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762


"임마, 가만있어 봐! 춤은 감각이야. 박자를 머릿속으로 계산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거란 말야. 살짝 허리를 흔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상대방을 유혹할 수 있다고. 해봐, 긴장 풀고. 어떻게 생각하면 섹스하는 것과도 다르지 않아. 너랑 나랑 지금......, 그걸 한다고 생각해봐."

가까이 다가온 그의 눈이 반들반들 빛났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창피해 고개를 숙이는데 그가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들어올려 시선을 마주했다.

"무대에 올라가서 바닥만 보고 노래할 거야? 네 시선이 닿아 있어야 할 곳은 여기야, 여기! 눈동자, 관객들의 눈동자 하나하나에 눈을 맞추며 노래해야지. 네 노래가 심장에 콱 박힐 수 있도록."

은진은 그의 눈동자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의 눈에서는 윤기가 돌았다. 그리고 거역할 수 없는 힘과 묘한 감정의 일렁임이 느껴졌다. 그의 손이 허리를 살짝 잡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가 전해졌다. 그의 몸 전체에서, 그리고 손을 통해서.

그는 은진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살짝살짝 허리를 움직이며 리듬을 타고 있었다. 연습하면서 거의 절반쯤은 그가 함께 춤을 추며 동작을 교정해주거나 기본기를 가르쳐주었기 때문에 그가 춤을 추는 모습을 숱하게 보아왔지만 오늘 그의 모습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안무대로만 하라고는 안 해. 너 기분 나는 대로 할 수도 있어, 네 노래니까. 자, 이제 웨이브 조금씩 넣어 봐, 이렇게."

그가 입고 있는 하얀 남방 셔츠가 부드럽게 흔들려 몸에 달라붙었다. 그는 은진의 허리에서 손을 떼고 그녀의 몸에 거의 닿을 듯이 가까이 다가와 웨이브를 했다. 느낌이 달랐다. 그녀가 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선정적인 느낌이었다. 거의 움직이지 않는 듯 리듬을 타며 몸을 움직이던 그는 유연하게 허리를 돌리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단지 닿아 있는 부분은 손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은진은 그의 몸이 그녀의 몸에 겹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온몸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마 아래로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그의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렸으며, 붉은 입술이 꽃잎 같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너랑 나, 둘만 있어. 다른 사람 있지도 않은데 시선 의식할 필요없잖아. 무대 위에서도 마찬가지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너를 보고 있지만 의식하지 마. 처음엔 쉽지 않을 거야. 어려우면 나만 생각해. 나와 함께 춤춘다고 생각해. 자, 춤춰 봐. 어서!"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그는 그녀의 눈을 뚫어버릴 듯 쳐다보며 그녀를 살짝 끌어당겨 그와 맞추어 춤을 추도록 했다. 믿기 힘들었지만 정말 그와 사랑을 나누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뺨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니, 온몸이 타는 듯 뜨거워졌고 갈증이 심해졌다.

그는 작은 몸짓 하나만으로 그녀를 흥분시켰다. 무표정한 듯 하면서도 자극적인 표정으로 그녀를 매혹시켰으며, 손끝 하나만으로 생생한 리듬감을 표현했다.

은진은 어느새 그와의 유희에 푹 빠져버렸다. 연습의 개념을 넘어서서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은 사랑을 하고 있는 시간이었다.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감정을 몸으로 남김없이 표현하는 것이었다. 은진은 점점 그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춤'에 익숙해져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몰랐다. 그냥 음악이 나오면 그에 맞춰서 춤을 출 뿐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안무가 섞이기도 하고 새로운 동작이 나오기도 했다.

그는 어떤 동작이 나오든 막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놔두었다. 은진 역시 무엇엔가 홀린듯 춤을 추었고, 그녀 스스로 춤과 감성과 음악이 하나로 일치되는 것을 느꼈다.

"조금만 더 해요."


(중략)


"뭐 해?"
"덥지 않아요?"

은진은 춤을 추다가 손을 뻗어 그의 남방 셔츠 단추를 하나하나 풀었다. 풀린 앞섶으로 단단하게 뭉쳐진 근육이 보기 좋게 꿈틀거렸다. 그의 맨가슴을 보니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그에게 안기고 싶어졌다.

"덥다는 건 핑계고, 딴 생각하는 거 아냐?"
"풀어 놓으면 더 보기 좋을 것 같아서요."

은진은 웃으며 손을 뻗어 그의 가슴에 댔다. 건장한 심장의 박동이 손바닥을 타고 그녀의 온몸으로 전해졌다. 은진은 춤을 추다가 그에게 덤벼들었다.

그는 그녀의 육탄 공세를 받고도 끄떡없이 버텨냈다. 은진은 그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수연은 그녀의 등을 뜨거운 손으로 쓸어내리고 엉덩이를 당겨 바짝 붙인 채로 조금씩 움직였다.

"춤추자며?"
"사랑을 나누는 것도 춤추는 것과 비슷하다면서요."

은진은 수연의 상의를 벗겨냈다. 연습실 바닥에 옷이 떨어지는 소리가 선정적으로 울려퍼졌다. 그의 어리띠에 막 손을 가져다 대는데 그가 그녀의 손목을 잡고는 떼어냈다.

"감각을 몸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얘기였지, 너처럼 덤벼들어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었어."

그가 단호하게 말하고는 그녀의 몸을 떼어냈다. 은진은 서운해서 그에게 다시 달려들었으나 그는 교묘하게 그녀를 밀어내며 계속 춤을 추었다.

은진은 그의 얼굴에서 땀이 흐르는 걸 보고 입술을 혀로 적셨다. 그는 웃는 듯 마는 듯 그녀의 팔을 잡아 가까이 끌어당겼다. 어찌됐건 좋았다. 은진은 그와 춤을 춘다는 게 사랑을 나누는 것과 똑같은 기분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마음이 통했어.'

은진은 그의 눈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손을 뻗어 그의 목을 감싸고 끌어당겨 살짝 입을 맞추었다. 금방 그를 놓아주었으나 분명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눈치챘다. 그 역시 그녀에게 유혹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은진은 미소를 띠며 그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가까이 닿아 있는 다리가 살짝살짝 부딪칠 때마다, 그의 몸에 살이 닿을 듯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민감한 피부가 반응했다. 그 역시 그녀의 기분과 같을 거라는 생각을 하자 더욱 온몸이 짜릿해졌다.




읽은지는 꽤 됐는데, 며칠이 지나고, 천생연분을 다 읽고나서도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었습니다. 전날 밤부터 새벽 다섯시까지 두 사람이 쉬지 않고 춤을 추어대는 장면인데, 솔직히 이 장면 읽으면서 반했습니다. 연상연하의 여주인공 서진영(이름이 맞는지..)도 클럽에서 갑자기 섹시한 자태로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오죠. 그때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특별히 어떤 다른 미사어구를 쓴 것도 아니고 장면의 표현 자체는 상당히 평범한데, 뭐랄까, 몰입하게 만드는 장면이었어요. 춤추는 이미지가 저절로 떠올랐다고나 할까. 클라이맥스같은 느낌. 이 뒷장면에 남자가 비로소 여자의 가능성을 인정해주는 장면이 나오죠. 그 장면보다 오히려 사랑을 나누듯 춤을 추는 두 사람의 자태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몸을 섞는 장면보다 저는 이 장면이 훨씬 에로틱하게 느껴지더군요. 아마 전체를 다 읽어봐야 이 장면을 제대로 느끼실 수 있을 듯.

댓글 '2'

꼬봉이언니

2004.10.27 19:02:48

아직 스캔들 보지 않았는데, 리체님이 쓰신 거 보니깐 넘 보고싶네여.
음,,,, 훨씬 에로틱하군여, 그려~

bach101

2004.10.27 21:04:16

저두 이 장면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얼굴이 벌개지면서 너무 에로틱하다~ 감탄했어요~~ 다시한번 그 장면을 화면으로 보니 스캔들 읽으면서 행복해했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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