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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날 저녁 북구청 맞은편 횟집에서 선우의 송별회가 있었다. 서울로 가게 됐다는 말에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던 이윤희 코치가 주선을 한 자리였다. 아직 스포츠센터가 문을 닫기 전이라 횟집에는 낮 타임에 근무하는 헬스 코치 셋, 오전 태보 코치 윤희와 그녀와 친한 에어로빅 코치 수영만이 앉아 있었다. 그 중에는 선우와 눈인사만 나눈 것이 고작인 사람들도 있어서 송별 인사를 받기가 쑥스러웠지만, 떠나기 전에 밥 한 끼 대접한다는 마음으로 군소리 없이 송별회 제안에 응했다.
“이야, 요가 수업이 진짜 효과가 있었던 거네요.”
“우 코치 요가 수업이 괜히 인기가 있는 게 아니었구나.”
우 코치의 신통한 능력에 대해 감탄어린 찬사가 오가던 중 진혁이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근데요, 오늘 우 코치 얘기 들었어요?”
모두들 금시초문인 표정으로 서로 시선을 교환하는 가운데 센터의 마당발인 윤희가 자존심 상한 표정으로 물었다.
“뭔데? 무슨 일 있었어?”
“누나도 몰라?”
“모르는데?”
“젊은 여자랑 중년 아줌마랑 둘이서 센터까지 쳐들어왔다는데?”
“쳐들어와? 그게 뭔 소리야?”
“우 코치랑 맞짱 뜨러 왔다니까.”
“선영이가 그래?”
진혁이 카운터 여직원과 사귄다는 얘기는 센터 내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응. 선영이 말로는 서울 여자가 우 코치 친구라고 하면서, 찾아왔대. 근데 좀 묘했던 게 어머니처럼 보이는 아줌마랑 같이 왔더라는 거야. 보통 친구 만나는데 엄마랑 같이 올 일은 없잖아. 아무튼 그런가 보다 하고 요가실 가서 우 코치한테 친구 왔다고 말해주는데, 우 코치가 좀 불안한 얼굴로 그 친구가 이름을 말했냐고 묻더래. 그때부터 좀 싸하더라니, 우 코치가 그 사람들을 보더니 바로 생까고 나가버리더라는 거야. 여자가 득달같이 일어나서 우 코치 잡으러 가고, 아주머니랑 합세해서 우 코치하고 졸라 설전을 벌이더라는데.”
선우는 젓가락질도 잊은 채 진혁의 얘기에 집중했다. 아까 낮에 편의점에 들렀다가 나오는 길에 우연히 마주친 장면 때문에 온종일 묘한 기분이 들던 터였다. 얼음처럼 싸늘하고 냉정한 여자가 길거리에서 소리를 내어 울다니. 차라리 알몸으로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았다고 해도 그만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그 여자가 친구가 아니었단 얘기네.”
팔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큰 근육의 구자운 코치가 뭔가 깨달은 표정으로 당연한 소리를 하였다.
“뭐라고 설전을 벌였는데?”
윤희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진혁을 재촉하였다.
“선영이도 직접 들은 게 아니고 회원 분들 얘기 전해 들었는데, 아주머니들 얘기로는 젊은 여자가 뭔 오빠 얘기하면서 그 남자를 왜 대구까지 불러들였느니, 생활비 타 쓰니까 편하더냐, 그러면서 소리 질렀다던데?”
순간 여자 두 명이 시선을 마주하더니 동시에 입을 떡 벌렸다.
“헐. 대박. 그럼 뭐야. 우 코치 사귀는 의사 선생이 양다리였던 거야?”
윤희의 말에 프리랜서 코치인 수영이 입술을 비죽거리며 한 걸음 더 보탰다.
“양다리면 다행이게. 유부남인 것 같은데?”
“설마.”
미심쩍어 하는 윤희의 얼굴에 대고 수영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설명을 했다.
“양다리면 저 혼자 오겠지. 엄마까지 대동해서 쳐들어왔다면 뻔한 거 아니겠어? 설사 결혼식 안 올렸다 해도 올린 거나 마찬가지인 사이겠지.”
“그럼 우 코치가 부인이 있는 남자를 꼬여서 대구까지 데리고 왔다는 거야?”
“생각해 봐라. 수상쩍지 않냐? 서울 여자가 혼자 대구에 내려와 살 이유가 뭐가 있냐?”
“그건 그러네. 우 코치가 서울에서 취직 못 해 여기에 내려왔을 리도 없고.”
얘기를 하는 것은 주로 여자 코치 둘이고, 선우를 비롯한 나머지 남자들은 그녀들이 하는 얘기들이 들으며 감탄하는 게 고작이었다.
“우 코치 능력 있네.”
“유부남 등쳐먹는 게 능력이냐?”
수영이 부러운 표정을 짓는 윤희에게 노골적으로 쏘아 붙였다.
“나도 누가 생활비 좀 대줬으면 좋겠네.”
“아이고, 이것이 머리끄덩이 한 번 잡혀 봐야 정신 차리지.”
“머리끄덩이까지 잡혔대? 아이고, 아까운 구경거리는 놓쳤네. 왜 꼭 그런 일은 내가 없을 때 일어나지? 지난번에 에어로빅 회원들끼리 싸울 때도 나만 없었어.”
윤희가 어린애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하자 수영이 밉지 않은 얼굴로 이마를 콕 쥐어박았다.
“넌 아주 재밌지?”
“그래, 재밌다.”
별로 곱지 않은 눈길로 보고 있던 우 코치의 사생활이 까발려져 은근히 통쾌한 건 피차 마찬가지면서, 안 그런 척 말 보태는 수영 보다는 차라리 대놓고 즐거워하는 윤희가 선우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보기가 좋았다.
“근데 우 코치도 참 희한하네. 자기 좋다고 덤비는 남자가 한 둘이 아닌데 뭐 하러 부인 있는 남자를 사귀어.”
처음 얘기를 꺼냈던 진혁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 얘기 몰라? 원래 유부남하고 사귀면 아가씨 쪽에서 목을 맨다잖아.”
“아저씨들한테 왜?”
“원래 연애가 밀당 게임이잖아. 유부남들은 곧 죽어도 돌아가야 될 처자식이 있으니 태생적으로 밀당에 강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지.”
“근데 그 남자가 우 코치님 따라서 가정까지 버리고 대구에 내려왔다면서. 그럼 남자가 우 코치님한테 올인한 거지.”
가만 얘기를 듣고 있던 헬스장 막내 코치 상혁이 불쑥 태클을 걸자 수영이 유쾌하지 않은 표정으로 입술을 비죽거렸다.
“제대로 올인하려면 호적을 정리해야지. 그게 아니면 세컨드밖에 더 돼?”
“근데 난 이해 안 가는 게 대구까지 내려왔으면 게임 끝난 거 아니에요? 뭐 하러 구차하게 마음 떠난 남자 붙잡으려고 발버둥치는 건지.”
상혁이 진의 편을 드는 순간 두 여자의 동지 의식에 발동이 걸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호적 정리하기 전까진 엄연한 부부지간인데, 딴 여자랑 살림 차리면 엄연한 위법이야.”
“누구 좋으라고 그냥 놓아줘? 최대한 괴롭히다가 위자료라도 왕창 뜯어내야지.”
제 일처럼 핏대를 세우는 여자들의 기세에 밀려 자철이 냉큼 상혁의 입을 틀어막았다.
“상혁이, 인마야. 여자들 얘기하는 데 눈치 없이 끼지 말고 그만 입 닫아라.”
“알았어요, 알았어.”
옥신각신 유쾌한 실랑이를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선우는 혼자만의 생각에 빠졌다. 그 남자가 유부남이었군. 그래서 그렇게 꽁지 빠지게 도망쳤던 거였다. 남의 남자를 자기 남자라고 소개시켜주기엔 양심이 찔렸던 모양이지. 그건 양심이 아니라 비겁한 거다. 애인이라고 밝힐 정도의 용기도 없이 관계만 유지하겠다고? 그건 스스로 사랑이 아니라 불륜이라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머리끄덩이를 잡히고 뺨을 맞아도 서럽게 울지 말았어야지.
“선우 씨 충격 받았구나?”
윤희가 생각에 잠겨 있는 선우의 얼굴을 유감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뇨. 충격 받을 일이 뭐 있어요?”
“갖다 붙일 데다 붙여라. 어디 강선우 선수한테 우 코치를.”
아무 말 않고 있던 오전반 코치 중 최고참 헌수가 날이 선 목소리로 통박을 주었다. 순간 무안해진 분위기를 풀기 위해 선우가 짐짓 명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우 코치 남자 친구 신상은 줄줄 꿰고 있었으면서, 정작 결혼을 한 사람이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던 거예요?”
“그런 건 당사자가 말 안 하면 모르죠, 뭐. 둘 다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라 과거에 대해 누가 아나요?”
“아우, 설마 유부남이랑 그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죠. 우 코치 보면 완전 우아하고 고고하잖아요. 직원 회식을 해도 거의 참석하는 일이 없어요. 마지 못 해 올 때도 밥만 먹고 그냥 일어나니까, 친해질 일이 없어요. 우리끼리는 미천한 우리랑은 말 섞기도 싫은 모양이라고, 얼마나 흉봤는데요.”
“그러니까! 남자 회원들이 말만 걸어도 철벽을 치기에 난 뭐, 애인이 의처증이라도 있는 남잔가 했다니까.”
“직원 회식에만 안 나오면 괜찮은데 회원님들 회식 자리에도 일체 참석을 안 하니까 그것 때문에 말 많았어요. 본부장님이 얼마나 시달렸는데.”
여자들이 주거니 받거니 나누는 얘기를 듣고 있던 진혁이 불쑥 질문을 하였다.
“근데 우 코치가 본부장님하고는 어떻게 아는 사이에요?”
“우 코치하고 상철 형이요?”
선우가 금시초문인 표정을 짓자 질문을 한 진혁이 난감한 기색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닌가? 우 코치를 센터에 데리고 온 게 본부장님이라고 들어서.”
“야, 넌 뭘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그래.”
헌수가 나서서 진혁을 꾸짖는 분위기에 정작 당황한 것은 선우였다.
“왜 그래요? 두 사람 사이에 대해 무슨 얘기라도 있었어요?”
어색한 얼굴로 눈치만 살피는 묘한 분위기 속에서 윤희가 나서서 설명을 했다.
“그냥 별 얘기 아니에요. 센터에 우 코치 처음 들어왔을 때 본부장님이 데리고 왔단 얘기가 있었거든요. 본부장님도 서울 사람이고 하니까, 두 사람이 원래 알던 사이였나 보다, 이런 저런 추측들이 있었거든요. 게다가 우 코치가 워낙 미인이라서 더 그랬죠, 뭐. 그러다 우 코치가 남자 친구 있다는 거 알고 바로 끝났어요. 그런데 이 얘긴 팀장님한테는 절대 비밀이에요.”
설명을 다 듣고 나서 선우가 픽, 실소를 터뜨렸다.
“전혀 아니에요. 이래서 사람은 혼기가 차면 결혼을 해야 된다니까.”
“근데 솔직히 처음에 우 코치 때문에 말 많았을 때 우린 당연히 본부장님이 우 코치 자를 줄 알았거든요. 원래 그런 면에선 칼 같은 분이시잖아요. 근데도 안 자르고 오전으로 시간 옮겨주는 거 보고 많이 놀랐어요.”
막내 코치의 문제 제기에 선우가 명쾌하게 결론을 내렸다.
“우 코치 실력 보고 그런 거 아니겠어요? 어쨌든 실력은 있는 사람이니까.”
“그때는 우 코치한테 그런 실력이 있는 줄도 몰랐을 때였어요. 그랬으니까......”
불편한 표정으로 얘기를 듣고 있던 헌수가 윤희의 얘기를 댕강 자르고 중간에 끼어들었다.
“야, 우 코치 얘기는 그만 하고, 다 같이 한 잔 합시다.”
제일 처음 이 얘기를 꺼낸 진혁이 재빨리 소주병을 들고 빈 잔을 채웠다.
“강선우 선우의 건강한 복귀를 위하여, 건배!”
헌수의 선창에 일동 모두 건배를 외쳤다.
“건배!”
그런데 센터 내 마당발인 윤희 조차도 전혀 모르는 우 코치의 사생활을 상철은 도대체 어떻게 알고 미리 주의를 줬던 걸까. 좀 이상한 일이기는 했다. 혹시 우 코치가 사귄다는 남자와 상철이 친분이 있는 건가.
오전의 마지막 요가 수업을 마치고, 진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탓에 몸살 기운이 돌았다. 어서 집에 돌아가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다행히 오늘부터는 선우와 같이 하던 개인 수업도 끝이 났다.
“왜 오늘은 먼저 일어나?”
맨 앞에서 열심히 따라하는 열성 회원 아주머니 한 분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집에 일찍 가보려고요.”
“야구 선수 개인 수업은?”
“그건 끝났어요.”
“오, 그래? 다 나은 거야?”
앞줄에 앉아 있는 아주머니 회원들이 관심어린 표정으로 두 사람의 얘기를 경청하였다. 전국구 스타인데다 워낙 출중한 외모 때문에 강선우는 여자 회원들 사이에서 관심의 대상이었다.
“통증은 가라앉았다고 하더라고요.”
“아우, 어쩌나. 이제는 못 보겠네.”
솔직한 얘기에 앞줄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들이 까르르 동조의 웃음을 터뜨렸다.
“그 사람 인물 진짜 좋더라.”
“인물만 좋게. 여기 트로피컬 스포츠센터 사장 동생이라잖아.”
“연봉이 십억이 넘는다던데, 뭘. 집안이 무슨 대수겠어.”
“십억은 무슨! 팔십억이라던데?”
“아니다, 그건. 5년에 팔십억이야. 우리나라가 무슨 미국 같은 데도 아니고, 어떻게 1년에 팔십억을 줘.”
연봉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와중을 틈 타 진은 목례를 하고 잽싸게 출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 코치, 서운하지?”
누군가 등 뒤에서 던지는 싱거운 소리에 진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잘 된 일이죠.”
순간 환한 표정으로 마지막 인사를 하던 선우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찜찜해졌다. 정말로 괜찮은 걸까. 아무래도 재발을 할 것만 같아서, 자꾸만 마음이 쓰였다.
“하여간 우리 우 코치도 큰일이야. 인연이 닿았을 때 냉큼 잡았어야지. 그걸 그냥 보내버리면 어떡해.”
“에이, 무슨 소리야. 우 코치 애인 있잖아.”
한 번도 남자 친구란 말은 해 본 적도 없는데 센터 내에서 현준은 그녀의 남자 친구로 통했다. 굳이 정정하지 않은 것은 그게 편했기 때문이다. 남자 친구를 소개 시켜준다는 제안과 전화번호를 묻는 사람에게 남자 친구는 훌륭한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다.
“애인 있는 게 무슨 상관이야. 결혼을 한 것도 아닌데, 더 좋은 놈 있으면 그리로 갈아타는 거지.”
입이 걸걸한 금은방 아주머니의 말에 모두들 폭소를 터뜨렸다. 나갈 타이밍을 놓치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그녀에게 회원 중 유난히 입이 가벼운 아주머니가 은근슬쩍 떠보는 질문을 던졌다.
“우리 예쁜 우 코치, 야구선수한테 문자 오고 그러지?”
무슨 이야기를 지어내고 싶어서, 저러나 싶어 진은 절로 경계심이 들었다.
“아니요.”
짧게 대답을 한 후 진은 오늘따라 수다가 길어지는 회원들을 향해 다시 고개를 숙이고 잽싸게 요가실을 나왔다.
계단을 올라가려는데 방음 장치가 미흡한 문틈 사이로 아주머니들의 대화가 새어 나왔다.
“자기들, 아직 우 코치 얘기 못 들었어?”
연락처 안 물어보냐고 물었던 입 가벼운 아주머니의 목소리였다. 진은 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무슨 얘기?”
“우 코치 쟤 지금 만나는 남자가 유부남이란다.”
너무나 황당한 소리에 기함을 할 지경이었지만, 일단은 얘기를 더 들어보기로 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얘기가 나왔는지, 사정이 궁금했다. 웅성웅성 다음 얘기를 재촉하는 분위기 속에서 안 그래도 남 얘기 하는 걸 좋아하는 아주머니가 신이 나서 떠들었다.
“어제, 웬 아가씨랑 아줌마 둘이서 헬스장으로 우 코치 잡으러 왔대. 카운터에다가는 친구라고 우 코치 불러달라고 했는데, 우 코치가 그 사람들을 보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쏜 살같이 내빼더란다. 그랬더니 그 사람들이 득달같이 우 코치 붙잡아서는 남자를 꼬여서 대구까지 데려왔냐고 막 따지더래.”
“설마!”
“아, 그 유부남한테 생활비까지 타 쓴대!”
“엄마야, 엄마야. 그게 진짜야?”
“그래! 나도 그 얘기 듣고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아이고, 완전 불여우네.”
“나이도 어린 게 벌써부터 팔자 꼬이게 생겼네.”
“사람 겉모습만 보고는 모른다, 진짜. 말 수도 없고 참한 게 어디 남의 남자 등 골 빼먹게 생겼어?”
“우코치 걔, 음침해 보이는 게 난 좀 그래 보이던데. 자기 얘기는 한 마디도 하는 법이 없잖아. 뭘 그리 숨기는 게 많아서.”
거기까지만 듣고 진은 미련 없이 계단을 올라갔다. 더는 들어볼 것도 없었다. 지나가다 주워들은 몇 마디를 조립해서, 그럴싸하게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들에게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모두 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비난하면서 우월감에 젖을 수 있다면 그게 진실이고 사실이 되기 때문이다. 방금 전까지 우 코치라고 친근하게 부르던 아주머니들에게 그녀는 이제 합심해서 몰아세워도 되는, 아니, 그래야만 하는 공공의 적인 것이다. 진을 붙잡고 그게 정말이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남이 하는 말만 듣고 그녀가 원래 그런 사람인 것처럼 색안경을 끼고 볼 뿐이다. 오늘 카운터 여직원이 그녀를 보는 눈초리가 왜 그리 어색했는지, 이제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서울을 떠나 대구로 왔지만, 결국 또 이런 일을 당하게 되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거기서 거기라더니, 정말 그렇다.
정말 저도 여자지만 여자의 입이 무섭다는 거 잘 알지요ㅠㅠ 오해를 풀생각도 안하니 더 꼬이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