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8


5. 야밤의 데이트





시체를 보는 것은 당연히 기분 좋지 않은 일이다. 한밤중에 서늘한 공기로 채워진 지하실에 놓인 시체를 보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을 테지.

춥군.
명색이 한여름인데.

포르말린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제는 익숙해질 만한데도 매번 여기 올 때마다 구역질이 날 듯한 걸 간신히 참곤 하는 우신이었다.

형광등 불빛이 눈이 아플 만큼 밝게 지하실을 비추고 있었지만, 그 인공적인 조명까지도 불쾌한 기분을 돋구는데는 외려 한몫 하는 것 같다. 우신은 버릇처럼 호흡을 가다듬고 손을 뻗다가 문득 멈췄다.

“괜찮겠어?”

그의 질문에, 지해는 약간 올라간 형태를 한 눈을 한번 깜박이는 걸로 긍정의 답을 대신했다.

“후회하지 마.”

“쓸데없는 소리 말아요.”

한껏 치켜든 턱. 도도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자신의 말에 받아치는 저 여대생을 여기까지 데려온 걸 우신은 진심으로 후회했다. 어지간히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여기까지 데려오긴 했지만 내심 껄끄러운 걸 어쩔 수 없다.

일부러 나서서 시체를 확인해 보겠다니, 그로서는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심리였다. 귀염성이라고는 요만큼도 찾아보기 힘든 태도하며, 이래저래 정 떨어지는 타입의 여자다. 한숨을 속으로만 씹어 삼키며, 그는 침대에 놓인 시체 꼭대기부터 덮여 있던 흰 천을 휙 벗겨 젖혔다.

눈을 깜박이며 옆에서 들여다보는 상대에게 물었다.

“맞아?”

지해는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어요. 뭐가 남아 있어야 알아보죠.”

그대로였다.

시체의 몰골은 한마디로 처참했다. 얼굴 절반이 날아가고 아래턱 정도만 대롱대롱 목에 매달린 형국이다. 인간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다이어트 중인 사람에게 강력 추천하고픈 영상이다. 보고 있으려니 저절로 밥맛이 뚝 떨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맞은편에서 빙글거리며 보고 있던 또 한사람 의 여자라면, 물론 정반대 증상을 보이겠지만 말이다.

“흥미만점이야, 우신 씨.”

문현정. 29세.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검시관.

지해와는 다르지만 역시 정떨어지는 타입의 여자. 무테안경을 걸친 지성파 미모의 소유주로, 길쭉한 손가락으로 시체를 즐기듯 다룬다. 징그러운 내장과 피가 난무하는 화면, 심장 약한 사람은 쇼크사하기에 안성맞춤인 스플래터 무비를 보면서 초밥을 먹는, 참말이지 요상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었다. 천직이야, 천직. 그녀를 아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뭐가 흥미만점이라는 거야?”

우신은 그녀를 보면서 가늘게 미간을 찌푸렸다. 현정이 생긋 웃었다.

“입안에 화약이 들어 있었거든.”

“화약?”

“응, 불꽃놀이 할 때 쓰는 폭죽 있잖아?”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낯을 하고 대답했다. 떨떠름한 얼굴로 우신은 그녀의 말을 고막에서 뇌로, 뇌에서 혀끝으로 굴리듯 움직여봤다. 폭죽? 폭죽이라. 폭죽을 입안에서 터뜨려? 그래서 얼굴 반쪽이 날아간 거였단 말이지. 그렇지만……, 대체……, 왜?

“의도가 뭘까. 짐작 가는 데가 있어?”

현정은 어깨를 으쓱했다.

“데커레이션 아니었을까? 미의식 있는 사람이 한 짓인가 보지.”

변태녀 같으니.

우신은 괜히 물었다고 후회했다.

저런 여자한테 애인도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변호사라는 그 애인의 낯짝이 심히 궁금했다. 같은 변태종인가?

어쨌거나 시간이 별로 없었다. 시체 앞에서 더 머뭇거릴 이유도 여유도 없다. 뒤에 선 지해는 아는 사람의 시체를 단순한 흥미 거리처럼 치부하는 현정이 영 맘에 안 드는 기색이었다. 아까부터 뒤에 떠도는 살기가 범상치 않다. 빨리 이곳을 떠나주는 게 모든 사람을 위한 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겠어.”

몸을 돌리려는 우신에게 현정이 물었다.

“다음 순서는 어디? 경찰서겠지? 아, 치현 씨나 서민호 검사님을 보면 안부 전해 줘?”

“OK.”

“잠깐, 잠깐!”

지해는 못 참겠단 듯 이미 문을 나가 있었다. 막 나가려던 우신의 옆에 다가온 현정은 이번에야말로 정말 흥미만점이란 투로 속삭이듯 물었다.

“저 아가씬 누구야? 애인……은 아닐 테고.”

“애인 맞아.”

“……흥.”

현정은 코방귀를 뀌었다. 놀고 있네, 의 눈빛. 그녀는 다분히 의심스런 눈초리로 그를 빤히 보다 ‘아무려면 어때?’ 라고 판단한 듯 가볍게 웃었다.

“하긴, 최상의 데이트 코스지. 특히 야밤엔. 종종 애용해 줘?”

담엔 다 같이 시체 옆에 둘러앉아 초밥을 먹자고 할지도 모른다. 충분히 진지하게 그런 생각을 할 여자였다. 우신은 무표정을 가장한 채 서둘러 문을 나섰다. 마녀의 영역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경찰을 만나러가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집까지 데려다줄게. 어디지?”

우신은 재규어의 보조석에 앉은 지해를 보며 말했다. 아주 진한 회색을 띤 밤의 장막이 드리워진 얼굴은 앳된 여대생의 그것이었다. 시체 따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어. 아무리 발돋움해 봐야 스스로가 이미 다 컸다고 생각하는 어린애에 지나지 않는 것을. 스스로가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어른은 없다. 스스로가 어린애라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고 받아들일 때,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해 있는 법이다.

“진짜 돈 잘 버나 보네요. 재규어를 몰다니.”

지해는 딴 소리를 했다. 우신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부잣집 딸이 그런 소릴 하다니, 순수한 감탄은 아닐 테고.”

“그래도 재규어는 첨 봐요. 우리 집 차는 두 대 다 벤츠인 걸.”

“……하아.”

“왜 남자들은 차에 그렇게 집착하는지 모르겠어. 좋은 차를 타면 자신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생각하나 보죠? 하긴 여자들이 보석에 집착하는 거랑 마찬가지겠지만.”

우신은 눈앞의 여자가 조금 측은해졌다. 얼마나 새어머니의 보석에 대한 집착에 질렸으면, 여기서까지 그 얘기가 나오겠는가. 그가 침묵을 지키면서 지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그녀도 머쓱한 지 화제를 돌렸다.

“또 갈 데 있는 거 아니었어요?”

우신은 핸들 위에 상반신을 기댔다. 조금 피곤하다. 머리도 아팠다.

“시체만 봤으면 됐지 궁금한 게 더 있어?”

“내가 귀찮은 거예요?”

“솔직히 그래.”

그걸 몰랐단 말인가? 그렇게까지 눈치가 없는 줄은.

“날 그렇게 보내고 싶단 말이죠?”

대답 대신, 끄덕.

“내가 싫다면요?”

“이봐, 스물두 살.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라며.”

“그래봐야 그쪽보다 열 살 넘게 어린데요, 뭐. 고집 좀 부리면 안돼요?”

뻔뻔한 건 거의 아줌마 수준인데? 우신은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서 지해를 빤히 바라봤다. 여기서 화를 내야하나 말아야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다행히도 그녀가 그를 번민의 늪에서 구해주었다.

“알았어요. 가 드리죠.”

“착한 아가씨로군.”

안도의 한숨을 쉰 우신은 핸들에서 몸을 일으켜 차에 시동을 걸었다.

“집이 어디지?”

“전철역까지만 부탁할게요.”

“벌써 밤인데?”

“아직은 전철 다니니까 걱정 말아요.”

딱딱하긴. 누가 모르나? 밤중에 아가씨 혼자 위험할까 봐 물어본 거지. 하지만 지금 굳이 집까지 바래다준다고 했다가 상대의 마음이 바뀔까 겁이 나서, 그는 그녀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







“너도 한대 필래?”

“줘.”

우신은 표치현이 내민 담배를 받아 입에 물었다. 치현이 라이터를 켜서 담배 끝에 대준다. 깊이 빨아들였다.

수사 1과의 사무실은 담배연기가 가실 날이 없다. 그 지독한 스트레스는 안 피던 사람도 담배를 절로 손에 집어 들게 만드는 것 같았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그 점만은 다를 바 없는 모양이다. 꽉 닫혀 있는 문 앞을 부산히  지나다니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치현이 담배를 오른손에 쥔 채 왼손으로 미간 사이를 가볍게 문질렀다. 아까 마신 인스턴트커피가 담겨 있던 종이컵에 재를 툭툭 떨군다. 우신은 그 광경을 눈으로 쫓으면서 음미하듯 담배를 피웠다. 치현이 피우는 건 그의 입맛에는 좀 비릿했지만,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담배 사는 걸 계속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정신이 없기는 없는 모양이었다. 이러니까 실수연발이지. 이러다 곧 죽는 거 아냐?

“자, 이제 아는 걸 다 불어 봐.”

치현이 선고라도 하는 듯한 투로 엄숙하게 말했다. 우신은 바로 답했다.

“할 말 없어.”

“정말?”

치현이 꿰뚫을 것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들여다본다. 우신은 순간적으로 멈칫했지만, 애써 티가 나지 않도록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에 전화가 왔는데…….”

치현은 담배를 빨아들였다.

“유하연 씨 아들이 없어졌다며? 의뢰인이니 당연히 알고 있었겠지?”

“음.”

“하, 근데도 할 말이 없다고 대답했단 말이지. 그렇단 말이지, 엉?”

치현이 음산하게 웃는다. 결코 기뻐서 웃는 게 아닌 것이 역력했다.

“너도 원래 경찰이었으니 알 거 아냐. 일을 빨리 해결하려면 같이 머리를 싸매는 게 정석이란 말이다. 여기 왔다는 건, 너도 우리한테 듣고 싶은 게 있단 얘기 아니냐? 예를 들면 김성민에 대해서라던가.”

“지금은 진짜로 할 얘기가 없어.”

우신은 고집스럽게 답했다. 아직은 곤란하다. 아직은 김성민과 지해 남매가 아는 사이였다는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아직은.

“씨발, 돌게 만드는구먼. 이 새끼, 저 새끼 전부 다!”

치현이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눌러 끄더니 머리를 미친 듯이 긁어댔다. 비듬이 날아오지 않을까 겁이 날 정도다. 몸을 슬쩍 비킨 우신의 귓가에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치현이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아, 예. 접니다. 예, 지금 마침 와 있습니다만. 오, 그래요? 말하는 쪽이 나을까요? 그렇게 하도록 하죠. 하지만 검사님, 엄연히 그쪽과 이쪽 영역 사이의 경계선이란 게 있는 겁니다. 전화로 다짜고짜 이런 얘기부터 해서 죄송하지만, 지나친 월권행위는 삼가 해주십쇼. 넵, 그야 잘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긴 하지요. 그러니까 저도 지금은 잠자코 있는 겁니다. 넵,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치현은 우신을 보더니, 눈썹을 한번 스윽 들었다 내리고는 묵직한 톤으로 선고했다.

“헤이, 너 좀 기다려야겠다. 검사 양반이 너 보러 일루 오고 있다는데?”


계속.



X-TYPE_Overview_EBAB7A6C-C03A-4D71-80CB-94C412788F73.jpg

우신이 모는 재규어입니다. X-TYPE.

* Junk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5-09 11:07)

댓글 '4'

D

2004.06.23 14:38:46

할리퀸에서 남주가 가장 많이 몰고 나오는 차가 포르쉐와 제규어 일듯... 날렵하군요.

Junk

2004.06.24 00:20:29

그게 로맨스로 쓰고 싶었던 제 야심의 표현이었죠...;

리체

2004.06.27 00:06:18

검시관 여자 맘에 들어..@@;

집시

2004.08.29 11:43:59

일본인의 재규어에 대한 발음은..."자가" 랍니다.
특이 하지요?..
처음에는 못 알아들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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