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8


8. 퍼즐의 또 한 조각





이진호. 27세. 사고 당시는 26세. 독신.
1년 전 폭발사고의 피해자 중 한 명. 사고 당시, 탁자를 쓰러뜨려 몸을 보호함으로서 간신히 생명은 건졌지만, 한쪽 고막이 파열되는 피해를 입음.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시고, 여동생만 하나 있음. 동생의 이름은…….

이진희. 18세. 사고 당시 17세. 당연히 독신.
역시 1년 전 폭발사고의 피해자. 오빠의 보호에도 불구하고 한쪽다리에 폭탄 파편이 박혀 한쪽 다리를 완전히 못 쓰게 됨. 그러나 운 좋게도 서울 중앙병원 서명의 의사에게 수술을 받고 어느 정도 회복.

퍼즐의 또 한 조각이 구석진 곳에서 발견되었다.
 






다음날 오전 9시.

“알겠습니다. 바쁜데 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신은 전화를 끊었다. 자신을 보는 지해에게 그는 간단하게 설명했다.

“서명의 선생은 지금 중앙병원에 없다는 군. 한 달 전에 나갔다는데?”

“왜요?”

“병원 약을 종종 빼돌렸다는데……, 확실한 건 잘 모르겠어. 1년 전부터 자꾸 약이 없어져서 조사해 보니 그 선생이 한 짓이었다고.”

“1년 전?”

“응. 폭발사고 무렵과 일치하긴 하지만, 우연일지도 모르지.”

물론 두 사람 다 우연이 아닐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자, 그럼 나가볼까?”

검은 폴로셔츠에 면바지. 오늘도 캐주얼 차림인 우신은 죽은 연인의 옷을 입고 있는 소녀를 향해 그렇게 말을 던졌다. 흰색 면바지에 오렌지색 반소매 티셔츠. 유감스러울 만큼 그 옷들은 지해에게 잘 어울렸다.

그녀는 머뭇거리면서 우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탐색하려는 듯한 눈빛이다. 우신은 고개를 으쓱했다.

“동생 찾으러 안 갈 거야?”

안심한 듯한 낯빛이 얼굴에 서서히 번져간다.

그리고 지해는 문을 향해 걸어가는 우신의 뒤를 바짝 따랐다.







일산의 고급주택가였다. 그림에나 나올 듯한 집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바닷가에 위치한 유하연의 집도 그렇지만, 만만치 않은 건축물들의 나열. 이진호, 이진희 남매가 사는 집은 그 중에 있었다. 푸른 잔디밭까지 화사해 보이는 2층집이었다.

그 잔디밭에 놓여 있는 나무 벤치. 그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것은 나이에 비해 동안(童顔)인 소녀였다. 벤치 옆에는 목발이 쓰러져 있었다.

“이진희?”

지해가 중얼거렸다. 우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이진호와 이진희 남매는 폭발사고의 거의 유일무이한 생존자였다. 사고현장에 있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너덜너덜한 시체로 발견된 상황, 두 사람은 유일한 생존자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 사건 이후에 두 사람에게 일어난 일은 마냥 납득할 수는 없는 수준의 것들이 상당히 있었다. 원래 가난한 고아였던 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장애자까지 된 두 남매에게 어떤 지원이 쏟아졌던가. 생활보조금은 당연한 거라 쳐도……. 오빠은 귀, 동생은 다리를 못 쓰는 장애자가 되기는 했지만, 둘 다 막대한 치료비가 들어가는 수술을 받고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다.

그 뿐이 아니다. 퇴원한 그들이 받은 건 보다시피 이런 고급주택. 게다가 평생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의 생활비를 매달 누군가 지급해 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편히 살수 있을 리가 없다.

“진희야!”

집 현관 입구에서 키 큰 청년이 나타났다. 훤칠한 체구에 제법 잘생긴 외모다. 우신은 무심코 청년의 귀를 살폈지만, 조금 긴 듯한 머리에 덮여서 전혀 보이지 않았다. 청년은 벤치에 앉아 있는 동생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점심 먹어.”

“오빠.”

동생이 그제야 정신이 든 듯 말했다.

“카렌데, 괜찮지?”

“응. ……아, 괜찮아. 혼자 일어설 수 있어.”

부축하려는 오빠를 만류하고, 동생은 목발을 집고 몸을 일으켰다.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는 동작이었지만 그는 예상보다 훨씬 능숙하게 움직여 현관으로 걸어갔다. 지해를 바라보니 꼼짝하지 않고 두 남매를 응시하고 있다. 어쩌면 그들의 모습에서 사라진 동생을 떠올린 것일지도 몰랐다. 동생을 앞에 두고 막 집에 들어가려던 오빠, 이진호가 갑자기 뒤를 돌아봤다.

“……!”

우신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바로 시선을 피하는 것도 어색하고 해서 그대로 상대를 보고 있으려니, 이진호가 바로 그들 쪽으로 걸어왔다.

“뭐 찾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말투가 약간 어눌하다. 한쪽 귀가 안 들리는 게 맞는 모양이다.

“아, 예.”

우신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색한 웃음이었다.

“호수공원에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되죠?”

“아아…….”

의아함과 불안함이 반반씩 섞여 있던 이진호의 눈빛이 조금 느슨해졌다. 그는 자세하게 가는 방법을 설명해 주고는, 마지막으로 싱긋 웃었다.

“요즘은 토요일에도 회사들이 다 쉬니까 데이트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오늘이 벌써 토요일이었나?

우신은 고맙다고 말하고 차를 출발시켰다. 차를 어느 정도 달렸을 때서야, 그는 옆자리에 앉아 있는 지해를 봤다. 그녀는 어색한 듯 웃음을 참는 듯, 당최 그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표정을 하고 있었다.

“왜 그래?”

우신이 이맛살을 슬쩍 찌푸리자, 지해는 표정을 고치고서 대꾸했다.

“아, 아뇨. 이제 어디 갈 거예요?”

“아까 말했잖아. 호수공원.”

“어? 정말로?”







데이트.
데이트라…….

키스……를 했다.
그렇다고 연인이라고 말할 수는…….

우신은 벤치에 앉아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시선으로 쫓고 있었다. 그 옆에 앉아 그런 그를 들키지 않도록 바라보던 지해는, 그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자 그만 당황해서 시선을 피하지도 못하고 굳어져 버렸다.

그런 순간에도 바람만은 시원하게 불고 있었다.

“조만간 비가 올 것 같은데?”

우신이 지나치리만큼 맑은 하늘을 보면서 말했다.

“어떻게 알아요?”

지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허리가 좀 시큰거려야 말이지.”

얼굴을 찌푸리며 꼬부랑 할머니 같은 자세를 취해 보이는 우신을 보며 지해는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지독히 썰렁한 농담이기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웃지 않으면 더욱 어색해질 것만 같아서다.

“어제 일은 미안해.”

지해는 웃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우신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진지한 시선이었다.

“뭐가요?”

지해는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신경을 기울이면서 그렇게만 반문했다. 물론 우신이 뭘 말하는 건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달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릎 위에 움켜쥔 손에 꾹 힘이 들어간다.

“순간적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졌던 거 같아.”

우신은 생각을 많이 해뒀던 것처럼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그래서 화가 났어.”

지해는 눈을 한번 깜박이고,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반응했다.

“말해두지만, 동정 같은 거 아니었어요.”

그는 그녀를 보지 않고 씁쓸하게 입 끝을 들어올리며 웃었다.

“알아. 충동이었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충동?
그건……, 충동이었던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동시에, 그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강하게 스쳐지나갔다. 덧붙여 ‘나도’라는 말이 굉장히, 아팠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화가 났어. 순간적으로 겹쳐 보여서……, 지금 생각해 보면 전혀 다른데…….”

“화를 내는 사람은 나여야 하는 건가요, 그럼?”

우신은 지해를 봤다. 그녀는 자신을 보지 않은 채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문득 그쪽으로 손이 뻗어 올라가는 자신을 느끼고 멈칫 동작을 멈췄을 때.

“어떤 사람이었어요?”

그 자세 그대로, 상대가 물어왔다.

“무슨…….”

“그 사람의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갖고 있을 정도로 잊을 수 없는 애인이 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요.”

그녀의 옆얼굴에 별로 악의는 드러나 있지 않다. 우신은 심호흡을 한번 하고 띄엄띄엄, 그러나 명료하게 되살아나는 기억을 누르듯 대답했다.

“유학생이었어. 참고인으로 알게 되서 6개월 동안을 같이 살았지.”

“형사 시절에 알게 된 거예요?”

“그래.”

우신은 방금 지나간 자전거를 눈으로 쫓으며 대답했다. NY의 공원에서 그녀도 저런 식으로 자전거를 타고는 했었지.

“사고였나요? 아니면 아파서?”

“사고……였다고 할 수 있겠지.”

그의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다.

“함정수사의 희생양이었으니까.”

“……예?”

“범인의 총에 맞았어.”

범인은 지능범으로, 동양계만을 집중적으로 노리고 있었다. 같은 동양계인 우신을 제외한 다른 경찰들의 무관심 속에 사건은 연쇄살인의 향방으로 치달아갔고,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까지 잃은 상황에서 그녀는 함정수사의 방식을 제안해 왔다. 그리고 그것은 절반의 성공과 실패로 끝났다. 결국 범인은 잡을 수 있었지만, 그녀 자신은 손쓰기도 전에 마지막 희생자가 돼 버렸던 것이다. 그 사건으로 그는 경찰을 그만두었다. 연인조차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지닌 채 일을 계속하기에는 그의 상처가 너무 컸다.

지해는 유감이라는 말조차 할 수가 없었다. 무릎 위에 둔 양 주먹에 힘을 꼭 실은 채, 그녀는 우신의 눈이 무표정한 만큼 몇 배로 슬퍼 보인다고 생각했다.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저렇게 맑은데 정말 비가 올까? 그럴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형사를 그만 둔 거예요?”

지해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마도.”

우신은 마치 남의 얘기를 하는 양 대답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단 내 방에 데려다 줄게.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같이 찾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지해가 벌떡 따라 일어서며 항의하자, 그는 돌아보지도 않고 대꾸했다.

“생각이 바뀌었어.”

“왜요?”

“걸리적거려서.”

무뚝뚝한 대꾸에 지해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원망스러운 듯 우신의 등을 노려보았지만, 왠지 이 순간은 그의 말을 들어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그래서 그녀는 잠자코 차로 향하는 그의 뒤를 따랐다.



계속.

* Junk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5-09 11:07)

댓글 '4'

릴리

2004.06.22 18:18:03

우신은.... 너무 냉정해!!!!

Junk

2004.06.23 00:25:00

별로 냉정하지 않아요, 릴리님. 굉장히 상냥한 남자랄까요. 뒷부분을 보게 되시면 알겠지만;

리체

2004.06.27 17:22:43

응. 아무래도 지해를 지켜줘야 할 여자처럼 생각하는 부분이 끝에 드러난 게 아닌가 싶은데.
우신이 이미지 모델 있나?

Junk

2004.06.29 05:35:40

없스...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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