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unk paradise
- 소설
- 완결소설
글 수 198
세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 남자가 대체 뭐라는 거야?’
그것은 앞에 서 있던 윤정도 마찬가지로, 그녀는 입을 약간 벌린 채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세희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저 여자가 어떻게 대응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기우였을 뿐, 잠깐 침묵하고 있다가 입을 연 윤정의 입에서 터져 나온 건 여느 때보다도 한톤 높은 웃음소리였다.
“오호호호……!”
기묘한 웃음소리는 그녀의 어떤 태도보다도 날카롭고 두렵게 느껴졌다. 세희는 욱신거리는 몸을 반쯤 벽에 기댄 채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윤정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든 흔들리지 않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지운 씨, 놀랐네. 그런 식의 요구 첨 들어봐요. 진심이에요? 지운 씨가 여자를 안겠다고 했어요? 우리 가게에 왔을 때도 한번 한 적이 없으면서?”
“…….”
지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가를 아주 약간 누그러뜨렸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태도는 여느 때와 조금도 다름없었다.
“지운 씨하고 놀라고 보냈던 애들 말론 욕망이란 게 없는 사람 같다고들 했어. 손끝하나 댄 적이 없다 그래서 난 임포인 줄 알았는데? 틈만 나면 불뚝거리는 아랫도리 제어하는 게 남자들 세상에서 젤 하기 힘든 일 아닌가요? 임포가 아니라면 대체 왜 그렇게 살까 싶었지.”
윤정은 명랑하게 말하고는 고개를 비스듬하게 세우고 턱을 든 채 세희를 갸웃거리며 내려다봤다.
“근데 얜 덮쳐보고 싶단 건가요?”
“예.”
지운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순명료하게 대답했다. 윤정은 손을 들어 이마를 짚으면서 약간 배실거리는 웃음을 흘렸다. 그러더니 이내 거짓말처럼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더니 마찬가지로 단순명료하게 선언했다.
“그럼, 해보세요.”
세희의 눈은 이제 너무 울어서 새빨개져 있었다. 아마 토끼 같을 거야, 라고 그런 와중에도 생각했다. 잡아먹기 좋은 토끼, 약하기 짝이 없는 초식동물.
탁.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는 가 했더니, 방안에는 그녀와 남자만 남겨져 있었다. 세희는 주춤주춤 고개를 들어 지운을 바라봤다. 그는 걸치고 있던 블랙 재킷을 벗고 있었다. 그 안에 받쳐 입은 흰색 셔츠로 가려진 근육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멋있었지만, 두려움으로 꽉 찬 세희의 눈에는 그런 건 들어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남자가 재킷을 저편으로 던져놓고, 너덜너덜해진 자신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 다가왔을 땐 극심한 피로감만 남았다. 단두대 앞에 서서 모든 것을 포기한 미소를 짓고 있던 마리 앙트와네트처럼 그저 만사가 피곤해졌다.
세희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지운을 보았다. 애원하는 표정조차 짓기가 싫어, 그저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 그녀를 지운도 예의 무표정으로 말없이 내려다보더니 갑자기 손을 들어 그녀의 몸을 후려쳤다.
“악!”
세희는 비명을 질렀지만, 실은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다. 아까 남자들이 때린 것에 비하면 소리만 클 뿐, 옆구리를 쳤기 때문에 욱신거림조차 남지 않는 상쾌한 타격이었다. 세희가 그래도 놀람에 숨을 할딱거리고 있는데, 남자가 고개를 숙이더니 천천히,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포르노……, 본 적 있나?”
“……?”
세희는 어안이 벙벙해서 눈물조차 멈추고 그를 보았다. 그가 어깨를 으쓱한다. 놀린다거나 농담으로 한 질문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세희는 주춤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말이 별로 없는 만큼 어쩌다 말해도 그 의도를 알기 힘든 남자였다.
“그 나이가 되도록? 골치 아프군.”
고개를 떨어뜨린 세희에게 남자가 비웃듯이 말했다.
“아, 그렇다. 옆방 소리를 들었을 테니, 흉내 정도야 낼 수 있지?”
“휴, 흉내라뇨……?”
세희는 멍하니 중얼거리다 흡, 하고 숨을 들이켰다. 그제야 남자의 말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고, 고맙습니다!”
“쉿.”
남자는 긴 집게손가락을 그녀의 입술에 갖다댔다.
“봐준다고 생각지 마라. 색기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어린애를 상대하기 싫을 뿐이야.”
세희는 지운의 차가운 말에도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그가 백주대낮에 사람을 쏘아 죽였던 잔혹무도한 살인마이며 조직에 몸담고 있는 악한이란 사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단 현실도 지금 이 순간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운은 안도감에 혈색을 되찾은 세희에게 귀찮은 듯 중얼거렸다.
“자, 그럼 소리를 내 봐. 남자랑 한다고 생각하고.”
“…….”
세희는 순간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 자신에게는 성인 비디오의 여배우처럼 야시시한 연기를 해야 한단 과제가 남아 있다. 윤정이 내는 소리를 떠올려 보았다. ‘아앙……, 으응……, 아악……!’ 생각만 해도 얼굴이 달아오르며, 자신이 그런 소리를 낸다고 가정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움츠러드는 것 같았다. 세희는 귓불까지 빨개져서 땀이 밴 손을 애꿎은 옷에 문질러댔다.
“아아……, 으음……, 아아…….”
용기를 내어 흉내 낸 소리는 윤정의 그것과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 색스러움은 물론, 남자에게 강제로 당하고 있다는 느낌조차 없다. 지운이 후우, 하고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토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이지 자기 처지를 모르는 아가씨로군. 지금 부끄러운 게 문제인가?”
그녀가 고개를 떨어뜨렸을 때, 갑자기 남자의 손가락이 턱 쪽으로 뻗어왔다. 손가락이 턱을 강하게 움켜쥐나 했더니, 소리조차 내기도 전에 입술이 겹쳐진다. 세희의 눈이 더 그럴 수 없을 만큼 커진 박자에 맞춰, 뜨겁고 부드럽고 촉촉한 혀가 불쑥 입술 사이를 비집고 강하게 안쪽으로 파고들어왔다. 묶인 손 때문에 남자를 밀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아니, 가능했다 하더라도 아마 잊어버렸을 것이다. 덮쳐온 갑작스러움에 비해 일단 안으로 파고든 상대의 움직임은 부드럽고 온화한,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연이은 사건에 계속 압박을 당해온 심장은 이번에야말로 참을 수 없다고 울면서 호소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이미 텅 비어버린 상태. 흐릿하게 눈에 비치는 영상들은 빙글빙글 기묘한 움직임으로 돌고 있었다.
“으흣…….”
저도 모르게 막힌 입술 사이로 야릇한 소리를 내버린 것은, 지운의 손이 아까 남자들에게 뜯겨져버린 블라우스 단추 사이를 헤집고 들어와 버렸기 때문이다. 속옷 상의 속까지 파고들어가 등 뒤로 미끄러지듯 돌려진 손은 뭔가를 찾는 듯 더듬더니 가볍게 브래지어의 후크를 풀어냈다. 느슨해진 브래지어 밑으로 당연한 것처럼 손이 불쑥, 하고 진입해 들어온다.
지운은 능숙하게 그녀의 혀를 빨아올리면서 손바닥으로는 그녀의 젖꼭지를 한번 훑어 내렸다. 아주 연한 동작이었지만, 몸 안을 통째로 진동시킬 듯한 떨림을 느끼고 세희는 그 달짝지근한 감각에 저도 모르게 숨을 토해낼 뻔했다.
손가락이 그녀의 유두를 잡아 쥐더니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비비기 시작했다. 세희는 몸에 힘을 주려고 했지만, 피로감과 이제껏 느낀 적 없는 야릇한 기분에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강하게 묶여 있는 손목의 욱신거림도 어느 사이 죄다 잊어버렸을 정도였다. 그래도 남아 있던 통증이나 불편함의 감각은 지운이 이제까지 연하게 훑고만 있던 젖꼭지를 강하게 움켜쥔 순간, 깡그리 날아가 버렸다.
“아…….”
입술이 가까스로 떨어졌다. 세희는 막혀 있던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스스로도 부끄러울 만큼 여느 때보다 한톤 높은 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온다. 그것은 이제까지 한번도 낸 기억이 없는 소리였다. 당혹감과 안타까움, 그리고 그 이상의 감정을 담은 소리는 세희에게 더 큰 당혹감을 선사했다.
“……좋아.”
지운은 중얼거리듯 말하고는 바지 주머니에서 스위스제 나이프를 꺼내 세희의 손을 묶은 밧줄을 가볍게 끊어냈다. 세희가 며칠 동안 끊어보려고 수없이 애를 써도 끊어지지 않던 밧줄이 일순간, 손목으로부터 가볍게 떨어져나갔다.
겨우 찾은 손목의 자유로움과 순간적으로 더 진해진 욱신거림. 하지만 세희가 얼굴을 찌푸리기도 전에 남자는 그녀의 양 손목을 잡아 위로 틀어 올렸다. 겨우 자유를 되찾나 했더니 이번엔 밧줄이 아닌 남자의 강한 손아귀가 세희의 팔목을 억센 힘으로 구속하고 있었다.
“아……, 아!”
밧줄의 상흔이 검붉게 남아 있는 팔목이 재차 눌렸다. 아픔에, 세희는 비명을 질렀다. 멈췄던 눈물이 찔끔 배어나온다. 눈을 감고 진정하기 위해 숨을 가쁘게 들이켜고 있는데, 아까 자신의 입술을 누르고 있던 남자의 형태 좋은 입술이 이번에는 귓불에 강하게 눌린 게 느껴져 더 당황하고 말았다.
당혹감과 동시에 서늘한 음성이 귓전으로 스며들어오는 걸 느꼈다…….
“이번은 도와주지, 어린 아가씨.”
계속.
=,.=
괜히 기대하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당당당당당당~.
* Junk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12-20 11:52)
* Junk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5-09 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