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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98
16
욕조는 두 사람이 들어가고도 남는 자쿠지(Jacuzzi)형이었다. 찰랑거리는 물 안에서 두 사람은 나른한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의 다리 사이에 그녀가 가슴에 몸을 힘없이 기댄 채 앉아 있었다. 아로마향이 섞인 입욕제를 넣었기 때문인지 향이 은은하게 두 사람의 코를 간질였다.
두 사람 모두 말이 없었다.
벌써 8월 30일. 내일이 오면 두 사람은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걸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현호는 말없이 그녀의 짧게 자른 머리카락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그 아래 드러난 여린 목이 너무나 섬세하게 그의 심장 한가운데를 찔러왔다.
그렇다.
이제 그녀는 말하지 않아도 그를 찌를 수 있었다.
“이런 욕조, 첨 써 봐요. 신기해.”
“나도 거의 안 써. 평소엔 샤워만 마치고 가니까.”
“아깝다.”
미희가 희미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현호는 그런 그녀를 뒤에서 꽉 끌어안고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그에게 반응해 온다. 두 사람은 입술을 겹치고 뜨거운 혀를 교환하며 서로를 한껏 탐닉했다. 더운 물에 덥혀진 열기어린 숨결에 잠시 지워져 있던 감각이 다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의 손이 그녀의 아래로 뻗어왔다. 손가락 끝과 손바닥을 번갈아가며 섬세한 부위를 문지르자 그녀의 입에서 갈망의 한숨이 샌다. 자신이 길들인 여자, 너무나 사랑스럽게 허덕일 줄 아는 그녀. 허리를 붙잡아 강하게 끌어당겼다. 그녀의 동그란 두개의 언덕 사이에 어느 새 부풀어 오른 남성을 갖다댄다. 히프를 어루만지던 남자의 손이 천천히 올라와 여자의 또 다른 언덕을 움켜쥐었다. 손가락 끝으로 유두를 톡 튕기며 희롱하다가 다시 가슴 전체를 손바닥으로 문지른다.
“아…….”
한숨은 언제나 막을 새도 없이 지나치리만큼 솔직하게 흘러나왔다. 절로 몸이 움직인다. 미희는 현호에게 몸을 더욱 다가붙이며 말없이 호소했다. 욕조 가득 가장자리까지 채워진 물이 두 사람의 움직임에 조금씩 밖으로 흘러넘친다. 그녀의 호소에 반응하듯이 남자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살짝 들더니 질량감을 가득 담아 뒤로부터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두 사람이 물 안에 있어서 그런지 상당히 스무드한 움직임이었다. 이런 식의 삽입법도 있었구나, 미희는 당혹스런 머리를 누르고 뜨겁게 그녀를 자극하는 그에게만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사실은 너무 잘 느껴졌다, 이 자세. 아주 깊이 연결되어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도. 그가 가슴을 움켜쥔 채 아래서 더 깊이 파고들어온다. 두 사람은 나직한 신음을 뱉어냈다. 그녀의 허리에 방금까지 가슴을 만지던 손이 내려온다. 허리를 잡은 채, 그는 자신 위에 올라와 있는 그녀의 몸을 움직여 자극을 가했다. 그리 크지 않은 움직임이었지만 이미 그가 깊이 들어와 있는 덕분에 쾌감은 모자람이 없었다. 오히려 찰랑거리는 물 안에서 가슴과 허리를 번갈아 어루만지면서 그가 자신을 올렸다 내렸다 할 때마다 아찔한 파도가 밀물이 되어 그녀를 덮쳤다.
“나…….”
그녀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끌어안고 하고 싶어요. 이것도 좋지만 서로 안고 있고 싶어…….”
두 사람은 자세를 바꿔, 마주 안은 자세로 서로를 겹치며 욕조에 앉았다. 어떤 자세에 못잖게 깊이 서로를 느낄 수 있는 자세. 그의 허벅지 위에 앉아 허리를 자신의 다리로 감싼 그녀의 허리를 강하게 붙들고 그는 다시금 쾌락의 파도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한번 움직일 때마다 구석구석 전류가 흘렀다.
감전당할 거 같아…….
그의 등을 힘껏 끌어당기며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지고 격해지면서 그를 끌어안을 기운조차 점차로 빠져갔다. 욕조의 물이 세차게 일렁이며 저릿한 감각이 점점 그 강도를 더한다. 아찔한 현기증에 몸을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다. 몸 안에 들어온 그의 존재감이 너무, 지나치게 강했다. 전신을 후들후들 떨면서 그가 안쪽을 휘저을 때마다 안타깝게 몸을 떨었다.
“아……아, 아……아아…….”
몸 안을 온통 휘젓는 이상야릇한 감각에, 몸이 저리고 거친 숨이 입에서 새어나와 습한 욕실 안에 울렸다. 부끄러움에 참을 수 없어진 그녀는 욕조에 늘어지듯 기대 격렬한 호흡을 토해냈다가 다시금 그의 몸을 끌어안았다. 어떤 자세도 제대로 버티기엔 역부족이었다. 다른 때의 격렬함과는 다른, 부드럽고 끈기 있게 지속되는 쾌락의 감각이 끊임없이 안에서부터 물이 나오게 만들었다. 그녀가 몸을 비틀며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힘겹게 호흡하는 모습을 보자, 계속 참고 자신을 조절하고 있던 그도 결국 격하게 자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읏! 하아! 우…….”
그녀의 신음과 남자의 난폭한 호흡이 물 안인데도 땀이 흐르는 두 사람의 몸을 타고 공기 틈으로 들어가 섞일 때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부서졌다. 한껏 몸을 뒤로 젖히고 탄성 같은 소리를 내지른다. 가장 안쪽까지 세차게 밀고 들어올 때마다 정신이 솟구쳐 날아올랐다. 몽롱한 머릿속에 순간순간 경련이 일어……, 미치도록 서로를 느끼고, 느끼고, 또 느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되버린다.
정말 감전당한 것 같다.
아니, 감전 당했다가 살아났다가 다시 감전당하는 과정의 반복인 것만 같다.
계속해서 가느다란 비명을 지르면서 그녀는 절정의 소용돌이를 한없이 방황하고 있었다. 열기를 담은 채 팽창한 남성이 그녀의 가장 깊은 곳을 한 가득 충족시키고 있다. 그 눈부신 쾌감에 떨면서 깊이 숨을 들이마시듯 남성을 조인다. 그 때마다 그도 그녀 이상으로 절정 직전의 쾌감에 날아올랐다.
거짓말처럼 마구 타오르는 감각.
이대로 헤어지는 걸까, 이렇게 서로를 알아놓고 헤어져야 하는 걸까.
몸의 욕구가 충만해지면 충만해질수록 밀려오는 마음의 허무함.
싫어…….
마지막이란 말……, 싫다…….
이 남자를 갖고 싶다. 영원히 갖고 싶다.
이 여자를 갖고 싶다. 영원히 갖고 싶다.
윤기가 열기로 바뀌고, 열기가 폭발로 치닫는 순간.
두 사람은 서로를 힘껏 끌어안은 채 정신없이 영원을 되뇌고 있었다.
미희의 몸은 남자의 팔 안에서 축 늘어져 있었다. 가슴에 기댄 채 아직도 최후의 여운을 느끼는 듯 몸을 가늘게 떨고 있다. 현호는 그런 여자의 이마에 조용히 입을 맞췄다. 그러자 그녀가 눈을 뜨고 미소 짓는다.
그 미소가 행복해 보이는 동시에 견딜 수 없이 고독하고 애절하게 느껴져 그는 참을 수 없이 안타까워졌다. 아니, 어쩌면 자신은 미희의 얼굴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웃는 얼굴은 왠지 모르게 슬퍼 보였다. 빛과 그림자가 떨어질 수 없는 것처럼 태양처럼 환하게 웃는 얼굴 이면에 숨겨진 외로움을 발견할 때마다 스스로를 깨닫게 되는 것은 왜일까.
아니, 그건 착각인지도 몰라.
착각인지도 모르지만, 그녀와 자신은 본질적으로 같은 부류라고 생각한다.
“괜찮아.”
몸을 움직이려는 그녀를 만류했다. 물 안에서 조심스럽게 머리를 감기고 몸에 비누질을 해준다. 어느 사이엔가 그녀의 몸에 이 집에 놓여 있는 샴푸와 비누향이 배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달콤하게 가슴이 저렸다.
마지막으로 그녀를 안아들고 바로 옆에 있는 샤워부스로 들어갔다. 세찬 물이 쏟아져 내리자 그녀가 정신이 들었는지 스스로 그의 팔에서 몸을 내린다. 자신의 가슴에 머리를 기댄 채 쏟아지는 물을 맞고 있는 그녀는 한없이 사랑스러울 뿐.
커다란 타월로 아기처럼 몸을 감싸인 채 그녀는 그의 팔에 안겨서 욕실을 나왔다. 모든 것이 너무나 다정하고 따뜻해서 영원토록 계속될 듯한 착각이 든다.
하지만 이제 끝이 다가온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은 함께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두 사람의 미래는 함께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미희가 말을 하지 않아도 현호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또 현호가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미희 자신은 그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역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둘이서 함께 보낸 이 짧은 기간을 후회할 순간이 오겠지.
다른 이유가 아니다. 두 사람이 각자에게 서로이기 때문에.
“나, 좋아해요?”
현호가 메이커에서 커피를 내리는 사이, 타월로 몸을 감싼 미희가 소파에 무릎을 올리고 앉아서 그렇게 물어왔다. 그는 찬찬히 몸을 돌렸다. 두 사람의 눈이 선명하게 부딪치고, 그는 조용히 마음에서 우러나온 대답을 했다.
“좋아해.”
“나 외에 좋아하거나 좋아했던 사람 있어요?”
“있어.”
현호는 목이 막히는 걸 느끼면서 대답했다.
“그럼 그 사람이랑 나, 누가 더 좋아?”
그녀가 천진한 어린아이처럼 눈을 빛내며 묻고 있었다.
“아마……, 너일까.”
너, 라고 말할 때 확실히 목이 쉰 걸 깨달았다.
“거짓말.”
미희가 조그맣게 웃었다. 웃었지만, 그 표정은 지독히 외로워 보였다. 현호는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가슴에 안긴 그녀가 중얼거린다.
“다정한 현호 씨보다 차라리 차가운 현호 씨가 나았는데.”
“내가…… 다정했었어?”
“응. 그래서 미워.”
아직도 젖어 있는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었다. 달콤한 향기가 난다.
“예전에 그랬죠. 몸이 연결되면 마음도 연결되는 거라고. 당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에 대해서 얘기해 줄 수 있어요?”
현호는 미희의 눈을 보았다. 그 눈동자는 티 없이 맑고 진지했다.
“오래전…… 얘기야. 마음을 빼앗긴 건 나였고 사랑 같은 거라기엔 더럽혀진 관계였어. 나는……, 그녀에게 되돌릴 수 없는 짓을 했다. 비겁한 짓. 정말 최악이었어. 그 사람은 나를 용서해줬지만 내가 그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서 도망쳤지. 아마 나를 원망하고 있을 거야.”
혀에 씁쓸한 감각이 느껴졌다.
눈앞의 여자와는 많이 다른, 좀 더 성숙하고 신비스런 매력을 갖고 있던 여인.
- 나는 수녀가 될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과 나는 안돼요.
“그 사람과 만나고 싶지 않아요?”
“아니.”
현호는 고개를 저었다.
“만나도 소용없어.”
“왜요?”
“수녀가 됐을 테니까.”
그 말에 미희는 뭔가를 생각하는 눈을 했다. 현호는 그 눈을 보고 일어섰다.
“이제 그런 얘긴 그만 하고, 너한테 주고 싶은 게 있어.”
“응?”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를 뒤로 하고, 그는 방에 들어가서 옷장 안에 넣어뒀던 물건을 꺼내왔다. 손을 잡아 손바닥에 작은 꾸러미를 올려놓는다. 미희는 놀란 눈을 하고 있었지만 궁금증을 느낀 듯 리본을 풀고 포장을 뜯는다.
포장 안에 있는 건 진한 자줏빛의 케이스.
“사이즈가 맞을지 모르겠어.”
케이스를 여니 투명한 빛이 가득했다. 미희는 굳어진 채 가만히 있었다. 안에 들어있는 것은 아주 섬세하게 세공된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그녀는 그것을 집어 들어 왼손 약지에 끼워보았다. 역시 예상대로 조금 크다.
“가운데 끼워도 되니까.”
그의 말을 들은 그녀의 눈에 아주 잠깐 뭔가가 빛났지만, 미희는 이내 고개를 흔들면서 반지를 케이스에 도로 넣어놓았다.
“미안, 이건 못 받아요.”
“왜? 널 위한 거야.”
“미안, 받을 수 없어요. 난 돈이 필요하고……, 아마 내가 이 반지를 가져가면 반드시 팔아야 할 거에요. 하지만 난 팔 수 없어요. 이 반지가 내 손안에 있는 한……. 그러니까 난 이걸 받을 수 없어.”
무슨 말인지 알 듯 모를 듯한 기분이 든다. 미희는 희미하게 웃었다.
“나요, 무지무지 멋진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어릴 때 이 비슷한 꿈을 꿨거든요? 나는 아주 오래된……, 하지만 지금은 몰락한 왕국의 공주, 아니 황녀고, 신분을 숨기면서 힘들게 살아가던 내게 어느 날 이웃나라의 멋진 왕자가 나타나 반지를 끼워주며 청혼을 하는 거야.”
그녀는 반지가 담긴 케이스를 닫았다. 철컥, 둔탁한 소리가 울린다.
“근데 그건 꿈이니까, 어디까지나 꿈이니까……, 깨지 않으면 안돼요. 꿈은 꿈일 때가 제일 행복하니까. 그걸 현실로 옮기려 하면 벌 받아요.”
“너를 위한 반지에 꿈, 현실이 필요해?”
현호는 마지막으로 항의해 보았다. 미희가 고개를 흔들었다.
“꿈으로 남겨두고 싶은 거예요. 만일에 나를 위해서 이 반지를 샀다면, 그럼 나를 위해서 이 반지를 보관해 주세요. 누구한테도 주지 않고, 팔지도 않고, 그냥 아주 구석진 곳에 두고 발견할 때마다 나를 기억해주세요. 그거면 돼요.”
나를 기억해 주세요.
나를…….
그 말이 단숨에 가슴을 메워왔다.
계속.
이후, 당분간 라브라브 모드는 없습니다.
* Junk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10-06 17:11)
* Junk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5-09 11:21)
삐씬에 스트레스 받는 언니가 마치 내숭이라고 생각되는 건...저뿐일까나요.^^
매 회마다 반복되는 러브씬에 감동받고 있는 저였습니다. @@;;
음, 제목과 관련된 미희 말을 듣고 나니 이제야 제목이 이해가 가요.
역시 정크온은 제목 짓기의 대마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