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8

암스테르담: 홍등가

제인이라는, 상당히 영국틱 하면서도 요조숙녀태가 폴폴 날리는 이름을 가진 그녀를 만난 것은 테드가 열아홉 되던 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 한 후,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해 봐야겠다는 들뜸에 휩쓸려 친구들과 암스테르담으로 향했었다. 서로 웃기지도 않은 윙크를 날리며 말이다.

쉽홀 공항에서 약 이십분 정도 떨어져 있는 암스테르담 중앙역은 관광객들 천지이다. 그것을 알리 없는 그들은, 중앙역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홍등가 안 호스텔을 잡았다고 좋아했다. 부잣집 아드님들이시다 보니 최고급 호텔에 충분히 묵을만한 금전적인 여유가 있었지만, 열아홉 졸업 여행에 특급호텔이 무슨 말이더냐. 당연히 홍등가 안에서 묵어야지! 부모님이 보시면 기절할 정도의 후줄그레한 호스텔이라면 더 안정맞춤이 아닌가!

호스텔 근처를 둘러싼 커피샵에서는 대마초 냄새가 폴폴 흘러나왔고, 섹스숍이 휘황찬란한 불을 밝혔다.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한, 순진하기 짝이 없는 테드와 그의 친구 세 명은 최대한 관광객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휘둥그레지는 눈까지는 조절을 하지 못했다. 엄격하다면 꽤 엄격한 부모님 덕에 포르노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그들인지라, 전혀 부끄러움이 없어 보이는 섹스숍은 그야말로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부모님이 말해준대로 소돔과 고모라에 제일 가까운 홍등가 안 유스 호스텔, Cockring 이라는 게이 나이트 클럽 바로 앞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성기 피어싱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가 있었고, 그곳에서 다리를 하나 건너면 본격적인 홍등가의 시작이다.

넷 다 목소리만 컸지, 정말 창녀를 고를 용기는 없는지라, 그들은 많이 취한 듯 갈지자 걸음을 걸으며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무서울 것 없다는 분위기 연출에 고심했다. 정말 예쁜 여자가 보여도 마음에 안 든다며 큰 소리를 쳐댔지만, 사실은 겁먹은 어린 강아지 무리나 다름없었다. 대마초 한번도 못해본 그들이 아닌가. 그리고 그들 중 둘은 아직 동정을 잃지 못한 숫총각이었다.

그런 그들을 불러 세운 것은 양복을 차려입은 삐끼였다. 라이브 섹스 쇼, 한 사람당 사십 유로란다. 직접 창녀들과 흥정을 할 필요가 없는 데다 음료수까지 준다니, 그야말로 그들에게 딱 맞는 선택이 아닌가.

다들 신나게 지갑을 꺼내어 사십 유로를 꺼내들었고, 그가 건네주는 티켓을 받아들고 입이 찢어져라 웃어댔다. 라이브 섹스 쇼라니. 이제까지 플레이보이 잡지도 마음 놓고 보지 못한 그들은 이미 표정이 반쯤 풀어져 있었다. 최소한 네 명의 커플이 적나라한 성교를 할 거란다.

카페 로소라는 곳에 도착한 그들은 최대한 거드름을 떨면서 티켓을 내밀었다. “이런 대단하고도 용감무쌍한 행동을 하는 우리가 어찌 열 아홉이겠느뇨” 라는 분위기를 연출하려 다들 애썼지만, 그들에게 관심을 두는 이는 별로 없었다.

약 백명이 앉을 수 있을 듯한 작은 공연장에 들어서 자리를 잡고 앉았고, 이미 무대에서는 한 여자의 스트립쇼가 한참이었다.  

라이브 섹스쇼 클럽에서의 남자들의 포즈는 거의 다 비슷하다. 정말 지루해 하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손이 조금 벌어진 가랑이 위에 걸쳐져 있다. 여자와 함께 있는 남자들은 그렇게 발기를 숨기려 하고, 혼자 있는 남자들은 조금 어둡다 싶을 때 눈치를 보며 슬슬 문질러 대기도 한다. 아주 가끔가다 리모트를 쥐고 있는 여자들도 볼 수 있다. 의자에 깊게 기대어 앉아 다리를 조금 벌린 상태에서 리모트의 버튼을 올렸다 내렸다 한다. 음악 소리에 진동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운이 좋다면 오르가즘의 경련이 온 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볼 지도 모른다.

그저 그렇던 스트립쇼가 끝나고, 흑인 커플이 무대에 나타났다. 작은 방만한 좁은 무대 중앙에 여자를 눕히기에 조금 짜증이 났던 테드는, 피스톤 소리와 함께 동그란 원이 떠오르자 길게 뺐던 목을 원위치 하며 입맛을 다셨다. 바닥에 누워야 하는 경우를 위해 설마 그 정도의 무대 장치를 안 해놓았을 리가 없긴 하다.

빨간색 가죽으로 덮여진 동그란 원 위에서 잘 다듬어진 흑인 남자가 비스듬하게 누웠다. 천천히 돌아가는 원이라 곧 그의 성기가 적나라하게 보였고, 테드를 비롯한 네 명의 남자들은 숨을 깊게 들이켰다.

정말 크다.

흑인들의 성기가 크다는 소문을 듣긴 했었지만, 그닥 신빙성은 없다 믿었던 그들이었다. 몰래 몰래 훔쳐본 포르노에서 아주 큰 성기를 가진 몇 명을 보긴 했었다. 그렇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또 틀렸다.

족히 25센티, 30 센티는 되어 보이는 데다 굵기까지 엄청난 그의 페니스는 그의 파트너에게도 부담이지 않을까 했으나, 그런 그들의 걱정이 무색하게 여자의 입안으로 쏙 사라졌다. 구강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페니스의 반이 입으로 들어갔으니 보통 사람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

음악에 맞춰서 감동할 만한 펠라치오를 선사하던 여자가 곧 가죽위에 드러누웠고, 남자는 그 엄청난 사이즈의 성기를 그녀의 입구에 갖다 대었다. 테드와 그 친구들은 과연 저것이 들어갈 수 있을까를 소근 거렸다. 특수 구강 구조를 가졌으니 특수 내부구조도 가지지 않았을까 하며 심각하게 제안하는 제임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대 위 남자의 성기가 파트너의 몸 안으로 재빨리 숨어 들어갔다.

이상하게도 테드는 흥분은 되지 않았다. 근육질의 남자가 체조선수의 자세로 삽입을 반복하는 것을 정신이 홀린 듯 입을 헤 벌리고 바라보고 있긴 했지만, 포르노 감상 때의 흥분과는 틀렸다. 남자의 움직임이 상당히 감동적이긴 하지만, 포르노보다는 덜 자극적이어서 그럴까. 신기한 서커스를 보는 어린 아이 마냥 열심히 쳐다보던 테드가 무색하게, 금방 커튼이 쳐졌다.

흥겨운 남미의 음악과 함께 커튼이 다시 열렸다. 밝은 녹색의 비키니 상의와 같은 색깔의 네모난 플라스틱을 줄줄이 꿰어 만든 치마를 입은 여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높은 굽의 부츠까지도 같은 색깔인데도, 갈색 피부에 꽤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씬한 다리와 허리에, 그리 크지 않은 가슴도 보기 좋았다.

리듬감 있게 움직이는 모습 때문에 벨리 댄싱이나 하와이의 전통춤을 배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극적이면서도 오버하지 않고, 언뜻 보면 간단한 움직인 것 같은데도 지루하지 않은 그녀의 움직임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테드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아주 재밌다는 듯한 그녀의 미소였다.

비웃음도 아니고, 씨니컬 하지도 않은, 해변가에 휴가라도 간 듯한 미소가 그녀의 입가를 떠나지 않았다. 싸구려 포르노를 봐 와서 그런지, 창녀나 그 외 섹스업 종사자는 왠지 노골적인 유혹이나 겁먹은 표정만 어울린다고 믿었나보다. 친한 친구들과 같이 저녁을 먹는 듯한 분위기에 느긋한 미소, 그리고 그에 딱 어울리는 춤동작.

객석에서 세 명의 남자를 불러내어 같이 춤을 추는 모습은 여느 나이트 클럽의 여자들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비키니 상의를 벗어던지는 것도, 유혹적이기 보다는 유쾌하게 보였으니까.

곧 세 명의 남자를 그녀의 앞에 앉혀놓고, 음악에 맞추어 몇 번 더 무대를 돌던 그녀는 자리에 누웠다. 무대 옆에서 큰 성기가 달린 원숭이 유니폼을 입고 돌아다니던 이가 바나나를 던졌고, 그녀는 바나나를 반 정도 까서 질 안으로 집어넣었다.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첫 번째 남자가 한입을 물었고, 두 번째 남자가 또 한입, 세 번째 남자가 또 한입을 베어 물자 바나나는 거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았다. 때를 맞추어 음악이 끝났고, 커튼이 닫혔다.

오히려 바로 전의 섹스 쇼보다 더 즐거웠다는 생각에 테드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다시 커튼이 열리자 이번에는 백인 커플이 성교를 시작했지만, 리듬감 없이 움직이는 금발 여자를 보자 이상하게 짜증이 솟구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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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홍등가는 밤에 비해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과하게 개방적인 것 같으면서도 오히려 그렇지 않고, 선정적일 것 같으면서도 사실 재밌다는 표현이 더 적합한 분위기 때문일까. 테드 그가 예상했던 것과 많이 다른, 어떻게 보면 이중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암스테르담의 분위기에 익숙해져 가는 중이었다.

밤에만 반짝 하고 낮에는 흉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무너져 있기를 예상했던 것일까. 그 전날 밤과 다름없이 섹스숍 옆에서 피자와 과자 거리를 파는 사람들이 너무 자연스러워, 다르기를 바란 그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진다. 반항적이라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는 청교도적 사상이 깊게 뿌리박혀 있어서인지 모른다. 어둠의 무리들이니, 낮의 빛을 받으면 부끄러워서라도 타 버릴 거라 믿었을까.  

술을 있는대로 들이 부어 뻗어 있는 일행을 뒤로 하고, 아침 햇살이 상당히 밝은 암스테르담의 아침을 구경하러 나선 길이었다. 동심원 모양의 운하가 반복되는 암스테르담을 혼자 걷다, 꽤 사나운 자전거족들에게 쫓기고, 소리 소문 없이 다가오는 듯한 트램에 깔릴 뻔 한 것도 몇 번이었다. 어디에 가겠다는 목적도 없이 슬슬 걸어 다니던 그는, 익숙한 뒷모습이 그의 시야를 스치자 고개를 쭉 빼고 돌아보았다.

곱슬 거리는, 볼륨 있는 머리카락과 날씬한 허리, 쭉 뻗은 다리. 웬만한 네덜란드 여자보다 훨씬 작은 몸매.

아는 사이는 절대로 아니고, 인사하기에는 아주 버거운 관계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유쾌한 그녀의 미소가 인상이 깊었던 터로, 가서 아는 척을 해도 괜찮을 거라는 만용이 생겼다.
그저 걸어가고 있을 뿐인데도 발걸음에서 리듬이 묻어나는 그녀를 쫓아 발걸음을 빨리했다. 그리고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멈칫 하다, 횡단보도 앞에 선 그녀의 어깨를 톡톡 두들겼다.

“응?”

돌아보는 그녀의 얼굴은 무대위에서 보는 것과는 조금 틀렸다. 아무리 작은 공연장이라 해도, 그와 그녀와의 거리는 최소한 십미터 정도 되었던 만큼, 조명과 화장, 그리고 화려한 의상을 제한 그녀는 달라보였다. 그래서 사람을 잘못 보았나 순간 망설였지만, 그녀의 입가에 퍼지기 시작하는 미소는 곧 그에게도 전염이 되었다.

“아, 안녕하세요.”
“누구?”

연한 갈색의 피부와, 짙은 초콜릿 빛 눈동자가 잘 어울린다. 작은 얼굴인데도 이목구비는 시원시원하고, 느슨한 미소와 모양 좋은 눈이 환상적이다.

“아, 참. 모르시죠. 저, 음.”

영국인들이야 원래 첫인사를 어설프게 하는 것으로 소문난 사람들이 아니던가. 게다가 모르는 사람을 불러 세워 말을 걸다니, 아무도 안 믿어줄 일이다.

“나 제인이라고 해요.”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어색해 하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나 보다. 테드는 황급히 그녀의 손을 잡고 헤벌레 웃어보였다.

“테드, 테드입니다.”
“후후. 나 점심거리 사러 가는데, 같이 갈래요?”
“아? 네. 네.”

누구? 라고 물었을 때부터 자신 질책 및 초긴장 상태로 돌입했던 테드는, 간단한 몇 마디후 두 사람을 동행인으로 묶는 그녀의 능력에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반갑긴 한데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몰랐다는 것.

“어, 어제...”
“응.”

한낮이다 보니, 당신을 어제 섹스쇼에서 봤어요란 말이 절대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섹스쇼걸이나, 창녀라면 왠지 처절하게 느껴지다 보니 더 안 맞는지도 모른다.

빙글빙글 웃으며 수퍼마켓 안으로 들어선 그녀가 바구니 안에 이것저것을 집어넣었다. 아무렇게나 흐트러지는 듯한 머리카락과 그녀가 숙일 때마다 보이는 허리를 쳐다보느라, 무엇을 사는지는 보지도 못했다. 계산을 하고 나올 때까지 강아지처럼 졸졸 쫓아다닌 그는, 슈퍼마켓 앞에 서서야 그녀의 처음 초대가 끝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의 얼굴을 슬 살펴보는 그녀 앞에서 우물쭈물 하던 그는, 이상 없는 청바지를 쓸어내리며 뭘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였다. 그녀를 왜 불러 세웠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밝히지 않았다. 그렇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을 어떻게 하랴.

“테드.”
“예?”

연한 미소가 번져나간다.

“나, 그냥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이라, 무리하진 않거든요. 마음에 드는 사람이면 같이 데이트 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 없으면 그냥 며칠 굶어요.”
“저, 저기.”
“응?”
“제가... 저녁 사드리면 안 될까요?”
.
.

‘네가...마음에 들어.’

섹스라고는 고등학교 시절 후배 여자아이를 몇 번 꼬셔 보았던 것이 전부인 테드에게 그녀가 그렇게 속삭였었다. 손과 얼굴을 보이는 것은 괜찮지만, 가슴을 거의 다 내놓는 것도 괜찮지만 젖꼭지가 보이는 것이나 국부가 나타나는 것은 죽어라고 꺼리는 사람들이 참 이해가 안 가더라는 제인. 몇 년이 지난 후, 테드는 그녀의 이름이 제인이 아닐 거라는 데에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영국인이라는 것을 알아 차려서 제인이라며 놀린 것인지 모른다. 몸을 보이는 것보다 이름을 말해 주는 것이 훨씬 더 친밀한 거라 믿는 그녀였으니까.

‘난, 제일 강력한 포르노 보다 더 야한 프로그램을 사람들이 시청한다는 걸 신기하게 생각했거든. 누구나 옷을 벗기면 볼 수 있는 몸뚱아리 보여주는 것보다, 오프라 윈프리 쇼가 훨씬 더 자극적이지 않니? 말하지 않으면 모를 말들을, 개인적인 말을 줄줄이 털어놓잖아.’

그녀의 그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스트립 쇼나 라이브 섹스쇼보다 오프라 윈프리 토크쇼가 더 야하다니.

악수를 나누는 것이나, 키스를 나누는 것이나 비슷하지만, 자라온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선정적이라나. 그 몸과 연결된 기억은 아무도 추측할 수 없는 것이니까, 그 안에 담긴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 더 관능적이란다. 그러므로 나이나 이름을 말해주는 것이 가슴을 내놓는 것보다 더 노골적인 공개라 했다.

‘말을 할 때면, 영혼도 같이 쏟아져 나오잖아. 몸을 섞는 거야, 마음에 드는 사람과 같이 밥먹는 거랑 비슷하니까.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 같이 자는 대가로 돈까지 주겠다면 더 바랄 수 없지. 그리고, 괜찮은 사람하고 섹스를 하는 댓가로 꽤 괜찮은 돈을 버는 거, 그리고 여행하는 거, 그런대로 할만하지 않니?’  

보통 스트립쇼를 하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이면 섹스를 한단다. 그리고 가끔가다 연인이 생기면 라이브 섹스쇼에서 관계를 갖기도 한단다. 싫어하는 사람과 억지로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가치관 차이라나. 자기는 게으르기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일 해야 할 필요는 못 느낀단다.

‘그럼, 그럼 나는?’
‘네가 뭐?’

조바심이 난 열아홉의 소년이 그녀에게 물었고, 그녀는 한쪽 눈썹을 올리며 묻다 예의 그 편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커피색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고, 방금 먹은 딸기의 새큼한 맛이 배어있는 그녀의 입술이 그의 아랫입술에 닿았다.

‘너는...?’

테드가 급하게 숨을 몰아쉬었고, 그녀의 작은 손이 그의 셔츠 밑 맨가슴을 어루만졌다.

‘네가...마음에 들어.’

그녀의 손이 그를 한없이 간질였다. 그녀의 입술에 취해있던 테드가 서투른 손길로 그녀를 애무하고, 그 전날 백인 여자아이만큼이나 리듬감 없이 옷가지를 벗겨 내릴 때에도 제인의 입가엔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어디서 꺼내왔는지, 노란 색의 콘돔을 그의 단단해진 성기에 씌우고 입으로 살짝 핥아준 후, 바지를 마저 벗겨 내렸다. 제인을 안아 든 후에, 식탁에 살짝 앉혀놓고 딴에는 열심히 삽입하는 동안, 박자에 전혀 맞지 않게 그녀의 입술을 핥고 두 번 연속 사정하는 동안, 제인은 그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빗어주었다. 땀에 젖은 그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닦아내는 제인은 그녀의 얇은 손가락만큼이나 가냘팠다. 그의 가파른 숨결이 겨우 멈추자, 제인의 입술 사이에서도 아주 작은 한숨소리가 새어나왔다.

‘난 아주 반가운 악수라고 생각해. 마사지도 겸한 유용한 악수 말이지.’

손을 내밀어 악수하는 것과, 성기를 삽입하는 것이 비슷한가라는 고민에 혼란스러웠다. 아직도 그녀의 안에 깊이 자리를 잡은 테드에게 논리적인 생각은 불가능이라는 것을 알긴 하는지.

온몸을 경련하면서 정액을 뿜어내는 그를 그러안고 등을 도닥이는 제인. 아마 그가 별 경험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적나라하게, 그리고 상당히 언쿨 하게 절정을 하고 나서야 그녀의 표정을 살폈으니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워낙이나 어수룩한 영국인들이고, 테드는 그 중에서도 더 심한 편이었다. 창피함과 부끄러움으로 그녀를 어설프게 쓸어내리는 테드를, 그녀가 가는 팔로 감싸 안으며 볼에 가벼운 키스를 남겼다.

‘나 스물두 살이야. 네가 참 마음에 들어서 해 주는 말이야.’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원래 입에 밴 “Thank you" 나 "Please", P&Q 때문이 아니라, 그가 어려워하지 않도록 참이나 자상하게 배려를 해주는 그녀인 것을 알고 있으니까.

어둑어둑해지려는 오후, 그녀의 집을 나서는 테드는 머뭇거렸다. 그녀의 연락처라도 받아두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다. 미안하다고, 곧 나가봐야 한다는 제인은 비싯 웃으며 그의 입술에 키스를 남겼다.

‘영국 사람인건 아는데, 예의상이라도 다시 만나자는 말을 하지 않는 거야.’
‘제인...’
‘좋은 여행 하고 가길 바랄게. 잘 가, 꼬마 도련님.’
.
.

“그래서 그랑 헤어졌어요. 남들은 이기적이라고 할지 몰라도, 왜 있죠,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다 소용 없잖아. 난 날 존중해 주지 않는 남자는 못 참거든요.”

어쩌고 저쩌고 종알 종알. 마가렛의 이야기를 듣는 척 하는 것도 한시간이 지나니 슬슬 짜증이 나려 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제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렇게 말을 쏟아내는 것이 더 음란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난 그게 참 신기했거든. 가족이나 친구들의 이야기는 쉽게 늘어놓으면서, 왜 윗도리를 벗는 것이 음란하다고 생각하지? 속안을 보여주는 것이 더 어려워야 하는 것 아닐까?

마가렛은 그런 여자들 중 한명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나, 감정적인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 영국인들에 비해 만난지 오 분 만에 제 지난 남자친구 이야기를 꺼내는 그런 미국인중 한 명. 어쩌면 솔직하고 꾸밈없다고 봐 줄 수 있는 것인데도, 대다수의 영국인들처럼 그는 그런 상황을 불편해 한다. 차라리 그의 앞에서 윗도리를 벗어 제치고 아무 말 없이 웃어주는 것이 더 편할 것 같다. 꼭 섹스를 하지는 않더라도 말이지.

제인을 마지막으로 본 지 삼 년이 지났다. 이름은 제인이 아닐 테고, 그 집 주소는 알지만 그곳에 있을지 만무하다.

매춘은 뭔가 처절할 것 같다던 어린 시절의 선입관을 깼던 그녀의 여유로운 미소. 유치하고도 유치한 그를 받아주면서도 빙긋이 웃던 그녀. 몸 움직임 하나하나가 참 멋있던 그녀가 어디에 있을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매 해 가볼까 망설이던 암스테르담에,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갈 수 있을지 모른다. 딴에는 조금 더 철이 들었다고 느껴지니까.

‘네가 참 마음에 들어.’

그 어떤 여자의 고백보다도 마음 떨리게 했던 그녀의 속삭임이 그리워진다.  



댓글 '6'

리체

2004.10.01 12:36:30

수위가 꽤 높은 글이군요.^^;
옷을 벗는 것보다 말하는 게 더 야하다. 으음,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가는 말이네요.
그런 여자의 고백이니 그저 한번 해본 말이 아닐지라 더 오래 가슴에 새겨지고 떨게 만든 거겠죠? 멋지네요.

Jewel

2004.10.01 21:47:28

암스테르담 가서 도데체 멀 본게냐 ㅡㅡ;;;;

마리

2004.10.02 00:53:11

. 넘 부러워요 .같은tv 프로그램을 보고 같은 풍경을 보는데.. 이렇게 멋진 글을 쓸수 있다니..

MickeyNox

2004.10.02 10:59:36

암스 홍등가는 역이랑 꽤 멀어요오오오오 헤헤헤;;; 홍등가 안에 있는 유스라면 셸터 조던이겠군요; 거기는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데라 다른 데보다 오히려 마리화나 냄새도 덜 난다고 하던데;;;

페르스카인

2004.10.02 15:15:03

음.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약 십분 정도? 메인 거리에서 두어 골목 뒤의 더티 넬리라는 곳에서 묵었거든요. 저희가 가려고 했었던 호스텔이 꽉 찼길래 (대책없이 다니는 주의라 ㅡㅡ), 여기 저기 돌아다녔더니 홍등가 바로 옆이나 주위에, 인터넷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호스텔이 아주 많더군요. 단편에서 나오는 호스텔은 더티 넬리, 홍등가에서 한 골목 뒤입니다 ^^

페르스카인

2004.10.02 15:16:25

(걸어서 5-10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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