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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양 생리대 : 유쾌한 상상
[김현진(kimhyunjin2004 : 게임 시나리오 작가)]



슈퍼에 가서 생리대를 사면, 아저씨든 아줌마든 하다못해 편의점 총각이나 아가씨도 커다란 배려를 하는 듯이 후다닥 검정 비닐봉지를 찾아 자상스레 담아 준다. 10년 전에도 그랬는데, 지금도 그렇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근작 <해변의 카프카>의 나카타 군도 여선생님이 생리대 대용으로 쓰고 버린 피 묻은 하얀 수건을 멋모르고 주워 왔다가 불가사의한 이유로 이성을 잃고 만 선생님에게 몹시 얻어맞고 정신적 충격을 받아 몇 주일이나 의식불명인 채로 지내게 된다.

다행히 깨어났지만 그는 어딘가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어, 노인이 되고 소설의 말미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그 손상을 입은 채로 살아간다. 아무리 소설이라 해도, 여성의 생리를 건드리거나 지적하는 일은 이처럼 소설에서조차 치명적이고도 공포스러운 일이라는 것일까?

슈퍼 아저씨의 친절을 굳이 거절하기도 뭐해서 받아 든 검정 봉지, 그 안의 생리대가 부드럽게 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만약에 이 생리란 걸 하는 존재가 여성이 아닌 남성이었다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누군가 물을 끓여 쏟아 부은 것처럼 뜨거운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일단 이렇게 검정 봉지에 담아 주는 일은 절대 없을 게다. 우리 여성들에겐 생리가 자랑스러운 일이네 어쩌네 하면서도 다 거짓말, 얼른 감추라고 검정 봉다리에 담아 주는 걸 뭐! 그러나 아마도 남성의 생리는 아주 자랑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일찍이 말했듯이, 종교지도자들은 남성이 선택받은 귀한 존재인 이유를 가리켜 한 달에 한 번 거룩한 피로 구원의 징표를 보고 씻음을 받기에 성경에 나온 대로 남자는 여자의 머리라고 설교할지도 모른다.

또한 세월이 지나도 이렇게 값만 올랐지 별로 변하지 않은 안 예쁜 생리대의 겉포장! 그것 역시 변하여, 다이나믹하고 남자다움을 나타낼 수 있는 갖은 디자인을 취하겠지. 색상 역시 검정이나 다크 블루나 골드 등, 터프하면서도 남성다운 이미지를 취할 것이다. 그리고 전세계의 디자이너들은 향수병을 디자인하는 것과 같은 열정으로 생리대 포장을 디자인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름 역시, 지금처럼 <좋은느낌> <화이트> <프린세스>같은 소박하고 조용한 이름이 아니라 <블러디 데이즈> <와일드 블러드> 라든가 <에너지 옴므> 같은 터프하고 파워 넘치는 상품명들이 위풍당당하게 진열대의 가장 좋은 자리에 화려하게 그 위용을 뽐낼 것 같은데…  

TV광고 역시 지금의 민망하다는 듯이 살짝 내보이는 느낌 말고, 공격적이고 섹시한 남자들이 브라운관을 가득 메우며 유행에 따라 백금 성분이 든 럭셔리한 <박신양 생리대>나,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부드럽고 폭신한 감촉의 <강동원 생리대>가 붐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또는 수입 제품의 <브래드 피트 생리대>가 자국경제를 위협할지도. 파도 치는 요트를 타며 집채만한 파도와 싸우고 있는 박신양. 멋진 리조트 웨어가 잘 어울리는 스마트한 복장이다. 저만치에서 아파트만한 파도가 덮쳐 오지만 박신양의 표정은 자신만만하다. 그의 옆에 클로즈업되는 고급스런 포장의 <블러디 데이즈>!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며 싸워낸 박신양, 흠뻑 젖은 섹시한 얼굴로 나레이션. <피가 지배하는 날 남자는 대양을 지배한다>.

터프하다!

요즘 잘나가는 최희섭이 CF모델이라면 어떨까? 다저스의 유니폼을 멋지게 차려 입은 최희섭. 당당히 타석에 들어선다. 그의 나레이션. “전엔, 그날에는 성적이 나빴죠.” 투수가 공을 던진다. 날카롭게 공을 바라보는 그의 독수리 같은 눈매. 자신 있게 방망이를 휘두르자 깨끗하게 터지는 장외홈런! 팀 동료들과 손바닥을 마주치며 여유있게 돌아오고, 미국인 동료들은 부럽다는 듯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두 팔을 들어 보이는 우리의 최희섭. “하지만 이젠 걱정 없어요. 그날에도, 빅초이는 홈런입니다.”

생각만 해도 멋지다!!

하지만 피를 쏟아야 하는 건 우리 여자들인걸. 얼마 전 내 친구녀석 하나는 ‘아, 여자들이 애를 낳는 수고를 하니 신체 구조상 우리 남자들이 가슴이 나와서 수유 정도는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하고 말했지만, 이봐 친구… 이쪽에서는 가진 자의 여유로밖엔 보이지 않는다구.

대신 수유 안 해줘도, 생리 안 해줘도 좋으니, 갑자기 습격해온 ‘그날’ 덕분에 허리가 끊어질 듯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데도 남자친구가 창피하다며 생리대 심부름만은 안 해준다는 여자들의 서글픈 고백만은 사라졌으면 좋겠다.

이봐요, 그 창피한 것 때문에 당신들이 태어났다구요.



야후 칼럼에서 연재하고 있는 김현진 씨의 글입니다.
제목이 굉장히 남부끄러워서 대체 뭔 내용인가 읽어봤는데,
읽다가 거의 넘어가는 줄 알았습니다.ㅋㅋㅋ

박신양 씨는 기분 나쁠지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굉장히 발칙한 상상이랄밖에.^^;

soultj

2004.08.12 17:11:33

와일드 블러드ㅡ..ㅡ.ㅡ;;   [05][07][07]

리체

2004.08.12 17:37:57

블러디 데이즈가 더 마음에 들지 않아요?ㅎㅎㅎ   [09][01][11]

진은희

2004.08.12 21:31:03

정말 마음에 드는 글.....   [01][01][01]

코코

2004.08.12 22:03:21

푸하하하하하~
이 사람 누구야?
진짜 마음에 든다!^0^   [06][06][06]

리체

2004.08.12 23:07:48

야후 칼럼 가서 이 사람 글 찾아 읽은 것 중에 가장 대박이었어.
피가 지배하는 날 남자는 대양을 지배한다니..
너무 깜찍하지 않아? 우호호홋..;;;   [04][03][02]

수룡

2004.08.12 23:08:14

그날에도, 빅초이는 홈런.. (쓰러짐)   [01][01][01]

빨간사과

2004.08.13 01:00:16

Good!!   [09][09][12]

릴리

2004.08.13 15:08:57

아하하하.. ^_^b   [01][01][01]

아라베스크

2004.08.14 11:12:43

지극히 웃기네요ㅋㅋㅋ   [01][01][07]

오손도손

2004.08.16 22:43:08

한번도 남자에게 생리대 심부름 시켜본적이 없이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런날이 올런지.....................   [01][01][01]

D

2004.08.17 00:39:43

가끔 남편이 담배 심부름 시키는데, 내가 당신에게 생리대 심부름 시키면 하겠어? 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더니 자기는 할수 있다고 큰소리를 치더군요. 정작 한번도 사다준적도 없으면서 말이지요.   [0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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