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8


11. 세 번의 면담





오준호는 아직도 중환자실에 있었다.

오 교수를 만나러 간 민형과 윤희가 본 것은 병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둔 의자 위에 힘없이 앉아 있는 안미주 교수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두 사람을 보고 고개를 작게 흔들어 안 된다는 표시를 해보였다.

“면회사절이래.”

“어떤가요? 좀 나아지셨나요?”

“아니, 아직까지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는 걸.”

안미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확실히 아무리 생각해도 각성제 과다복용은 위험한 짓이다. 오준호 본인이 일부러 그랬을 리는 없다. 다른 범인이 따로 있어 오준호로 하여금 마시게 한 것임에 틀림없다고 윤희는 생각했다.

“경찰은 없나보죠?”

윤희는 민형의 눈치 없는 발언을 듣고 쿡 찔렀지만 안미주는 그저 씁쓸하게 웃을 따름이었다.

“아까 갔어. 지겹다 정말. 날 의심하는 모양이야.”

윤희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아팠지만, 민형은 어딘가 차가운 눈으로 안미주를 보고 있었다. 아니,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너희들,”

하고 마치 윤희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안미주가 말을 걸었다.

“나를 쫓고 있었지?”

“예?”

윤희가 깜짝 놀라 반문하자 안미주는 엷게 미소 지었다.

“아니, 꼭 나라기보다 오 교수님도, 그리고 이번 사건에 연루된 다른 사람들도 그래. 지난번에 만난 그쪽은 어쩌면 우리 학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기분이 드는데. 학생인 척 하고 우리를 캐보려고 연구실에도 들르고 한 거 아니니?”

“죄송해요…….”

윤희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안미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괜찮아. 그렇지만 너희들, 이 이상 깊이 파고들지 않는 게 좋을 거 같다.”

“왜입니까?”

그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민형이 물었다.

“너희들까지 위험해질지도 모르니까.”

그 말에 민형은 침착하게 반문했다.

“그럴까요.”

그렇게 말하고 그는 엷게 웃었다.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안미주는 한숨을 쉬었다.

“정말 니네, 어설피 경찰 흉내 내는 거니?”

그렇게 말은 했지만 그녀는 순순히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들은 로비 옆에 위치한 휴게실로 들어가 비치된 의자에 앉았다. 민형이 물었다.

“오 교수님 말인데요, 병 같은 거 앓으셨단 얘기 혹시 못 들으셨습니까?”

안미주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왜?”

“약 같은 걸 복용하시지 않나 해서요.”

“혹시 각성제와 관련이 있을까 생각하는 거 아니니?”

“눈치가 빠르시네요.”

민형의 말에 안미주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약을 드시긴 해. 그렇지만 각성제성분은 아니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어. 오 교수님, 조울증이 좀 있어서. 아는지 모르겠는데, 몇 년 전에 따님이 뺑소니 사고로 죽었거든. 그 후로 좀…….”

그것은 윤희들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군요.”

민형은 잠자코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잠깐만!”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려던 두 사람을 갑자기 안미주가 잡아 세웠다.

“예?”

뒤돌아본 윤희들을 보면서 안미주는 망설이는 표정을 짓더니, 결심한 듯 갖고 있던 백에서 뭔가를 끄집어냈다. 그것은 한 장의 작은 메모지였다.

“이거 오 교수님이 적은 건데, 아직 경찰에겐 넘기지 않았어. 처음엔 별 생각 없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무슨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해. 경찰에 넘겨야 할까? 어떡해야 좋을지 정말 모르겠어.”

받아든 종이에는 이런 말이 갈겨 씌어져 있었다.



알파, 오메가.
반대 극. 야훼 문자.
빈자리 = 나.




“무슨 뜻이지?”

윤희가 메모를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반면 민형은 중얼거렸다.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

그렇게 말하더니 그는 갑자기 쿡, 하는 소리를 흘렸다.

“역시. 역시 그런 거였군.”

그리고 민형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인 윤희를 보고 미소 띤 채 말했다.

“나, 너한테도 확인해 보고 싶은 게 몇 개 있어.”

그 순간, 그가 진상의 대부분을 파악했다는 직감이 스쳤다.









“오늘은 여자친구 엇다 떼어놓고 온 거냐?”

첫 번째 살인사건현장인 학생과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눈에 들어온 인물에게  어딘가 시비 거는 듯한 말투로 치현이 말을 걸자, 그는 몸을 돌렸다. 별로 놀란 표정은 아니었다. 장민형의 놀란 표정을 본다는 건,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만큼이나 희귀한 일인 것이다. 그래서 때때로 뒤통수를 한 대 갈겨주고 싶지만서도.

“좀 있다 만날 건데요. 형이야말로 아직도 여기 볼 일 있으세요?”

민형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내가 할 소리다, 이 놈아!”

치현은 하! 하고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

“너 자꾸 이렇게 사건현장 들락거릴래? 니가 성현이 친구나 정 반장님 아는 사람만 아니었음, 증거고 뭐고 벌써 잡아갔어. 범인은 반드시 현장으로 돌아온다던데, 자꾸 빼지 말고 일찌감치 자수하시지?”

이런 말까지 들으면 화가 날 법도 한데 민형은 그저 피식 웃었을 따름이었다. 그는 치현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방금 열었던 서랍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여기 있던 자석 치우셨어요?”

“아니.”

치현은 고개를 저었다.

“일부러 놔뒀어. 혹시 범인의 꼬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잡을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민형이 미소 지으며 텅 비어 있는 서랍 안을 가리켰다. 서랍 안에 들어 있던, 자석이 들어 있는 철제 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적어 두셨겠죠?”

“당연하지.”

목적어를 생략한 민형의 질문에 치현도 화끈하게 대답했다.

“솔직히 말해봐라, 장민형. 너 범인을 짐작하고 있는 거지?”

“음, 그런 걸지도 모르죠.”

“이 새끼가 지금 장난하나!”

눈썹을 치켜 올리던 치현은 민형이 손에 들고 있는 걸 보고 의아한 듯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검은 표지를 한, 꽤 두꺼운 책 한 권이었다.

“‘연금술’? 너네 학교는 이런 것도 가르치냐?”

“아뇨,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도서관에서 빌린 거예요.”

민형은 대답하면서 들고 있는 책을 배낭에 쑤셔 넣었다.

“그런 거 보지 말고 질문에나 대답해. 니가 생각하는 범인은 대체 누구냐?”

“형이 먼저 제 질문에 대답하면 말씀드릴게요.”

“치사한 놈.”

“제 생각이 맞나 알아보려 그러는 건데요. 싫으세요?”

민형의 말에 치현은 후, 하고 짧게 한숨을 쉬고 시원스레 말했다.

“뭘 묻고 싶은데?”

“살해당한 사람들의 공통점에 대해선데요…….”

민형은 배낭을 고쳐 메며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혹시 부정한 일에 연루되어 있진 않았습니까?”

“부정한 일이란 게 한두 가지냐? 딱 집어 말해 봐.”

“글쎄요, 학교와 관련된 부정한 일이란 뻔하지 않습니까.”

민형이 그렇게 말하자 치현은 팔짱을 끼며 그를 노려봤다.

“너 어디서 알아낸 거야? 나도 오늘서 겨우 입수한 정본데.”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짐작했을 뿐이죠. 근데 맞아요?”

“족집게 새끼. 고시는 뭔 놈의 고시냐? 그냥 청계천 가서 돗자리 깔아.”

치현의 대답에, 민형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한 가지 더 여쭤 볼게요. 형 생각에 말입니다, 오준호 교수와 그 조교 고선영 씨가 별 사이란 생각은 안 들죠?”

“무슨 헛소리야. 오 교수 짝은 안미주 교수인 거 니 놈이 목격해 놓곤.”

“아, 오 교수가 엄청 바람둥이라서 양다리를 걸치거나…….”

“아냐.”

치현은 잘라 말했다.

“그건 아닐 거야.”

“확실해요?”

“확실해.”

“무슨 근거로?”

이어지는 질문에 치현은 ‘좀 믿어라!’ 하는 표정으로 민형을 노려봤다.

“내가 오 교수와 그 조교에게 혈액형을 물었던 기억이 있어. 뭐, 그닥 큰 의미는 없고 혹시 범인이 자기 피를 써서 별을 그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물어본 거였지. 두 번째 사건에서 죽은 남안진 씨는 피 같은 건 한 방울도 흘릴 필요가 없는 독극사였으니까. 게다가 그 때 범인이 현장에 없었을 가능성이 더 높으니 용의자들의 혈액형을 알아둘 필요는 있었다고 생각해서 그리 큰 기대는 안하고 물은 거였는데, 그 때 보니 서로 혈액형을 모르더라고.”

민형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치현의 말을 듣고 있었다.

“보통 애인 사이라면 서로의 혈액형 정도는 알지 않냐? 뭐, 애인이 아닌 경우에도 얘기하다 알 수는 있는 거지만, 적어도 오 교수는 그 조교 아가씨 혈액형을 전혀 모르고 있더라고. 그래서 난 그 조교가 오 교수 알리바이를 일부러 나서서 증명하는 걸 보고도 그 둘 사이에 뭔 일이 있을 거란 생각은 일단 접었지. 참!”

치현이 생각난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오준호 교수의 몸에서 나온 각성제 성분분석이 끝났다.”

“어땠어요? 원래 알고 있던 것에서 더 나왔나요?”

“음. 짐작은 했던 건데. 그 말이지, 실은 명일훈의 집을 뒤졌을 때 아주 소량의 각성제가 발견됐었거든. 그 땐 이 자식 싸구려 놈팡이구만, 그렇게만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이번 결과를 보니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명일훈이 갖고 있던 각성제와 오준호 교수의 몸에서 검출된 것과 성분이 완전히 같은 거라더라고.”

“그렇군요.”

민형이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치현은 본래의 삐딱한 태도로 돌아와서 물었다.

“자, 이제 니가 대답해 봐. 니 놈은 누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민형은 시계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슬슬 윤희와 만날 시간이 되어 가고 있다. 오늘 저녁에는 둘이서 E대에 들어가기로 했다. 알아볼 일이 있긴 하지만 역시 혼자서는 무리였다. 제 아무리 천하의 민형이라도 여대 캠퍼스를 홀로 누비는 건 철판이 뒤집히는 일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는 시계에 신경을 쓰면서 치현의 질문에 대답했다.

“역시.”

치현은 자신의 생각과 맞아 떨어진다는 식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기쁜 것 같은 그의 말투에, 민형은 시계로부터 시선을 떼어 치현을 똑바로 응시했다.

“형도 짐작하고 계셨던 거예요?”

“딱히 논거나 증거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닌데, 오늘 좀 들은 얘기가 있어서.”

“뭔데요?”

민형의 눈이 반짝 빛났다. 치현은 잠시 망설였지만 얘기해 주기로 했다. 녀석에게 또 무슨 도움을 받게 될지 모른다. 원래 이러면 안 되지만, 정 반장님도 이 놈에게만은 어느 정도 기대고 계시는 눈치였지. 그래, 말해버리자.

“흠흠.”

그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 입을 열었다.

“남안진 씨 말인데…….”







윤희들이 노크를 하고 연구실에 들어갔을 때 여자는 책을 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민형이 넉살좋게 인사하자 여자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 옆에 서 있는 윤희를 보더니 그제야 아아, 하고 미소를 지었다.

“저번에 온 그…….”

“네.”

“어떡하죠? 선생님 안 계시는데.”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민형을 조금 놀란 표정으로 여자는 올려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여대다. 교수 외의 남자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곳에서, 그것도 연구실에 들어오는 학생은 거의 없기 마련이었다. E대 교문을 들어서서 이곳에 들어오기까지 정말이지 무수한 여학생들의 시선이 민형을 흘끔거리는 걸 감지했다. 그녀들은 처음엔 민형을 보고 황홀한 표정을 짓다가 그 옆에 윤희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실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얼굴로 변하곤 했다. 그 표정의 의미를 윤희는 잘 알고 있었다. 어머, 여자친구인가? 아냐, 그냥 같이 다니는 거겠지…….

쳇. 나 여자친구 맞단 말이야! 쳇쳇쳇!

“남자친구?”

그러나 눈앞의 여자, 고선영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왔다.

“아, 네…….”

윤희가 대답하자 그녀는 왠지 모르게 쓸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좋아 보이네.”

“예?”

“응, 아아. 좋아하는 사람이랑 있는 티가 확 나서. 연애란 게 꼭 좋아하는 사람이랑 하게 되는 건 아니잖아? 좋아해서 연애하는 사람은 티가 나. 좋아 보여.”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이다. 되게 쑥스럽네. 윤희가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라 멀뚱멀뚱 서 있으려니, 고선영은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살폈다.

“근데 무슨 일로 왔어?”

윤희에게 묻고 있었지만 그녀의 마지막 시선은 민형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이것저것 여쭤봐야 할 게 있어서 왔습니다. 오 교수님 일로…….”

그 말에 고선영은 약간 경계심을 담은 태도로, 하지만 침착하게 물었다.

“무슨 질문인데? 오래 걸리나요?”

“조금 시간을 뺏게 될 거 같은데요.”

민형 역시 침착하게 반응한다.

“그럼 커피 한잔 가져올게요. 아니면 녹차 드실래요?”

“아, 같은 걸로 주십시오.”

“그쪽도?”

하며 윤희에게 물어와, “네.”하고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런 잠시 후 커피가 든 머그 컵을 쟁반에 받쳐 들고 고선영이 다시 나타났다. 윤희는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민형이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윤희의 옆에 앉은 민형이 주머니로부터 종이를 꺼냈다. 오준호가 갈겨 적은 메모지였다.

“이걸 보십시오.”

“응?”

고선영은 종이를 보고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뭐예요?”

“오 교수님이 직접 적으신 메모입니다. 안 교수님이 주웠다고 하시더군요.”

“이걸 왜 나한테 보여주는 거죠? 당신들 혹시…….”

“저희는 오 교수님을 도와드리러 온 겁니다. 교수님은 그 동안 계속 일어났던 살인사건의 범인에게 당해서 지금 병원에 계시지 않습니까. 이 메모에 범인에게 위협이 될만한 게 적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뭐예요.”

고선영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면서 안미주 교수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어설픈 탐정흉내를 내려고 여대까지 들어왔어요?”

“예. 맞습니다.”

민형도 마주 미소 짓고는 차분하게 질문을 던졌다.

“이게 뭘 암시하는지 짐작하십니까?”

“글쎄요?”

“오 교수님이 들어갈 가능성이 있었던 조직입니다. 오 교수님은 범인에 의해서 각성제를 먹고 쓰러지기 직전까지 이 조직에 대해 조사하고 계셨죠. 그리고 범인의 목적은 바로 이 조직과 관계된 모든 사람을 오 교수님으로부터 떼어놓는 것이었습니다. 가령 죽여서라도 말이죠.”

“뭐하러요?”

고선영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뭣 때문에 범인이 그런 짓을…….”

“그 전에, 범인이 시체 옆에 항상 육각형의 별을 그려놓은 건 알고 계시죠? 왜 범인은 그런 짓을 했을까 내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이 범인 외에도 달리 있었을 거란 생각도 했습니다. 즉, 범인이 남긴 메시지를 알아들을 사람이.”

“메시지?”

윤희가 민형을 보며 물었다. 민형은 끄덕였다.

“그래, 오 교수님을 자기네 조직에 끌어들이려는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의 메시지. 그 한편으로 오 교수님의 애인인 안미주 선생님에 대한 원망의 표현이기도 할 테고.”

“무슨 말이에요? 범인은 안 교수님을 노리고 있었단 말인가요? 안 교수님이 당해야 할 일을 오 교수님이 대신 당했단 건가요?”

“아뇨. 분명 범인이 노린 건 오 교수님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생각되는데요. 죽이려던 게 아니라 용의선상에서 제외시키려했던 거죠. 뭐, 이건 중요한 게 아니고……, 전 이 메모에 대해서 말씀드리려던 겁니다.”

고선영은 말없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민형을 보고 있었다.

“시체 옆에 그려져 있던 별은 전부 뿔이 하나씩 모자랐어요. 그리고 그 모자란 부분은 묘하게도 사건마다, 피해자마다 위치가 틀립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땐 오른쪽 아래, 두 번째 땐 왼쪽 아래, 세 번째는 위. 그런 식으로요.”

윤희는 민형이 뭔가를 말하려는지 조금씩 짐작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혹시 그거 점성술이나 연금술 같은 거랑 관련 있는 거 아니니?”

“맞아. 어떻게 알았지?”

민형이 호오, 하고 눈을 가늘게 떴다.

“안 교수님이 말씀하셨어. 민선희 교수님이 그런데 관심 있다고.”

“그렇군.”

민형은 싱긋 웃더니 설명을 계속했다.

“이 육각형별은 연금술에 이용될 때는 별 가장자리에 동그라미와 함께 알파, 오메가 기호나 야훼의 자음문자라 불리는 또 다른 기호가 그려진다고 하더군요. 아, 윤희야. 연습장 한 장만. 응, 고마워. 보세요,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는 윤희가 건네 준 종이에 원을 그리고 그 안에 다윗의 별을 그렸다. 그리고 별 위에는 te, 왼쪽 위에 tra, 오른쪽 위에 gram, 왼쪽 아래에 ma, 오른쪽 아래에 ton. 그런 식으로 죽 이어서 영문을 썼지만 단 한자리, 맨 아래에만은 아무 글씨도 남기지 않았다. te-tra-gram-ma-ton-공백.

“이게 무슨 뜻이야?”

“테트라그람마톤(tetragammaton). 간단히 말하면 영어로 하나님이란 뜻이야. 하나님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네 글자를 이렇게 부른대.”

민형은 윤희의 질문에 대답한 후, 고선영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 맨 아래의 ‘빈자리’가 메모를 적은 ‘나’, 즉 오준호 교수님의 자립니다.”

“자리?”

윤희와 고선영이 동시에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다른 자리도 각각 들어갈 사람이 있죠. 예를 들면 오른쪽 아래는 처음 죽었던 성유리 씨, 왼쪽 아래는 Y대 남안진 선생님, 오른쪽 위는 네 번째 피해자인 명일훈 씨, 그리고 유진영 양의 시체에 그려져 있던 별의 빠진 부분인 맨 위와 하나 남은 왼쪽 위는 강남규와 민선희 교수님 자리였을 겁니다.”



알파, 오메가.
반대 극. 야훼 문자.
빈자리 = 나.




‘나 = 오준호’

그리고 민형은 종이에서 눈을 떼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시선의 끝에 고선영이 자리해 있었다. 윤희의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나머지 다섯 사람은 오 교수님을 조직에 끌어들이려고 했지만, 범인은 그게 싫었을 겁니다. 그 조직은 옳지 않은 일을 하고 있었을 테니까. 안 그렇습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묻죠?”

고선영이 담담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냐는 태도로. 민형은 아직 마시지 않았던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천천히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범인의 감정은 그쪽이 가장 잘 알고 계실 테니까요.”



12. 추리, 로 계속.



너무 정신없이 써서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집중을 하게 놔두지를 않네요.
앞으로 두 편 남았습니다.



* Junk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5-09 11:09)

댓글 '7'

리체

2004.09.02 02:25:58

헉...저 마지막 말을 남기고 다음 편으로 계속이라뉘..ㅜㅜ
점점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야?@@;;
다윗의 별..저런 식으로 해석이 되는군..; 멋져.;
담 편도 언넝언넝..;;

헤라영

2004.09.02 10:47:19

어허 민형이가 ㅇ ㅣ번에두 해내는군여..
다윗에 별.. 듣긴 많이 들었는데 이해가 도통 힘들던데.. 정크님 대단하심다.. 감탄감탄!!
담편두 얼런 올려주실꺼졍. 넘 궁금해여~~~

무니

2004.09.02 10:50:24

넘 가슴 졸이네요..
전 머리가 나쁜지 잘 모르겠는데...
범인이 고선영인가요????
정크님 기냥 오늘 두편 다 올려주심 안되나요???????
정말 궁금한데....

집시

2004.09.02 13:42:48

흥미진진...
그런데 추리소설이나 만화를 보면서 항상 느끼는 거지만..
"난 왜 범인을 모를까?!!"
정말 알고 싶어ㅓㅓㅓㅓㅓㅓㅓ.

Junk

2004.09.03 00:30:18

이번 편은 범인을 추리하기가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단서를 많이 알려드리지 않은 거 같아서요. 3탄은 제대로 하겠습니다^-^;

마리

2004.09.03 01:29:04

정크님이 못쓰시는게 아니구요 제가 이해력 부족이예요..
그래서 추리소설읽고 범인을 찾아내는 사람들 보면 부럽습니다.

Junk

2004.09.04 00:22:29

위로 안해주셔도 되는데...; 단서를 적게 드린 게 사실이거든요^-^;
문서 첨부 제한 : 0Byte/ 2.00MB
파일 제한 크기 : 2.00MB (허용 확장자 :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완결소설은 가나다 순입니다 Junk 2011-05-11
78 불가항력의 결말 - 제 02 편 [14] junk 2004-03-27
77 불가항력의 결말 - 제 01 편 [18] junk 2004-03-26
76 베를린, 1945 [2] 페르스카인 2004-09-30
75 릴레이 소설 : 차가운 약혼 <3> [1] Junk 2009-05-04
74 릴레이 소설 : 차가운 약혼 <2> [5] Junk 2009-02-18
73 릴레이 소설 : 차가운 약혼 <1> [13] Junk 2009-02-15
72 다시 진부한 살인사건, 역시 진부한 연애사건 (13) : 끝 [22] Junk 2004-09-06
71 다시 진부한 살인사건, 역시 진부한 연애사건 (12) [15] Junk 2004-09-04
» 다시 진부한 살인사건, 역시 진부한 연애사건 (11) [7] Junk 2004-09-02
69 다시 진부한 살인사건, 역시 진부한 연애사건 (10) [10] Junk 2004-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