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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98
8. 네 번째 살인
윤희와 민형의 불안감처럼 결국 사건은 다시 일어나고 말았다.
네 번째 사건 현장은 Y대에서 꽤 가까운 위치에 있는 원룸이었다. 독신남자의 방은 온통 난장판이었다. 바닥에는 옷가지가 흩어져 있고 먼지도 여기저기 쌓여 있다. 현관 바로 가까이 있는 부엌에는 1단짜리 냉장고가 보였다.
정 반장이 장갑을 끼면서 방안으로 들어가자, 치현이 현장검증을 하고 있었다. 피해자는 테이블과 침대 사이에 쓰러져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남자의 시체 가장자리에는 역시나 뿔이 하나 모자란 다윗의 별이 피로 그려져 있었다.
“피해자의 이름은 명일훈. 군대에 막 다녀온 것 같습니다.”
정 반장을 본 치현이 입을 열었다. 정 반장은 끄덕이고 대꾸했다.
“방이 별로 흐트러진 흔적이 없군.”
“예, 피해자와 범인은 아는 사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치현이 그 동안 조사한 것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사인은 두 번째 사건처럼 청산가리 중독입니다. 보시는 대로 탁자 위에 맥주잔이 놓여 있죠. 범인이 이 잔에 독을 넣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맥주잔은 두개 있는 걸로 봐서 범인은 피해자를 찾아와 둘이 술을 마시고 있었을 겁니다.”
“이 별은 피해자 피로 그린 건가?”
“모르겠습니다. 이번 피해자는 외상이 없어서요. 일단 감정을 기다려 봐야죠.”
“반장님!”
저편에서 방을 뒤지고 있던 감식이 뭔가를 내밀었다.
“앨범입니다. 보시겠어요?”
정 반장은 두터운 앨범을 들여다보았다. 안에는 주로 피해자와 그의 여자친구인 듯 보이는 젊은 여자가 찍혀 있는 사진뿐이었다.
“이 여자…….”
치현이 먼저 알아차리고 눈썹을 찌푸렸다. 정 반장이 말했다.
“첫 번째 피해자 성유리의 여동생이군. 이 두 사람이 애인이었단 말이지. 이름이 뭐였더라…….”
“이름은 성유미. Y대 3학년입니다.”
치현이 말을 받았다. 정 반장은 앨범에서 눈을 떼지 않고 지시했다.
“성유미를 주목해야겠군. 그리고 다른 용의자들도 이번에는 아무래도 불러서 얘기하는 게 좋겠어.”
“알겠습니다.”
치현은 즉시 대답하고 뒷일을 정 반장과 동료들에게 맡긴 채 문을 나섰다. 원룸맨션 입구를 나가던 그는 낯익은 얼굴과 마주쳤다. 어깨에 두툼한 스포츠 백을 맨 청년은 치현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두말할 것 없이 민형이었다.
“형, 여기 웬일이에요?”
“너야말로 여긴 왜 지나다녀?”
“나 여기 살잖아요. 저기가 우리 집이에요. 몰랐어요?”
민형이 방금 치현이 나온 맨션의 위쪽 건너편에 있는 조금 더 허름한 건물을 가리키면서 말하더니 얼굴을 슬쩍 찌푸리며 물었다. 냄새를 맡은 모양이다.
“근데 무슨 일 났어요? 형?”
치현은 엷은 한숨을 토해냈다.
“나 형사다. 내가 무슨 일을 하겠냐.”
“응? 또 살인사건 났어요?”
“쉿.”
치현은 지나다니는 사람이 행여 들을까 목소리를 낮추면서도 여전히 삐딱한 투로 민형에게 독설을 툭 하고 던졌다. 진심인지 농담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지 않는 말투였다. 표정도 담담하기 짝이 없다.
“아무래도 난 니 놈이 의심돼. 첫 번째 사건 니네 학교에서 일어났지, 이젠 집까지 가까운데 있냐? 혹시 니 놈이 범인 아냐?”
“의심가시면 아예 잡아가지 그러십니까?”
민형은 픽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을 받았다. 역시 담담한 표정이다.
“맘대로 안 될 거 아니까 개기는 거 봐. 이래서 법대 놈들은 재수 없다니까.”
치현은 고깝잖다는 눈으로 동생의 친구를 노려봤다.
“저, 교수님. 질문이 있는데요.”
윤희는 대담하게 미소 지었다. 그녀의 뒤에서 한경이 조마조마한 눈으로 그녀와 오준호 교수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윤희는 천연덕스럽게 E여대 학생인 척 하면서 가슴에 E대 파일- 물론 한경의 것 -을 끌어안았다. 대형 강의실에는 이미 다음 수업을 기다리는 학생들이 속속 들어오는 상태였다.
“질문할 게 많아?”
“네, 조금.”
“그럼 내 연구실에서 얘기하는 게 낫겠는데.”
오준호 교수는 그렇게 대답했다.
우연히 만난 여고생 진영이 죽은 이후로 윤희의 안에서 뭔가가 바뀌었다. 범인은 달리 있을지도 모른다고 민형이 말했다. 그렇다면 그 범인을 잡는데 꼭 한몫을 하고 싶다고 윤희는 생각했다. 불쌍한 그녀 시체에 칼자국을 그려놓은 범인이 누군지 꼭 알아내고 싶었다.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윤희는 용의자들을 하나하나 만나는 일에 민형을 대신해서 자원했다. 민형은 남자이므로 여대인 이곳에는 맘대로 들어오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 상대는 바로 정치학을 가르치는 오준호 교수였다.
“야, 나 질문할 거 없는데. 어쩌지?”
“걱정 마. 내가 알아서 할게.”
미리 E대생의 노트를 빌려서 공부는 해두었다. 게다가 현대정치학은 이미 Y대에서 들은 강의이기도 하다. 적당히 물어보고 이야기를 끌어내면 되겠지.
자신이 생각해도 뻔뻔해지고 간이 커진 것 같았다. 민형의 영향일까.
오준호 교수의 연구실 안은 책이 가득하고 쓸데없는 것은 일체 존재하지 않는, 깔끔하면서도 어딘가 살풍경한 분위기였다. 윤희는 책장과 캐비닛, 그리고 최신형 컴퓨터를 둘러보면서 소파에 앉았다.
“커피 좀 가져오지.”
윤희가 사양하기도 전에 오준호는 조교인 고선영에게 커피를 주문했다. 그걸 난감한 눈으로 보면서 에라, 모르겠다! 윤희는 교수에게 대충 어제 생각해두었던 질문을 던졌다. 그것은 꽤 심도 있는 질문이었던 모양으로 교수는 성실한 학생에 감탄한 표정을 지으면서 차분하게 설명해주었다. 그 설명을 잘 듣고 있는 흉내를 내면서도 윤희는 한편으로 오준호를 관찰하고 있었다. 마침내 커피 메이커에서 커피가 끓는 소리가 나고, 이윽고 조교가 커피를 컵에 담아 가지고 왔다. 고선영을 보면서 윤희는 오준호와 얘기가 끝나면 이 여자도 찔러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저희 저번에 엄청 놀랬어요.”
대충 설명이 끝난 후 윤희가 스치듯이 말을 꺼냈다.
“저번?”
“예, 저흰 남 선생님 강의도 듣고 있었거든요. 그 때 선생님도 달려오셨잖아요. 안미주 선생님도 오시고. 선생님들 아니었으면 저희 큰일이 났을 거예요. 다들 당황해서 우왕좌왕이었거든요.”
한경이 눈치 있게 말을 잇자, 오준호 교수는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나보다 안미주 선생이 고생이었지. 여잔데 먼저 거길 와서 고생했으니. 거기다 안 선생,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어. 하기야 속도 탔겠지만.”
“예?”
“그 페트병 안에 뭐가 든 지도 모르고 그걸 집었거든. 내가 들어오자마자 그 사람이 병을 집는 게 보였어. 한동안은 그것 때문에 수상하게도 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안 선생은 페트병을 집은 거 같아. 속이 타면 물을 마시는 습관 같은 게 있어서. 아마 정신없으니까 무심코 그랬겠지.”
“그러고 보니 그랬던 거 같기도 하네요. 헉! 선생님 큰일 나실 뻔 했네요?”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경이 입가에 손을 갖다대는 걸 지켜보며 윤희는 이것도 나름대로 중요한 정보라 생각했다. 대충 이야기를 끝낸 후, 오준호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연구실을 나가자 밖에서 고선영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게 보였다.
“안녕하세요.”
윤희와 한경이 인사하자, 고선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날 알아요?”
“아, 네. 늘 강의 전에 출석체크하시잖아요.”
“난 또 뭐라고. 좋은 뜻으로 안다는 게 아니었구나.”
고선영은 어깨를 움츠리며 웃었다.
“네, 왠지 친숙해서요. 그냥 한번 말을 걸어보고 싶었어요, 언니한테.”
윤희가 그 옆에서 한술 더 떴다. 야, 너 어쩌려고 그래? 하는 식으로 한경이 옆에서 쳐다봤지만 개의치 않는다.
“요즘 무서워 죽겠어요, 언니. 언니는 조교니까 더하시죠? 교수님들한테까지 경찰이 들락날락한다던데.”
윤희가 붙임성 있게 말하자 고선영은 픽 웃었다.
“그렇지, 뭐. 우리 선생님도 의심받았는데. 얼마나 귀찮았다고. 선생님처럼 힘들게 사신 분한테 대체 무슨 얘기를 들으려고 자꾸 들락거리는 건지. 난 이번 일로 경찰이 너무 싫어져 버렸어.”
그녀는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왜요? 교수님 힘드세요?”
“따님을 사고로 잃은 걸로 아직까지 심적으로 힘드신 거 같아. 어머, 내가 별 얘길 다하네.”
고선영이 약간 당황한 듯 입을 가렸다. “사고요?” 하고 윤희가 되묻자,
“응, 뺑소니. 범인도 못 잡았대. 근데 웃기는 건, 경찰은 죽은 남안진 선생님이 그 뺑소니 범인이 아닐까, 그렇게 의심하고 있더라고. 참 소설을 쓰라고 싶어.”
고선영은 비웃는 투로 말했다.
“선생님, 이혼하셨다면서요.”
윤희가 민형에게 미리 들은 얘기를 주워섬기자, 고선영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머, 어떻게 알아? 그것도 사고 때문이 아니었을까 난 생각해.”
“그럼 지금은 혼자 사세요?”
“응. 어머, 근데 뭐니. 꼭 형사 가트다, 니네.”
“음, 교수님한테 관심이 많아서요.”
한경이 어깨를 들어올리며 농담처럼 웃었다. 윤희가 옆에서 물었다.
“교수님 애인 있으시잖아요? 여자 분이랑 같이 다니는 거 본 거 같은데.”
“어? 안미주 선생님 얘기? 아냐. 식사를 같이 하시니까 그렇게 오해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던데, 아닐 걸? 전에 내가 여쭤봤더니 아니라고 도리질하시던데.”
안미주 교수. 물론 윤희도 들어본 이름이다. 그녀는 두 번째 피해자인 남안진 씨가 죽었을 때, 가장 먼저 강의실로 달려왔던 사람이었다. 30대 초반의 젊은 조교수다. 오준호와 남안진, 두 사람과 친하다고 했었지.
갑자기 고선영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윤희와 한경 어깨너머를 응시했다. 윤희가 무슨 일인가 돌아보니 거기엔 치현이 서 있었다. 그는 윤희를 알아차린 눈치였지만, 얼굴에 전혀 변화를 떠올리지 않은 채 이쪽으로 다가왔다.
윤희와 한경이 저편으로 물러서자, 그는 고선영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준호 교수님, 아무래도 임의동행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요? 다 끝난 일 아닌가요? 선생님은 알리바이가 있다구요!”
“끝나지 않았습니다. 네 번째입니다.”
그 소리는 낮았지만 저편에 서 있던 윤희들에게도 들릴 정도는 되었다. 고선영과 치현이 연구실에 들어가는 걸 보면서 윤희와 한경이 멈칫거리며 그 자리에 서 있으려니, 저편에서 누군가가 윤희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지금 어떻게 된 거니?”
그것은 품위 있는 검은 샤넬라인 원피스를 입은 안미주 교수였다. 삼십대 초반이라고 들었는데, 학생이라고 해도 속아 넘어갈 정도로 젊은 외모의 미인이었다. 왼손 약지에 다이아몬드 반지가 빛나고 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결혼할 남자가 생긴 걸까? 아니면, 혹시 오 교수가?
“경찰인 거 같아요.”
“경찰이 오준호 교수님을 데려가려고 온 거 같아요.”
“어쩜 좋아. 오 교수님, 요즘 신경이 날카로울 텐데…….”
안미주 교수는 안절부절 못하며 중얼거리다가 두 사람에게 말했다.
“잠깐 내 방에 올래? 경찰이 뭐라 그랬는지 좀 듣고 싶은데.”
“곧 수업인…….”
하고 말하던 한경은 윤희의 팔꿈치에 옆구리를 찔리자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은 안 교수의 방에 들어갔다. 통성명을 하고 - 이 경우 윤희는 대충 지어냈지만 - 아까 경찰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대충 설명한 다음 윤희가 물었다.
“선생님 그 때 너무 힘드셨죠. 남 선생님께서 쓰러지셨을 때 저희도 그 교실에 있었거든요. 선생님이 처음 달려 오셨잖아요.”
“아아. 그 땐 정말 정신없었어. 학생들이 전부 우왕좌왕하고 있어서 어떻게든 진정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혼자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을 때 오 교수님이 와서 한시름 놨지. 오 교수님 아니었으면 정말 무리였을 거야. 그렇게 좋은 분을 의심하다니, 정말 경찰도 너무한 거 같아.”
“그래도 이제 다행이잖아요. 범인이 잡혔으니.”
“휴우.”
안미주는 한숨을 쉬었다.
“확실히 그 사람들 나쁜 짓을 했지만 평소 보기에는 전혀 그럴 사람들 같아 뵈지 않았거든. 그런 생각을 하니까 너무 혼란스럽고 겁이 나. 하긴 민 선생님은 좀 취미는 특이한 편이셨지만 그래도 사람은 좋은 분이었는데.”
“취미요?”
“응. 그 분 점성술이나 연금술 같은데 관심이 있었어. 난 그런 거 좀 무섭던데. 그 분, 그런 걸 얘기할 때마다 눈이 반짝반짝했거든. 내가 시집을 언제 갈지 점을 쳐주겠다던가, 보기엔 꽤 보수적일 거 같은데 그런 소녀취미가 있어서…….”
안미주가 한 말 중에서 주목할 만 한 건 마지막에 한 얘기뿐이라고 연구실을 나오면서 윤희는 생각했다. 다윗의 별은 확실히 서양 점성술이나 연금술 같은데 자주 등장하는 용어라고 민형이 얘기해준 적이 있다. 옆에서 한경이 투덜거렸다.
“너 땜에 마지막 강의 종쳤다. 책임져.”
“미안…….”
“됐어. 대출부탁 문자 날려놨으니까.”
한경은 시원스레 대꾸하더니 또 물었다.
“나 오늘 성현이 만날 건데, 넌? 민형이 안 만나?”
“글쎄. 약속은 안 잡았는데. 우리야 맨날 학교에서 보니까.”
“그러지 말구, 니네 학교 가자. 넷이서 저녁 먹어.”
한경의 말에 윤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잖아도 민형에게 해줄 얘기가 많다. 오늘 들은 얘기를 그에게 해주면 그는 뭐라고 대답할까. 윤희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한번 한경에게 확인차 물었다.
“니가 기억하기에도 남 선생님 쓰러지고 안 교수님이 왔니? 확실한 거지?”
“응. 그 선생님이 오신 덕에 학생들도 겨우 좀 조용해졌어.”
“그 전까지 움직인 사람은 없었다는 거지?”
“응. 남 선생님 앞으로 간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
“페트병은?”
“계속 교탁 위에 있었던 거 같긴 한데, 누가 만진 사람이 있는 진 사실 기억이 잘 안 나.”
“그래…….”
그 때 교문을 나갔다는 차도 사건과는 전혀 관계없는 학생의 차로 밝혀졌지. 모든 게 혼란스럽다. 죄다 원점으로 돌아온 것 같아. 민형이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뭔가 짐작하고 있는 게 있을까.
후문으로 나가 언덕을 올라 Y대 후문을 지나 경영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민형의 마지막 수업이 경영대 교양강의라는 사실을 윤희는 알고 있었다. 빨리 그를 만나서 얘기해주고 싶다. 막 1층 로비로 들어갔을 때, 저편에 그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민형의 긴 몸이 시야에 미끄러져 들어왔다.
“민형아!”
오늘은 수업이 하나도 겹치는 게 없어 만나지 못했던 남자친구가 저편에 서 있는 걸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려던 윤희는 문득 손을 멈췄다. 민형의 앞에 여자가 서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조금 당황했는데 갑자기 여자가 손을 치켜들더니 그의 뺨을 강하게 후려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건물 1층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윤희나 한경 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아연하게 보고 있었다.
“다시 그딴 걸 나한테 물어보면 죽을 줄 알아!”
여자는 이를 악문 듯한 말투로 소리 지르고는 힐을 또각또각 울리면서 민형을 스쳐 저편으로 걸어가 버렸다. 민형은 쪽팔리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지만, 이내 저편에 멍하니 서 있는 윤희들을 발견하고 머쓱하게 웃어보였다.
“아, 봤어?”
“어떻게 된 거야?”
윤희는 종종걸음으로 남자친구 앞으로 달려갔다.
“얻어맞았어. 아, 안녕. 못 볼꼴을 보였다.”
민형은 방금 맞은 뺨을 만지면서 윤희 뒤에 서 있는 한경에게 인사했다. 윤희는 이마에 주름을 잡으며 항의했다.
“그건 나도 봤어. 왜 때렸는데? 응? 니가 뭘 잘못했다고!”
“아, 잘못하긴 했어.”
“뭘?”
“방금 때리고 간사람, 성유미야. 성유리 씨 동생.”
윤희와 한경이 동시에 “뭐?” 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실은 경영의 이해 수업을 같이 들어. 조 리포트도 같이 썼거든.”
“그, 근데?”
“사실 내가 좀 무신경하게 말했던 거 같아. 언니의 남자관계에 대해 알고 싶다고 물었거든.”
“맞을 만 하다…….”
윤희는 중얼거렸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화장실에서 손수건을 적셔왔다. 손이 맵긴 매웠는지 로비 소파에 앉아 있는 민형의 뺨에는 붉은 손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윤희가 건네준 손수건을 뺨에 대면서 그가 입을 열었다.
“네 번째 사건이 일어난 거 알아?”
“어?” “그게 그 얘기였어?”
‘네 번째’라던 치현의 말이 떠오른다. 윤희와 한경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민형은 소파에 따라 앉는 두 사람을 보면서 짧게 설명했다.
“이번 피해자는 성유미의 남자친구, 아니면 최소한 친구였던 거 같아.”
“뭐? 경찰한테 들은 거니?”
한경이 묻자, 민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연히 알게 된 거야. 그 피해자, 내가 사는 집 근처에 살았어. 생각해 보니 거기 성유미가 몇 번 들락거리는 걸 본 것 같기도 해.”
“그랬구나.”
모르긴 몰라도 그게 사실이라면 신경이 무척 날카로웠을 거라고 윤희는 생각했다. 언니에 이어 친구까지 살해당하다니. 민형이 얼마나 무례하게 느껴졌을까. 자기라도 뺨을 후려쳤을 거라고 그녀는 납득했다. 얼마나 상처 입었을까.
“니가 잘못했다는 거 알지?”
“알아.”
민형은 우울하게 대답하다가 생각난 듯 고개를 들었다.
“아, 깜박했는데. 오늘 정 반장님 댁에 가기로 했어. 괜찮지?”
“응? 왜?”
“같이 저녁하자고 하시던데. 저번에 담배꽁초 건, 고맙다고.”
“나도 가자고?”
“당연. 너도 가야지, 마누라. 너랑 나랑은 한 몸이잖아.”
윤희가 눈을 크게 뜨자, 민형은 당연하다는 투로 대꾸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한경이 쿡쿡 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9. 정 반장, 으로 계속.
이렇게 길어지다니.
벌써부터 내년이 걱정됩니다. 내년에 올릴 3부는 더 길텐데ㅡ
그나저나 문장 엉망. 마음이 좀 급해서 그렇답니다.
* Junk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5-09 11:09)
중간중간에 한경이 이름이 한영으로 나왔다 다시 한경으로 나왔다 해서...잠시 헷갈렸다는..
계속 열심히 볼께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