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8


불가항력의 결말





1




이거, 꿈일까?

세희는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의 한 장면보다도 더 현실감 없는 광경이 그녀의 눈앞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외근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던 중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보통 봄이라고 불리는 3월임에도 싸늘한 바람이 아직도 코끝을 얼리며 스쳐간다. 봄이랍시고 얇게 입은 옷 사이로 바람이 스며 들어와 세희는 몸을 움츠리면서 걷고 있는 중이었다.

사람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지름길. 무릎까지 오는 스커트 정장, 누가 봐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회사원의 모습으로 그녀는 회사로 돌아가는 길을 바삐 걷고 있었다. 보고만 마치면 오늘은 일찍 퇴근할 수 있겠구나 좋아하면서.

그런 그녀를 갑자기 절망으로 떨어뜨린 것은, 고막을 강하게 진동시키는 폭발음.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강렬한 음향효과, 그리고 영화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잔혹한 광경이 고막과 망막을 동시에 침범해 들어왔다. 마치 슬로모션과 같은 느낌으로 천천히 펼쳐진 광경은 그러나,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타앙!



그 소리와 거의 동시에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검은 벤츠에서 내려온 중년 남자의 머리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광경이었다. 그것은 실로 명쾌하고 잔혹한 장면이었다. 피 보라가 일고 남자의 뇌수가 파편이 되어 흩날리나 했더니 즉사한 남자의 몸은 싸늘하게 굳어진 고기토막처럼 푸욱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순간, 세희의 머릿속은 하얗게 굳어져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굳어진 눈동자를 천천히 움직여 쓰러진 남자의 저편으로 눈을 돌렸다. 그 순간, 비명을 올리려던 입술은 그대로 굳어져 화석처럼 변했고, 그 저편에 서 있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 순간, 꼼짝할 수조차 없어져버렸다.

날카롭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눈.
저런 눈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심연 그 자체 같은 깊은 눈.

그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아직도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권총이었다. 이젠 시체가 되어버린 남자를 습격한 바로 그 권총임에 분명했다.

코에 화약 냄새가 스며들어왔다. 숨쉬는 것조차 잊은 채 멍하니 서 있는 그녀에게 남자가 미끄러지듯 다가온 건 그 다음 순서의 일이었다. 아주 당연한 절차라는 듯 남자는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미처 뒤로 물러서기도 전에 배에 강렬한 충격이 느껴졌고, 머릿속 전체가 까맣게 변하며 우지끈 흔들렸다.

세희는 곧바로 암흑의 세계로 밀려들어갔다.







이런 메스꺼움은 처음이었다. 단순히 속이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온 몸이 파도에 흔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다. 연옥에 몸을 맡긴 것처럼 느껴졌다. 세희는 시체처럼 굳어져버린 듯한 손발을 움직이려고 노력했지만 감각조차 없었다. 그런 찰나, 구역질이 엄습하나 했더니 이내 위액이 넘쳐 나왔다. 이렇게나 기분 나쁜 경험은 처음이었다. 술을 마시고 하는 오바이트는 아무 것도 아니었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분명히 눈꺼풀은 들어올린 것 같았는데, 눈앞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귀에는 윙 하고 어렴풋한 소음이 느껴질 따름이었다. 방금 토해낸 위액 때문에 시큼한 냄새가 코의 점막을 간질였다. 세희는 몸의 힘이 풀리는 걸 감지하면서 다시금 머리를 몽롱함 속에 내어맡겼다.






 
“우욱!”

그것이 언제인지 모른다. 얼마나 졸았던 건지. 구역질을 한 다음 순간이었을까? 아니면 그 뒤로도 상당시간이 흐른 뒤일까? 그건 아니란 생각이 든 이유는, 아까의 칠흑 같은 어둠과는 완전히 상반될 정도의 눈부신 빛이 그녀의 눈동자를 강하게 공격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그녀를 깨운 것은 갑작스럽게 옆구리를 덮쳐든 격심한 통증이었다. 세희는 또 다시 위액을 토해냈다.

“일어나.”

동정심, 아니 일말의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고압적인 음성이 머리 위로 내려왔다. 세희는 숨을 가쁘게 내쉬면서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빛을 등지고 검게 실루엣이 되어 비친 것은 젊은 남자의 몸이었다. 세희는 눈을 몇 번이고 깜박이며 남자를 고쳐봤다. 부인할 필요도 없이 그녀가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 본 사람, 총을 든 젊은 남자가 눈앞에 서 있었다.

“어떻……, 흐읍!” 

다시 한번 극심한 통증이 복부에 밀려들어왔다. 남자의 발이 그녀의 배를 정확하게 걷어찬 것이다. 그리고 또 한번.

“악!”

아까 한 생각을 취소하고 싶었다. 아까의 불쾌함은 딱 불쾌함일 따름이었다. 고통이란 바로 이런 거란 생각이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쳐가기도 전에, 다시 한번 위가 뒤집힐 것 같은 통증과 이물감이 온몸을 치고 올라왔다. 세희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아까 못다 뱉어낸 위액과 피를 연달아 토해냈다.

머릿속으로 마구 필름이 감겨 돌아갔다. 저 남자가 왜 나를 걷어차는 건지 그 이유를 격통 속에서 마구 헤집었다. 그리고서야 자신의 귀를 태울 듯이 건드린 총성과 눈앞에 펼쳐진 끔찍한 피의 광경을 기억해 냈다. 그리고 잔혹한 눈동자와 길고 건장한 몸. 그 손에 들려 있던 검은 권총까지.

남자는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차가운 눈길에 세희는 몸을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떨었다. 다시 한번 구토감이 치밀어 올라왔지만 목구멍 언저리서 딱 멈춰버렸다. 세희는 남은 기력을 다해 입을 열었다. 마지막 오기였다.

“당신……, 누구죠?”

남자는 어이없다는 듯 입가를 아주 슬쩍 들어올리더니, 세희의 앞에서 무릎을 굽히고 몸을 수그려, 그녀의 얼굴을 끌어올려 시선을 마주보게 했다. 그 과정을 통해 세희는 자신이 단단한 밧줄로 묶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희는 몸을 꽁꽁 묶인 상태인 채, 그가 하는 대로 얼굴만 들어올려 상대를 응시했다.

“아가씨 이름은?”

남자는 입술을 최소한도로 움직여 낮게 읊조리듯 물었다.

“현……, 세희.”

세희는 이번에야말로 남자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대답했다. 목구멍이 뻑뻑한 기분이 들었지만, 되도록 또렷하게 소리 내려 노력하면서. 남자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응시하더니, 붙들고 있던 턱에서 손을 뗐다. 그 반동으로 세희는 힘을 잃고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것이 권총이란 사실을 깨닫고, 세희는 온몸을 비틀며 밧줄에서 벗어나려 애를 썼다.

“좋은 눈을 가진 아가씬데 안됐군. 죽어 줘야겠어.”

남자는 손수건으로 권총을 닦으면서, 일상에서의 대화를 하듯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가 너무나 태연해서, 세희는 정말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권총을 닦는 걸 마친 남자가 오른팔을 치켜들어 자신에게 겨눴을 때는, 짜내지 않아도 비명이 입에서 터져 나오고 말았다.

“안돼요! 나, 난 죽으면 안돼요! 난 죽으면 안 된다고요!”

집에 자신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식구들, 중학생인 여동생과 폐휴지를 팔아 생계를 꾸리시던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여상 졸업자치고는 좋은데 취직했다고, 그래도 예전처럼 고생하지는 않을 거라고 얼마나 좋아했던가. 할아버지를 더 이상 이렇게 고생시키지 않을 거라고 얼마나 장담했었던가.

남자는 훗, 하고 한심하단 듯 웃었다. 몸의 피가 죄다 얼어붙을 것처럼 차가운 웃음이었다. 세희는 절망적인 기분으로 남자가 하는 말을 들었다. 빠르게 뛰던 심장은 그 웃음을 본 순간부터 차라리 그 속도를 늦춰 경직되어 갔다.

“그쪽을 살릴지 죽일지는 내가 결정해. 그 때 하필 그 자리에 있었던 자신을 원망하시지, 어린 아가씨.”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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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8'

Lian

2004.03.26 22:06:31

정크 님, 담 편 빨리요. 아니, 어쩜 요런 장면에서 딱 끊어버리실 수가 있죠? -_ㅜ
혹시 sm적인 게 나오는 걸까나..요? (흑심 흑심)

꼬맹이

2004.03.26 23:28:37

빨리~ 담편을 달라~ 달라~ 아...숨 넘어 갑니다 ㅠ.ㅠ

코코

2004.03.27 00:13:53

호오~ 좀 더 잔인하게!

리체

2004.03.27 00:35:35

아..야한 것만이 19금이 아니군..;; 저런 뇌수 터지는 운운도 호러..하드고어도 그런 거구낭..ㅎㅎ

Junk

2004.03.27 02:06:40

ㅠ.ㅠ

larissa

2004.03.27 07:44:04

으으 잠 못자겠어요.. ㅠㅠ

신혜원

2004.03.27 11:37:11

위의 리체님 말씀처럼 야한 것만이 19금은 아니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중입니다. ^^;
레벨 업되자마자 19금방 찾아온 응큼한 처자;

석류

2004.03.31 03:32:58

코코님에 한표! 좀 더 잔인하고 잔혹하게!!!!!! 오~피바다여~

참새

2004.04.03 20:43:04

기대기대 기대됩니다~ 홍홍홍

마리

2004.04.11 20:22:37

에구..가슴이 콩당콩당 뛰어요.. 이거 말로만 듣던 하드~모라는 건가요?

미야

2004.05.02 16:56:53

음..설마 이 남자가 주인공?
이거 흥미진진한데..

소야

2004.07.11 17:02:51

음...역시 19금은 뭔가 다르네요...

정이

2004.07.16 11:18:59

정말로..

프로니아

2004.07.18 22:46:58

음냐~
하드고어스릴러슈퍼에로틱!!!!이길..

에머랄드

2004.07.30 16:46:45

와!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담편 빨리 봐야지...

한가한 여자

2004.09.09 00:04:45

삐리리 좋아하는 이여자가 오늘에서야 이방을 알았습니다.
아이고 이때까지 뭘했실꼬!!!!

빨간도깨비

2005.07.19 05:09:43

여기에서 끈어졌지만, 그나마 다행인것은 저는 바로 다음편을 볼수 있다는 것이죠.

나여

2005.07.19 13:31:17

회원이 되니 이런 특권도 주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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