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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뭐야?”
포위하듯 덮쳐 오던 남자가 두세 발짝 앞에 우뚝 섰다. 은지가 열쇠 카드를 손으로 꼭 쥐자 남자는 은지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차갑게 빛나는 눈으로 뜯어보았다.
“시윤이 녀석의 취향과 다르군. 그 애가 열쇠를 맡겼나?”
“아…….”
은지는 할말을 잃고 남자를 보았다. 건장한 몸에 완벽하게 자리 잡은 근육이 남자의 호흡에 따라 피아노 건반처럼 흐른다. 은지는 남자의 상반신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흉포한 눈빛이지만 발톱을 감춘 날렵하고 우아한 짐승. 등을 따라 소름이 오소소 달린다. 은지는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순두부찌개를 떠올렸다. 그의 가슴을 혀로 핥으면 순두부처럼 찰지고 보드라울까? 은지는 얼굴을 붉히며 벌어진 입을 다물었다. 이전에는 근육질의 남자를 봐도 별 느낌이 없었는데 이상한 기분이었다.
“박은지예요.”
“박은지? 아아, 은지.”
남자의 말에는 경멸이 담겨있지만 은지는 그가 낮은 목소리로 이름을 불러주는 게 귀를 어루만지는 듯 하여 좋았다. 남자는 은지를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다 정리했다더니 아직도 기웃거리는군.”
남자의 신선한 샤워코롱이 은지를 둘러싼다. 풋풋하고 서늘한 내음이 후각을 기분 좋게 자극한다. 좀더 다가가서 파묻히고 싶을 만큼. 은지는 27년의 세월동안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에 당황스러워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그러니까 저는 제 동생의 언니에요.”
은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손으로 쓸며 더듬거렸다. 떨리는 손 밑으로 평소보다 부푼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한다. 은지는 남자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랐나 보다하고 생각하였다.
“난 내 동생의 형이지. 내가 댁을 환영해야 하나?”
“어머, 벌써 아홉시네. 저 이만 가볼게요. 열한시까지 서울역으로 가야하거든요.”
서두르는 모습이 약속이라도 있는 듯 하다. 시우는 의심을 품었다.
“서울역? 혹시 목적지는 대전이고?”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요.”
“부산?”
“아는 친구가 부산에 살거든요.”
“친구라. 그 친구도 만나서 잘 부탁하려고?”
시우가 이죽거리는데 천진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걸 보면 보통 뻔뻔한 여자가 아니다.
“오뎅을 먹여준대요.”
“오뎅.”
일식집으로 간다는 말일까?
“뜨겁고 축축한…….”
은지는 저녁에 먹을 부산 오뎅을 떠올리며 눈을 게슴츠레 뜨고 무의식적으로 검지손가락을 들어올려 손끝을 붉은 입술로 쪽 빨았다. 침을 넘기는 소리가 상대편에서 들려왔다. 도취된 표정으로 오뎅을 떠올리던 은지가 시우를 올려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시우가 움찔거린다.
“회장님도 좋아하시나 봐요? 부산 오뎅은 쫄깃쫄깃해서 좋아요. 부산에서 만날 친구는 빨리 꺼낸 단단한 걸 좋아하지만요. 저는 충분히 기다려서 크게 부풀어 오른걸 좋아해요. 음……. 입안에 가득 차면 뜨거우니까 이빨로 살살 긁다가…….”
“여자가 못하는 소리가 없군!”
시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은지는 벌건 얼굴로 성을 내는 시우를 보며 주춤거렸다. 시우는 눈을 부라리며 내쳐 물었다.
“부산 친구를 만난 후에 다시 서울로 오나?”
“아뇨. 친구가 밤에 실컷 놀자고 했어요. 낮에는 일 때문에 바쁘니까.”
“밤에 실컷?”
그가 이빨 사이로 으르렁거린다.
2월화님이 한때 야심차게 선보이다 잠수한 2월화판 할리퀸 로맨스.
현재 이 소설은 천일야화에만 남아 있습니다^-^
내년에 꼭 완결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소설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