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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멍하니 가게 앞을 바라보며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손님을 기다리는 처지가 진하는 도무지 생소하게만 느껴졌다. 일자르디노도, 이탈리아 파르마에서 유학 중에 실습 나갔던 레스토랑도 진하가 경험한 주방은 모두 필사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뜨거운 전쟁터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대책 없이 한가한 주방에서 오도카니 서 있자니 아무한테나 애정을 구걸하는 애정결핍증 환자처럼 절박한 기분이 들었다. 차라리 오가는 사람이라도 없으면 기대라도 없겠다. 제발, 좀 들어오세요, 절박하게 바라보다가 그냥 지나쳐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허무한 절망감이 가슴 정중앙에 내려앉았다. 당장에라도 들어올 것처럼 유리창 너머로 호기심 어린 시선을 주다가 느닷없이 방향을 홱 돌려 놀이터로 가버리는 사람들이 주는 그 상실감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첫날만 해도 서빙 직원 없이 혼자 일하다가 일손이 모자라면 어쩌나, 하던 걱정이 삼일이 지난 지금은 하루 종일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을까 하는 공포감에 머리털이 쭈뼛 섰다.
1시. 손님들로 바글바글 북적거리는 놀이터를 심난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드디어 삐꼴로 자르디노의 문이 열렸다. 이십대 초반의 여자 둘. 오늘의 첫손님이다.
“어서 오세요.”
진하는 콩닥콩닥 뛰는 가슴으로 주방에서 나와 손님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위로 메뉴판을 올려두었다.
“뭐 먹을래?”
손님들이 편하게 메뉴를 고를 수 있도록 진하는 살그머니 주방으로 들어왔다. 물병과 물 잔을 준비하면서도 홀에 있는 손님들을 향해 귀를 쫑긋 세웠다.
“우와, 대박!”
“장난 아니다. 뭘 믿고 이렇게 비싸?”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 동안 많지 않은 손님을 받으면서 이렇게 직접적으로 가격이 비싸다는 말을 들은 건 처음이다. 진하는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지로 누르며 평상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바가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이윤을 많이 남기지 않았다. 질 좋은 재료를 사용했고 그에 합당한 가격을 붙였을 뿐이다. 그러니 공연히 움츠려들 이유는 없다.
진하는 입매에 어색한 미소를 그린 채 아무 말도 듣지 못 한 척 테이블 위에 물 잔을 올려두었다.
“사장님이세요?”
둘 중 짧은 커트 머리를 한 여자가 진하를 올려다보며 당돌하게 물었다.
“네.”
“여기 오픈한지 얼마 안 됐죠?”
척 보기에도 그렇게 어설픈 티가 나는가 싶어, 진하는 겸연쩍게 웃으며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네, 정식으로 오픈 한 건 삼 일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직은 좀 서툴 거예요. 다음 주부터는 서빙 직원이 제대로 나오니까 양해 부탁드릴게요.”
진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커트머리 여자가 가방에서 렌즈가 툭 튀어나온, DSLR 카메라를 결정적인 증거처럼 디밀었다.
“제가 실은 인터넷에서 나름 유명한 맛집 블로거예요. 세미짱의 맛 나는 하루. 아시죠?”
당연히 알고 있겠지,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여자에게 모른다는 말을 하기가 미안해 괜스레 어색한 미소가 그려졌다.
“아뇨. 잘........”
“인터넷 안 하세요?”
인터넷을 하는 사람이라면 세미짱의 맛 나는 하루라는 블로그를 당연히 알고 있다는 듯 당당한 태도에 진하는 내심 어이가 없었다.
“하기는 하는데, 글쎄요, 일일이 블로거 명을 체크하고 외우는 게 아니라서.”
“레스토랑 하시는 분이 맛집 블로그 제대로 체크 안 하심 안 되죠.”
“아, 그런가요? 앞으로는 체크해 봐야겠네요.”
세 살 먹은 어린 아이 가르치듯 하는 손님 앞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몰라 진하는 그저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 애썼다.
“제가 블로그에 올려서 홍보해 드릴 테니까, 피자하고 스파게티 시식시켜 주세요.”
당돌한 요구에 황당해진 진하가 멀뚱한 시선으로 커트머리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이런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그러니까 지금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좋은 평가를 내려줄 테니 그 대신 공짜 음식을 대접하라는 말이 아닌가. 차라리 맛을 보고 싶은데 가격이 비싸 부담이 된다며 부탁을 하였다면 진하 쪽에서 오히려 음식을 권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식의 고압적인 태도에는 괜한 오기가 발동했다.
“죄송한데, 그런 식의 홍보는 별로 내키지가 않네요.”
“왜요. 요즘엔 그렇게 많이 해요.”
커트머리 여자 맞은편에 앉아서 지루한 표정으로 화장을 고치고 있던 여자가 답답하다는 듯 툭 끼어들었다. 진하는 함부로 남을 가르치려 드는 이 무례한 여자들을 내 가게에 찾아온 손님으로 대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요즘엔 많이들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 시식 못 주시겠다는 거예요?”
매우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시비를 걸듯이 날을 세우며 말을 내뱉는 적반하장에 순간 뜨거운 불길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죄송하지만, 시식은 마트 가서 하세요.”
“뭐라고? 지금 말 다 했어?”
커트머리 여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더니 진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이 미친년이 지금 누굴 거지 취급해?”
반말에 욕지거리라면 주방 일을 배우면서 신물이 날 정도로 들어왔다. 이 정도에 눈 하나 꿈쩍 한다면 이진하가 아니다.
“전 거지 취급한 적이 없는데 그렇게 느끼셨다면 스스로 찔리신 거겠죠.”
“야, 이 씨발. 됐다. 손님 이따위로 취급하고 얼마나 잘 나가는지 본다, 내가. 음식 값은 열라 바가지 씌워놓고 손님 거지 취급하니까 좋냐?”
“야, 됐어. 그러게 놀이터나 가자니까 뭐 하러 이런 구린 데 들어와서 이런 재수 없는 꼴을 당하냐. 그만 가자. 완전 재수 똥이다.”
아이라인을 판다처럼 새까맣게 그린 여자가 저 혼자 흥분하며 입술을 바르르 떠는 커트머리 여자의 손목을 붙잡아 끌었다. 여자들이 나가자마자 진하는 테이블에 올려둔 물 컵을 들고 단숨에 마셔버렸다.
“와, 진짜 어이없네. 어떻게 레스토랑에 들어와서 저렇게 당당하게 음식을 내놓으라고 할 수가 있지? 도대체 속이 어떻게 생겨먹으면 저런 일이 가능해?”
혼자서 씩씩 거리다가 그만 허무해져, 빈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첫손님하고 거하게 한 판 떴으니 오늘 운수 한 번 사납게 생겼다.
“언니야, 호가든 생맥주 있어?”
9시가 거의 다 된 시각. 마감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문을 닫아야 하나, 텅 빈 홀을 보며 고민하고 있을 때 양복 입은 남자 세 명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걸음걸이가 좀 어색하다 싶더니 남자들이 입을 여는 순간 가게 안에 술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벌써 거하게 한 잔 한 다음 삐꼴로 자르디노를 2차 장소로 정하고 들어온 모양이다.
“저희 가게는 맥주는 안 팔아요. 죄송합니다.”
“안 팔면 슈퍼에서 사오면 되지. 여기 조용하고 좋네. 야, 여기서 한 잔 더 하자.”
그리고는 술기운을 앞세우며 막무가내로 쳐들어와 테이블에 털썩 주저앉았다. 진하가 기겁한 표정으로 홀로 뛰어나와 남자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앞에 섰다.
“저희 가게는 밥집이에요.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요 앞에 맥주 파는 가게 많으니까 그리로 가세요.”
눈 가가 벌게진 아저씨 한 명이 진하의 손을 덥석 붙잡으며 능글맞게 웃었다.
“이쁜이 언니야, 여기 잠깐 앉아 봐.”
하루에 두 탕 쌈질을 할 수는 없어서 진하는 조용히 손을 빼내었다.
“여기 술집 아니고, 레스토랑이에요. 술은 다른 데 가서 드세요.”
“허어, 젊은 아가씨가 참 융통성이 없네.”
이번에는 또 다른 아저씨 한 명이 혀를 쯧 차며 십만 원 권 수표를 진하의 손에 억지로 쥐어주었다.
“이걸로 맥주랑 소주 적당히 섞어서 사 와. 오늘 우리가 여기 매상 책임져 줄게.”
눈이 흐리멍덩하게 풀린 남자가 세 명이나 있으니 혼자서는 도무지 상대가 안 되었다. 계속 버티다가 테이블을 뒤엎으며 소란이라도 피우는 건 아닐까,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경찰에 연락을 해야 하는 걸까. 그렇지만 이만한 일로 경찰까지 부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진하는 술을 사러 가는 척하며 일단 가게 밖으로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일본식 라면 가게 이찌로를 들여다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손님 없이 한산한 분위기다.
“저, 사장님. 지금 저희 가게에 술 취한 남자 분 세 분이 들어와서 맥주 사오라고 난리가 났거든요. 죄송한데, 사장님이 가게 안으로 들어와서 좀 데리고 가주시겠어요?”
“아이고, 저런. 거긴 술 안 팔잖아.”
“와인은 팔긴 하는데, 아무튼 빨리 좀 가주세요.”
“그래, 얼른 가야겠다.”
멍하니 텔레비전을 쳐다보고 있던 아저씨가 반색을 하며 일어나 진하를 따라 나섰다. 한가하던 차에 잘 됐다는 표정이라 진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사장님들 여기서 이렇게 계시면 어떡합니까. 여기는 레스토랑이라 술을 팔면 안 되게 돼 있어요. 슈퍼에서 사다 마시다가 재수 없게 경찰 검문이라도 뜨면 큰일 나니까 얼른 일어나세요. 바로 옆에 저희 가게로 모시겠습니다.”
적절히 거짓말을 보태가며, 술주정뱅이들을 설득시키는 기술에 진하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아이고, 예쁜 언니랑 같이 술이나 한 잔 하려고 했더니만.”
“사장님들, 얼른 가세요. 뜨끈한 오뎅 국물 서비스 드리겠습니다.”
아저씨가 주정뱅이 손님들을 데리고 나가자 그나마 남아 있던 기운마저 쏙 빠져버렸다. 주방에 틀어박혀 요리만 하고 있을 때는 홀에서 이런 아수라장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상상도 하지 못 하였다. 돈 버는 일 중에 쉬운 일이란 없는 모양이다.
마감 시간을 30분이나 남겨놓고 진하는 그만 가게 문을 닫았다. 도저히 더 이상은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릴 기운이 없었다. 가게 문을 걸어 잠그고 2층 집으로 올라와 음식 냄새로 절은 옷을 벗고 샤워를 하였다.
하루 종일 여섯 테이블. 그 중에 한 테이블은 시식을 요구하다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고 마지막 한 테이블은 방금 전 술주정뱅이 손님이니 실질적인 손님은 네 테이블인 셈이다. 이렇게까지 손님이 안 올 줄이야. 정말이지 한숨이 나왔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인테리어? 음식 가격이 너무 비싼가? 그렇지만 음식 가격은 들어오기 전에는 모르는 것이니 그것 때문에 손님이 안 들어온다고 볼 수는 없다.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을 머릿속에 가득 담은 채 진하는 머리를 대강 말리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검색창에 삐꼴로 자르디노를 쳐보았다. 혹시, 하는 기대감으로. 맙소사, 어제까지는 단 한 개도 없던 삐꼴로 자르디노에 관한 관련 글이 떡하니 떴다.
와, 드디어!
미친 듯이 뛰는 가슴을 억누른 채 진하는 글을 클릭하였다.
-무개념, 삐꼴로 자르디노. 절대 가지 마세요.
설렘은 곧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아니, 도대체 왜.
글을 읽다보니 맙소사, 아까 시식을 요구하였던 그 여자다. 혹시나 하여 블로그의 닉네임을 확인하였다. 세미짱의 맛 나는 하루. 그 여자가 맞다. 스스로 유명 블로거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더니,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은 글에 스무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오늘 낮에 친구랑 같이 만나 삐꼴로 자르디노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갔어요. 놀이터 바로 맞은편에 새로 생긴 조그만 집이에요.
장황하게 시작된 글의 취지는 결국 자신들에게 시식을 거부한 삐꼴로 자르디노를 보란 듯이 비방하는 것으로 합당한 응징을 가하겠다는 것이었다.
-오픈한 지 3일 밖에 안 됐다고 하시면서 아직 준비 중이라 어수선할 텐데 잘 부탁드린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 쪽에서 먼저 피자를 조금만 시식해 볼 수 없겠냐고 조심스럽게 여쭈어 보았어요. 안 된다고 정중하게 말하면 될 것을 갑자기 분위기 돌변!!!
본인이 한 말은 적절히 각색한 채 “시식은 마트나 가서 하세요.” 라고 했던 말만 떡하니 강조하고 있으니, 사정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삐꼴로 자르디노의 사장이 말도 안 되는 무개념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미친. 요즘 세상에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주인이 다 있어요? 절대 가지 말아야 되겠네. 삐꼴로 자르디노 기억해 두겠어.
-돌았네. 어떻게 세미님한테 그런 대접을! 세미님이란 걸 알았으면 그렇게는 안 했을 텐데 쯧쯧.
-삐꼴로 자르디노? 일자르디노 짝퉁이네요. 짝퉁이 다 그렇죠.
-망해봐야 내가 그때 잘못 했구나 반성 할 겁니다.
-열 받을 것도 없삼. 그런 가게는 반년을 못 넘기고 망하게 돼있으니.
무차별로 가해지는 인신공격에 진하는 머리가 뜨끈해졌다.
-참 기가 막히네요. 제가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나요. 본인 스스로 유명 블로거 누구라고 밝히고는 음식 공짜로 줘라, 그럼 좋은 평을 써서 올려주겠다 했던 건 기억 안 나시나 봅니다.
여기까지 다다다 쓰고는 그냥 지워버렸다. 성질대로 했다가 나중에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더 이상 지켜보고 있다가는 참기가 힘들 것 같아 컴퓨터를 꺼버리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렇지만 속이 까맣게 타는데 잠이 올 리가 없다. 진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멍하니 창밖을 노려보았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놀이터가 유혹하듯 시야에 들어왔다. 진하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누구든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다. 어떤 말이든 좋으니, 제대로 된 진실을 아는 사람의 말을 듣고 싶다.
제가 막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이 나오려고 하네요.
무개념 빈대 블로거가 있기는 있다고 하더라구요.
진하양이 이런일로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