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8
[가족이 되어줘]의 에필로그로 써 두었던 글입니다. 지나치게 유치해서(...) 출판본에는 다른 게 실리기는 했지만요. 미천한 글을 보고 싶어하시는 씨엘님과 순진한 저를 어두운 계약으로 이끌고 간 S(저 착하죠?;)님 그리고 재준과 지윤의 이야기를 궁금해하셨던 분들께 이 글을 바칩니다. -_-비장 (뻔뻔스럽기는;;;) 아, 그리고 제목은 생각해 둔 게 마땅히 없어서 (...) 예전 최진실 주연의 영화 제목을 멋대로 갖다 붙였습니다. -_- 그럼 잡소리는 이만. (__)]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차를 주차장에 넣고 서둘러 차 문을 열며 마음이 바쁘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실습 중인 걸 뻔히 알면서 일부러 전화까지 해서 빨리 오라고 말을 했을까, 도무지 짚이는 데가 없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 보았지만 전화로는 이야기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라며 딱 잘라 말하는 통에 실습 내내 엉뚱한 추측을 하느라 바빴다. 청결하게 반짝이는 대리석 계단을 두 칸씩 성큼성큼 밟고 올라가, 현관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었다. 신발을 벗고 거실로 이어지는 나무 계단을 밟으며 누나를 부르려는데 그러기도 전에 이미 계단 위에서 내 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중요한 일을 전하려는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느긋한 표정이다.

“설마. 장난 친 거야?”

충분히 그러고 남을 사람이다. 여태껏 긴장하고 있었던 건 다 뭐였나, 허탈하기도 하고 또 속은 건가 싶어서 분하기도 한 복잡다단한 심정을 담아 누나를 얼굴에 시선을 두었다. 차분한 표정. 장난을 친 거라고 하기엔 또 지나치게 조용하고 침착한 반응이라 의아하다. 장난을 친 게 아니었나. 어리둥절해서 누나의 표정을 살피며 서 있는데 손에서 가방을 받아 들고는 일단 들어오라고 말을 건넨다. 그 진지한 울림에 다시 가슴이 뛴다. 누나는 어지간해서는 심각해지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인데 그래?”

이미 열번은 더 물어보았을 질문을 다시 해 보지만, 거실로 가자는 말이 돌아올 뿐이다. 거실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테이블 위로 와인병과 케익이 눈에 띈다.

“오늘 무슨 날이야?”

물어보면서도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기억해내지 못하면 우리 사이에 기념일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리 말해 두지 않으면, 누나는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고 넘어가는 사람이다.

“재준아, 이제 어떡해. 너 큰일 났어.”

돌연 몸을 돌리더니 팔을 들어 어깨를 붙잡는다.

“왜? 도대체 무슨 일인데.”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정색을 하는 것일까. 무슨 일로 이러는 건지 전혀 감이 오지는 않는데도 막연한 긴장감으로 마음이 초조하다.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한참 동안이나 뜸을 들이더니 괴상한 소리를 한다.

“너 이제 애 아빠야.”

애 아빠? 아아, 애 아빠. 그렇다면!

“누나 임신했어?!”

“응. 오늘 병원 가서 확인했어. 3개월이 조금 넘었대.”

“누구랑 갔는데?”

“혼자 갔지. 괜히 떠들었다가 임신 아니라 그러면 민망하잖아.”

볼을 붉히며 멋쩍은 웃음을 웃고 있는 누나가 나는 안쓰럽다. 그리고, 내가 그 빈 자리를 완전하게는 메워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하다.

“나한테 말을 하지. 그럼 어떻게 든 빠져 나왔을 텐데.”

“그게 뭐 혼자 못 할 일이라고 실습을 빠져.”

눈을 동그랗게 뜨며 큰 소리를 내더니,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어깨를 턱턱 두드리며 호기를 부린다.

“너 이제 홀 몸 아니야. 아내에 자식까지 딸린 가장이라고. 정신 바싹 차려야 돼. 아, 그나 저나 우리 재준이 불쌍해서 어쩌냐. 아직 학생인데, 유부남에 애 아빠라니 이게 웬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다섯 명 채우려면 갈 길이 바빠. 얼른 낳고, 또 둘째 만들어야지.”

누나의 밝은 웃음 소리가 높은 천장의 구석까지 닿을 기세로 터져 나온다.

“화이팅!”

주먹을 불끈 쥐는 모션을 취해 보이며 밝게 웃는 누나를 보고 있으려니 새삼 묘한 기분에 젖어 든다. 누나와 나의, 아이. 결혼을 하고 누나 가족이 살던 집으로 들어오고 이제는 아이가 태어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굉장한, 마치 기적 같은 일들이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시침 뚝 떼고 찾아와 있어서 어느덧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랑해.”

가슴이 터질 것처럼 벅차 올라, 설렘이 퇴색한 만큼 친숙해진 말을 꺼내었다. 진지한 고백에 웃음을 멈추고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누나가 너무 사랑스럽다. 거의 반사적으로 품 안으로 누나의 몸을 꽉 끌어 안았다. 머리칼에서 나는 달콤한 향기, 귀 밑의 보드라운 피부, 굳이 이유를 묻지 않고도 모든 걸 이해했다는 듯 등을 다독이는 손바닥의 다정한 울림. 누나의 모든 것이 내게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게 들어맞는다.

“다행이다.”

쇄골 위로 누나의 뜨거운 입김이 느껴진다.

“뭐가?”

“너 말이야. 임신했다 그러면 싫어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기뻐하네.”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왜 싫어해. 만날 애 다섯 낳자고 그랬던 게 누군데.”

말도 안 되는 억측에 기가 막힌다.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뭐?”

“그거 못 하잖아.”

“그게 뭔데?”

“그거. 너 좋아하는 거.”

“나 좋아하는 거?”

“그래. 너가 매일매일 하자고 조르는 거.”

뭘 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는데, 손가락으로 지퍼 위를 감싸며 킥킥거린다. 설마. 나 참. 기가 막혀서.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나온다.

“그렇지만 안심해. 의사 선생님이 그러는데 무리하게만 안 하면 된대.”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으며, 퍽 뻐기는 표정이다.

“여보세요. 제가 이래 봬도 의대생이거든요? 그런 건 내가 알아서 해.”

누나의 입술을 웃음 소리와 함께 내 안으로 함부로 훔쳐온다. 조그만 항의 정도는 가볍게 묵살한 채. 당신은 나의 아내이고 그리고 내 아이의 엄마니까, 이 정도는 실례도 아니잖아?

* Junk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5-09 11:05)

댓글 '22'

미진

2005.02.06 09:46:40

아아. 넘 이쁜 것들.. 알콜달콩 잘 살고있군요.
행복이 손에 잡힐거같아요. 리앙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또 좋은글로 찾아오실 날만 기다릴께요   [01][01][01]

Junk

2005.02.06 10:00:56

다섯 명 채우려면 갈길이 바빠...라니-0-
간만에 뵙는 커플이군요. 너무 기뻤습니다.   [01][01][01]

Jewel

2005.02.06 10:37:12

하아~~~~~ 너무 귀여워요 >_< 다섯명 채우려면 갈길이 바쁘다라니 재준이 다운 반응이군요 +_+   [01][01][01]

서누

2005.02.06 10:40:59

마피아가 되어줘..에 이런 뒷얘기가 있었군요 @_@   [11][07][07]

로민

2005.02.06 10:54:45

오랜만에 지윤-재준 커플의 귀여움 어택!! 어서어서 다섯명을 채우기를 바랍니다. ^-^   [01][01][01]

수룡

2005.02.06 11:41:13

내용 잘 읽고 서누님 댓글보고 웃겨서 엎어짐 ㅎㅎ; 저 [마피아가 되어줘]가 무슨 소리냐면, 저번 정팅 때 "가족이 되어줘"는 이탈리아식으로는 저렇게 된다는 말이 오갔었습니다 ㅎㅎㅎ;;;

재준아, 5명 얼른 채우거라~* -ㅁ- 할 수 있을 거야! +_+/;   [01][01][01]

Jina Chai

2005.02.06 19:34:15

흐흐흐 넘 귀여운 것들~
이렇게 이쁜 에필을 어찌 감추고 계셨데요? 재준이가 학생때 애 아빠가 되는군요... 전 애 둘쯤에 예전 지윤이네 들어가서 사는 이야기가 나오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종종 했어요.(그럼 넘 힘들라나요? 지윤이가?)

어쨌든 반가와요~~~   [01][01][01]

사귀자

2005.02.06 21:27:43

아무래도 리앙님을 사랑하게 될것같아요~~(퍽!!)
구원에필 입싹~~씻으신거 용서되구요, 더불어 설날 복 몽땅 기원합니다.
재준이 화이팅...지윤이누님!! 힘입니다요...ㅋㅋ   [01][01][01]

편애

2005.02.07 01:33:17

ㅎㅎ; 너무 귀여운데요;;
어렴풋이 이렇진 않을까 미루어 생각했던 가족이 되어줘, 의 에필을 보니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지네요^^   [01][01][01]

떠돌이별

2005.02.07 04:56:22

쿡쿡쿡.... ^^ 좋아요 좋아~~   [01][01][01]

하늘바람

2005.02.07 11:48:45

ㅋㅋㅋ 역시 행복하게 잘 살고 있군요~^^   [01][01][01]

파수꾼

2005.02.07 11:59:54

5명은 좀 많은데... 하긴 요즘 인구가 너무 급속도로 준다니까
재준이라도 힘써야죠.ㅋㅋ   [07][01][07]

피오나공주

2005.02.08 00:54:11

5명 ㅋㅋㅋ 좀 많이 노력해야겠네요...
리앙님 새해복많이 받으셔요...   [09][09][09]

레띠츄

2005.02.08 02:11:31

읽는 내내 웃음이 가시질 않네요.. 저렇게 알콩달콩 살고 있군요.. 너무 귀여워요, 정말이지.. >.< 재준아, 화이팅이다.. 갈 길이 머니 힘 내거라.. ㅋㅋㅋ   [01][01][01]

후후

2005.02.12 16:04:20

리앙님 에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족이 되어줘'를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그런지 짧은 에필로그지만 너무 즐겁게 읽었어요. ^^   [09][04][09]

yuky73

2005.06.11 20:11:15

왜 리앙님을 이제서야 알게 된건지...어휴
저 얼마전에야 여기 에필보고 가족..구입했다는..ㅎㅎ
읽는 내내..지윤이 부러워서 돌아버릴뻔한거 있죠
구원...읽으러 갑니다 ^^/

그넘

2005.07.02 10:40:46

전 이 에필이 더 좋네여 ,,, 가족이 되어줘 2부는 없나요 헤헤

하늘지기

2006.07.20 16:44:56

이뿌다~ 나두 이렇게 살고 싶다고요오~~~~~~~~~~~

토파즈

2006.11.06 15:12:37

재준과 지윤의 에필을 이제서야 봤네여..... 가족이 되어줘....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좋아요~~~~^^

그냥

2007.03.25 13:06:07

어제 밤을 새우면 읽었어요... 그리고 행복한 기운에 푹 잤구요. 실은 대여점에서 빌려 읽은 책인데, 새책으로 살겁니다. 출판일이 2년이 지나서 혹시 절판이면 어쩌나 했는지 다행이 살수 있겠네요... 이렇게 달달하고 몽글몽글한 글 적어주셔서 감사해요...

캔디

2007.06.07 18:16:11

이런게 있었네요^^
실은 가족이 되어줘 읽은지 얼마 않됐습니다...누나팬닷컴 읽고 작가님 책 찾다..주위분 추천으로 읽게 됐는데..
넘 좋았어요..아직 그 여운 남아있는데..
불쑥 이글을 보게 되니 더더욱..재준과지윤이..그리워 지내요..
정말정말 잘 읽었습니다..남여의 사랑이 아닌..가족과가족..이라는
그 말로만 들어도 따뜻한 가족때문에 잔했고..눈물도 흘렸구요~~

윤우

2007.11.14 11:45:26

위에 위에 "그냥"이라는 닉넴으로 적은 사람인데요. [가족이 되어줘]를 딴에는 어렵사리 샀답니다. 나중에 새책으로 보면 한권 더 살래요. 그래도 전혀 아깝지 않아요. 실은 고백하자면요. 이 책이 제가 젤 좋아하는 로설입니다. 그래서 작가님이 무지무지 고마워요. 작가님 킹왕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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