의 땅에 들어섰다.
‘제발 뛰지 마, 내 가슴아!’
무너져 내린 하늘과 땅과 같이 무너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운영은 울 것 같은 기분을 간신히 가라앉혔다.
“운영.”
아아, 언제부터 그는 이렇게 나를 다정하게 불렀을까. 운영은 한번도 그런 적 없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착각을 비웃었다. 그리고 평정을 가장하며 그에게 미소를 보여준다.
“오랜만이에요. 하데스.”
때문에 운영의 혼은 윤회의 길에 들어서야 했다. 그러나 절반쯤 진행된 변천에 의해 저승사자는 모두 사라졌다. 그들은 원래 그들이 걸어야 할 다음 생으로 걸어갔다. 때문에 세계는 단 한명의 사신만을 남겼다. 원래라면 신의 시대와 함께 사라졌어야 할 죽음의 신 하데스. 이제는 일개 사신으로 격하되었지만, 그는 그렇게 살아있었다.
“……당신이 살아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검은 바바리코트를 시작으로 검은 색 일색인 옷은 2000년대라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복식이다.
“봄이네요.”
600년이 흐른 이후에 겨우 다시 열린 경계의 문 저편에서 봄내음이 난다. 조금은 슬픈 표정으로 운영은 하데스를 올려본다. 이곳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곳, 운영의 어깨너머로 운영이 죽었을 때 남긴 선명한 핏자국이 막 사건이 일어났다는 듯이 남아있다. 그녀의 시신은 경계의 문이 열렸을 때 있어야 할 시간대의 있어야 할 장소를 향해 사라졌다. 운영은 자신의 주검을 보여주지 않아도 돼 안심했다. 600년이라는 시간을 혼과 시신이 함께 보냈지만, 좋지 않은 광경이었다는 것은 운영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승천의 나무가 죽은 자를 인도해주었으니까.”
하데스는 봄내음 가득한 바람에 흔들리며 오색 천을 흔드는 신목을 바라보았다. 그의 절망을 밀어내듯 화제를 피한 운영의 바램에도 불구하고 하데스는 말을 잇는다. 운영은 할 수 없이 입술을 뗀다.
“……알았으니까요. 저로 인해 세계의 법칙이 어그러졌다는 것을.”
하데스를 따라 운영도 신목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저 바랬을 뿐이에요. 죽은 자가 구천을 떠도는 것이 안타까워서.”
“……하지만, 그 바램은 실제로 죽은 자를 가야할 길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공기가 조금 무거워졌다. 운영은 무거운 공기를 지우듯 농담조로 말했다.
“정작 저는 못 가는데 말이죠.”
“…….”
“아…….”
무거운 공기를 지우려고 한 말이 더욱 무거워져버려 운영은 당황했다.
“미안해요, 그런 게 아니라…….”
어떻게든 수습해보려고 다른 말을 찾는 운영을 조용히 지켜보던 하데스가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은 이제는 댕기머리가 아니라 귀신처럼 풀어헤친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그 손은 검은 장갑이 끼어져있다. 다정한 침묵이 그들 사이에 내려앉았다.
“잘못된 일이라는 건 알았지만…….”
침묵을 깨고 운영이 다정한 말투로 말한다.
“조금은 기뻤어요. 언젠가 저를 맞으러 반드시 당신이 올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이 정도 마음은 드러내도 괜찮겠지. 운영은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조금 속마음을 풀어내었다. 그 순간, 하데스는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던 손을 멈추었다. 그러나 운영은 눈치 채지 못하고 계속 마음을 풀어낸다.
“제 나라에서는 부부의 연이란 억겁의 인연이 스쳐서 겨우 이루어진다는 얘기가 있어요.”
운영은 마지막을 겨우 결심하고 하데스의 뺨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게 일백이라고 하면, 아마 우리의 연은 아흔여덟이나 아흔아홉쯤 되지 않을까요?”
이 손이 닿으면 운영은 다음 생으로 사라져간다. 사신에게 닿으면 혼은 그렇게 다음 생으로 사라져가는 것이 섭리다.
“살아생전 만나 죽음을 맞이하러 와준 인연이니까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감추려한 마음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당신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운영의 손이 그의 뺨에 닿으려는 순간 그 손은 검은 장갑에 붙들리고 만다. 자신도 모르게 흐른 눈물이 휘영청 눈 속에서 흔들린다.
“그렇다고 해서 아흔아홉 번째 인연이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흐려진 시야 저편, 하데스의 눈빛이 보인다. 저 간절한 눈빛은 착각이 아니다. 운영은 그제서야 이 다정한 목소리가 진짜 자신을 향한 것임을 깨달았다. 하데스 역시 자신의 눈빛을 눈치 채지 못한 채 본심을 숨기려 애쓰는 운영의 눈빛을 보고 깨닫고 말았다. 자신들의 마음을. 하데스는 운영의 잡은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끌어당겼다.
“운영.”
언제부터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불렀을까. 서로 그것도 자각하지 못할 만큼 그들은 서로를 바랬다. 하데스의 다른 손이 운영의 뺨을 잡았다. 이대로 서로 닿으면 이제 작별이라는 것을 둘은 알았다. 하데스는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그 모습의 진심을 알아버린 운영은 살며시 웃었다. 운영은 한 발 내밀어 그의 얼굴 가까이 다가갔다. 운영과 하데스는 서로의 입술에 자신들의 입술을 겹쳤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경계의 땅은 한 조각도 남김없이 소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