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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부터 언제 풀려날지 기약 없는 감금생활이 시작되었다.
팔다리는 여전히 밧줄로 꽁꽁 묶여 있는 상태였다. 가끔 쥐가 나거나 저려서 미칠 것 같았지만 움직일 수도 없어서 이를 악물고 신음을 삼켜야만 했다.
간혹 방주인인 여자가 들여다본다. 지내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여자의 이름은 김윤정. ‘냉혈살인마’ 성지운이 속해 있는 조직 보스의 정부(情婦)라고 했다. 뭐, 들여다본다고 해도 그녀는 별다른 동정의 기색은 전혀 없고, ‘아이 참, 신경 쓰여 죽겠네 증말!’ 그딴 소리만을 종알거릴 뿐이었다. 식사도 자신이 갖다 줘야 하고, 화장실도 자기가 데려다줘야 하니까 그런 모양이었다. 물론 식사라고 해봐야 빵 쪼가리나 편의점 김밥 등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기분이 좋을 때나 한가할 때는 윤정이 직접 떼서 입으로 넣어주었지만, 귀찮을 때는 비닐만 벗겨서 바닥에 팽개치고 나간다. 그걸 바닥에 얼굴을 대고 짐승처럼 입만 대고 먹는 수치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세희는 버틸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만 했다. 집에서 걱정하고 있을 식구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줄줄 하루에도 몇 번씩 흘렀다. 그래도 자신은 아직까지 살아 있다. 풀려나봐야 보나마나 직장에서 잘릴 건 뻔하지만, 그래도 살아 있다는 게 어디인가. 살아서,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 살아남아야만 한다.
이틀 밤이 흐른 어느 저녁, 세희는 그날따라 기분이 좋은지 된장찌개를 시켜 자신의 입에 넣어주던 윤정에게 애원하듯 슬쩍 물어보았다.
“저, 저 좀 내 보내 주실 수 없을까요?”
“당연히 안되지이.”
윤정은 찌개에 수저를 담그다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며칠동안 보면서 느낀 건데, 가슴이 유난히 큰 여자다. 말로만 듣던 전설의 E컵일까? 세희는 A컵도 간당간당한 자신의 빈약가슴을 생각하면서 몸을 움츠렸다. 그나마 꽁꽁 묶인 지금은 가슴이 더 줄어들었을 지도 모른다. 살도 빠진 것 같다.
아아, 나가고 싶어.
“너 꼴랑 20살 정도지? 어린애가 참 안됐다만 어쩔 수 없어. 지운 씨가 총 쏜 걸 봤다면서? 어쩌겠니. 그 남잔 죽어 싼 사람이지만 그래도 살인은 살인이라.”
“그 남자……가 누구예요?”
“응? 으응, 울 그이의 삼촌. 녹용파 보스였어. 뭐 이젠 울 그이가 보스가 될 거지만 말이야.”
삼촌을 죽여? 조직 간의 세력다툼? 대부도 아니고 이게 무슨……. 방금 입에 넣은 된장찌개가 메슥거렸다.
“으음, 지운 씨한테 죽으면 고통은 없을 거야. 정말 총 하난 잘 쏘니까. 근본은 참 착한 사람이거든?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편히 죽을 수 있을 거야.”
“…….”
어이없는 말만 하는 사람이다. 편히 죽어? 걱정하지 말라고?
곧 죽을 형편인 주제에 걱정도 안될 만큼 속 편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세희는 그녀의 말을 듣고 마냥 혐오스럽지만은 않은 ‘살인마’의 얼굴을 가만히 떠올렸다. 남자의 말대로 다른 방식으로 만났다면 설사 그 남자가 어둠의 세계에 몸담고 있다고 해도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을 거라고 문득 생각했다. 깊은 심연 같은 눈이 담고 있는 과거가 오늘날의 저 남자를 만들었겠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 남자에게 죽고 싶지는 않다. 절대, 절대로.
남자는 하루에 딱 한번씩 그것도 밤에만 얼굴을 보였다. 말은 절대 걸지 않고, 그저 그녀의 얼굴을 한번 스윽 훑어보는 게 전부였다. 죽일까 말까 망설이는 듯한 태도도 없고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보고, 그리고 바로 방을 나간다.
세희가 절망감으로 고개를 떨궜을 때, 벨소리가 울렸다.
“어머, 우리 그인가 봐!”
윤정은 호들갑스럽게 외치더니, 아직 다 먹지도 않은 쟁반을 들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세희는 반도 못 먹은 식사에 미련이 남아 안타깝게 그 등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동안 밖에서는 호호, 하고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들렸다. 간간이 남자의 낮은 웃음소리도 섞여 들리더니 이내 옆방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다.
이 아파트 벽은 상당히 얇은 모양이었다.
“아앙……, 으응…….”
여자의 교태 섞인 신음소리와 더불어서, 남자의 헉헉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듣기만 해도 질척거리는 소리다.
“너무 좋아……, 아앙…….”
이 나이가 되도록 포르노 비디오는 물론이고 성인영화도 변변히 봐본 적 없는 세희로서는 듣기만 해도 귀를 막고 싶은 낯 뜨거운 소리였다.
“아아……, 그만……, 으응…….”
연이어서 퍼억, 퍼억, 뭔가를 부딪치는 소리와 더불어 그 때까지만 해도 신음소리에 지나지 않던 여자의 소리가 비명에 가까운 것으로 변해갔다.
“아악! ……그만! 아니, 더……! 더…… 으응……. 아앙! 그만!”
얼굴이 벌개져서 죽을 거 같았다. 세희는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대해 혐오감과 부끄러움이 뒤섞인 감정으로 몸을 배배 틀면서 저린 다리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옆방에서는 지치지도 않는지 한 번으로 부족해서 몇 번이나 같은 일을 반복하는 눈치였고, 그 때마다 여자의 신음은 비명으로 변했다. 퍽퍽, 하는 소리에 이어 찰싹! 찰싹! 하고 살을 때리거나 부딪치는 소리도 들려온다.
이렇게 허술한 벽은 또 처음이었다.
나중에는 세희도 익숙해져서 주린 배를 틀어 안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던 거 같다. 그런 자신을 자각한 것은, 돌연 방문이 벌컥! 하고 열렸을 때였다. 세희가 화들짝 놀라 눈을 뜨고 고개를 들자, 눈앞에 40대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가운 차림이었다. 끈도 제대로 묶지 않아 가슴이 훤히 들여다뵈는 남자는 중키 정도에 굉장한 근육질의 체구를 하고 있었다. 눈은 날카롭게 치켜 올라갔고, 얼굴은 가무잡잡한 것이 보기에도 매서운 인상을 하고 있었다. 세희는 이 남자가 바로 성지운의 보스이자 윤정의 그이란 사실을 알아차렸다. 자신의 삼촌을 총으로 쏘아 죽이도록 시켰다는 비정한 남자.
“이 계집애가 그 여자냐? 쏘는 걸 봤다던.”
뒤에서 따라온 윤정이 비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뭘 그런데 신경 쓰고 그래요. 우리 아직 안 끝났잖아요? 당신 한번 하면 일곱 번은 기본이잖아. 우리 아직 다섯 번 밖에 못했는데, 나 아직도 거기가 만족 못했다고 막 쑤시는데, 당신 책임 안 질 거예요?”
“한자리에서는 잘 안 서는 거 몰라? 이 방에 계집애가 있으니 영 신경 쓰이는군. 아무래도 지운이한테 처리하라고 해야겠어.”
“처리고 뭐고 다 좋은데, 여기선 하지 말라 그래요. 네에, 진철 씨?”
윤정은 남자의 팔에 매달리더니 갖은 교태를 섞은 말투로 몸을 비비며 말했다. 남자는 그런 그녀의 가운 안으로 불쑥 손을 넣더니 커다란 유방을 마구 비비기 시작했다. 유방이 출렁이며 허옇게 드러나고 입고 있던 가운의 절반이 미끄러져 여자의 상체가 죄다 노출되었다. 진철이란 보스는 다른 손을 여자의 가운 밑으로 집어넣어, 유방을 비비던 박자에 맞추는 것처럼 가랑이 사이를 만지기 시작했다.
“아앙……, 시, 신경 쓰인다면서 여기서 이러면 어떻……, 아앙…….”
세희는 화들짝 놀라 눈을 꼭 감아버렸다. 괴로워서 죽을 거 같았다. 살아 있는 건 좋은데, 이런 짓거리까지 보고 들어야 하니 참으로 괴롭기 짝이 없다. 한번 살짝 눈을 뜨자 어느 사이 가운을 벗어버린 남자의 상체가 적나라하게 보여서 눈을 다시 질끈 감아버렸다. 잠깐 뜬 사이 눈에 들어온 상체의 문신은 흉측하기 그지없었다. 세희는 울 것 같은 기분으로 몸을 움츠렸다.
똑똑.
그 때였다. 노크소리가 났고, 문 너머로 예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지운입니다. 계십니까?”
“들어와.”
보스는 윤정을 애무하는 손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지운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은 상체를 다 드러내고 있는 보스와 그 정부의 작태는 물론, 여자의 간드러진 신음소리에도 하나 변함이 없었다.
“청룡파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보스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는 여자의 몸에서 타액에 젖어 번들거리는 손가락을 떼고 가운을 고쳐 입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지운에게 뭔가 말하더니 바로 방을 나가려고 하다가, 생각난 듯 고개를 돌려 세희를 봤다.
오싹.
세희의 몸이 빳빳하게 굳어질 정도로 차가운 시선이었다.
“저거, 처리해.”
순간, 세희는 아까부터 자신을 괴롭히던 다리 저림조차 잊었다.
“하지만…….”
“여기가 안 되면 장소를 옮기면 되잖아. 이번 분쟁이 해결되면 바로 처리해.”
보스의 목소리에는 동정심 따위는 코딱지만큼도 묻어 있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지운은 조용히 대답했다.
세희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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