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unk paradise
- 소설
- 연재소설
24.
“이거 놀이터에서 파는 와인 중에서 제일 비싼 와인이에요.”
현우는 영업이 끝난 삐꼴로 자르디노의 문을 열고 들어와 일부러 챙겨온 와인 병을 들이밀며 생색을 냈다. 주방에서 서서 살루미를 세팅하고 있던 진하가 그의 얼굴과 와인 병을 번갈아 쳐다보며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얼만데요?”
“칠십삼만 원.”
진하가 입을 떡 벌리며 황당해 하였다.
“말도 안 돼. 우리끼리 뭐 하러 그런 비싼 와인을 마셔요? 저 어차피 와인 맛에 대해 잘 알지도 못 해요. 그건 그냥 두고, 우리 집에 있는 거 마셔요.”
“뭘 그렇게 놀라요. 평생 칠십삼만 원 짜리 와인 한 번 마셔보지 못 한 사람처럼.”
현우는 태연하게 이죽거리면서 눈앞에 서 있는 여자의 급격한 표정 변화를 감상하였다.
“와, 얄미워라. 그런데 맞아요, 저 이렇게 비싼 와인은 못 마셔봤어요.”
순진한 속내가 투명하게 드러나는 무구한 시선과 마주한 순간 현우의 가슴에 묘한 울림이 느껴졌다. 시선을 아래로 한 채 쑥스러운 듯 미소 짓는 진하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럴까 봐 갖고 왔지. 한 번 마셔보라고.”
어색한 기운이 감추기 위해 그는 일부러 밝은 목소리를 가장하였다.
“정말로 됐어요. 나 어차피 그거 마셔도 좋은지도 모를 텐데 아깝잖아요.”
부드럽지만 강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에 현우는 내심 당황스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농담으로라도 가격 얘기는 입 밖에 내지 않았을 텐데, 계산 착오였다.
“어, 진짜로 이렇게 거부하면 안 되는데.”
“왜요?”
현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진하의 얼굴에 대고 태연자약하게 말을 꺼냈다.
“진하 씨가 계속 이렇게 거절하면, 냉장고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와인, 재고 처리 차원에서 갖고 왔단 말까지 털어놓아야 하잖아요.”
진하가 손에 쥐고 있던 멜론을 도마 위로 떨어뜨리며 격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전력을 다 해서 웃는 사람은, 울 때도 마찬가지일까. 현우는 그녀의 웃음이 멎을 때까지 잠자코 바라보았다.
“와, 진짜 사장님의 얘기는 끝까지 들어봐야 된다니까요. 어떻게 전개될지 도무지 예측불가야. 우리 오늘 와인이 아니라 식초를 마시게 되는 거 아니에요?”
“걱정 말아요. 식초까지는 아직 진행이 안 됐을 거예요.”
“어떤 맛이 날지 엄청 궁금하네요. 얼른 만들어야지.”
진하가 기대에 찬 표정으로 잠시 멈추고 있던 손을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백짓장보다 얇은 프로슈트를 섬세하게 매만지면서 말캉한 멜론을 돌돌 감는 현란한 손놀림을 감탄하며 쳐다보고 있다가 현우는 문득 저 손가락이 몸에 닿으면 어떤 느낌이 들까, 엉뚱한 의문이 들었다. 술도 한 잔 안 들어간 맨 정신으로 이런 같잖은 상상이라니, 미쳤군.
“사장님.”
진하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그를 부르는 바람에 현우는 순간 움찔했다. 자신을 두고 음흉한 상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눈치라도 챈 것은 아닐까, 그야말로 도둑이 제 발 저린 꼴이었다.
“근데 이 와인이요, 칠십삼만 원이면 매장에선 얼마 해요?”
“매장가가 칠십삼만 원인데.”
순간 진하의 얼굴에 긴장 풀린 웃음이 확 번졌다.
“세상에, 매장 가격을 말하는 게 어디 있어요.”
“내가 분명히 우리 가게에서 제일 비싼 와인이라 그랬잖아요.”
“그래도 설마, 매장에서 파는 가격을 말하면서 겁주는 건 줄은 꿈에도 몰랐죠.”
“어, 상당히 실망한 눈치네? 매장가 칠십삼만 원 짜리 와인은 시시해요?”
그러자 진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황당해 했다.
“제가 언제요?”
“대번에 무시하는 표정인데?”
“에이, 무시라니요, 말도 안 돼요.”
“내가 매장가라고 얘기 하니까, 순식간에 맥이 탁 풀리던데? 다 봤어요.”
그러자 푸하하, 웃음을 터뜨리는 것으로 진하가 백기를 들었다.
“간사한 게 사람 마음이라더니, 솔직히 백만 원 훌쩍 넘는 와인인가 보다 바싹 긴장하고 있다가 칠십만 원이라고 하니까, 마음이 편안해지긴 하더라고요.”
“삼만 원은 왜 깎아요? 칠십삼만 원이에요.”
“네, 네. 알았어요. 하여간에 사장님을 말로 어떻게 이기겠어요.”
“몸으론 이길 자신이 있고?”
현우는 바 테이블에 팔꿈치를 기댄 채 맞은 편 싱크대에 서 있는 진하 쪽으로 상체를 쓱 내밀었다. 순간 진하의 얼굴이 토마토 주스를 뿌린 것처럼 붉어졌다. 괜히 고개를 푹 수그리고 이미 완성된 모듬 살루미를 살펴보는 척 딴청을 피우는 모습이 우스워 현우는 웃음을 꾹 깨물었다.
“진하 씨, 프로슈토를 멜론에다 안 감고 엉뚱한 데 감았네.”
“네?”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진하의 얼굴에 대고 현우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진하 씨 얼굴이 프로슈토 감은 것처럼 빨개요.”
“아니, 뭐, 야심한 시각에 갑자기 몸 얘기가 나오니까 괜히 민망해져서요.”
거짓말을 못 하는 순수함이 귀여워서, 현우는 저도 모르게 쿡,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다 된 것 같은데 그만 들여다보고 먹자고요. 진하 씨도 칠십삼만 원 짜리 와인 한 번 마셔봐야죠.”
민망한 표정으로 눈을 흘기던 진하가 별안간 시위에 나선 노조 위원장처럼 주먹을 불끈 말아 쥐고 결연하게 외쳤다.
“칠십삼만 원이 웬 말이냐! 원가를 공개하라.”
오호, 유머를 치는 순발력이 제법 발군이었다.
“원가는 기업 비밀이에요.”
“에이, 인터넷으로 검색 하면 가격 다 뜨는데 그게 무슨 기업 비밀이에요.”
묵직한 접시를 들고 서 있는 게 버거워 보여서 현우는 얼른 진하에게로 팔을 뻗었다.
“접시 이리 줘요. 홀에 불 켜고 있으면 손님 들어올 수 있으니까, 우리 주방 불만 켜놓고 바 테이블에서 먹어요.”
진하가 접시를 건네다가 갑자기 당했다는 표정으로 분개했다.
“어머머, 지금 말 돌리신 거 맞죠? 너무 자연스러워서 하마터면 눈치도 못 채고 넘어갈 뻔했네.”
생각지도 못 한 소리를 발까지 동동 구르며 하는 모습이 우스워서, 현우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음모론 그만 펼치고, 얼른 이리 와서 앉아요. 하루 종일 서 있느라 다리도 아플 텐데.”
현우가 손수 의자를 빼고 진하에게 어서 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시간 날 때마다 앉아 있는데요, 뭐.”
노골적인 시선을 받는 게 쑥스러웠는지, 포크와 접시를 들고 주방을 빠져나오는 진하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패였다. 진하가 포크와 접시를 세팅하는 동안 현우는 와인 병의 코르크 마개를 땄다. 현우가 와인을 따르는 동안 진하가 얼른 와인 잔 받침대에 손가락을 올렸다. 바싹 잘린 손톱이 현우의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연애 해 본 적 있어요?”
현우가 여자에게는 좀처럼 하지 않는 질문을 뜬금없이 던졌다. 뭉뚝한 손톱을 보는 순간 그녀의 연애사가 궁금해졌던 것이다.
“연애요?”
진하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이내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없어요. 사장님은요?”
없구나.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실망이네. 남자들 밖에 없는 주방에서 쭉 일했으면서 연애 하자고 말거는 남자 하나 없었어요?”
실망이란 소리에 기분이 상했는지, 진하가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연애 하자고 말 건다고 무조건 사귀어요? 저 그렇게 쉬운 여자 아니에요.”
예상치 못한 반격에 현우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말 건 남자는 많았나 보네.”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있기는 있었어요.”
“몇 명?”
“어, 지금 제 말을 안 믿으시는 거예요?”
진하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아니, 그냥 궁금해서.”
“세 명이요.”
너무나 정직한 대답에 현우는 그만 웃음이 터졌다. 웃으면 안 되는 타이밍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참을 수가 없었다. 이진하와의 대화가 항상 즐거운 이유가 뭔지 알았다. 솔직함. 밝고 유머러스한 사람은 꽤 많지만 이렇게 어린 아이처럼 자신의 속내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여자는 그녀가 처음이었다.
“진하 씨 그렇게 안 봤는데 굉장히 냉정하네. 가까운 동료가 데이트 신청 하는 걸 칼 같이 거절했단 말이에요?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씩이나!”
“뭐 그렇게 칼 같이 거절할 일은 없었어요. 막무가내로 매달린 것도 아니었고요. 그냥 같이 지내면서 막연하게 느껴지잖아요. 저 사람이 나한테 호감 이상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거요. 그렇게 느껴지는 사람이 휴무 날 영화 보자 그러면 친구랑 약속 있어서 안 된다고 둘러댄 것뿐이에요. 몇 번 그런 식으로 거절하면 그쪽에서 눈치 채고, 알아서 그만 두더라고요.”
가만히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던 현우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런데 왜 내가 영화 보자고 했을 때는 거절 안 했어요?”
농담처럼 가볍게 던진 질문에 진하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순간 미묘한 예감이 현우의 머릿속을 휙 스쳐지나갔지만 모른 척 내버려두었다.
“내가 진하 씨한테 흑심 품은 것처럼은 안 보였나 보구나.”
슬쩍 피해갈 길을 마련해주자 진하가 그제야 안도한 표정으로 덥석 뛰어 들었다.
“네, 맞아요.”
“왜 그렇게 확신을 해요?”
현우는 그녀가 이미 곤란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떠보듯 물었다. 뭘 떠보고 확인하려는 것인지.
“사장님은 우리한테는 강동원 같은 존재잖아요. 생각해 보세요. 영화 한 편 보러 가쟀다고 강동원이 날 좋아한다고 착각할 수 있는 여자가 몇 명이나 되겠어요.”
그 놈의 강동원. 유치한 일이겠지만 그녀의 입에서 강동원이라는 이름이 나올 때마다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 작자의 아류 정도로 취급당하는 것도 불쾌하기는 마찬가지이고. 현우는 와인 잔을 들어 그녀의 눈앞에 디밀었다. 강동원 얘기 그만하고 술이나 마십시다.
“그러고 보니 축하한단 말을 아직 안 했네. 잡지 섭외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진하가 수줍게 웃으며 현우가 들고 있는 잔에 자신의 잔을 챙, 소리가 나게 부딪혔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가만 맛의 여운을 즐기던 진하가 으음, 만족스러운 감탄사를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와, 포도 맛이 굉장히 묵직하고 진하네요. 뭐랄까, 다른 향이 끼어들 여지가 없이 깊은 맛이에요.”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와인을 한 모금 마시더니 뭔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은 와인이란 게 이런 거구나.”
진하가 병을 들고 라벨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알......마.......비........바. 아, 알마비바. 이거 굉장히 유명한 와인이었네요. 한 번도 마셔본 적은 없지만 이름은 알아요.”
진하가 필기체로 흘려 쓴 라벨을 더듬더듬 읽더니, 알마비바가 10년 만에 마주친 동창생이라도 되는 것처럼 반갑게 목소리를 높였다.
“칠레 와인이지만 칠레의 와이너리와 프랑스의 와이너리가 합작해서 만든 거라 프랑스 와인과 비슷한 느낌이 많아요. 그러면서도 가격은 합리적이라 특히 마음에 들어요.”
그가 하는 말을 집중해 듣고 있던 진하가 장난스럽게 비죽거렸다.
“하지만 놀이터에서는 칠십삼만 원이잖아요.”
“고맙죠?”
“고마워요? 제가 왜요?”
황당한 얘기에 진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덕분에 이렇게 마시고 있잖아요. 싸게 팔았으면 벌써 나갔지.”
어처구니없는 논리에 진하가 박수를 치며 웃었다.
“우와, 사장님 얘기는 얼핏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은데 가만 생각해 보면 또 말이 되긴 해요.”
“그걸 바로 고급 유머라고 하는 거예요. 생각을 해야 이해가 되니까.”
또 다시 파안대소. 시원스레 터지는 진하의 웃음소리가 텅 빈 홀 안을 활기차게 메웠다. 유쾌한 여운이 남아 있는 가운데 두 사람은 빈 잔을 채우고 말없이 와인을 음미하였다. 어두운 조명 아래 바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있으니까, 삐꼴로 자르디노가 아니라 낯선 칵테일 바에 와 있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사장님은 아직 말씀 안 해주셨어요.”
뜬금없는 소리에 현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뭘요?”
“연애요. 사장님은 연애 많이 해보셨어요?”
순간 현우의 머릿속에서 확신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나를 좋아한다. 부담스러워 해야 할 텐데, 오히려 마음이 들떴다.
“아뇨.”
단답형 대답이 아쉬웠는지, 진하가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몇 번이요?”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니 대답하기가 애매했다. 진지하게 앞날을 생각하며 만나는 관계를 두고 말한다면 한 번도 없었다가 맞는 말이겠고, 그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데 족하는 관계라면 한 손으로 꼽기에 부족한 정도는 되었다.
“확실한 건, 세 명보단 많을 거예요.”
진지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다가 싱거운 답변에 허무해졌는지, 진하가 치, 하며 눈을 흘겼다. 굳이 연애관에 대해 진지하게 피력하며 이 즐거운 시간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 이야기를 하자면, 어머니와 집안 분위기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
“알았어요. 연애 한 번 못 해본 사람 앞에서 연애 많이 했단 얘기하기 미안할 수 있다고 치고 넘어가줄게요.”
하회와 같은 아량으로 너그럽게 용서하겠다는 분위기에 현우는 그만 실소가 터져 나왔다.
“고맙습니다.”
“대신 이번 질문은 솔직하게 대답하기예요.”
무슨 대단한 질문을 하려고 저리도 진지한가 싶어서, 현우는 가만히 진하의 시선을 응시하였다.
“가장 최근에 한 연애가 언제에요?”
현우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진하를 빤히 쳐다보며 얄밉게 되물었다.
“그게 왜 그렇게 궁금해요?”
순간 당황스러운 빛이 그녀의 얼굴에 스쳐지나갔지만 이내 당당한 목소리로 요구하였다.
“남의 얘기만 쏙 듣는 게 어디 있어요. 제 얘기 다 했으니까 사장님 얘기도 하나는 알아야겠는데요.”
“억지로 대답하라고 몰아세운 적 없는데?”
맥 빠지는 소리에 진하가 믿기 힘든 표정으로 입을 떡 벌렸다.
“사장님 이렇게 나오시기예요?”
“잘 생각해 봐요. 내가 언제 진하 씨더러 말하라고 두 번 물어본 적 있어요?”
“우와, 사장님 진짜 얄밉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열이 오른 것 같은 표정이라 현우는 오히려 웃음이 났다.
“왜 그래요. 우리 서로 하기 싫은 말 억지로 하라고 몰아세울 정도로 양식 없는 사람들 아니잖아요.”
진하가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을 치더니, 도저히 못 참겠는지 울분에 찬 목소리로 있는 힘껏 쏘아 붙였다.
“사장님, 연애할 때마다 차이셨죠? 그래서 말 안 하고 계신 거 맞죠? 도대체 어떤 여자가 사장님을 감당하겠어요?”
생각지도 못 한 악담에 현우는 참지 못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사장님은 그냥 연애 하지 말고 쭉 혼자 지내세요. 멀쩡한 여자들 성질 다 버리겠어요. 내가 정말 어지간해서는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인데, 사장님하고 말 몇 마디 했다가 속에서 부글부글 끓네요, 끓어.”
정말이지 화를 내는 게 이렇게 웃긴 여자는 처음 봤다.
“이럴 수가. 이번에는 고백도 하기 전에 차였네.”
현우가 짐짓 상처 받은 표정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피, 괜히 할 말 없으니까.”
얄밉게 째려보며 와인 잔을 드는 진하의 얼굴에 수줍은 기운이 감돌았다. 이대로 팔을 뻗어 포도빛깔로 물들어 있는 저 입술에 입을 맞추면 어떨까. 현우는 엉큼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입술에서 시선을 거두고 프로슈토로 감은 멜론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미처 맛을 음미하기도 전에 프로슈토를 능숙하게 어루만지던 진하의 손가락이 떠올랐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로군. 현우는 허공에 대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 둘이 슬슬 발동이 걸리는거 같네요 ㅎㅎ
현우도 어머니의 레이더망에서 자유로와져야할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