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8


12. 추리





“그 말은 내가 범인이란 뜻이에요?”

고선영의 반문에, 민형은 확신어린 말투로 대꾸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아하하하!”

갑자기 고선영이 큰 소리로 웃어젖혔다.

“너무 웃겨서 말이 안 나오네. 잠시만 기다려요. 나 커피 좀 더 갖고 올 테니까. 어이없는 말을 들었더니 이상하게 웃음이 나오네?”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일어서서 빈 머그잔에 커피를 채우기 위해 방 한구석에 향했다. 차분한 동작으로 커피를 내리는 그녀의 뒷모습이 반쯤 벽에 가려진 채 눈에 들어왔다. 윤희는 그녀가 도망치지나 않을까 걱정되어 그녀의 반쯤 가려진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지만, 민형은 조용히 앉아 있을 따름이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윤희는 안절부절 못했다.

이윽고 침묵을 뚫고 컵을 든 고선영이 돌아왔다. 그녀는 컵을 일단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내가 왜 그런 짓을 했다고 생각하죠? 내가 뭐 하러 오 교수님 일에 참견했을 거라 생각하는 거예요?”

“오 교수님을 좋아하니까요. 아니, 사랑한다는 말이 더 어울리려나?”

민형이 직설적인 만큼 차가운 말투로 대꾸했다. 하, 하고 고선영은 웃더니,

“그래요, 내가 범인이었다 치죠. 내가 오 교수님을 좋아했다고 쳐요. 교수님이 나쁜 조직에 가담하는 건 싫었다고 치고요, 근데 난 어째서 안 교수님을 노리지 않았을까요? 오 교수님이랑 애인인 안 교수님이 무지 미웠을 텐데. 안 그래요?”

“그러니까 직접적으로 노리지 않은 겁니다.”

민형이 거침없이 대답했다.

“죽이는 대신 안 교수님에게 뒤집어씌울 생각이었겠죠.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꺼림직 했겠죠, 조울증이 있는 오 교수님을 생각하면. 안 그렇겠습니까? 몇 년 전에 딸을 잃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분입니다. 애인까지 사고로 잃으면 오 교수님이 어떻게 될지 빤히 보이셨을 텐데요?”

고선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대신 윤희가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난 도무지 모르겠어…….”

“첫 번째 사건은 정말 충동이었어. 밤에 성유리와 만나 조직 일로 싸우게 됐고 그만 꽃병을 갖고 성유리 씨를 내리쳐버렸지. 지문을 전부 닦아내고 열쇠를 죽은 사람 손에 쥐어준 다음, 알다시피 작은 자석을 빗장 홈에 끼워서 그 방을 밀실로 만들었어. 그 일 이후, 고 조교님은 안 교수님을 범인으로 몰 계획을 세웠지.”

“함부로 범인으로 몰아세우지 마요!”

고선영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누구나 가능한 거 아닌가요? 왜 말도 안 되는 억측으로 남을 범인으로 모는 거야? 누구나 가능한 첫 번째야 그렇다 치고, 두 번째는 뭐죠? 나는 그 때 분명 알리바이를 갖고 있어요. 그리고 오 교수님이 쓰러졌을 때도 난 연구실에 있었단 말이에요. 같이 있던 증인도 있다구요. 그건 어떻게 설명할 건가요? 남의 학교에 멋대로 들어와서 이런 얘기를 늘어놓다니, 부끄럽지도 않아요? 네?”

“아주 간단한 트릭이죠.”

비꼬는 말에도 민형은 전혀 기죽지 않고 미소도 잃지 않았다.

“두 번째 사건 때, 고 조교님은 점심을 먹고 돌아오자마자 오 교수님께 커피를 타다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남안진 선생님이 쓰러진 건, 수업 시작 후 약 15분 정도 지나서 있었던 일이죠. 그 때 고 조교님도, 오 교수님과 안 교수님도 수업이 없어서 연구실이나 도서관에 있었던 참이었습니다.”

“그래서요? 내가 독을 어떻게 탔다는 건데요?”

“간단합니다. 독을 넣어둔 게 아니라 미리 독을 넣어둔 병을 원래 있었던 병과 바꿔치기했던 거죠. 똑같은 상표의 병을 말입니다.”

“말도 안돼!”

고선영이 외쳤다.

“그 병은 남 교수님 가방 안에 들어 있었단 말이에요. 그걸 무슨 수로 들키지 않고!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공범자가 있으면 얼마든지.”

민형이 대꾸했다.

“공범자?”

윤희는 중얼거렸다.

“그래, 공범자. 범인이 남 교수님의 주의를 끌고 있는 사이에 누군가 딴 사람이 병을 바꿔버리면 그걸로 끝. 아주 간단하지?”

“그래, 공범자가 누구라는 건데요?”

고선영이 비웃듯이 물어왔다.

“민선희 교수님 아니면 강남규 교수님이었겠죠. 민선희 교수님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강남규 교수님 차에 발신기가 붙어 있던 걸로 봐서요. 손을 잡지 않은 사람 쪽을 감시하는 게 상식이겠죠. 민선희 교수님이 범인 편이면 강 교수님 차에 발신기를 붙이는 게 한층 수월해질 것이고 다른 교수님들 상황을 파악하는 것도 그리 힘들지 않았을 겁니다.”

고선영은 코끝으로 훗, 하고 웃어넘겼다.

“그래요. 공범자가 있었다고 쳐요. 그렇다고 단지 얘기하고 있는 동안 남 교수님이 가방을 놓고 있었다고 확신할 수 있어요? 보통은 들고 얘기할 텐데.”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저 얘기할 뿐이라면. 하지만 남녀가 둘이서 뭔가에 열중하고 있었다면……, 예를 들어 키스하고 있었다면 경우는 달라지죠.”

“키스?”

아까부터 바보처럼 되묻고만 있던 윤희였지만 이번 반문은 유난히 컸다.

“뭐야? 남 교수님과…….”

그녀는 깜짝 놀라 민형과 고선영을 번갈아 보았다.

“조교님과 남 선생님이 같이 영화를 보거나 식사하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더군요. 이건 경찰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아까 그러셨죠. 연애란 게 꼭 좋아하는 사람과 하게 되는 건 아니라고요. 조교님이 바로 그런 연애를 하고 계셨던 건 아닙니까? 마음으론 오 교수님을 좋아하면서 실제로 사귀고 있던 사람은 남 선생님이었던 거죠. 거기엔 물론 의도가 있었겠지만.”

“억지에요. 그야 나하고 남 선생님하고 몇 번 만난 건 사실이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죠? 그걸로 억측을 하다니 너무하지 않아요?”

그녀는 민형과 윤희를 호소하듯 바라보았다.

“생각해 봐요, 만일에 남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가기 전에 바로 그 자리에서 물을 마시기라도 했다면 어떻게 하려고 누가 그런 짓을 했겠어요?”

“그러니까 점심시간 후로 한 겁니다. 점심을 먹고 이미 물도 식당에서 마신 그 다음에 일부러 페트병을 꺼내 물을 마실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요.”

“근데 그게 왜 하필 나죠? 안 교수님이 그럴 수 있단 생각은 못해봤어요? 안 교수님도 남 교수님과 친밀한 사이였을 지도 모르고, 공범을 이용해서 독이 든 병으로 바꿔치기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바로 지금 한 말이 목적이었잖습니까.”

민형의 목소리가 차갑게 낮아졌다.

“모든 죄를 안 교수님께 뒤집어씌우려는 게 범인의 목적이었죠. 그러니까 안 교수님이 의심받을 시간대에 일을 해치울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이봐요, 어쨌든 난 알리바이가 있단 말이에요. 다른 학생들이랑 같이 있었다구요. 내가 그 시간에 남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을 거 같아요?”

“둘이, 아니 남 선생님 생각에 둘이 애인 사이였으니 충분히 가능하죠. 범인은 중요한 서류를 건네줄 테니까 연구실 바로 밖에 있는 복도에서 보자고 했던 겁니다. 중요한 서류란 말에 남 선생님은 바로 달려왔습니다. 사람 눈에 띄지 않게 그쪽에서 주의해가면서요. 아니, 외려 범인보다 더 주의했겠죠.”

“중요한 서류란 게 뭐야? 혹시…….”

윤희가 조심스럽게 묻자, 민형은 끄덕였다.

“네가 생각하는 그것과 같은 종류의 서류일 거야. 뭐냐면……, 대학부정입시에 관한 서류……였겠지.”

고선영의 눈이 더 이상 그럴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오늘 이 사건을 맡고 계신 형사 분을 만났습니다. 첫 번째 피해자인 성유리 씨, 두 번째 피해자인 남안진 선생님, 그리고 네 번째 피해자인 명일훈 씨까지 모두 Y대와 E대의 부정입시를 알선하고 있었던 모양이더군요. 남 선생님 자택에 있는 금고에서 그 커미션으로 받은 돈이 발견되었다고 하던데요?”

고선영의 얼굴이 눈에 띄게 창백해져갔다.

“점성술이나 연금술에 취미가 있는 민선희 교수님이 재미삼아 갖다 붙인 다윗의 별, 그 숫자를 맞출 생각이었는지 다섯 명은 오준호 교수님을 그들의 조직에 끌어들이려고 했습니다. 머리가 좋은 오 교수님을 끌어들이면 좀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지도 모르고요. 암튼 오 교수님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걸 알고 조교님은 자기가 움직여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고선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비교적 만만한 성유리에게 먼저 접촉을 시도했죠. 그렇지만 그 접촉은 설전으로 이어져서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그게 첫 번째 사건이 일어난 날의 일입니다. 그 후, 조교님은 남 선생님에게 자신이 오 교수님을 설득한다고 말하고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서류를 건네준다는 핑계로 만나 독을 든 병으로 바꿔치기했습니다. 그게 두 번째 사건이죠. 그 때 공범으로 끼어든 민선희 교수님의 발목을 결정적으로 잡을 수 있었던 건, 아마 부정입시에 의한 커미션을 물고 늘어졌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계속해요.”

고선영이 조용히 말했다.

“세 번째, 유진영 양 사건 때 마침 조교님은 교수들의 단골집에 가 있었어요. 민선희 교수님한테 강남규 교수가 저지른 일과 그 시체를 처리할 거란 얘기를 듣고 조교님은 그들을 겁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두 사람이 시체를 놔두고 현장에서 사라진 걸 발신기로 확인한 다음, 조교님은 바로 현장에 찾아가 가슴에 칼로 별을 그렸죠. 이미 죽은 시체를 찾아가다니, 괴로우셨을 겁니다.”

윤희는 그 장면을 상상하고 끔찍해졌다.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 굳어져 있는 진영에게 다가가 칼을 꺼내 그림을 그리는 여자의 모습. 한마디로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다. 어떤 감정으로 그런 짓을 했을까?

“명일훈 씨의 경우는 성유리 씨가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용의자 전원에게 범행이 가능했기 때문에 동기를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민형은 계속했다.

“아마 명일훈 씨는 애인인 성유미 씨로 인해 그 언니 성유리의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겠죠. 그러다가 그쪽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걸로 협박을 시작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돈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그 일로 명일훈 씨를 죽일 결심을 하게 되었고 그리고 실천했던 거죠.”

고선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윤희도 잠자코 민형이 마지막 사건, 오준호가 쓰러진 일에 대해 설명해 주기를 기다렸다. 그 당시 오준호와 함께 있던 사람은 안미주 교수뿐이었다. 대체 고선영은 어떤 방식으로 각성제를 손에 넣었을까.

“그 각성제는 명일훈 씨 것 아니었습니까?”

민형이 말했다.

“형사님 말로는 명일훈 씨가 갖고 있던 소량의 각성제와 오준호 교수님의 몸에서 검출된 각성제의 성분이 완전히 똑같았다던데요.”

“그치만……, 각성제를 어떻게 마시게 한 건데? 그건 좀 무리가 있지 않아?”

윤희가 조그맣게 묻자 민형은 “무리가 있어 보이지.” 하고 대답했다.

“오준호 교수님은 따님이 죽은 이후로 내내 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어. 약에는 물론 캡슐형태도 있었지. 범인은 캡슐의 내용물을 각성제로 바꿔뒀던 거지. 설사, 약을 먹었다고 해도 캡슐이 녹을 때까지는 시간에 걸리니까. 설마 식사 후에 늘 먹던 약이 각성제로 바뀌어 있으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을 테니까. 즉,”

민형은 고선영을 똑바로 응시했다.

“범인은 오준호 교수가 캡슐로 된 약을 식후에 언제나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인물에 한정될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고선영은 민형을 마주본 자세로 이번엔 그쪽이 질문을 던졌다.

“혹시 오 교수님이 안 교수님과 같이 있지 않았다면 또 모르겠지만, 당신 추리는 무리예요. 안 교수님을 범인으로 모는 것도 무리가 있지 않겠어요? 오 교수님이 혹시라도 죽어버렸다면 그쪽 얘기는 말이 안 되게 된다구요.”

“말씀드렸잖습니까. 범인에게 오 교수님을 죽일 생각 같은 건 없었다고. 목적은 오 교수님을 용의선상에서 제외시키고 같이 있던 안 교수님을 범인으로 몰아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거야말로 억측 아닌가요?”

“아뇨. 이유 없이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민형의 어조는 단호했다.

“그게 아니면 오준호 교수가 쓰러지셨을 때의 상황이 말이 되질 않으니까요.”

“뭐가?”

윤희가 묻자, 민형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별, 말이야.”

“별?”

“그래, 별. 그 때까지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반드시 뿔 하나가 부족한 별이 그려져 있었어. 그런데 오준호 교수님의 경우에만 그게 없었지. 만일 범인이 현장에 있었다면, 그래서 오 교수님에게 살의를 갖고 범행을 저질렀다면 거기엔 역시 육각형의 별이 그려져 있었을 거야. 덧붙여,”

민형은 한 호흡 쉬고 말을 이었다.

“범인은 오준호 교수님이 안미주 교수님과 함께 있을 때를 노렸던 겁니다.”

고선영이 토해내듯 마지막 힘을 짜내어 물었다.

“증거는요?”

그녀는 어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증거가 없으면 그쪽 생각은 다 무용지물이 돼요. 증거가 있나요?”

“글쎄요. 있을 겁니다.”

민형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연구실 책상 위에 있는 물건 하나를 집어 들더니 그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있군요. 바로 여기.”

그는 고선영에게 물건을 내밀었다. 그것은 작은 자석이었다.

“첫 번째 사건에서 쓴 자석입니다. 이것과 빗장 홈을 이용해서 학생과 사무실을 밀실로 만들었어요. 맞죠? 하지만 현장은 한동안 경찰이 감시하고 있어 용의선상에 있는 조교님으로서는 안에 들어가는 게 무리였습니다. 들어갔을 때도 옆에 형사가 줄곧 붙어 있었으니 노골적인 짓을 할 수도 없었구요. 그런데 오늘 낮에 제가 들어갔을 때는 이미 자석은 없어져 있더군요. 때마침 현장에 들른 형사님께 여쭤봤습니다. 경찰이 치운 건 아니라던데요? 언젠가 심리학책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범인이 범행도구를 버리는 일은 드물다고 적혀 있었죠. 그래서 전 범인이 자석을 가져갔다면 아직까지 그걸 갖고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자석을 보니 그 이론은 옳은 것 같군요.”

고선영은 자석을 보더니 벌떡 일어서서 창가로 걸어갔다. 대조적으로 민형은 소파에 몸을 내리고 어떤 행동을 했다. 그 동작은 워낙 빨라 고선영의 뒷모습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던 윤희조차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였다. 고선영이 말했다.

“그건 과 사무실이나 연구실마다 다 쓰는 자석이에요. 한꺼번에 가져와서 나눠주거든요? 그게 증거물이라면 이 학교 사람들 전체가 범인이란 뜻이 되겠네요.”

민형은 자석을 손에 감싸 쥔 채 싱긋 웃었다.

“이 자석, 위에 붙어 있는 플라스틱 안쪽에 제조번호가 새겨져 있습니다. 자석마다 제조번호가 다 틀리죠. 모르셨습니까?”

고선영은 잠시 동안 창가를 내다보며 침묵하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한 자세로 밖을 내다보고 있던 그녀는 마침내 몸을 돌리고 쿡 웃음을 터뜨렸다.

“바보짓을 했네요. 그 자석 진작 버릴 것을.”

민형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자수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고선영은 그의 말에는 대꾸하지 않았다. 윤희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뚫어지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고선영은 미소 지으며 천천히 창가에서 이쪽으로 걸어와서는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윤희들 앞에 버티고 섰다.

“졌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그들 앞에 주저앉았다. 순간, 윤희의 머릿속에 이상한 예감이 스쳤다. 저 사람, 새로 커피를 가져온 이후로 한번도 입을 댄 적이 없다!

하지만 그녀가 고선영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그만둬요!”

소리 질렀을 때는 고선영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자기 몫의 커피를 단숨에 마셔버린 뒤였다. 때마침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났다.

“어떻게 된 거야! 기다리랬잖아!”

연구실로 뛰어 들어온 것은 치현을 비롯한 형사들이었다. 그들의 눈에, 커피 잔을 입에서 뗀 고선영과 얼굴이 파랗게 질린 윤희, 그리고 침착한 태도로 자리에 앉아 있는 민형이 보였다.

“어째서…….”

고선영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어떻게 된 거지? 난 분명 독을……!”

그 때 민형이 차분한 태도로 자기 앞에 놓여 있던 컵을 집어 들더니 연구실 한쪽 구석에 있는 세면대로 가서 부어버렸다. 그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기지 않고 커피를 죄다 흘려보내더니 물을 틀어 빈 컵을 세면대에 담그고 돌아왔다.

“너……?”

윤희가 묻는 말에 민형은 대답하지 않고 고선영을 태연히 응시했다.

“절대 죽게 놔두지 않을 겁니다.”

‘두 번 다시.’ 라고 그가 작게 덧붙인 것 같기도 했지만 확실치는 않다.

다리가 풀렸는지 고선영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그 자세 그대로, 경찰이 다가와 그녀의 팔목에 수갑을 채울 때까지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윤희의 눈에 왠지 모르게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고선영의 모습에 경원 선배의 얼굴이 오버랩 되었기 때문일까.

어째서 잡혀가는 범인들의 모습은 저토록 한결같이 슬퍼 보이는 걸까.

그 때, 옆에서 휴지가 내밀어졌다.

그 휴지를 받아들고 눈에 대고 있는데, 갑자기 단단한 팔이 그녀의 어깨를 휘감아 끌어당긴다. 민형이었다. 윤희는 조용히 힘을 뺐다. 팔만큼이나 단단한 어깨에 머리를 갖다댄 채, 그녀는 한동안 같은 자세로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13. 그리고 사건은 계속된다, 로 계속.




저 왜 이러죠? 이것만 쓰면 정말 습작은 안 쓰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니까 책으로 내도 괜찮을 글을 써 보겠다고 그리 다짐했건만, 갑자기 너무너무 붉은 다이아몬드 속편이 쓰고 싶은 겁니다. 생각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걸.

생각해 둔 로맨스가 스물 다섯 개를 넘기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있습니다. 새로 생각난 스토리는 반드시 전 스토리와 합친다던가, 전에 생각해 둔 것 중 시원찮은 건 약간 써보고 안되겠다 싶으면 폐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정말 꼭 이렇게, 이렇게ㅡ



* Junk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5-09 11:09)

댓글 '15'

ciel

2004.09.04 00:27:37

쓰고 싶은 것은 쓰시는 것이 좋은 겁니다.
이번 이야기도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민형이에게서 코난이 느껴지는 것은 저 뿐일까요...?;;; (명탐정 코난을 좋아한다)

Junk

2004.09.04 00:29:59

앗. 저 코난 무지 좋아합니다! 영광이라는... 그치만 코난보다는 김전일이랑 더 닮지 않았나요? 음, 스토리가 너무 단순해서 그건 아닌지도...;

ciel

2004.09.04 00:34:53

'절대 죽게 놔두지 않을겁니다' 라는 대사가 진짜...
전일군이랑은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면이. 게다가 민형군은 귀엽잖습니까!! (전일군은 절대로 귀엽지 않음. 네버.)
그리고 붉은 다이아몬드 속편 꼭 쓰세요. (사실 읽고 싶어 죽겠는 사람...;;;) 열심히 와서 볼 겁니다.

리체

2004.09.04 00:56:42

김전일의 꼬랑지 머리가 너무너무 싫은 사람 여기 하나;;;
호호, 민형이 멋지구리해.@@;
글구 쓰고 싶은 걸 쓰셈.^^; 건필!!

Jewel

2004.09.04 01:07:46

윽.. 감히 민형군을~ 전일군에게 ㅠ,ㅠ 정크님 미워요!
인제 민형군을 보내야 할시간이다가오는 군요 ㅠ.ㅠ 슬픕니당.ㅠ,.ㅠ

마리

2004.09.04 01:16:22

흠.. 저두 코난보단 김전일랑 이미지가 더 어울릴것 같네요..
글구 민형은 장동건처럼 생기지 않았을까요? ㅋ..ㅋ

rain

2004.09.04 02:27:33

미래소년 코난을 생각하고 있었다는..술푼야그.

bach101

2004.09.04 08:09:15

rain님 리플 압권! ㅋㅋㅋ
윤희와 투닥거리는 민형이의 모습이 코난이랑 마니 비슷한걸요~~ 코난의 고등학생때의 핸섬한 모습두 민형이와 매치되구~ 전 코난에 한표!
근데 이 시리즈 정말 잼나요~ 맘같아선 정크님께 3탄,4탄,5탄 다른글은 제껴두고 올려주십사 얘기하고 싶지만....
근데 성유리 이름만 나옴 자꾸 딴생각이.. 일테면 이 피해자 얼굴이 그녀와 닮았을까...라는.. 쿨럭 =3

노리코

2004.09.04 08:15:56

rain//동감...ㅡㅡ

Junk

2004.09.05 02:24:55

ciel/ 붉은 다이아몬드 속편을 보고 싶어하시는 분이 계시다니 감동이...ㅠ.ㅠ
리체/ 항상 쓰고 싶은 걸 쓰고 있지만... 그래도 이번엔 뭘 쓸까로 항상 갈등한다는...
Jewel/ 그 대신 조만간 우신이를 다시 만나게 해줄게;
마리/ 헉. 민형이가 그 소릴 들으면 입이 찢어질 걸요?
rain, 노리코/ 하하하^-^;
bach101/ 막상 한꺼번에 계속되면 지루하실 걸요? 게다가 추리물은 더운 여름에 봐야 좋을 것 같아서리...

줌마

2004.09.05 05:39:28

음....음....수없이 미루고 미뤘는데..결국엔..이렇게 늦은 시간에 단박에 읽어내리고 말았네요. 정크님. 제발......그냥 한가을에 읽는 추리소설도 무쟈 맛있을거 같은데..3편을 추석기념 선물로 주시면 어떨까요??? 정파가족들에게 정겨운 풍요로운 선물이 되지 않을까요??? --;;

집시

2004.09.05 11:37:31

찬성 찬성!!
붉은 다이아몬드 속편 읽고 싶어용,...
하지만...
결고 진부하지 않은 진부도 읽고 싶답니다..
민형이는....명탐정 코난의 코난이 변하지 전의 신이치를 닮은 듯한...
아...멋진 신이치....

Junk

2004.09.06 00:20:03

줌마/ 음음, 아마 계속 보면 지루하실 거야요(확신!) 어쩌면 중간에 단편 정도 분량의 번외편을 보여드릴 수도 있겠지만... 그건 본편은 아니겠죠. 맛있게 읽어주신 것 같아서 정말 고맙습니다.
집시/ 신이치 정말 멋지죠...ㅠ.ㅠ 빨리 본래대로 돌아와라~ 란이 불쌍하잖아~

chika

2004.09.06 09:52:19

음...정크님의 설이라면 언제라도, 어느거라도 다 환영입니다. 제발 많이만 주세요.

Junk

2004.09.06 22:36:58

chika님, 처음 뵙습니다.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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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다시 진부한 살인사건, 역시 진부한 연애사건 (11) [7] Junk 2004-09-02
69 다시 진부한 살인사건, 역시 진부한 연애사건 (10) [10] Junk 2004-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