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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우리 아들 이제 오니?”
현우가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안쪽 거실에서 반가워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감 1시간 전부터 언제 올 거냐고 수차례 독촉 전화를 하시더니 여태 잠도 안 주무시고 기다린 모양이다.
“네, 왔어요.”
거실을 향해 크게 외치고 나서 현우는 허리를 숙여 신발장에 신발부터 집어넣었다. 신발을 정해진 자리에 들여놓는 것은 혼자서는 외출이 불가능한 유아 시절부터 지켜온 규칙이라 이제는 몸에 배인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너 기다리느라 엄만 여태 잠도 못 자고 이게 웬일이니. 말만 한 집안 식구지, 얼굴 보기가 너무 힘들다.”
잰 걸음으로 현관 앞까지 마중을 나와 웃는 얼굴로 푸념을 늘어놓는 어머니는 생각보다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그러게요.”
현우는 어머니를 향해 미안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집에 들어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벼려진 칼날처럼 바싹 날이 선 어머니를 상대해야 한다는 생각에 골머리를 썩였는데 의외의 밝은 분위기에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샤워 해야지.”
“얘기부터 먼저 하세요. 저하고 얘기를 끝내야 어머니가 주무실 수가 있죠. 벌써 주무실 시간이 한참 지났잖아요.”
모범적인 초등학생보다 더 시간표대로 규칙적으로 사는 어머니에게 취침 시간을 한 시간 넘게 넘긴 것은 적지 않은 일탈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여태 사람들 바글바글한 곳에 있다 왔으면서 씻지도 않고 소파에 앉으면 안 되지. 안 돼. 얼른 씻어.”
그 나름으로는 배려한다고 한 말이었지만 그게 오히려 어머니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셈이었다. 당장 씻지 않으면 온 집안에 세균이라도 퍼뜨릴 것처럼 다그치는 소리에 짜증이 왈칵 치밀었지만 현우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하든지 어머니에게는 씨알도 안 먹힐 것이기 때문이다. 외출을 한 뒤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샤워 먼저, 입고 나간 옷은 옷장이 아니라 다용도실에 따로 놔둔 외출옷 전용 옷걸이에 걸어야 하고, 샤워한 뒤에는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잠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며, 침대에서 벗어나는 순간 잠옷은 곧바로 벗어서 침대에 개어둔다는 것은 어머니의 청결 기준에서 보자면 누구나 하고 있고 해야만 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어머니가 갖고 있는 결벽증적인 기질, 그 자체는 사실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해왔던 일이니 그에게는 별로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다. 문제는, 어머니가 자신에게 결벽적인 기질이 있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 하고 있다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기준을 당연하게 강요하고 그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는 것이었다.
“늦게까지 일하느라 힘들었는데, 얼른 씻어야 기분도 개운하지. 응?”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어머니가 현우의 등 뒤로 다가와 어린 아이를 어르듯이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그러나 잠깐 동안의 평화로운 휴전도 어머니가 현우가 입고 있던 코트를 받아드는 순간 깨어져버렸다.
“어머머, 이 기름 냄새! 가게 환기가 제대로 안 되는 거 아니야? 왜 이렇게 옷에 냄새가 심하게 배니? 아우, 정말 큰일이네.”
어머니가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 때문에 당장이라도 세상이 두 쪽이 날 것처럼 유난을 떨었다.
“음식 파는 식당이 다 그렇죠, 뭐.”
무심하게 받아 넘기며 속옷을 챙기는 현우의 등 뒤에서 투덜거리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다 그렇기는. 놀이터가 고기 굽는 식당도 아니고, 레스토랑 어디가 이렇게 냄새가 심하게 밴단 말이니. 아무래도 환기에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점검해보고 안 좋으면 수리해야하지 않겠니?”
“괜찮아요.”
“대충 넘어갈 문제 아니야. 옷에 냄새 배는 거 여자들이 얼마나 질색하는지 아니?”
그렇다고 멀쩡히 잘 운영하고 있는 가게의 영업을 중단하고 수리 공사를 해야 할 정도로 대단한 문제는 더더욱 아니지 않은가. 더군다나 어머니가 정말로 공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말에 수긍하고 심각하게 고려해주길 원하는 것뿐이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우리 가게 오는 손님의 태반이 여자지만, 환기 갖고 말 나온 적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어요.”
염려하지 말라고 한 말을 갖고 어머니가 정색하며 따지고 들었다.
“왜 가게에 여자들만 그렇게 드나들어? 음식이 아니라 딴 생각 품고 오는 거 아니니?”
지금처럼 이렇게 전혀 예상치도 못 한 꼬투리를 잡을 때는 정말이지 뜨거운 열이 목구멍까지 치받쳐서 고성이라도 한 번 지르고 싶었다. 제발 억지 좀 부리지 마시라고!
“원래 레스토랑에는 여자들이 많이 와요. 우리 집 같은 캐주얼한 레스토랑에는 남자들끼리 오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여자랑 같이 오죠.”
현우는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꾹 누르고 담담하게 말을 하려 애를 썼다. 잠자리에 들 시간에 어머니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불필요한 소모전을 벌이고 싶지는 않았다.
“행여나 그런데서 추파 던지는 여자들하고 어울리지 마라. 괜한 구설수 나돈다.”
“제가 언제 여자 문제 일으킨 적 있어요?”
터무니없는 소리에 바싹 언성을 높이자 어머니가 이내 뜨끔한 표정으로 둘러댔다.
“혹시라도 술 한 잔 하고 실수할까 노파심에 한 말이야.”
노파심! 그 놈의 노파심이 너무 많은 게 어머니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그런 걱정은 어머니가 하실 필요도 없어요. 제가 다 알아서 해요.”
“그러게 왜 하필이면 술집을 열었어. 내가 술집은 안 된다고 했잖아. 엄마 친구들이 아들이 하는 레스토랑 한 번 가보고 싶다고 그렇게 말을 해도 데리고 갈 수가 없잖니.”
현우는 눈을 질끈 감고 어머니가 기회만 있으면 줄기차게 부르짖는 레퍼토리가 끝날 때까지 인내하였다. 따지고 들자면 바로 잡을 게 한, 두 가지가 아닌 억지지만, 순순히 인정하고 꼬리를 내릴 어머니가 아니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음식점에서 술을 판매한다는 것이 그다지 특별하고 대단하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어머니가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다만 비난의 구실이 필요한 것뿐이었다. 어머니는 그저 당신의 아들이 고작 음식점이나 하고 있는 것이 성에 차지 않은 것뿐이다.
“씻고 나올게요.”
이럴 때는 잠자코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었다.
“응, 그래. 얼른 씻어. 엄만 그 동안 침대 시트나 새로 갈아놔야겠다.”
“침대시트 그저께 새로 갈았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 침대시트를 삼일 만에 갈겠다고 하기에 혹시 착각하고 있나 싶어서 한 얘기였는데 그걸 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어머니가 날이 선 목소리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걸 누가 모르니. 원래는 침대 시트도 매일 갈아야 돼.”
“아주머니가 갈았는데 혹시 모르고 계시는 건가 싶어서, 알려드린 것뿐이에요.”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말라는 말을 그렇게나 쉽게 하면서 막상 본인이 듣는 것은 질색을 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에, 아무리 어머니지만 가끔씩은 진심으로 황당해졌다.
“엄마가 언제 네 침대 시트 가는 걸 아주머니한테 맡긴 적 있어? 속옷하고 시트는 다 엄마가 직접 하잖아.”
오해했다는 한 마디면 끝날 일을 갖고 그걸 굳이 자신의 실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도리어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아주 전형적인 어머니의 말버릇이었다. 그리고 그런 호전적인 태도가 상대방의 분노를 사는 행동이라는 것을 본인만 모르고 있다.
“씻을게요.”
침대 시트를 끄집어내는 어머니를 뒤로 남겨둔 채 현우는 지친 표정으로 욕실로 들어갔다. 어머니와의 대화가 대부분 짜증으로 귀결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결론은 소통불가였다. 상대 쪽에서 뭔가 의견을 내면 듣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이 사람 사는 매너일 텐데 어머니한테는 그런 게 없었다. 상대의 얘기는 들은 척도 안 하고 자기 의견만 일방적으로 내세우고 있다가 저쪽에서 정색을 하면서 얘기를 해야 듣는 척이라도 하니, 어머니한테 뭔가 의견을 개진하려면 눈에 힘을 주고 언성을 높여야 했다. 그러니 모든 대화가 싸움처럼 되었고, 그에 따른 감정 소모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샤워를 마친 현우가 거실로 나갔을 때 어머니는 소파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어머니, 들어가서 주무세요.”
현우가 부드럽게 어깨를 흔들자 어머니가 화들짝 눈을 뜨며 멋쩍게 웃었다.
“무슨 소리야. 얘기하고 자야지.”
“얘기는 아침에 하면 되죠.”
“아침엔 운동 가야지. 나이가 드니까 가만 앉아 있음 졸음이 쏟아지고, 침대에 누우면 말똥해진다. 희한하지? 이 시간이면 원래 자다가도 잘 깨던 시간이야. 괜찮아. 잠 다 깼어.”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서 말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어머니는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아름답고 우아하였다.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 굴곡 없이 갸름한 얼굴 선, 섬세한 이목구비. 타고난 미모에 재력까지 더한 어머니는 그러나 단 한 순간도 행복해 보인 적이 없었다. 항상 바늘 끝처럼 날카롭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세상을 바라보니 모든 게 걱정거리이고, 불만이었다. 최상의 것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최악의 경우를 의심하고 닦달하며 자기 자신과 주변을 괴롭게 만드는 어머니를 보면 누구에게나 인생은 고행이라는 불교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좀 앉아봐.”
어머니가 진지한 표정을 대화를 청하는 순간 현우는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럴 때 어머니의 얘기가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될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문제 제기를 할 것이고, 뭔가 행동하기를 요구할 것이고, 그 요구는 현우에게서 긍정적인 답변이 나올 때까지 집요하게 이어질 것이었다.
“네, 말씀하세요.”
현우는 소파에 등받이에 기대 앉아 습관처럼 왼 다리를 오른 다리 위로 꼬았다. 그러자 당장에 어머니의 날선 지적이 날아왔다.
“똑바로 앉아. 자세가 틀어지면 인생이 틀어져.”
현우는 한숨을 짧게 내쉬며 꼬았던 다리를 내려놓고 허리를 곧게 폈다. 현우가 자세를 고치는 것을 지켜보고 나서야 어머니가 얘기를 시작하였다. 벌써부터 앉은 자리가 불편하였다.
“저녁 때 잠깐 시간 좀 내봐. 내일 7시 어때? 아니면 조금 당기거나 늦춰도 괜찮고.”
순간 홍콩 여행에서 돌아온 첫날, 어머니가 대뜸 만나는 여자가 있냐고 물었던 게 떠올랐다. 친구들과 같이 간 여행에서 대화의 주된 화제가 자식들의 결혼 문제였고, 그러면서 현우의 여자관계에 대해 호기심이 쏠린 것이다.
“바빠요.”
오지랖 넓은 친구 중 누군가 중매를 자청했을지도 모른다는 그의 예감은 정확히 적중하였다.
“서영이 아줌마 조카가 올해 스물다섯, 치대 졸업반인데, 참하고 인물 좋다고 소문이 자자해. 근데 그 애가 널 어떻게 보고 알았는지, 아줌마한테 그렇게 네 얘길 묻는단다. 서영이가 둘이 한 번 만나게 해주면 어떻겠냐고 묻는 걸, 그 자리에서 거절하기 뭐해서, 알았다고 대답을 해놨어. 그 자리에서 딱 잘라 거절했다가는 대단치도 못 한 아들 두고 거만 떤단 얘기 나올 것 같아서.”
맙소사. 전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어머니와 삼십년 지기의 조카와 선을 보라고? 잘 되도 골치, 잘 안 되면 더 골치다.
“연말이라 단체 손님 예약이 매일이에요.”
“너 없으면 장사 못 하니? 홀 매니저한테 잠깐 맡겨두고 나오면 되잖아. 무슨 그런 말도 궁색한 핑계를 대고 있어.”
“핑계라니요. 지금 연말 대목이라 비상이에요. 직원들은 부모님 제사도 못 챙기고 근무하고 있는데 사장이 개인적인 일로 자릴 비우면 모양새가 뭐가 되겠어요.”
현우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단호하게 말을 하자, 어머니가 마지못해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럼 휴일 날 만나.”
“이번 휴일에 크리스마스장식 해야 돼요. 주변 가게 죄다 장식 들어갔는데 우리만 늦었어요.”
“정말 핑계가 좋구나.”
못마땅한 표정으로 비아냥거리던 어머니가 대뜸 생각지도 못 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허미영이, 그 여자네 집은 지금도 비워놓고 있니?”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혹시 뭔가를 알고 물어보신 걸까. 아니, 그럴 리는 없다. 어머니는 삐꼴로 자르디노의 존재를 알고도 침묵하고 있을 분이 아니다.
“네.”
어떻게 둘러대야 할지 몰라, 얼떨결에 대답을 하고 말았다. 여기서 진실을 얘기해준들 그대로 믿을 리 만무하다.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그럴듯한 상황을 만들어낸 다음 해결 방안을 고심하느라 하루 온종일 신경을 곤두세울 것이다. 섣불리 입을 놀렸다가는 벌집을 들쑤시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팔려고 내놓지는 않았고?”
현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일부러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뭐, 내놓기는 했겠죠. 그렇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나가겠어요?”
조심, 또 조심. 한 순간의 말실수를 기막히게 포착하여,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세우는 것이야말로 어머니의 주특기였다.
“주변 부동산에 한 번 알아봐. 그 집 내놨는지.”
“부동산에 남의 집 내놓은 걸 어떻게 물어봐요.”
불안감 때문에 현우의 목소리에 바싹 날이 섰다.
“왜 못 물어. 물건에 관심 있는 척 하면서 자연스럽게 물으면 되지.”
“글쎄,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그걸 알아내야 하는 거냐고요. 아무 상관도 없는 남의 집을요.”
“돈도 필요할 텐데, 집을 팔지도 않고 몇 달씩이나 비워놓고 있는 게 영 마음에 걸려서 그래. 아무래도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것 같다.”
순간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휙 날아가 버렸다. 그냥 신경 끄고 살면 될 일을 가지고 왜 이렇게 집요하게 의심을 하는 건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상황과는 별개로 어머니의 징글징글한 집착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 사람들한테 신경 끄세요. 우리한테 연락 한 번 한 일 없잖아요. 도대체 왜 생기지도 않은 일을 미리 지레짐작하고 걱정을 달고 사세요. 제발 좀 그러지 마세요. 그러다 병 생겨요. 편하게 좀 사시라고요.”
“내가 무슨 신경을 썼다고 그렇게 썼다고 그래? 그냥 느낌이 안 좋으니까 알아두고는 있자는 말 아니야. 왜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 갖고 언성을 높이고 그래? 부동산에 묻기 곤란하면 됐어. 관둬. 몰라도 돼.”
어쨌거나 관두라는 말이 나왔으니, 됐다. 현우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더 이상 관심 갖지 말기를.
현우 어머니 조만간 대형사고 칠 듯 하네요...
어머니 마음의 병이 좀 심각해보여요 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