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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98
10. 러브호텔에서 일어난 일
벤츠가 드디어 멎었다.
그에 따라 민형의 EF 소나타도 멎었다.
윤희와 민형의 시선도 멎었고, 이어 그들의 동작도 잠시 멎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어떤 건물의 주차장으로, 그 건물의 정체를 알아차린 윤희는 헉, 하고 난감한 신음을 토해냈다. 옆을 바라보니 민형은 말없이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여기 혹시…….”
윤희가 중얼거리자 민형이 끄덕였다.
“맞아.”
윤희의 낯빛이 파랗게 질렸다. 전반적으로 의뭉스런 기운이 감도는 그 건물은 이른바 ‘러브호텔’이란 곳이었다. 이런 곳에 한번도 들어와 본 적이 업던 그녀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옆에 서 있는 민형의 장신을 올려다봤다. 그들이 사귄지는 굉장히 오래됐지만, 끝까지 가기는커녕 키스 이상의 뭔가를 해본 적은 거의 없었다. 당연히 러브호텔이란, 그들의 일상에서는 머나먼 세계에 존재하는 단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하필 이런 형태로 와보게 되다니, 어이가 없는 한편으로 긴장되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어떡할까?”
윤희는 별다른 감흥 없는 표정을 한 채 말하는 민형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미 오준호 교수와 안미주 교수는 안으로 들어가 버린 상태였다. 그녀는 주먹을 움켜쥐고 방금 굳힌 결심을 토해내듯 말했다.
“가자!”
“오, 후회 안할까?”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대체!”
윤희는 민형의 뒤통수를 다시 한번 가격하고는 차문을 열고 내렸다. 왠지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사건 직후,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두 사람이 저렇게 만난다는 건 아무래도 수상하다는 생각과 함께.
그녀가 안에 들어가자 뒤에서 민형도 따라 들어왔다. 그가 뒤에서 히죽거리는 게 영 얄밉고 껄끄러웠지만, 지금은 그런데 신경 쓸 때가 아니라고 윤희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녀는 호텔 프런트로 척척 씩씩하게 걸어가서 말을 걸었다.
“저기……, 방금 들어가신 분들 말인데요, 저희랑 방금 헤어졌는데 하필 중요한 물건을 놔두고 가셨거든요? 어쩌죠?”
뒤에서 민형이 감탄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프런트 사람이 상냥한 말투로 물어왔다.
“저희가 전해드릴까요?”
윤희는 고개를 저었다. 가슴이 콩당콩당 뛰고 있었다.
“아뇨. 귀중품이라서요. 죄송하지만 제 손으로 직접 전할 수 있을까요?”
“흠, 조금 곤란한데…….”
뒤에서 민형이 끼어들었다.
“그럼 일단 방이라도 옆으로 잡아 주세요. 나갈 때 연락 좀 해주시고요. 지금은 아무래도 방해가 되실 테니…….”
실로 태연자약한 말투였다. 윤희는 방을 잡아달란 민형의 말에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어? 무슨 속셈이냐고! 크게 뜬 눈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는데, 숙박부에 사인까지 한 민형이 그녀의 어깨를 당연한 듯 휙 감싸 안더니 척척 걸어가기 시작했다. 멍하니 서 있던 윤희는 그에게 반 끌려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엘리베이터는 4층에 멈춰져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면서 윤희는 민형의 다리를 걷어찼다.
“어쩔 작정이야?”
“어쩌긴 뭘 어째. 당연히 쫓아가야지.”
민형은 웃으며 주머니에서 디카를 꺼냈다. 언제 저런 건 가져왔던 거지? 윤희는 막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타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나오면 한 방 찍어줄 거야. 두 사람 사이를 증명하는 증거물로.”
자신만만한 민형을 보며 윤희는 뾰로통하게 입을 내밀었다.
“너, 너무 치사한 거 아니야? 파파라치도 아니고.”
“걱정 마. 꼭 필요할 때만 써먹을 작정이니까.”
“플래시가 터지면 금방 눈치 챌 텐데?”
“널 찍는 척 할 거니까 상관없어.”
윤희가 어깨를 들어올렸을 때, 엘리베이터가 4층에 멈췄다. 문이 열리고…….
“……!”
이번엔 두 사람의 눈이 일시에 커졌다.
방금 열린 문 앞에 파랗게 질린 얼굴의 오준호 교수가 서 있었던 것이다.
“교수님…….”
윤희가 깜짝 놀라 입가에 손을 가져갔다.
“응? 누구였더라……? 여긴 뭐 하러…….”
하고 말하며 한 걸음 다가선 오 교수의 표정이 이상했다. 위기를 감지했는지 민형이 윤희를 끌어당겨 등 뒤로 숨겼다. 그 때 갑자기 오준호의 몸이 흔들리는 듯 하더니,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엘리베이터를 강타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였다. 윤희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119에 전화해야겠어!”
민형이 오 교수 쪽으로 몸을 내리며 소리쳤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윤희는 되물었다. 민형은 옆에서 눈을 날카롭게 빛내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을 천천히 돌아보면서 정 반장은 천천히 방금 한 말을 되풀이했다.
“각성제, 라고 했네.”
“각성제요?”
“그래. 오준호 교수의 몸에서 상당량의 메탄페타민과 에페드린이 검출되었다네. 아무래도 각성제 중독 같단 생각이 드는군.”
“상태는 어떤가요?”
민형이 묻자 정 반장은 약간 눈썹을 찌푸린 채 대답했다.
“아직은 위험해. 지금은 중환자실에 있다네.”
“메탄페타민에 에페드린이라면 캡슐이었을 가능성이 높지 않습니까?”
민형의 질문에 정 반장은 바로 수긍했다.
“그렇지. 아마 반입도 먹는 일도 간단했을 걸세. 그건 그렇고…….”
정 반장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두 사람을 보았다.
“어쩌다가 여기 있었지?”
“여, 여기라뇨?”
“러브호텔, 말이야.”
윤희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겉보기엔 무표정한 정 반장이었지만 속으로는 웃음을 감추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거야, 이 아저씨!
“혹시 오 교수를 미행하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예? 그런 건 아니고요…….”
“그럼 왜 하필 여기 있었던 건가? 러브호텔에…….”
하고 말하다가 정 반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참, 자네들 애인 사이였지.”
“그겁니다.”
“그런 게 아니에욧!”
서로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정이원 반장과 민형은, 울그락불그락 한 윤희를 보며 허걱 하고 몸을 사리는 동작을 취했다.
“형사님이잖아요! 어떻게 그런 억측을……. 저희 보세요. 그럴 주변머리가 있어 보여요? 네? 저 무심한 인간한테 그럴 만한 주변머리가 있어 보이냐고요! 우리는 말이죠, 키스도 일주일에 한두 번 할까 말까 한…….”
하다가 윤희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지금 내가 뭐하고 있는 거야?
“괜찮은가?”
정 반장의 말에 이어,
“마누라. 혹시……, 욕구불만이었어……?”
민형의 걱정스런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윤희는 들고 있던 백을 민형을 향해 힘차게 휘둘렀다.
“죽을래!”
민형이 윤희에게 맞고 있는 저편으로 오준호가 쓰러진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한쪽 구석자리에서는 거의 반쯤 울먹이는 얼굴인 안미주 교수가 정 반장과 치현을 보며 사정청취를 하고 있었다. 샤워를 하고 있었던지 그녀의 머리카락은 아직 젖어 있는 상태였다. 안미주가 샤워를 하고 있는 틈을 타서, 오준호는 방에서 나가다가 쓰러진 것이다. 원인은 앞서 정 반장이 말한 대로 각성제 중독.
민형을 한참 때리다가 제풀에 지쳐 고개를 돌린 윤희의 눈에 안미주 교수가 들어왔다. 갑자기 지난번에 만났을 때와 뭔가 다르단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뭐지? 윤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앗!” 하고 손뼉을 딱 쳤다.
“왜 그래?”
“반지.”
민형의 물음에 윤희는 작게 속삭였다.
“나하고 한경이가 만났을 땐 저 교수님 반지 끼고 계셨거든. 난 그래서 약혼자가 있나 했어. 근데 지금 보니까 끼고 있지 않네? 오 교수님이 준 건 아닌가 봐. 오 교수님이 준 거면 지금도 끼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흠.”
민형은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으면서 화제를 돌렸다.
“일단 사건으로 돌아가자. 도대체 누가 각성제를 투여한 걸까?”
“누구라니? 지금 상황에선 아무리 생각해도 오 교수 본인 아니면 안 교수밖에 없지 않아?”
윤희가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웬만한 게 아니라 쓰러질 정도의 양이야. 오 교수 본인이 그랬다는 건 더 말이 안 되고, 만약 안 교수가 그랬다 쳐도 그래. 오 교수가 마시면서 이상한 느낌이 전혀 안 들었겠어? 쓰러질 정도의 양이란 말이야.”
“왜 오 교수가 그랬다는 게 말이 안 되지? 혐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그랬던 건 아닐까? 응? 고의로 말이야.”
“너무 위험하잖아. 지금 오 교수는 중환자실에 가 있어. 그러다 그대로 죽었을 가능성은 생각 안 해봤을까?”
“아무리 그래도 제3자가 그랬을 거 같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머릿속을 반짝인 생각에 아,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이럴 가능성이 있다, 참. 누군가, 제3자가 오 교수가 늘 들고 다니는 마실 것에 미리 각성제를 넣어뒀어. 캡슐처럼 녹을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방식이었겠지. 그 사실을 모르고 오 교수는 문제의 음료를 마신 거야. 맞지? 어때?”
윤희의 말에 민형은 고개를 저었다.
“그 생각에도 무리가 있어. 오 교수가 뭘 마실지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각성제를 집어넣을 수가 있지? 오 교수는 안 교수를 만났단 말이야. 용의자들 중에서도 오 교수와 만날 만한 사람은 정해져 있을 테고.”
“으음, 그럼…….”
“역시 안 교수일까? 그래도 애인한테 각성제를 먹일 만한 사정이 있었던 걸까. 이게 살인사건과 정말로 관계이 있는 건지 아닌지조차 헷갈려.”
“사랑싸움 아닐까? 애증이 교차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는……, 왜 그런 거 있잖냐. 니가 자주 보는 로맨스소설에 나오는 여자들 말이다.”
“야! 로맨스소설에 그런 사람이 누가 나온다고 그래?”
하고 막 소리치면서도 윤희는 머릿속을 데굴데굴 굴려봤다. 나왔던 거 같기도 하다. 여주인공이 아니라 조연 중에서는 그런 정신 나간 사람들도 가끔…….
“응?”
그 때 갑자기 민형의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어, 표성현. 뭐냐? 응? 나 지금 니네 형이랑 같이 있는데?”
민형이 저쪽에서 움직이는 치현을 힐끗 보며 대답한다. 그 광경을 보면서 윤희는 지금 시간이 꽤 늦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민형이 전화를 끊거든 바로 집에 전화해야겠다. 근데, 지금 어디라고 그러지?
“뭐하자는 거야.”
민형과 윤희, 그리고 성현과 한경은 지금 학교 근처에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앉아 있는 참이었다. 심드렁한 표정의 민형, 실실 웃고 있는 성현, 그리고 그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는 여자 둘은 나름대로 화기애애했다.
성현이 사람 좋게 말했다.
“더블데이트 하자고. 좋잖냐? 더블데이트.”
“나, 윤희랑 둘이서 할 일 많다. 니들도 우리랑 있으면 좋지 않잖아? 솔직히.”
“나 너랑 할 일 없는데?”
옆에서 윤희가 한마디 하자, “쯧!” 하고 민형이 혀를 차며 그녀를 노려봤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
친구의 태도에 전혀 개의치 않고 성현이 천연덕스럽게 묻자 민형이 되물었다.
“뭐가.”
“사건 말이야, 사건. 우리도 좀 듣자.”
“공짜로?”
“치사한 놈……. 그래, 오늘은 내가 한 턱 내마.”
“당연히 그래야지. 바쁜 사람 불러놓고.”
그렇게 말하며 민형은 팔짱을 꼈다. 이미 주문은 다 마친 상태였다.
“그럼 정리해 볼게.”
윤희가 말하고 서기처럼 손에 들고 있던 펜을 입술에 갖다대며 수첩을 봤다.
“첫 번째 사건이 일어난 건 4월 20일 밤. 사망추정시각도 제대로 나와 있다. 밀실살인. 지문은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흉기인 꽃병에서조차. 물론 밀실트릭은 현재 풀린 상태라고 할 수 있어. 그렇지?”
윤희가 민형을 보며 자랑스럽게 말하자 그는 약간 쑥스럽게 웃었다.
“두 번째 사건. E대 강사인 남안진 씨가 수업 중에 쓰러졌다. 그가 늘 마시던 물이 담긴 페트병 안에서 치사량의 청산가리가 검출되었다. 페트병에 언제 어떤 방법으로 독을 넣었는가만 현재 알 수 없는 상태임.”
“야, 너 진짜 기록계 형사 같아…….”
그 때까지 듣고만 있던 한경이 감탄했다. 윤희는 그 말에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한번 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
“세 번째 사건인 유진영 양 살인과 사체유기죄의 범인으로 강남규와 민선희 교수가 체포되었다. 두 사람은 살인에 대해서는 자백했지만, 피해자의 가슴에 칼로 그려진 별 모양에 대해서는 모르겠다고 했음. 계속 심문중이지만 동기도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는 상태임.”
“덧붙여 강남규 씨 차 안에서 발신기가 발견됐지.”
민형이 덧붙였다.
“응. 그리고 지겨운 네 번째 사건. 피해자 명일훈은 첫 번째 피해자인 성유리의 동생인 성유미의 애인이었다고 함. 이번 피해자도 두 번째 사건과 마찬가지로 맥주잔을 이용, 청산가리에 의해 독살 당했다고 함.”
“엥? 그건 무슨 소리야?”
한경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그 사람은 첫 번째 피해자 여동생 애인이란 이유로 죽은 거란 말이야?”
“그건 아직 모르지.”
성현이 중얼거리자, 민형이 입을 열었다.
“성유리와 남안진 선생은 아는 사이였다고 해. 그 두 사람을 소개시켜 준 사람이 다름 아닌 오준호 교수였고. 오 교수와 성유리는 애인이었단 소문도 있지만, 이번의 명일훈 씨는 좀 달라. 어떤 연결이 있는 건지…….”
민형이 말끝을 흐리자, 한경이 또 물었다.
“그럼 세 번째 피해자라는 고등학생은 뭐야?”
“그 사람은 뭐가 뭔지는 몰라도 어떤 비밀을 알게 된 게 아닌가 싶어. 그 비밀을 도통 알 수가 없어서 그렇지. 동기도, 그리고 항상 남아 있는 별에 대한 궁금증도 아직까지 하나도 풀리지 않았어. 상당히 특이하긴 한데…….”
민형은 종이를 한 장 꺼냈다. 거기에는 서투른 솜씨로 별이 몇 개인가 그려져 있었다. 그의 그림 실력을 익히 아는 윤희로서는 나름대로 용 썼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피해자인 성유리 때는 오른쪽 아래가 없었어. 두 번째인 남안진 때는 왼쪽 아래가 없었고, 봐, 세 번째인 유진영 때는 위가 없지.”
“뭔가 의미가 있는 걸까?”
윤희가 묻자 민형은 끄덕였다.
“아무래도. 적어도 강남규와 민선희 교수 두 사람이 그 별 이야기를 듣고 겁을 냈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금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어. 적어도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어느 정도 의도된 범죄였다는 걸 증명해주는 거지. 특히 두 번째는.”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세 번째는 예상 밖의 일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즉, 세 번째 살인의 범인은 강남규와 민선희 두 사람이 맞아. 범인은 강남규의 차에 발신기를 붙여둔 다음, 강남규를 미행해 이미 살해당한 유진영 양의 가슴에 칼자국을 냈을 거야.”
“악질이다…….”
한경이 중얼거렸다. 윤희는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 우리는 레스토랑에서 이런 얘길 하고 있는 걸까? 민형은 저런 얘길 하면서도 밥맛이 도는 걸까?
“용의자는 전부 다섯인가?”
그러면서도 이렇게 물어보고 있는 자신은 더 웃기지만.
“첫 번째 사건현장을 가장 먼저 발견한 김영희, 첫 번째 피해자의 여동생이며 네 번째 피해자의 애인이던 성유미, E대 교수인 오준호, 그 조교인 고선영, 거기에 오준호의 애인인 안미주 교수. 그래, 맞아. 다섯이야. 오 교수는 현재 중환자실에 있지만, 윤희 네가 어제 말했듯이 혐의를 벗기 위해 일부러 각성제를 복용하는 그런 짓을 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으니까.”
모두가 끄덕이자, 민형은 한 박자 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그럼 다음은 알리바이인데…….”
민형은 노트를 한 권 꺼내 뒤쪽을 펼쳤다. 거기에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첫 번째 피해자인 성유리가 살해된 게 4월 20일 밤 10시에서 12시 사이로, 발견된 건 다음 날 오전 9시경이었어. 즉 최소 9시간은 시간의 공백이 있는 거라고. 범인이 그 사이에 도망칠 여유는 얼마든지 있었단 얘기야.”
“그래서?”
성현이 반문하자, 민형은 대답했다.
“즉, 첫 번째 사건만 놓고 봤을 때는 용의자 전원이 범행이 가능했었단 거지. 다음으로 넘어가서. 두 번째 사건의 이야기는 정 반장님께 직접 들은 건데, 이 경우 알리바이가 없던 사람은 많지 않아. 오준호 선생은 수업 중이었고, 성유미도 강의를 듣고 있었지. 김영희는 사무를 보고 있었고, 고선영은 오 교수의 연구실에서 다른 조교들과 함께 있었다니까 마찬가지고. 이 경우에 알리바이가 없는 사람은 딱 둘이야. 안미주 교수와 네 번째 피해자 명일훈.”
“명일훈 씨는 이미 죽었잖아.”
윤희가 항의했다.
“그래. 혹시 앞에 일어난 사건이 그의 짓이라고 가정해도 네 번째 사건, 자살이라고 보기엔 좀 뭔가 미심쩍어. 일단 동기가 없으니까. 성유미와 애인이었고 애인의 언니와 만난 적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 남안진 선생은 뭐고?”
“그렇군.”
성현이 끄덕이더니 생각난 듯 덧붙였다.
“참, 들은 얘긴데……. 죽은 놈 욕하는 거 아니라지만, 그 명일훈이란 사람, 빈말로도 좋은 얘길 하긴 힘든 녀석이었던 거 같아. 얼굴은 반반하니까 거의 여자한테 빌붙어 살았다던데?”
“악, 최악이다! 너무 싫어!”
한경이 얼굴을 찌푸렸다. 진짜 최악이다. 윤희도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동의했다. 얼굴이 반반하게 생김 뭐해? 여자한테 기생해서 살아가는 남자는 딱 질색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녀는 민형에게 물었다.
“그래서 결론은? 네가 짐작하는 범인은 누군데?”
- 저기, 정 형사님이 그랬잖아. 범인을 짐작하고 있다고. 누굴까?”
- 나도 조금은 짐작이 가.
민형이 말했었다. 범인을 알 것 같다고.
“어? 누군지 의심 가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누군데! 어?”
성현이 흥분해서 물었다. 한경도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다. 하지만 민형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그는 그저 가만히 웃고 있더니 윤희에게 뜬금없이 딴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이 인간을 빨리 떼어버리고 우리끼리 어디 좀 가자.”
“응?”
윤희가 눈을 깜박거리고 있을 때, 마침 주문한 음식이 날라져 와서, 이야기는 거기서 일단락되었다.
11. 세 번의 면담, 으로 계속.
또 바꿨습니다. 원래대로. 죄송합니다. 왜 이러나 모르겠어요.
* Junk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5-09 11:09)
아~왜 자꾸 한경이 이름만 보일까요?^^ 오늘도 재밌게 읽고 갑니다. 멋진 민형이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