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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가족은 손재주가 죽어도 없습니다. 이 없는 손재주는 이미 고인이 되신 저희 할머님 때 부터 연유한 것으로 (그 이전에는 아마 할머님의 아버님 때 부터 연유된 듯 합니다만, 확실한 확인은 불가능하군요) 불행히도 아버님이 그것을 유전받으셨고, 그 아버님의 자식들인 저와 제 동생들도 손재주가 무척이나 없습니다. (게다가 저 같은 경우에는 중증의 주의력 부족.)
제가 요즘 어머님이 안 계신 집안을 지키면서 골머리를 앓는 이유도 바로 이거거든요... (못 박기는 고사하고, 싱크대에 컵 담가놓다가 컵 깨는 우리집 남자들에게 제가 뭘 더 바라겠습니까?)
요즘 너무 김군 이야기만 쓴 것 같기에. (그리고 그 문제에 관해서 김군이 너무 예민해져서.) 다른 이야기를 써 볼까 하고 생각해 보았는데. 갑자기 이 이야기를 쓰는 것이 형평성을 위해서도 괜찮겠다 싶어서... (결코 상품에 눈이 어두워서가 아닙니다!!!)
1. 아버지의 경우
할머님이 돌아가신 이후, 이 손재주치의 관해서는 저희 집안 절정에 오르신 아버님이십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작년 여름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왔을 적에 못을 못 박으셔서 근처에 사는 고모부님께서 (건설 현장에서의 잔뼈가 굵으신) 직접 오셔서 못과 나사를 하나하나 박아주셨을 정도입니다. 고모부님 왈.
고모부님 : 형님 (아버님을 지칭) 께 맡기면 분명 한 달은 걸릴 거고, 집 전체에 구멍이 뚫릴 겁니다.
그런 아버님께도 손재주가 나름대로 경지에 오른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과일깎기' (존경해요 아버님. 무려 '토끼 장식' 이 가능하시다뇨!!)
사실. 아버님이 이렇게 되신 일면에는 저와 관련된 비리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꽤 좋은 기력으로 살아계셨던 저희 할머님. 이 분도 과히 손재주가 좋지 못하셨던지라 어머님이 시집오시기 전까지 저희집은 '배추깍두기 김치' 라는 어딘지 모르는 정체 불명의 김치를 먹었다고 합니다. (순전히 할머님이 무 채를 썰 만큼의 손재주가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커가면서 손녀조차도 배추깍두기 김치를 담글 기미가 보이자, 과감히 일찍 집안일에 투신 시키셨는데, 본인이 잘 하지 못하시니 교관은 당연히 어머님이 되실 밖에요.
어머님은 저에게 칼질의 기본을 가르치기 위해서 과일깎기부터 시작하셨는데, 문제는 제가 깎으면서 사과를 깎지 않고 사과를 거의 깍둑썰기 하고 있었다는 점일까요...;;;; (예. 이 정돕니다...;;;;;)
보다 못하신 아버님.
아버님 : 과일 같은 거 못 깎으면 어때? 저 녀석 원래 통째 먹는 거 좋아하잖아.
어머님 : 그래도 깎아서 놓는 것이 우아해 보인다고요. 지금부터 배워둬야 나중에 나이 들어서 자식이 깎아주는 사과 한 번 먹어보죠.
아버님 : 아니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저렇게 용을 쓰고 있는 것이 불쌍하지도 않아? 인정할 건 인정하자고.
어머님 : 하다보면 언젠가 되겠죠. (그게. 아직도 그게 안되고 있는데...;;;;)
아버님 : 에잇. 답답해서 원. 차라리 내가 한다. 내가 해!
아버님은 각고의 노력 끝에, 약 서너달 만에 드디어 사과 에서 껍질만을 분리하는데 성공하셨고, 몇 년의 노력 끝에 토끼 장식을 하실 정도로 기술이 느셨습니다. 처음 토끼 장식을 하셨을 때의 부녀의 대화 한 토막.
나 : 야아 아빠! 토끼 모양이 되네요?
아버님 : (어쩐지 의기양양) 음.
나 : 아빠 멋져! (이 때 저의 눈동자는 아마 존경으로 빛나고 있었을 겁니다...;;;;)
2. 저의 경우
저 같은 경우, 알만한 주변인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c 모양은 바람개비 끝 부분을 제대로 못 모아 붙일 정도로 손재주가 없다!'
... 그리고 (과장이 좀 붙긴 했지만) 그 말은 불행히도 사실입니다... OTL
다른 때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가정 시간에도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여서 시침질... 보다도 더 심하게 우그럭거린 다음에 집에 가서 어머님의 도움으로 바느질 과제를 완성) 고등학교에 들어오니 제가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과목이 있더군요.
그건 교련이었습니다...
게다가 까다롭기로 교내에 소문 자자한 교련선생님은 붕대나 삼각건을 감을 때 마다 친구를 미이라로 만들거나 터번 쓴 이슬람 처녀로 만들어 놓거나 하는 일을 제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여기신 나머지, 열혈로 돌변하셔서는 방과 후에 절 남겨서 나머지 공부를 시키실 정도였죠.
그렇지만. 무려 두 달 여의 나머지 공부에도 불구하고 저는 전혀 성과가 없었습니다 (실험용 환자로 나서신 교련 선생님만 하루에도 몇 번씩 미이라가 되셨을 뿐...) 결국 두 손을 드신 교련 선생님은 저에게만 특별히.
실기 시험 대신 필기 쪽지 시험으로 대신하게 하셔서 중간 고사 기말 고사때 마다 남들 실기시험 볼 때 저는 쪽지를 제출해야 했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지금도 붕대와 삼각건은 보기 싫어요.)
지금도 사정을 모르는 사람에게 제 손재주에 대해서 설명할 일이 있을 때면 이 예화를 듭니다만 그 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더군요.
바로 아웃뷁에서 제 손으로 아웃뷁 빵을 썰어주는 겁니다...
제 주변 인물들은 절대 제 손으로 못 자르게 하고 있습니다 (빵가루도 많이 튈 뿐더러, 칼 끝이 상대편을 노릴 듯 강렬하게 앞으로 나서거든요...;;;; - 왜 그런지는 저도 잘;;;)
3. 알바생 김군의 경우
김군의 경우, 그나마 다른 집 핏줄인 저희 어머님의 피가 탄 탓인지 다른 사람보다는 낫습니다 (소싯적 직접 글라이더를 만들 수 있었으니) 그러나 사실은 저희집은 어머님도 손재주가 별로 없으십니다. (그나마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상태일 뿐.) 때문에 집에서의 손재주는 중상정도. 나가서는 절대 가방을 맡겨서는 안 될 사람으로 찍혀있다고 하는군요.
저는 다음 사건 이후 절대로 김군에게 설거지를 시키지 않습니다.
어머님과 할머님의 끈질긴 노력과 훈련과정을 거쳐서 설거지와 밥푸기 정도는 그릇을 깨지 않고도 할 수 있게 된 접니다만, 실은 설거지 하기 상당히 싫어합니다 (밥푸는 것도 싫어해요. 밥솥을 여는 순간 나는 막 한 밥의 역한 냄새란...;;;;) 해서 집에 아버님과 어머님이 안 계실 때 밥을 먹게 되면 보통은 동생이 어떻게 하던 그냥 놔두었었습니다만.
아직 동생과 제가 파릇파릇한 청소년일 시절. 동생과 저는 남은 제사음식을 먹고 반쯤 뻗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집안이 뒤집어 질 정도로 크게 뭔가 박살나는 소리가 나더니, 동생이 허옇게 질린 얼굴로 절 쳐다보더군요.
동생 : 누님. 이리 좀 와 봐.
그리고 전 그 날 지옥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설거지 하다 말고 한 쪽에 쌓여있는 제사용 사기 식기들을 다 꺨 수 있는 겁니까앗!!! (그것도 싱크대에서 좀 떨어진 조리대에 있는.)
접시랑 밥그릇, 국그릇까지 해서 20여개 가까이 되었었다구요. 게다가 그 옆에는 제사 끝나고 모아놓은 과일들도 있었고 거기 사기 조각들이 붙어서...
결국 저와 동생이 깨진 그릇을 제외하고 원점과 똑같이 부엌을 만드는데는 하루 종일 걸렸습니다. 그리고 사기 조각이 박힌 과일은 최대한 조각을 제거한 뒤, 깨끗이 씻어서 믹서에 갈아마셨군요... (그만큼 갈았으니, 아마 남아있었던 조각들도 깨끗이 갈려서 뱃속에서 소화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훗 저도 사과 깎으라고하면
이게 더 맛있어 하고 통째로 집어먹는 ;;; 편입죠. [01][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