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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모님이 보내주신 구호물자를 어떻게 먹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역시 게는 찜! 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라기보다는...

손질법 때문에 이모님께 전화 걸었더니 이모님 왈.

이모님 : 일단 솔로 빡빡 닦은 다음에 (5분 정도 후) 다 닦았냐?

나 : 예.

이모님 : 통째로 넣고 끓이거라.

나 : 예?

이모님 : 라는 건 농담이고. 뚜껑을 열고. 수저로 알과 내장을 슬슬 긁어서 뚜껑에 가지런히 올린 다음에 집게를 뜯어내고 게를 네토막 내거라.

나 : 예.

... 그렇지만 게는 산산조각 나버렸습니다... OTL (예. 뭐 제가 하는 일이 이렇죠... 이렇구 말구요.... ㅠㅠ)

하는 수 없이 게는 찌기로 결정했습니다.;;; 얼려놓으면 분명 누군가가 뜯어 먹겠죠. (찜기에 데워서 두고두고 먹을 수 있을지도.)

동생이 점심을 먹으러 집에 왔기에, 동생에게 모든 것을 고백했습니다. 그랬더니 동생 왈.

알바생 김군 : 노력 많이 했네 뭐... 그런데 누님, 그 산산조각난 게는?

나 : 음. 대충 껍질을 발라낸 다음에, 조개젓 국물하고 친구에게 얻어온 칠리 소스와 새우젓을 넣어 고춧가루와 청양고추를 첨가한 다음에 동남아 식으로 볶아 봤어.

알바생 김군 : 음. 엄마가 만들어 준 요구르트 이후의 괴식이겠군.

나 : ... 인정하긴 싫지만 그래. 하지만 도무지 국물 음식으로 넣을 수가 있어야지. 드넓은 국물 바다 안을 헤엄치고 있을 조그만 게껍질을 실수로 국물과 함께 입 안에 넣었다가 혀를 베이는 일을 당하고 싶진 않았어.

알바생 김군 : 흐음. 이리 줘.

... 어디서도 맛 볼 수 없는 기기 묘묘한 맛이 분명했거늘, 동생은 아무 말 않고 먹어주었습니다. 게다가 배를 두드리며 이런 말까지.

알바생 김군 : 소스가 독특한데. 나름대로 맛있다구. 술안주로 해도 좋겠다.

혹시나 약하디 약한 장에 부담이 되어, 배탈이 나지 않았을까 두려워 했습니다만 퇴근해서 쿠션을 베고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있는 동생의 모습은 한가하고 잔병치레 하나 없을 것 같은 뷁수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때문에 한시름 놨죠.

그리고 메인 이벤트. 대하 소금구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수상스럽게 반기는 아버님의 모습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아차. 비밀장소가 들켜버렸구나!

... 휴대용 가스렌지는 물론, 무려 집에 없었던 초고추장과 와사비까지 준비하고 기다리고 계셨던 아버지. 물론 목적은 제가 아니라 대하였겠죠...

충실히 얼어있던 대하를 따뜻한 물에 비닐째 담가 살짝 녹이고, 그 대하를 굵은 소금을 뿌린 쿠킹호일을 얹은 프라이팬에 얹어서 뚜껑을 덮고 영웅시대를 보고 있자니.

아버님의 입가에 머금어지는 므흣한 미소에 저는 깜짝 놀라버리고 말았죠.

... 어딘가 음흉하면서 천상을 꿈꾸는 그 미소라니. (그 근엄하신 아버님이 언제 저런 표정을 지으신 적이 있었던가?)

정말 맛있게 잘 구워먹었습니다. 스무 마리나 되었지만 저희집 대식가들의 손에 단숨에 없어졌군요. 그리고 전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나 : 외숙모님.

외숙모님 : 어. 그래.

나 : 대하 스무마리만 더 보내주세요. 다들 걸신들렸다구요.

외숙모님 : 스무마리 가지고 되겠니?

나 : 대충 어림짐작해서 쉰마리는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어머님도 맡고 계시니 더 이상 요구할 순 없지요.

외숙모님 : 토요일까지 서른마리 보내주마.

... 구호 물자 보급 요청 완료.





노리코

2004.10.27 09:30:03

부러워요~ 대하.....ㅡㅜ   [01][01][01]

릴리

2004.10.27 10:02:10

아하하 친척분들까지 다들 재밌으세요. 통째로 넣고 끓이거라..라니..^^
맛있게 드셨어요, 새우? 츄릅~   [01][01][01]

여니

2004.10.28 00:39:29

며칠 전에 먹었던 새우튀김이 갑자기 떠오르는 군요.
정말 맛있었는데....   [06][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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