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762


"절 도와주세요."

여자는 말했다.

이런 일은 매일같이 있는 일이므로 조금도 놀랄 것 없다는 얼굴로 메이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가 그대로 이야기를 이어나가지 않자 그는 말했다.

"여기 오시는 분들은 모두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자 여자는 갑자기 말했다.

"당신은 도무지 이야기를 하기 쉽게 해 주시지 않는군요. 제가 의논했던 변호사들은 대부분……."

여자는 여기서 또 별안간 입을 다물어 버렸다.

페리 메이슨은 싱긋 웃어 보였다. 천천히 일어나 책상 가장자리에 손을 짚고, 윗몸을 책상 저편의 여자 쪽으로 내밀듯이 하며 말했다.

"네, 압니다. 당신이 의논했던 변호사들은 대부분 방이 몇 개나 죽 늘어서 있는 호화로운 사무실에 있었으며, 많은 서기들이 바쁘게 방을 드나들고 있었겠지요? 당신은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지불했지만, 그런 셈치고는 그다지 큰 효과를 보지 못했소. 당신이 방을 들어서면, 모두들 굽신거리면서 아첨하고는 엄청난 계약금을 요구하지요. 그러나 막상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겨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게 되면, 그런 이들한테는 갈 마음이 나지 않지요?"

커다랗게 커졌던 눈이 얼마만큼 가늘어졌다. 2, 3초 동안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 쳐다보았으나, 이윽고 여자 쪽에서 눈길을 떨구었다.

페리 메이슨은 천천히 힘찬 말투로 조금도 음성을 높이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당신이 말하듯이, 나는 다릅니다. 내가 일을 맡는 것은 일을 위해서 내 있는 힘을 다하여 싸우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나의 의뢰인을 위하여 힘껏 싸우려는 것이지요. 나의 사무실에는 회사 설립의 수속을 위해서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유산상속사무도 단 한 건도 다루어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거래계약서를 작성한 것도 아직 10번을 넘지 못합니다. 또한 저당 기한이 끝난 처분을 어떻게 하는지 알고자 한 일도 없습니다. 나한테 오는 손님은 내 눈매가 마음에 들어서라든가, 사무실을 잘 꾸몄기 때문이라든가, 또 모임에서 나를 알게 되어서라든가 해서 오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나를 필요로 하여 나에게 오지요.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있어서, 그 일을 시키기 위해 나에게 오는 겁니다."

그때 여자는 얼굴을 들고 메이슨을 보았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슨 일을 하지요?"

메이슨은 내던지듯이 무섭게 대답했다.

"싸웁니다!"

여자는 힘차게 머리를 끄덕였다.

"제가 부탁하고 싶은 것도 바로 그것이에요."

메이슨은 다시금 의자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두 개의 개성이 맞부딪쳐 험악한 번갯불이 달리던 것이 멎으며, 공기는 상쾌하게 개었다.

"좋습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꽤 시간을 낭비했군요. 땅에 발을 디디고, 당신의 요구를 이야기해 주십시오. 우선 맨 먼저, 당신은 누구이며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는지 이야기해 주십시오. 그런 것부터 시작하는 게 당신도 이야기하기 쉽겠지요?"




이 시리즈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캐릭터의 개성에 맞는 대사를 적용한 소설의 한 예이다. 메이슨의 대사는 정말 압권. 1932년에 출판된 소설이지만, 페리 메이슨의 쿨함은 이이다 쿄야에 전혀, 전혀 뒤지지 않는다.

댓글 '1'

Miney

2004.07.14 09:48:43

아... 메이슨씨. 그리워요. 고등학교 1학년 때쯤인가, 무척 버닝하면서 보았던 인물입니다. 그전엔 미스 마플이나 므슈 포와로가 젤이라고 생각하다가, 학교 도서실에서 브라운 신부님이랑, 메이슨씨를 발견하고는...ㅠㅠ 어쩌면 의뢰인이 제일 든든해할 타입의 탐정인지도 모르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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