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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98
6. 조사를 시작하다
“내 생각인데,”
길을 걸어가면서 윤희가 중대한 사실을 발견한 양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범인은 그 페트병 안에 캡슐 같은 걸 넣은 게 아닐까? 왜 캡슐이 녹는 동안 시간을 벌 수 있잖아.”
“글쎄.”
민형이 잘라 말했다.
“그 페트병, 보통 생수 병이야. 편의점이나 학교 농협에서도 파는 투명한 거. 캡슐이 들어 있었다면 피해자가 몰랐을 거 같아?”
“그럼 독을 넣은 건 역시 사건 직전이란 거야?”
“그래. 아마도 학교 내부의…… 피해자에게 의심받지 않을 만큼은 가까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흠…….”
“언제나 검은 가방을 들고 다녔다고 했지. 회사원들이 잘 들고 다니는 그걸 거야. 그 가방을 바꿔치기 하지 않는 한 무리고……. 가방을 바꿔치기 했다면 그 안에 있던 물건들 땜에 의심하지 않을 리 없고. 대체 뭘까.”
민형은 중얼거리다가 생각난 듯 말했다.
“나, 어제 정 형사님이랑 통화했어.”
“그래? 뭐라셔?”
“나한테 그쪽에 이것저것 알려달라기에, 그쪽에서 알게 된 것도 알려 달랬지. 그랬더니…….”
민형은 한 호흡 쉬고 말을 이었다.
“E대 조교수로 오준호란 사람을 눈 여겨 보고 있다는 거 같았어. 그 사람이랑 같이 그 조교인 고선영하고, 아까 한경이가 얘기한 안미주 교수하고, 전부 주목의 대상인 모양이야. 특히 오준호와 안미주 교수, 그리고 죽은 남안진 선생은 늘 같이 술을 한잔 하는 게 일과였나 봐. 게다가 사건이 일어난 그 날 오준호 교수는 안미주 교수랑 같이 점심을 먹었다고 하더라고.”
“그럼 경찰이 생각하는 용의자는 그 세 명?”
“아니. 그 세 명에, 첫 번째 사건의 시체를 발견한 김영희하고 첫 번째 피해자인 성유리의 동생도 집중탐구대상일 거야. 꼭 용의자라고는 볼 수 없지만. 아, 성유리의 여동생은 우리 학교 학생이라던데? 3학년이고 이름이 성유미라던가…….”
민형은 알고 있는 것을 정리하듯 찬찬히 말하다가 고개를 돌리며 목적했던 곳을 찾았단 듯, 윤희의 손을 잡고 끌어당겼다.
“여기다. 들어가자.”
“여기가……, 어딘데?”
“아까 말한, 교수들이 자주 왔다던 술집.”
“뭐? 싫어!”
역에 가까운 가게는 전반적으로 아담하고 따뜻한 분위기였다. 카운터와 예약석인 박스자리, 일반 테이블로 구분되어 있다. 두 사람은 입구에 일단 가방과 상의를 맡긴 후 카운터 앞에 몸을 내렸다.
중앙에 위치한 카운터 앞은 키친으로 요리사들이 요리를 만드는 광경을 바로 볼 수 있어, 그것 또한 이곳의 매력이었다. 두 사람은 그 광경을 물끄러미 보면서 칵테일 한잔씩 주문했다. 주문을 하고나서 민형은 종업원에게 슬쩍 물었다.
“오준호 교수님, 오늘은 안 오셨나요?”
“네?”
“여기 단골이시거든요. 모르십니까?”
“아, 알아요. 근데…….”
종업원이 어깨를 움츠렸다.
“경찰 분들도 그걸 물어보던데, 대체 무슨 일인지…….”
“여기 가끔 오시는 건 맞죠?”
윤희가 물었다.
“네.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한번은 오세요. 친한 다른 교수님들이랑 같이요.”
“남자 교수님 한 분이랑 여자 교수님 한 분 말씀이시죠?”
“네, 그리고 교수 같진 않은 젊은 여자 분과도 가끔.”
성유리 얘기다. 윤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그리고 저기 저 분들이랑도 자주 오세요.”
종업원이 가리킨 방향을 보니 박스 자리에 두 사람의 남녀가 앉아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대학 교수들 같은 인상이었다.
“저 분들도 교수님이에요. 그렇게 보이죠? 책 속에 폭 파묻혀 계실 듯한 인상이잖아요. 안 그래요?”
그 때 그들이 앉아 있는 박스 자리 바로 앞의 테이블이 비었다.
“앗! 우리 저쪽으로 옮겨도 되나요?”
윤희가 재빨리 말하자, 종업원은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네. 그러세요.” 하고 대답했다. 민형의 “호오~” 하는 표정을 보면서 윤희는 잽싸게 몸을 움직여 목적한 테이블을 점령했다. 그리고 바로 테이블에 주문한 음료가 날라져왔다.
“맛있다.”
윤희는 피나콜라다를 마시면서 박스 자리의 두 사람을 힐끗 살폈다. 그들은 둘 다 중년 정도 되어 보이는 남녀로, 남자 쪽은 어딘가 불안한 표정을 하고 있는 반면, 여자 쪽은 상대적으로 침착해 보였다. 두 사람은 말없이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어딘가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저 사람들, 오 교수님이랑은 어떤 사일까?”
“같은 교수거나 대학관계자겠지. 그렇게 보이잖아?”
윤희가 속삭이듯 묻자, 민형도 속삭이듯 대꾸했다.
“대체 이 일을 어쩌지?”
박스 석에서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민형도 윤희도 순간적으로 입을 다물고 두 사람의 대화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남 선생이 그렇게 죽을 줄이야…….”
“어쩌겠어요. 남은 사람들은 남은 대로 살아야죠. 남 선생님 돌아가신 건 딱한 일이지만 오준호 교수님이 계시니 큰 걱정은 안 된다 봐요. 그보다 강 선생님!”
여자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불렀다.
“그렇게 선생님이 자꾸 풀죽어 계시니 경찰이 자꾸 의심을 하잖아요. 우린 그 사건이랑은 아무 관계도 없는데. 안 그래요?”
“으음……, 그, 그거야…….”
남자는 웅얼거리면서 맥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물었다.
“그 일은 어쩔 생각이지?”
“괜찮아요. 강 선생님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아시겠어요?”
“하지만……, 민 선생.”
남자의 목소리는 확실히 겁먹은 자의 그것이었다. 여자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 테이블에 신경 쓰더니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만 나가죠, 강 선생님.”
“그, 그래.”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없이 그 뒷모습을 눈으로 쫓던 윤희와 민형의 눈이 마주쳤다. 대박이다! 두 사람의 눈은 서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민형은 빠른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방금 나간 사람들이 앉아 있던 박스 자리로 갔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재떨이와 그 안에 수북이 쌓여 있던 담배꽁초를 보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행동을 개시했다. 그는 테이블 한쪽에 놓여 있는 종이냅킨을 한 장 뽑아내, 그걸로 담배꽁초를 몇 개 쌌다. 윤희는 멍하니 그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걸까 생각하면서.
언제나 느끼지만, 장민형은 그 행동의 의미를 도무지 알 수 없는 남자였다.
아까 좀 더 튕겼어야 하는 건데, 너무 쉽게 봐줬어.
윤희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대체 어쩌자는 거야?”
윤희는 학생과 사무실을 들여다보는 민형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말 그대로. 다시 한번 현장을 보려고.”
민형은 출입금지 테이프 너머를 살펴보면서 가볍게 대꾸했다.
윤희는 그 말에 진한 한숨을 쉬면서 뒤를 슬금슬금 살펴보았다. 다행히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건이 발생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게다가 연달아 새로운 사건이 터졌기 때문에 경찰도 이곳에 더 이상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일반인들은 살인사건이 난 현장이라며 외려 이 근처를 지나다니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에, 지금 이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은 그들 외에 한 명도 없었다.
그런 틈을 타서 두 사람은 살금살금 테이프를 빠져나왔다. 이미 감식이 들어간 지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민형은 윤희에게 편의점에서 산 작업용 흰 장갑을 넘겨주고 자신은 손수건을 꺼내 손을 감쌌다.
먼저 입구의 문을 살폈다. 안쪽에서만 잠글 수 있는 형태로 여느 때는 둘 중 하나만 열려 있는 것 같았다. 지금도 오른쪽 문만이 열려 있는 상태다. 문 양쪽에는 벽돌로 쌓은 형태의 고풍스런 벽이 있고, 그 벽에는 유리창이 몇 개 뚫려 있었다. 하지만 창 바로 아래에는 계단이 있었고, 설사 창에서 뛰어내린다 해도 폭이 좁은 계단 위로 착지하는 건 상당한 리스크를 요하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완전 비었네.”
윤희는 중얼거렸다. 사건 후로 학생과 사무실은 자리를 옮겨, 원래 사무실이던 이곳은 몇 개의 책상만 남아 있을 뿐 텅 빈 상태였다. 민형은 텅 빈 사무실 안을 둘러보는 윤희를 지나 창가로 다가갔다. 바로 아래 계단과 접해있는 창문에 다가가 창문 걸쇠에 손을 대던 민형은 가볍게 눈썹을 찌푸렸다.
“어? 그거 빗장식이네.”
그를 따라와 뒤에서 들여다본 윤희도 깨닫고 말했다. 일반적인 창과 달리 창 하단에 튀어나온 형태로 달려 있는 막대식 빗장이 있었다. 창틀에 빗장을 내리는 둥근 형태의 홈이 뚫려 있다. 튼튼하고 앞의 붉은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절대로 내려오지 않는 빗장이었다. 그러고 보니 창 전체가 그런 식이다. 전자키를 사용해서 열게 되어 있는 문에 비해 꽤나 복고풍이란 생각이 들었다.
민형은 덜컹 소리를 내며 창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를 얼굴에 느끼며 창 위쪽을 보자 막대식 빗장 바로 위쪽 부분에 위치한 창틀에 작은 못이 박혀 있었다. 대학 달력이 걸려 있었던 자리였다. 민형은 윤희에게서 장갑을 받아 끼고 몇 번이나 빗장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확인해 보았다.
“창을 갈아 끼운 흔적 같은 건 없는데. 유리에도 기스 같은 건 나 있지 않아. 범인은 대체 어떻게 밀실을 만든 걸까.”
“문으로 나간 거 아냐?”
윤희가 말했다.
“문을 살펴봤는데, 안에서 잠겨 있으면 무리야. 우리학교 보안이 얼마나 대단한지 너도 알잖아.”
“직원용 문은? 다른 방으로 이어져 있잖아.”
“아니, 그건 안돼. 그럼 그쪽 문을 통해 나간 방도 밀실로 만들고 지문을 닦아내야 하잖아. 복도로 통하는 문이나 출입구도 그렇고.”
“그렇네. 외려 더 위험할 수 있겠다.”
민형의 말에 윤희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또 물었다.
“그럼 넌 창에서 빠져나갔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글쎄. 지금은 다른 생각이 안 드는 걸. 좁지만 창밖으로 나가면 제대로 문 앞까지 나올 수 있잖아. 문제는 바깥에서 이 빗장을 걸 수 있느냐는 건데…….”
민형은 얼굴을 슬쩍 찌푸렸다.
“역시 실이나 로프 같은 걸 쓴 걸까?”
사실은 윤희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때 무인도에서와 비슷한 상황……, 이번에는 정말로 끈을 이용한 트릭인 걸까?
“이거! 민형아, 이거!”
그 때 윤희가 책상 위에서 뭔가 찾아냈다. 뜨개질용 실과 뭔가가 안에 꽉 차 있는 알루미늄 캔 - 아마 테니스공 같은 걸 담는 것 같았다 - 이 미처 치우지 않은 책상서랍에 들어 있는 걸 발견했던 것이다. 그녀가 그것을 던져주자 민형은 한손으로 가볍게 받아 쥐고는 창문을 열었다. 윤희는 바로 옆 창을 열어 손을 내밀고 밖으로 빼낸 실을 넘겨받아 끌어당겼다. 빗장 바로 위에 캔이 매달려 있는 걸 보고 민형은 창을 닫았다. 그와 거의 동시, 윤희는 실을 잡아당기고 있던 손에 살짝 힘을 뺐다. 덜컹 소리와 함께 캔은 빗장 위에 떨어졌고 창문은 잠겼다.
“됐다!”
윤희가 소리쳤다. 민형이 고개를 슬쩍 기울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있는 힘껏 잡아당겨봐.”
윤희는 그의 말대로 열심히 실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실은 묵직한 것이 들어 있는 캔을 못 근처까지 끌어올렸을 뿐 제대로 캔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힘을 다해 신음소리까지 내면서 실을 잡아당겼다. 이윽고 실이 끊어졌고, 캔은 쿵! 하고 거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캔 안에 담겨 있던 물건들이 바닥에 둔탁한 소리와 함께 흩어진다. 안에 들어있던 건, 작고 동그란 자석들이었다.
“어? 이게 뭐야.”
윤희는 깜짝 놀라 바닥에 흩어진 자석을 주워 모았다. 그런 그녀 옆으로 민형이 다가오더니 자석을 줍는 걸 거들었다. 윤희는 그에게 물었다.
“어때? 우리 생각이 맞는 걸까? 한 번 더 해봐?”
“아니. 이건 이걸로 됐어. 이래서야 아무리 튼튼한 실을 써도 저 캔을 회수할 수가 없지. 아니, 캔 아니라 다른 묵직한 걸 추로 쓴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만일 추 역할을 하는 뭔가가 이런 식으로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면 경찰이 몰랐겠어? 범인도 경찰도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닐 테니까.”
민형은 말하면서 실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근데 민형아, 여기 왜 이런 자석이 있지? 이런 걸 대체 뭣에 쓰려 그랬을까? 이유가 있는 거 같지 않아?”
윤희가 말하자 민형은 눈을 깜박였다.
“책상에 쇠로 된 정리용 상자가 있잖아? 거기 메모 같은 거 붙일 때 쓰던데. 포스트 잇 갖고 모자라는 경우가 많잖아. 영수증 같은 걸 붙이기도 하고.”
“아, 그런가.”
윤희가 흐음, 하고 소리를 내고 있으려니, 민형은 자석을 집어 들고 살펴봤다. 빨강부터 보라색까지 여러 가지 색이 화려한 작은 크기의 자석은 보기보다 꽤 묵직하고 자력도 강해 냉장고 같은 데 붙이면 힘을 주지 않고서는 떼기 힘들 것 같았다. 캔에는 그런 작은 자석이 스무 개도 넘게 들어 있었다.
“오, 세겠는데? 흠, 제조번호도 적혀 있고.”
자석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민형의 입가에 갑자기 피식, 하고 미소가 스쳤다.
“뭐야. 그런 거였어?”
“응? 뭐, 뭔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윤희를 뒤로 한 채, 창을 향해 걸어간 민형은 손에 든 자석을 창틀에 뚫려 있는 홈, 빗장구멍에 집어넣었다.
“야! 어쩌려고 그래!”
윤희가 깜짝 놀라 외쳤지만, 그 때는 이미 민형이 창틀에 훌쩍 뛰어올라 창밖으로 나가버린 뒤였다.
“야! 너, 떨어지면 어쩌려고?”
“밟을 공간이 꽤 있으니 걱정 마.”
밖에서 느긋한 소리가 들려온 것도 잠시, 창문이 닫혔다. 민형이 닫은 것이다. 윤희가 입을 헤 벌리고 있는데, 갑자기 덜컹 소리와 함께 빗장이 자동으로 내려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눈이 더 그럴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윤희가 창 가까이 달려가자, 밖에 서 있던 민형이 V자를 그려 보였다. 그녀는 허둥거리며 창문을 열었다. 아아, 저 인간은! 경찰이든 교수님이든 관리아저씨든 누가 오면 어쩌려고 저렇게 느긋한 거야?
민형은 안으로 들어오더니 씩 웃으며 자석을 들어보였다.
“이거 자력이 장난 아니야. 미리 이걸 빗장 구멍에 넣어두면 창을 닫고 빗장이 구멍 자리에 온 것만으로 자력에 의해 빗장이 내려와 잠겨 버리는 거지. 이런 식의 빗장이니까 가능한 거겠지만. 봐, 방금 올린 빗장 밑에 그대로 붙어 있잖아.”
“그렇구나!”
윤희는 손뼉을 짝 하고 쳤다. 빗장 밑에 붙어서 잘 보이지 않는 작은 자석을 혼잡을 틈타 도로 제 자리에 돌려놓으면 일은 수월해질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트릭이었다니! 실 같은 건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어……?”
그 때 마침 윤희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는 핸드폰 액정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막 받기 시작한 착신표시 서비스에 의해 화면에는 발신자 표시가 찍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며칠 전에 만난 소녀, 유진영의 전화였다. 무슨 일이지? 그냥 안부전화인가? 윤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폴더를 펼쳤다.
“여보세요?”
돌아온 건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당연히 여자아이의 목소리를 예상했던 그녀는 깜짝 놀라 “여보세요?” 라고 반문했다.
“최윤희 씨 되십니까?”
“예, 그런데요.”
“서울시경 형사과에 있는 표치현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친다.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
“실은, 이 핸드폰 주인인 유진영 양이 방금 시체로 발견됐습니다.”
“예에?”
윤희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민형이 무슨 일이냐고 옆에서 물어왔지만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친 당혹감에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통화기록을 보니 마지막으로 전화를 건 상대가 최윤희 씨더군요. 그저께의 일입니다. 맞습니까?”
그저께라면 윤희와 민형이 한경과 성현을 만나 E여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대해 들었던 날이다. 또한 커다란 서류봉투의 주인을 찾기 위해 Y대에 찾아온 진영을 처음 만난 날이기도 했다. 그 날 진영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던가? 확실히 핸드폰 번호가 맞게 입력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걸었던 것 같다.
“네. 맞아요.”
“무슨 얘기를 했습니까?”
윤희는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려 애쓰면서 대답하자, 전화 너머의 상대는 대조적으로 침착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윤희는 “아뇨.” 하고 말했다.
“얘기를 했다기보다, 그저께가 처음 만난 날이었어요. 저희 학교에 온 그 애랑 우연히 만나서 전화번호 교환을 했었거든요. 번호를 확인하려고 건 거예요.”
“그렇군요.”
상대방은 그렇게 대답하더니, 그것이 진짜 용건인 듯싶은 말을 꺼냈다.
“사정청취를 하고 싶은데, 만나서 얘기 좀 할 수 있겠습니까.”
윤희는 핸드폰을 귀에 댄 채 민형을 바라보았다. 그는 수첩에 뭔가를 메모하고 있었지만 눈만은 걱정스럽게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윤희는 “네.” 하고 대답했다. 당연히 민형이 함께 가줄 거라 그녀는 믿고 있었다.
괜찮다. 괜찮을 것이다. 당황하지 않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민형과 함께라면.
7. 세 번째 살인, 그리고……, 로 계속.
너무 졸려서, 이거 설명을 제대로 못한 거 같은데 그냥 올립니다.
사진을 첨부했으면 더 좋았을 걸. 이런 낡은 잠금장치에 대한 사진은 오히려 찾기 힘드네요.
* Junk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5-09 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