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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야노. 저 손님 화 많이 났는갑다.”
권 여사가 쌩하게 걸어 나가는 싸가지의 훤칠한 뒷모습을 죄인처럼 쳐다보았다. 고객 앞에서 다른 고객의 험담은 절대 금물이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권 여사가 와 미안해하는데요? 사람이 말을 하다 보면 좀 건드릴 수도 있지. 팔뚝에 금가루라도 발라 놨나. 뭘 저래 유난을 떨고 난리래요? 완전 재수 없는 인간이에요.”
“나이 많은 아줌마가 건드리니까 싫었는가 보지, 뭐.”
권 여사가 자조적인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 말도 안 된다. 무슨 그런 소리가 다 있어요? 남들이 들으면 팔뚝 아니라 어디 수상한 데 건드렸는지 알겠네.”
응대하던 고객이 매장을 나가자 선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카운터 쪽으로 걸어왔다.
“매니저님, 무슨 일이에요?”
“별거 아이다. 웬 재수 없는 인간 하나 땜에 우리 권 여사님이 얼떨결에 똥 밟은 게 다다.”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 앞에서 자세하게 설명을 하는 자체가 안 그래도 위축돼 있는 권 여사를 더욱 민망하게 만들 것 같아 대강 얼버무렸다.
“혹시 내 땜에 컴플레인 걸리는 거 아이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다. 본디 유별난 인간일수록 고객센터에 찾아가 본인의 불만 사항을 토로하는 것을 즐기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얘기하다가 팔 좀 건드렸다고요? 하이고, 그러고 싶음 그러라 캐요.”
영희가 보란 듯이 비웃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미래 백화점은 고객이 불만 사항을 접수하면, 담당 대리가 직접 해결을 해준다는 것이다. 미래 백화점으로 옮기기 전에 근무하던 백화점에서는 불만 사항이 접수되면 매장 매니저가 책임지고 접객 매너 교육을 따로 받아야 했다. 일주일에 하루 밖에 없는 휴무를 실수 같지도 않은 실수로 꼬투리 잡혀서 하나마나한 교육을 받는 데 써야 하니, 여간 열이 받는 게 아니었다.
“근데요, 매니저님, 아무래도 아까 그 남자 고객님이요, 최 대리님 붙잡고 무슨 얘기한 것 같아요.”
얘기를 듣는 내내 바깥 쪽 눈치를 살피던 선미가 의아한 목소리로 얘기를 꺼냈다.
“그런 인간한테 고객님 소리 붙이지 마라. 재수 없다.”
“그 남자 분 나간 뒤부터 최 대리님 계속 매장 앞에서 서성이세요. 지금 매니저님이 고객님 응대하고 있어서 못 들어오고 기다리고 계신 것 같은데요......”
3층 담당 대리라고 신분증을 목에 걸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양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최 대리를 어떻게 알아보고 컴플레인을 건단 말인가. 걸더라도 고객 센터를 찾아가겠지.
“설마.”
선미가 최 대리가 서 있는 쪽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심상치 않아 보이는 최 대리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심드렁하던 영희의 입에서 황당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엄마야, 진짜 말했는가 보네.”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최 대리를 붙잡고 자초지종을 떠들어댔을까. 혀 놀리는 속도가 우샤인볼트 저리가라다.
“엄마! 내가 진짜 엄마 땜에 못 산다. 와 그래 푼수 짓을 해 갖고 일을 만드노.”
영희의 눈치를 살피던 권 여사의 딸이 공연히 제 엄마를 통박 주었다. 권 여사하고 안면을 틀게 된지 3년 밖에 안 된 영희도 지금 이 타이밍에 권 여사를 건드리면 폭발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겠는데, 왜 이십년이 넘게 한 집에서 살고 있는 딸은 모르는 걸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권 여사의 심기를 살피던 영희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딸을 야리는 권 여사의 눈초리에 살얼음이 끼었다.
“니 지금 엄마한테 말하는 본새가 그게 뭐고? 푼수? 엄마한테 그게 할 소리가?”
낮게 깔린 목소리에서 차가운 분노가 느껴졌다.
“알았다. 알았으니까 빨리 계산하고 가자.”
권 여사의 딸이 제 엄마의 상태를 눈치 채고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게임은 끝났다.
“계산? 내가 왜? 앞으로 네 옷은 네가 사 입어.”
말 붙일 새도 없이 쌩하니 나가버리는 어머니의 등을 황망하게 쳐다보던 권 여사의 딸이 영희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언니, 죄송해요. 원피스는 담에 사야 될 것 같아요.”
“지금 원피스가 문제가? 빨리 가서 권 여사님 화 풀어드려라.”
영희가 얼른 백화점 상품권을 한 장 꺼내서 권 여사의 딸에게 건넸다.
“지하에 커피숍 모시고 가서 카페 모카 사드려. 권 여사님 달달한 거, 마시면 기분 좋아진다 아이가.”
“어머, 언니. 아니에요.”
“니 먹으라고 주는 거 아니거든. 권 여사님 사드리라고 주는 거다.”
영희가 됐다고 펄쩍 뛰는 권 여사 딸의 숄더백에 상품권을 쑤시듯 밀어 넣었다.
“빨리 가라. 권 여사님 벌써 저기 간다.
“언니, 죄송해요. 담에 올게요.”
권 여사의 딸이 총총히 제 엄마한테 달려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그 싸가지 없는 인간 때문에 이게 다 무슨 사단인가 말이다.
“내가 그 인간 서울 말 쓸 때부터 느끼하니 재수 없다 캤다.”
계산하기 바로 직전에 파투나버린 원피스를 옷걸이에 거는 영희의 눈빛에 살기가 돌았다.
“진짜 왜 그러셨지? 엄청 젠틀하신 분 같았는데.”
젠틀이라는 단어에 순간 싸가지를 향해 벼르던 영희의 살벌한 눈빛이 고스란히 지연에게로 향했다. 선미가 옆구리를 쿡 찌르자 지연이 그제야 본인의 실수를 눈치 채고 흠칫 입을 다물었다.
“뭐? 젠틀? 니는 얼굴 반반해가 서울말만 쓰면 다 젠틀하지?”
“아니, 그 뜻이 아니라요......”
지연이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려는 찰라 선미가 겁먹은 표정으로 말을 잘랐다.
“매니저님, 최 대리님 오셨어요.”
“오라고 해라. 하나도 안 무섭다.”
팔뚝 한 번 건드린 것 갖고 뭐라고 불평불만을 터뜨렸는지 어디 한 번 들어나 보고 싶다. 설마 성희롱? 정말 웃기고 자빠지셨다.
“오셨어요?”
영희가 분기탱천하여 최 대리와 마주 섰다.
“방금 매장에 남자 분 한 분 왔다 가셨죠?”
예의상 건네는 인사도 생략한 채 최 대리가 본론부터 건넸다. 진지하게 굳은 표정을 보아 하니 싸가지가 각색한 얘기를 진실로 믿고 있는 모양이다. 지연이처럼 최 대리도 그 인간의 멀끔한 생김새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그 사람이요, 진짜 골 때리는 인간이에요. 우리 매장 단골 고객님이 말씀 하다가 팔 좀 살짝 건드렸다고 무슨 송충이 떼어내듯이 팔을 확 치웠다니까요. 대학생 딸내미 원피스 한 벌 사준다고 나오셨다가 느닷없이 그런 망신을 당했으니 우리 고객님이 얼마나 놀랐겠어요. 최 대리님이 그거 봤으면 그 인간 편 절대로 못 들어요.”
얘기를 듣는 최 대리의 얼굴이 점점 흙빛으로 변해 갔다.
“다른 고객이랑 트러블이 있었어요?”
“트러블은 무슨! 우리 고객님이 그 인간한테 일방적으로 당한 거죠.”
“매니저님은 그걸 보고 가만히 있었어요?”
책망하는 목소리에 순간 분노가 치솟았다.
“사과 했거든요! 그 인간이 사과 했다고 말 안 해요? 사람이 사과를 하는데도 들은 척도 안 하고 눈 요래 내리깔고 한참 내려 보더니 암말도 안 하고 그냥 나가버렸어요. 거기다 대고 뭘 어떻게 더 해요? 나가버리는 사람 데려다 세워 놓고 무릎이라도 꿇을까요?”
흙빛이던 최 대리의 얼굴이 아예 바위처럼 굳더니, 곧 세상이 꺼질 것 같은 탄식을 내뱉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깊은 탄식이었다. 오만 진상 하루가 멀다 하고 상대하면서 오늘 따라 왜 저리 유난을 떠는 걸까.
“그냥 나가셨다고요? 화 많이 나셨겠네요?”
도대체 무슨 이런 질문이 다 있나 싶어, 순간 기가 막혔다. 기껏 상황 설명 다 해줬더니 고작 묻는다는 게 싸가지의 기분 상태라니. 거기다 꼬박꼬박 존댓말은 다 뭐란 말인가. 대통령이 와도 그렇게는 안 하겠다.
“대리님, 그 사람한테 뭔 약점 잡힌 거 있어요? 화가 나도 그 사람보단 우리 단골 고객님이 더 났고, 열이 받아도 우리 단골 고객님이 더 났어요. 지금 상황에 그 인간이 화가 났나 안 났나가 중요해요?”
최 대리가 폭발 직전의 영희를 향해 울상을 지으며 한 마디 내뱉었다.
“그 분 지점장님이에요!”
순간 매장 안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지금 내가 제대로 얘기를 맞게 들은 건가. 영희가 눈을 서너 번 껌뻑였다.
“새로 오시는 지점장님이요?”
“말도 안 된다.”
“지점장님이 와 우리 매장에 오셨대요?”
“왜 오셨겠노. 점검 차 오셨겠지.”
“엄마야. 우야노.”
두 사람의 들뜬 목소리가 새가 지저귀는 소리처럼 아무 의미도 전달되지 못 한 채 귓가에서 멍하니 울렸다. 오로지 한 가지 사실만이 영희의 머릿속을 꽉 채웠다.
그 싸가지 왕재수가 지점장이었다!
그리고 곧 현실이 직시 되었다.
난 이제 새 됐다.
“언니야, 니 거기서 혼자 뭐 하노?”
진희가 옥상 문을 빼꼼히 열었다. 올 봄에 방수 처리를 싹하고 평상을 하나 들여놓고부터 옥상은 영희의 대피소가 되었다. 대피소로 쓰기 위해 평상을 들여놓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동생네 식구랑 같이 사는 게 특별히 불편하지는 않지만 가끔씩 혼자만의 장소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훈탁이하고 말싸움 다 했나?”
훈탁이는 진희의 일곱 살 난 아들이다. 어려서는 그렇게 순하더니 유치원 다니고부터는 부쩍 말대답이 늘었다.
“제 까짓게 내한테 상대가 되나? 텔레비전 끄고 잔다고 들어갔다.”
“그깟 만화 영화 끝까지 좀 보게 해주지 뭘 그렇게 야박하게 구노?”
“안 된다. 버릇 된다.”
진희가 평상에 걸터앉다가 맥주캔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고 이거? 언니야 지금 술 마시고 있었나?”
“그래. 함 마셔봤다. 그 쓰고 냄새 나는 걸 뭐가 좋다고 그래 퍼 마시노?”
“엄마야, 별 일이 다 있네. 언니가 술을 다 마시고. 뭐 좋은 일 있었나?”
영희가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두어 번 가로 저었다.
“니도 참 어지간히도 눈치 없다.”
“왜?”
“니 눈에는 내가 지금 좋은 일 있어서 술 마시는 걸로 보이나?”
“아이가?”
진희가 건성으로 묻고는 절반도 안 남은 맥주 캔을 들고 홀짝거렸다.
“맥주 안 내려놓나! 니 그러다 77 사이즈도 낑긴다.”
“맥주만 마시면 살 안 찐다. 안주가 찌지.”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다시 한 모금 하려는 진희한테서 맥주 캔을 홱 빼앗다.
“왜 그러는데!”
“먹지 말라고!”
영희가 소리를 꽥 질렀다.
“아이씨. 진짜 시엄씨가 따로 없네. 맥주 안 내놓나. 어차피 버릴 거잖아.”
다 김빠진 맥주가 뭐라고 진희가 애원을 하며 매달렸다. 술 한 모금 안 하는 영희의 눈에는 흡사 알콜 중독처럼 보였다.
“네 몸이 쓰레기통이가? 버릴 걸 주워 담게.”
“엄마야. 무슨 말을 그래 심하게 하노?”
“시끄럽다. 내 오늘 눈에 뵈는 거 없으니까 신경 거슬리지 마라.”
진희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영희의 표정을 살폈다.
“백화점에서 무슨 일 있었나? 히스테리가 많이 심하네.”
“나 아무래도 아버지한테 내려가서 마늘 농사나 지으며 살까 싶다.”
사람이 진지하게 말을 하고 있는데, 진희가 대놓고 픽, 비웃음을 날렸다.
“되도 않을 소리 한다.”
“왜! 내가 못 할 것 같나. 백화점서 진상 만나 정신적으로 스트레스 받느니 차라리 몸으로 고생하는 게 낫다”
진희가 그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언니야, 아버지가 언니 집에 받아줄 것 같나. 요번 추석 때 혼자 내려올 거면 언니 그냥 대구 남아 있으란다.”
고등학교 졸업장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임신부터 한 둘째 딸 급하게 시집보내느라 기함해 넘어갈 뻔했으면서도 깨달음이 없었는지 아버지는 영희만 보면 시집을 못 보내 안달이었다.
“아이고. 더러버서 진짜. 내려갈 생각도 없었다 캐라. 집에 오지 말라 소린 하면서 와 용돈 보내지 말라 소리는 안 하는지 몰라.”
“에이. 그런 말은 절대 안 하지.”
진희가 킥킥 웃음을 터뜨리며 은근슬쩍 맥주 캔에 손을 내밀었다. 야무지게 손등을 찰싹 때리자 시침 뚝 떼고 애꿎은 평상을 툭 친다.
“여기 모기 있다!”
팔자에 없는 연기를 하는 모습에 그만 마음이 약해져, 새로 맥주 캔을 하나 따서 진희에게 건넸다.
“마셔라. 마셔.”
“언니야, 고맙다.”
고까울 법도 할 텐데 주저하는 기색 한 번 없이 환하게 웃으며 맥주캔을 받아들더니 단숨에 반을 비운다. 아무래도 알콜 중독이 맞다.
“백화점에서 무슨 일 있었나?”
술이 좀 들어가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진희답게 목소리가 확연하게 상냥해졌다.
“일찍도 묻는다.”
“무슨 일인데?”
“웬 미친 인간이 우리 단골손님이 얘기하다 팔뚝 좀 건드렸다고 사람 손을 바퀴벌레 떼어내듯이 확 잡아 던지는 거라.”
“원래 만지는 거 싫어하는 사람 있다.”
“그래. 나도 처음엔 그럴 수도 있다 싶어서, 우리 손님 대신에 내가 사과를 했거든.”
“사과 했는데도 뭐라 카드나?”
영희가 허공에 대고 코웃음을 날렸다.
“뭐라 카기나 하면 다행이다. 사람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고는 완전 개무시하고 나가뿔더라.”
“갔으면 된 거 아이가? 설마 언니야, 거기다 대고 성질냈나?”
진희가 불안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니는 내가 집에서랑 똑같은 줄 아나?”
“순간 못 이기고 성질 내보인 줄 알았다. 근데 와? 그 인간이 고객 센터 찾아가서 헛소리 했나?”
진희가 빤한 스토리라는 듯 심드렁하게 물었다.
“최 대리가 매장으로 달려온 기라.”
“아, 그 잘생긴 대리?”
제부한테 확 이르고 싶을 정도로 진희의 표정이 환하다.
“가가 와서 뭐라 카는지 아나?”
“뭐래는데?”
진희가 그다지 관심 없는 표정으로 맥주를 꿀꺽 꿀꺽 삼켰다.
“그 남자가 지점장이라 카는 거야.”
순간 사래가 들렸는지 진희가 연신 기침을 해댔다. 기침 소리가 잦아들고 진희가 평상 위에 맥주 캔을 내려놓았다.
“재벌 2세 말이가?”
“그래!”
“헐. 대박.”
“대박은 무슨 대박이고. 짜증나 죽겠다.”
심난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영희의 어깨에 진희가 다정하게 손을 올렸다.
“설마 그깟 일로 자르기야 하겠나? 지점장 팔뚝 언니가 만진 것도 아이고 손님이 만졌다며.”
구체적으로 자른다는 말이 나오니까 공연히 화가 치밀었다.
“누가 자른댔나?”
애꿎은 진희에게 화풀이하며 어깨에 걸친 손을 확 털어냈다.
“그럼 뭐가 걱정인데?”
진희가 뾰로퉁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 오늘 사무실에 몇 번 불려간 줄 아나? 일하는데 자꾸 불러서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아주 사람을 중죄인으로 몰고 가는데 짜증이 안 나나. 백화점 사람들 입방아 찧는 건 또 어떻고. 내일이면 새로 온 지점장 얼굴도 몰라보고 한 판 뜬 꼴통 돼 있을 걸.”
“맞네.”
고개를 끄덕거리던 진희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좀 희한하다. 왜 하필 언니네 매장에 오셨대? 언니네 매장이 미래 백화점 통틀어서 매출 1위도 아이고, 그렇다고 꼴등은 더더욱 아니잖아.”
“그러니까 짜증이지. 그 돈 많은 인간이 우리 매장에 살 게 뭐 있다고 왔냐고.”
“언니 혹시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고 그런 거 아이가?”
“말도 안 된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찔리는 데가 없지는 않다.
“혹시 그런가? 잘리면 갈 데도 없는데 큰일이네.”
허공에 대고 킥킥거리던 진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언니야. 석호 오빠 있잖아.”
“니 죽을래?”
좋은 사람이지만 남자로서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언니야, 니 요즘도 철수 생각 하나?”
무심코 물어본 질문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철수라는 말만 나오면 아직까지도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기 언제 적인데 아직 그 얘길 하노?”
진희가 가만히 손을 잡았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 이러는 건지 괜히 마음이 불편해졌다.
“언니야. 오빠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라.”
어려서부터 진희는 석호 오빠를 친오빠처럼 따랐다. 그래서 틈만 나면 짝짓기를 하지 못 해 안달이다.
“누가 기다리랬나? 됐다 캐라. 난 석호 오빠 싫다. 평생 좋아할 일 없으니까 갖다 붙이지 좀 마라.”
“알았다. 왜 성질이고?”
“맥주 캔은 네가 치워라. 네가 다 마셨으니까.”
벌떡 일어나 걸어가는 영희의 등 뒤로 걱정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야, 화났나?”
그러게 왜 죽은 애 얘기는 꺼내서 사람 마음 심란하게 만드느냔 말이다.
철수. 그렇게나 아팠던 이름이지만 어느새 흉터처럼 흔적만 남았다. 철수의 본명이 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히려 더 집착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철수와 있었던 3년 세월이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진다면, 그건 너무 미안하다. 하늘나라에 있는 철수한테, 그리고 너무나 많이 아파했던 그때의 내 자신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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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씨가 왜 나올까요?
그나저나 철수... 철수... 백조의 비상에 나왔던 조역이 철수 아니었나요? 창수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