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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98
10. 함정
비가 누그러지자, 가열차게 움직이고 있던 와이퍼의 동작도 그 기세를 늦추었다. 우신은 와이퍼 너머에 고정시키고 있던 눈을 백미러로 돌려 이진호가 괜찮은지 살폈다. 물론 신음소리가 들리는 이상은 아직 무사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좀 전부터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걸로 보아 체력이 완전히 바닥까지 내려간 것 같았다.
간판은 단순한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우신은 알고 있었다. 낡은 거리의 구석에 서 있는, 낡은 간판이 달린 건물 앞에서 차를 멈춘 그는 차에서 내려서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헐리기 일보 직전의 5층 건물의 창문은 어느 것이나 흐려서 전혀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그게 원래 그런 유리로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먼지가 끼어서 그런 것인지는 물론 수수께끼였다. 밤의 어둠 속에 비틀거리며 서 있는 건물을 앞에 두고, 우신은 반쯤 기절한 상태인 이진호를 뒷좌석에서 끌어냈다.
“누구 없습니까?”
무거운 짐을 받치고 입구를 지나 컴컴한 복도에 선 채 소리 질렀다.
“쉿.”
대답이 없는 대신, 코 아래서 이진호의 쉰 목소리가 들렸다.
“그냥 올라가면 찾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큰 소리는…….”
내지 말아 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은 듯했다. 우신은 이진호의 말대로 더 이상 외치지 않고 말없이 계단을 올라갔다. 3층에 다다랐을 때, 이진호가 팔을 잡아 다 왔다는 신호를 보냈다. 복도로 나가자, 맨 끝에 있는 방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우신은 그 빛을 찾아 이진호를 거의 끌어안다시피 한 채 움직여 갔다.
“서 선생님, 저예요. 열어주세요.”
문 앞에서 이진호가 힘을 짜내어 말하자 그 말에 반응하는 것처럼 천천히 문이 열렸다. 사방이 어둠 속에서 갑자기 쏟아져 내린 빛에 우신이 눈을 찌푸렸을 때, 조심스런 동작으로 남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진호? 무슨 일이…….”
그는 그렇게 말하다가 우신을 발견하고 이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 남자가 널 쏜 거냐?”
이진호는 고개를 흔들었다.
“여기까지 데려다 줬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총은 넣으세요.”
그러잖아도 우신은 속으로 혀를 차고 있었다. 나도 그렇지만 개나 소나 총을 갖고 있는 거 아냐? 그나저나 저 남자, 총을 갖고 있는 대머리 남자는 자신의 생각대로 우신이 찾고 있던 사람 중 하나일 거란 확신이 든다.
“서명의 선생님, 처음 뵙습니다.”
중앙병원 의사이며 이진호 형제를 치료해 준 장본인, 그리고 유하연에게 수시로 찝쩍댔다던 대머리 남자가 우신의 말을 듣고 흠칫 몸을 떨었다.
“나를 아시오?”
“아뇨, 이름만 들었을 뿐입니다.”
우신이 말하자 그는 어딘가 비열해 보이는 미소를 짓더니 문을 열었다.
“먼저 들어가세요.”
이진호의 말에 우신은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과 의자, 그리고 왼쪽 벽 옆에 놓여진 침대, 한 사람의 생활공간으로 개조된 사무실의 방이라는 사실을 그가 막 파악했을 때 갑자기……!
‘조심해요.’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었다.
그건, 누구였지?
여자의 모습이 희뿌연 시야 사이로 흐릿하게 비쳤다가 점점 사라져간다. 우신은 그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손을 뻗쳤다. 그러자 그 손 뒤에 서 있던 여자가 막 돌아서려던 몸을 다시 이쪽으로 향했다.
‘아? 아닌가?’
그녀가 아니었다.
‘말해두지만 동정 같은 거 아니었어요.’
여자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이며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으윽…….”
이러다가 제 명에 못 죽지. 대체 이틀 사이에 몇 번 기절하는 거냐.
흐릿한 머릿속으로 처음 떠올린 생각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우신은 뒤통수를 습격하는 둔통에 신음소리를 흘리면서 어금니를 사려 물었다. 바로 일어날 수는 없어서 눈을 감은 채로 잠시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 어지럽던 머릿속도 아주 조금은 맑아진 듯한 기분이 들어, 우신은 누워 있던 곳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때 몸 위로 얇은 이불이 덮여져 있는 걸 알았다.
뒤통수를 만져보니, 먼젓번 혹 위로 새로운 혹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욱신거리는 통증에 숨을 몰아쉬며 가슴 안주머니에 손을 넣자, 예상대로 권총은 사라진 상태였다. 제기랄.
그 때 확신이 섰다.
등대 근처의 작은 집에 나타나 그의 뒤통수를 후려친 인물은 이진호였음에 틀림없다는 사실.
우신은 천천히 방안을 둘러보았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천장에 실 같은 전선을 통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백열전구. 방 전체를 통해 빛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은 그것 하나였다. 그리고 자신이 누워 있는 매트리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썰렁하기 짝이 없는 방이었다. 위쪽에 작게 나 있는 창문에는 감옥 같은 철책이 세워져 있었다.
감옥.
감옥은 감옥이군.
우신은 매트리스에서 빠져나와 비틀비틀 일어섰다. 그러자 가려져 있던 하늘이 창을 통해 그 존재를 드러냈다. 눈에 비친 하늘은 이미 밤의 그것이 아니었다. 흔히 ‘청명하다’고 표현하는 완전한 푸른빛은 아니지만,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순간의 새하얀 푸른빛을 띤 하늘이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다. 그걸로 최소 하룻밤은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아니, 잠들어 있었다기보다 기절해 있었던 건가.
“으윽…….”
다시 입술 사이로 신음을 흘리면서 또 한 가지를 깨달았다. 눈에 비치는 전부가 기묘하게 비틀리고 있었다. 눈동자의 움직임을, 그것을 받아들이는 뇌세포가 미처 쫓아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술이나 마약에 절었을 때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법이다. 속도 메슥거렸다.
“하아…….”
우신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은 채 바닥에 손을 짚었다.
머리가 지끈거리며 찝찝한 통증을 호소해 왔다. 바닥에 닿은 손가락은 찐득찐득한 정액에 감싸인 것처럼 갑갑한 느낌을 받고 있었고, 아니, 그런 느낌을 떠나서 자기 손가락인 것 같지도 않았다. 몸 구석구석이 원활하게 맞물려 돌아가지 않는 느낌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기름을 치지 않은 톱니바퀴처럼 신체의 각 파트를 연결하는 곳마다 삐걱삐걱 소리를 냈다.
짹짹……, 짹짹…….
어딘가에서 어울리지 않는 새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어디인가. 여기는 내가 들어갔던 사무실 건물이 아니었던 것인가. 기억하는 바로는 그 건물은 절대로 새소리가 들릴만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지 않았다. 우신은 잠자코 새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현재의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리에 집중하고 있으려니 머리가 끊어질 것 같은 통증도 점차 엷어져 갔다. 우신은 그렇게 잠시 동안 몸을 추슬렀다.
그 다음, 그는 바지 벨트를 풀었다. 손안에 길게 잡힌 벨트 중앙의 금속 버클을 벗겨서 그 안쪽에 박힌 작은 철제장식을 뜯어낸다. 그리고 버클을 깨끗이 분해해서 다시 그만의 방식으로 끼워 맞추자, 이윽고 우신의 손에는 기묘한 형태의 드라이버가 들려 있었다.
벽에 손을 짚고 기어 올라갔다. 떨리는 손으로 엉터리 드라이버를 철책의 나사에 대고 조심스럽게 돌렸다. 무려 열개나 되는 나사를 차례로 분해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힘을 소진해야만했다.
우신은 땀이 흐르는 얼굴을 손등으로 훔치면서 떼어낸 철책을 본 다음, 창에 기어올랐다. 그리고 기어오른 창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젠장…….”
지독히 난감한 한숨이 샜다.
절벽.
눈 아래에 펼쳐져 있는 것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 희게 부서지는 파도를 자랑하는 바다였다. 그 광경은 참으로 절경이라 할만했다. 때마침 지평선 너머로 솟아오르는 태양이 그 광경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절경은 탈출에는 장애가 될 뿐.
아니, 이 정도라면 어떻게든 내려갈 수 있을 지도 몰라.
우신은 창틀에 다리를 올려, 창틀에서 벽으로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벽의 튀어나온 부분에 발끝과 손가락을 주의 깊게 올려 전체 체중을 받치는 일은 거의 예술작업과 같은 신중함을 필요로 했다. 또한 아래를 보지 않고 움직이는 그 작업은 호기심을 누를 정도의 인내심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손아귀의 힘에도 곧 한계가 왔다.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었던 그 때, 발밑을 받치고 있던 감각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우신은 떨어지면서, 있는 힘을 다하여 근처의 나뭇가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붙잡지 못하면 그대로 수십 미터를 추락하게 될 것이다!
“읏…….”
그것은 공포와 안도감이 뒤섞인 신음소리였다. 손에 분명히 나뭇가지가 들어와 있었다. 한손을 마저 올려 양손으로 가지를 단단히 붙들었다. 땀에 젖어 미끄러지는 손바닥으로 가지를 잡은 우신은 필사적인 심정이었다. 그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한 가지가 크게 곡선을 그리며 아래로 휘었다. 우신은 깨달았다.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조만간 떨어질 것이다…….
눈동자만 내려 아래를 내려다보자 다행히 수풀이었다. 어쩌면 죽지 않을 지도 모른다. 저 창에서보다 거리도 훨씬 줄어들어 있었다. 분명 어딘가가 부러지긴 하겠지만, 죽지는 않을 거 같군……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뚝, 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바로 위에서 들려왔다.
우신의 몸은 빠른 속도로 허공을 추락하고 있었다. 으음, 바람이 하도 거세서 앞이 보이지 않는군, 이런 건 곤란한데, 그나저나 언제 닿으려는 거야? 의외로 그 시간이 길어서 어리벙벙해질 즈음, 충격이 온몸을 강타했다!
땅에 닿은 몸이 그대로 데굴데굴 굴렀다.
약 다섯 바퀴 정도를 정신없이 구른 몸이 겨우 멈췄을 때, 눈물이 순간적으로 핑 돌 정도의 통증이 팔을 엄습했다. 우신은 잇새로 신음을 토하며 팔을 들어올리려 애썼다. 간신히 시야에 들어온 손바닥은 온통 피와 풀잎, 흙 얼룩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팔이 움직이며 내지른 지독한 격통에 시야가 까맣게 흐려졌다 붉게 물들기를 반복했다.
오른쪽 어깨가 탈구된 게 분명했다.
“망할…….”
저쪽에 건물의 벽이 보였다.
망설여봤자 용기가 사라질 건 자명한 일이었다. 더 이상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우신은 왼손에 아직도 쥐여 있는 나뭇가지를 입으로 가져가 어금니로 꽉 물었다. 그리고 이제 텅 비어버린 왼손으로 오른팔 위쪽을 붙잡고 건물 벽을 향해 탈구된 오른쪽 어깨를 부딪쳐 갔다.
한 번.
두 번.
세 번.
눈앞에 불꽃이 튀어 올랐다. 우신은 불꽃을 보며 어깨를 벽에 더욱 세게 부딪치길 반복했다. 탈구된 어깨뼈가 제대로 맞물릴 때까지.
어느 순간, 됐다 싶은 기분이 들었다.
우신은 어금니 자국이 선명하게 박힌 나뭇가지를 입에서 퇫 소리와 함께 신경질적으로 뱉어 냈다.
그리고 세 번째로 기절했다.
계속.
* Junk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5-09 11:08)
이렇게 되면 사건이 참으로 오리무중이로군요. 설마 모든일의 배후에는 지해가 있었다는..
뭐 그런건 아니겠지요?(미스테리 스릴러 영화를 너무 많이 본게야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