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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두 발의 총성
술집에는 손님이 우신 외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여기 들른다는 걸까? 하루 종일 발품을 팔며 돌아다닌 결과, 이곳이 이진호가 다닌다는 가게라는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사람이 없어서 장사가 어디 되겠나 싶을 정도인데? 우신은 전체적으로 모노크롬의 분위기를 띈 어둑한 술집 안을 빙 둘러보면서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한가하나 봅니다.”
우신은 메뉴판을 주는 마스터에게 그렇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여긴 원래가 그런 곳이죠.”
마스터는 별로 기분 상하지도 않은 듯 담담하게 대답했다.
“음, 이진호 씨는 여기를 무지 칭찬하던데요. 추천받아서 온 겁니다.”
그 말에 마스터는 단숨에 넘어간 듯했다. 그는 반가운 미소를 지으면서 묻지도 않은 말까지 해 주었다.
참 좋은 사람이죠. 1년 전에 사고로 한쪽 귀를 멀게 된 모양인데 안됐어요. 그래도 동생보다는 낫죠. 동생은 목발 없이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형편이 됐으니까. 그래도 두 사람 다 불평 같은 건 안하죠? 그렇지 않습니까? 이진호 씨는 출판사에서 교정 일을 본다고 하던데요, 맞죠? 아마 그쪽에서는 알아주나 봅니다. 동생은 학교는 안 다니고, 대신 검정고시를 준비하나 보더군요. 암튼 건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참 보기 좋습니다.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거든요. 그렇지 않습니까?
우신은 적당히 맞장구를 치면서 마스터의 말을 끌어냈지만, 결론적으로는 이진호는 아주 좋은 사람이란 이야기만 잔뜩 들은 셈이다. 뭔가 짚이는 데가 있어서 온 우신으로서는 쩝, 소리가 날 정도였다.
술잔에 입을 가져가면서 우신은 지해를 떠올렸다. 그가 데려다주겠다고 말했지만 지해는 지하철을 타고 가겠다며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주었지만, 역 안으로 걸어 들어가던 그녀의 등이 왠지 가냘파 보여서 우신은 마음이 썩 좋지 않았었다.
우신이 낮에 예상했던 대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즈음부터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오고 있었지만, 가게 안은 놀랄 만큼 조용했다. 멀찍이 천둥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든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착각일 뿐, 손님이 없는 가게 안은 그저 잠잠할 따름이었다. 그 때였다. 갑자기 비의 냄새를 머금은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을 깨닫고 우신은 고개를 들었다.
우신을 제외하고 오늘 첫 손님이다.
이진호……일까?
약간의 기대를 안고 고개를 돌린 우신은 일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는 걸까.
아니, 그렇다면? 이게 우연이 아니라면?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사진으로는 몇 번이나 보았었다. 잊을 리가 없다. 체지방이 10%도 안 될 듯한 마른 체구에 힘줄이 비칠 듯한 얇은 피부를 지닌 얼굴, 그리고 어깨에서 가볍게 묶인, 드문드문 새치가 섞인 머리카락.
방금 들어온 남자의 이름은 ‘반용수’였다. 틀림없다.
- 그럼 반용수란 남자도 아십니까?
- 이름은 들어봤죠.
- 그가 폭발사건의 용의자였다는 것도?
서민호 검사가 지목한 1년 전 레스토랑 폭발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현재 비혈파의 핵심멤버로 활동하는 폭탄제조인.
그렇다, 바로 반용수였다!
남자는 가게로 들어오자마자 우신이 앉은 구석자리와는 정반대 방향의 스툴에 앉은 채, 마스터에게 사투리 섞인 말투로 뭔가 말하고 있었다. 음악소리 때문에 대화 내용은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곁눈질로도 반용수가 안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 마스터의 가슴 포켓에 넣어주는 것만은 확실했다.
이진호가 자주 들르는 가게에, 반용수라.
분명 뭔가가 있다.
젠장, 저 음악소리만 아니라면…….
우신이 입술을 깨물고 있는 동안, 벌써 반용수는 용건을 마친 모양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왔던 모습 그대로 휭 하니 가게를 나가 버렸다. 우신은 찬찬히 고개를 돌려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마에 손을 짚으며 숨을 크게 내쉬고 있는 참이었다. 긴장이 풀린 듯도 하고 난감한 듯도 했다. 우신은 지나가는 말처럼 마스터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방금 들어온 손님이 무슨 말을 하던가요?”
“아, 아뇨. 아무 일도 아닙니다.”
마스터는 애써 담담함을 가장하며 대답했다. 하지만,
“이진호 씨에게 알려줘야겠는데요.”
우신이 이렇게 선수를 치고 나오자 바로 걸려들었다.
“아, 그건 좀…….”
그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우물쭈물하는 걸 보고, 우신은 아까 반용수가 그랬던 것처럼 지갑에서 한 장의 빳빳한 지폐를 꺼내어 바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걸 발견한 마스터의 표정이 바로 딱딱하게 변했다.
“아까 그 남자가 뭐라고 했죠?”
“왜, 왜 이러십니까.”
마스터의 태도는 꽤나 완강해 보였지만, 눈은 지폐에 박힌 채 떨어지지 않았다. 우신은 훗, 하고 웃고 또 한 장을 꺼내 아까의 지폐 위에 겹쳤다.
“자, 아까 반용수가 뭐라 했습니까?”
반용수란 이름을 들은 마스터의 얼굴이 더욱 파리해졌다.
“나는 여기 더 올 생각이 없는데……, 그야 손님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올 수는 있겠죠. 민중의 지팡이와 안면이 꽤 있어서 말입니다.”
우신은 또 한 장을 올리면서 가볍게, 하지만 위협적으로 덧붙이자 이번에야말로 마스터는 두 손을 들었다. 그는 죄책감을 강하게 느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웅얼거리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 그저, 이진호 씨가 지금 집에 있냐고…….”
우신은 마스터의 얼굴을 보고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그는 빠른 동작으로 스툴에서 몸을 일으켰다. 가게를 나가는 그의 등 뒤에서 마스터가 잽싸게 그가 남기고 간 지폐 석장을 낚아채고 있었다.
비는 아까 술집에 들어서기 전보다도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우신은 혀를 차면서 차에 올라탔다. 권총을 꺼내 장전된 탄환수를 확인해 보고 재킷 안쪽에 감췄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비의 음과 와이퍼 소리가 뒤섞여 고막을 어지럽게 간질이고, 헤드라이트가 어느 새 차도를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붉게 비췄다. 우신은 이진호의 집 앞에서 차를 멈췄다.
‘때맞춰 내리는 소나기로군.’
우산 없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온몸이 흠뻑 젖어드는 걸 알 수 있었다. 우신은 몸이 무거워지는 걸 느끼면서 울타리를 건너 이진호의 집 잔디밭에 뛰어들었다. 몸을 낮추고 움직여 일단 나무 그늘 아래 몸을 숨긴다. 뭔가 일어날 것만 같은 긴장감이 가슴을 쿵쿵 울리고 있을 때.
타앙!
타앙!
너무나 산뜻하게,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첫 번째 총성이 울린 다음, 그리고 두 번째 총성이 울리기 직전. 우신은 재킷 안주머니에서 총을 뺀 다음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가고 있었다.
창 아래 다가서서 아주 살짝 열린 커튼 사이로 집안을 들여다봤다. 불은 켜져 있지 않았고, 게다가 일체의 잡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인기척이라곤 느껴지지 않는다. 우신은 총을 이마에 누르고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행동을 개시했다. 창틀에 살며시 손을 갖다대자 의외라 싶을 정도로 창은 간단하게 열렸다. 하나, 둘, 셋과 동시에 창틀에 손을 대고 가볍게 점프.
마루바닥에 내려앉은 우신은 잽싸게 권총을 고쳐들고 주위를 둘러봤다. 작은 목재 테이블과 대조적으로 푹신해 보이는 흰색 소파가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 식구 중 몸이 불편한 동생 쪽을 배려한 가구인 것 같았다.
째깍 째깍 째깍 째깍…….
구석진 곳에 놓인 작은 나무시계가 심장박동과 템포를 같이 하여 일정한 소리를 울렸다. 우신은 그 소리에서 신경을 떼어 벽에 몸을 붙인 후, 기척을 죽여 입구로 향하는 통로를 살금살금 걷기 시작했다. 거실과 마찬가지로 통로 역시 불이 꺼져 있었다. 어둠 속에 간간히 스치는 빛은 아마 저 멀리서 천둥을 이끌고 달려온 번개이리라.
현관에 다다랐을 즈음, 우신의 발밑에 무언가 육중한 무게감이 걸렸다. 고개를 숙였을 때 마침 번갯불이 발밑을 크게 비쳐, 그는 그제야 무게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알아차린 순간, 눈썹이 저절로 찌푸려들었다.
시체다.
당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 가슴에 뚫린 구멍에서 피가 강줄기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신의 상황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눈과 입이 크게 벌려져 있는, 젊은 남자의 시체.
이진호는 아니다.
반용수도 아니었다.
이 남자는 대체……, 누구?
“호수공원에 가신다더니 왜 엉뚱한 곳에 계시는 겁니까.”
순간적으로 헉, 하고 신음을 뱉어낼 뻔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거쳐서 단련된 반사 신경 덕분에 우신의 몸은 머리보다 먼저 돌아서고 있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돌아서서 권총을 겨누자ㅡ
정확히 심장부근에 권총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권총은 정확히 상대의 코끝을 겨누고 있다. 정 대 정, 혹은 부정 대 부정. 완벽한 대치 상태였다.
“주거침입 및 불법총기소지죄를 저지르고 계신데, 뭐하는 분이죠? 경찰인가요? 그렇다면 두 번째 죄목은 빼드리죠.”
이진호는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신은 고개를 흔들어 대답했다.
“절 경찰에 넘기기 전에 물어보겠습니다. 저 시체는 누굽니까?”
“한때 형제였던 녀석이죠. 오랫동안 못 만났어요. 이런 식으로 재회하다니 참 어이가 없…….”
그 때 이진호의 무릎이 꺾였다. 그는 총을 쥐지 않은 손으로 옆구리를 누르면서 마룻바닥에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자세히 보니 그 옆구리에서 피가 폭포수처럼 솟구쳐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형제한테 뒤통수를 맞았나 보군요. 아니, 맞은 건 옆구리 쪽인가.”
“보시는 대로죠.”
우신의 말에 이진호는 킥킥 웃으며 대답했다.
“동생 분은?”
“여기 없어요.”
우신은 이진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거짓말을 할 여유는 없어 보였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건네자, 이진호는 그걸 받아 옆구리에 눌렀다.
“반용수는 어떻게 된 겁니까?”
“하, 놈을 아십니까? 잽싸게 도망쳤죠. 항상 도망치는 것만은……, 윽……, 최고인 놈이니까.”
이진호는 하아하아,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어느 덧 어둠에 익숙해진 우신의 눈에 땀으로 흠뻑 젖은 상대의 얼굴이 보였다. 이진호의 손에 들려있던 총이 슬며시 내려갔다. 그걸 보고 우신은 핸드폰을 꺼냈다.
“구급차를 부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우신이 핸드폰 버튼을 막 누르려 했을 때, 이진호가 손을 잽싸게 뻗쳐 우신의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 그 손아귀 힘은 부상을 당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부탁……, 단골 의사에게 데려……. 무단침입은 용서해 드릴 테니…….”
부분적으로 끊어져서 들린 부탁에, 우신은 말없이 이진호의 몸에 팔을 돌려 부축했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이진호는 안심한 듯 우신에게 기댔다. 두 사람은 현관에서 나와 우신의 차로 향했다. 두 사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피가 떨어져 흔적을 만들었지만, 억수 같은 빗줄기에 금세 쓸려 내려갔다.
힘을 완전히 잃고 몸을 기댄 남자의 무게는 상상 이상으로 무거웠다. 차까지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었는데 우신의 몸은 비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차에 도착하자, 우신은 이진호의 손에 들려 있던 권총을 받아 조수석 쪽 차문을 열고 던져 넣었다. 그리고 뒷좌석 문을 열고 반쯤 늘어진 몸을 밀어 넣은 다음, 문을 닫았다. 순식간에 뒷좌석 시트가 피에 젖어갔다.
“어딥니까.”
차를 출발시키자마자 질문하자, 이진호는 짜내는 듯한 소리로 목적지를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들으면서 우신은 왠지 모르게 이진호의 단골의사가 누군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아니, 확실할 것이다.
그리고 완벽하진 않지만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비슷한 색 퍼즐들이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아 들어가기 시작한 것 같은 기분도.
계속.
결국 로맨스를 쓰는 데는 실패했지만, 결론적으로 이걸 쓰면서 미스터리를 가미한 로맨스 장르일 경우 어떤 식으로 사건을 만들어야 실패하지 않을 지에 대한 감이 조금은 잡혔다는 점에서 아주 헛된 짓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꼭 한 번 지뢰를 밟고 넘어가야 깨닫는다는 걸까요.
* Junk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5-09 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