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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98
13. 세 번째 살인
“규해. 박규해 맞지?”
- ……절, 기억하고 계세요?
상대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우신은 수화기를 고쳐 잡았다.
“물론 기억하고 있어.”
- 저어…….
“말해.”
- 저어……,
규해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 사람을……, 쏴 버렸어요…….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어?”
우신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규해가 살아있단 사실에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방금 들은 말에 놀라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이마를 한번 세게 문지르고 행여 안쪽의 지해에게 들릴까 톤을 낮춰 물었다.
“누굴 쐈다는 거야.”
- 전에 입원해 있던 병원 의사에요…….
“혹시, 서명의 선생?”
- 그 사람을 알아요?
제기랄. 우신은 일이 커지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죽었어?”
- ……네.
“확실해?”
- ……예.
“몇 발이나 쏜 거지? 총은 어디서 나서?”
- 워, 원래 갖고 있었어요. 정확히 몇 발 쐈는지는 기억 안 나요. 머리에 두발, 등에도 두발 맞았으니 죽었을 게 확실해요…….
울음 때문에 목소리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했다.
“언제 쏜 거야?”
- 잘 기억이 안 나지만……, 한두 시간은 지난 거 같아요…….
우신은 벽걸이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12시 10분전이었다.
“어디서?”
- 산속에 있는 별장이에요.
우신은 한숨을 토했다. 또 산속이냐. 또 별장이냐. 지겹다, 정말.
“자초지종을 설명해 봐.”
- 거기 숨어 있었어요. 그런데 의사가 나타나서…….
“의사 한명 뿐? 다른 사람은 없었어?”
우신은 이진호를 생각했다. 하지만 규해는 서명의는 혼자였다고 했다. 이진호는 어디로 간 것일까? 결론은 한가지다. 아마 반용수를 만나러 갔을 것이다. 동생을 구하러 간 것임에 틀림없다, 그 몸으로.
“의사의 시체는 어디 놔뒀지? 아직도 그 별장에 있나?”
- 그래요.
“그 별장은 어디야?”
- 엄마한테 물어보시죠. 엄마가 구한열 씨랑 만나던 곳이니까.
규해는 이를 악물 듯이 말했다.
“왜 쏜 거지?”
우신은 조용히 물었다. 수화기 너머의 규해는 침을 삼켰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울음이 수그러든 목소리로 규해가 입을 열었다.
- 엄만 그 새끼 땜에 이상해졌어요!
“엄마?”
- 그래요, 언젠가 죽여주고 싶었어. 반드시, 죽여주고 싶었어.
“이상해졌다고 했어, 엄마가?”
- 그 새낀 엄말 좋아했어요. 입원하고 있을 때부터 알았어. 맨날 엄마를 보고 있었단 말예요. 음흉한 눈으로……, 음흉한 새끼…….
“돌아와.”
우신은 불안감을 느꼈다. 규해의 음성에는 광기 같은 것이 어려 있었다. 아무래도 정상상태가 아닌 것 같았다.
“누나가 걱정하고 있어.”
- 누나요……?
규해의 음성에 서려 있던 광기가 순간적으로 누그러졌다.
- 돌아갈 거예요.
“언제? 지금 당장 와.”
- 안돼, 지금은 안돼요.
“어째서?”
- 할일이 있으니까.
규해는 쿡쿡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어딘가 불안정했다. 목에 핏발이라도 서 있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돌아 와. 너한테 무슨 할일이 있다는 거야?”
우신은 다급하게 말했다. 수화기 너머의 규해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 성민 형의 복수.
“김성민 말인가? 누가 죽였는지 알고 그러는 거야, 너?”
- 구한열 씨죠.
“그건 정당방위에 가까운 것이었어, 바보야. 어쩔 수 없는…….”
- 바보가 아니니까 알고 있어요. 복수하려는 상대는 구한열 씨가 아니야. 성민 형을 배신한 비혈파죠. 이후준인가 하는 놈을 대표로 죽여줄 거야.
“미쳤어? 네가 그걸 할 수 있을 거 같아? 꼬마 놈이?”
우신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반면에 상대는 아까 울고 있던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냉랭한 투로 대답했다.
- 꼬마라고 부르지 말아요. 배에 탈거예요. 알고 있어요? 이후준은 배로 사업을 하는 작자인 거. 구한열 씨가 그 배의 회원권을 갖고 있어요. 회원권만 있으면 지인 한 사람 정도는 편도요금만 지불하고도 탈 수 있어.
“너 정말 미쳤구나!”
우신은 소리 지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신 나간 놈이다. 철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없다. 그 작은 몸으로 뭘 하겠다는 건가!
“돌아와, 어서!”
- 난 사람을 죽였는걸요.
“넌 아직 미성년자야. 형은 얼마든지 감경될 수 있어. 아니, 반드시 자수하란 얘기가 아니야. 널 돕고 싶은 거야. 네 누나가 걱정하고 있어. 누나를 생각한다면 당장 돌아와야 해. 알겠어? 돌아와야 해.”
- 쿡, 그쪽도 이용당하고 있는 주제에.
“……무슨 소리야?”
“규해……예요?”
우신이 물었을 때, 등 뒤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흠칫 놀라서 뒤돌아보았다. 창백한 얼굴을 한 지해가 서 있었다. 그의 몸이 굳어졌다.
“규해죠? 바꿔줘요!”
지해는 우신이 뭐라 변명을 하기도 전에 수화기를 휙 낚아채고는 다급한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규해야, 돌아와! 제발 돌아와! 응? 제발! 대답 좀 해! 규해야! 규해…….”
그녀의 소리가 점점 잦아들어갔다. 몇 번이나 수화기에 대고 확인하던 걸 그만두고, 지해의 손은 이제 수화기를 든 채 힘없이 처져 있었다. 우신은 그녀의 손에서 들려 있던 수화기를 들어 확인해보았다. 허무한 단절음 만이 뚜……뚜……, 하고 끊겨 들리고 있었다.
그가 한숨을 내쉬고 수화기를 제자리에 둔 다음,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
갑자기 눈앞에 불이 번쩍하더니 고개가 휙 돌아갔다. 너무나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그는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겨우 정신을 추슬러 얼굴을 드니, 방금 맞은 사람보다도 얼굴이 새빨개진 지해가 자신을 죽일 것처럼 노려보고 있었다.
“미안…….”
손이 엄청 맵군. 제법 얼얼한데? 그렇지만 우신은 솔직히 맞아도 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에게 순순히 사과했다. 그런 그에게 지해는 눈에서 불이 나올 것 같은 얼굴로 소리쳤다.
“규해였잖아! 내 동생이었잖아요! 나한테 먼저 바꿔줬어야 하는 거 아니었어요? 내 동생이잖아!”
“동생이 전화한 상대는 나였어.”
우신은 볼을 만지면서 조용히 말했다. 하필이면 며칠 전, 복서를 그만 둔 놈에게 맞은 자리를 재차 맞은 모양이었다. 이젠 다 나았다고 생각한 자리가 다시금 욱신거리며 쑤셔왔다.
“당신이 뭔데! 걘 내 동생이란 말이야!”
“그래, 네 동생이지. 하지만 네 동생이 전화한 상대는 나였어.”
“…….”
우신의 차분한 대꾸에 지해는 할말을 잃었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힘이 풀린 모양인지 사무실 소파에 주저앉았다.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한동안 그녀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우신은 그런 지해를 잠시 보다가 냉장고를 열어 캔 콜라를 꺼내왔다. 캔을 내밀자 그녀는 말없이 받았다. 우신은 자신도 방금 꺼내온 맥주 캔을 땄다.
“규해가……, 뭐래요?”
우신은 잠시 망설였다. 방금 들은 얘기를 한다면 지해는 충격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만은 사실을 얘기해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그래서 그는 지해에게 그녀의 동생으로부터 알게 된 얘기를 다시 들려주었다. 되도록 짧게 압축해, 되도록 충격 받지 않도록 주의하여.
지해는 잠자코 콜라에 입도 대지 않고 캔을 손으로 꼭 감싼 채 우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그래도 몸은 굳건히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우신이 이야기를 끝내자마자 그녀는 갑자기 콜라 캔을 떨어뜨리더니 얼굴에 손을 묻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듯 눌러 죽인 울음이었다.
우신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맥주 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그녀의 옆으로 다가서서 어깨를 가만히 끌어당겼다. 아주 약하게 끌어당기자 흠칫 어깨가 떨리더니 이내 순순히 그의 가슴에 안겨왔다. 우신이 입고 있는 티셔츠가 이내 눈물로 축축하게 젖어 들어갔다.
생각보다 작은 몸이었다. 의지가 강해보여도 역시 아직은 어린 아이구나, 하고 우신은 멍하니 생각했다. 힘을 주고 있던 어깨가 내려가자 흐느낌이 더욱 강해졌다. 참으면 참을수록 더 강해지는 모양이었다. 한숨 같은 눈물을 느끼면서 우신은 가슴이 저려오는 걸 느꼈다. 그 저림이 그녀의 불행 때문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또한 알고 있었다.
탐정과 의뢰인의 딸로 우연히 만나게 되어 얼굴을 마주한 며칠 간. 실은 2년 전에 처음 만난 날에도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꼈던 건 오늘의 일을, 감정을, 무심결에 예지했기 때문이었을까.
소녀의 몸에서는 희미한 샴푸냄새가 났다. 입고 있는 원피스의 냄새도 로션 향 섞인 살내음도 모두 아직 어렸다. 어리다는 건 아직 아픔을 온전히 모르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 그녀가 상처 입는 게 싫었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얼굴도 몸매도 전혀 닮지 않았는데……, 닮았다는 걸.
그가 저도 모르게 팔에 힘을 주었을 때, 갑자기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얼굴은 눈물범벅이었지만, 발갛게 충혈 된 눈에는 박지해 특유의 야무진 빛이 돌아와 있었다. 그런 눈으로 그를 똑바로 보며 그녀가 말했다.
“동정은 상대를 봐가면서 해요.”
“동정?”
“동정하고 있죠?”
그는 그녀의 얼굴을 조용히 들여다보고 대답했다.
“남을 동정할 만한 여유는 없어.”
“거짓말.”
“아니야. 아냐, 그럴지도. 아니, 모르겠어. 글쎄, 이걸 동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신은 더듬거렸다.
여린 몸에, 야무진 말투에, 오기어린 성격, 제법 매운 손까지. 지금 그저 임시로 여기 머물러 있을 따름인 그녀가 가버린다면, 어쩌면 꽤나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고. 스스로의 감정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지금에 와서야 두려워져버렸다면 비겁한 걸까.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라도 좋으니 지금의 이 감정을 간직하고 싶다면 그 또한 비겁한 걸까.
이런 식의 감정은 누군가가 죽은 뒤로 처음이었다.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지해가 한 말을 듣고 갑자기 우신은 훗, 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의아한 눈으로 그녀가 그를 올려다본다. 흰 피부가 여린 티를 내며 풀어지는 얼굴이, 새까만 눈동자에 밴 물기가, 야무지게 소리를 내려고 애는 쓰지만 실은 많이 힘들었다고 호소하는 듯한 작은 입술이 보였다.
거부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보호해 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저 붙잡아두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옛 그녀는 자신으로 인해 죽었었는데. 다르지만 흡사한 느낌의 이 소녀에게 자신은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우신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곤 스러지듯이 흘러나온 낮고 옅은 한숨을, 내쉬다가 말고 다시 들이켜 버렸다. 꼭 붙잡고 싶은 건 아니야. 그저…….
“왜…….”
아직도 눈물이 흘러내리는 눈으로 그녀가 물어왔다.
그는 그 말이 신호인 것처럼 그녀를 다시 끌어당겼다. 아까보다 좀 더 강하게, 힘을 주어. 그리고 그녀의 눈물에 가만히 입을 맞췄다.
맛은 당연히 짰다.
그렇지만 또한, 달콤했다.
계속.
주말에 다녀와야 할 곳이 있어서 미리 내일치를 올려 둡니다.
Happy Weekend 되세요!
* Junk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5-09 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