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8

“Здравствуйте (안녕)”

이제는 익숙해진 콜야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던 엘라가 살며시 숨을 내쉬었다.

“еда, вода (밥하고 물)”

그저 면도를 한 것뿐인데도 돌아다니는 사병들에 비해 콜야는 훨씬 더 깨끗해 보인다. 긴장이 풀리면서 스르르 눈이 감기려 했다. 그녀가 웅크리고 있는 옷장 문을 열고 서 있는 그가 비싯 웃어보였다.

“Du, müssen. essen?"

제가 말 하면서도 틀린 것은 아는지 멋쩍어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잡아들었다. 콜야는 간단한 말이지만 그녀가 알아들었다는 것이 기쁜지 빙글거리며 웃고 있다.

“Ich, bringen, essen."  
"Ich bringe."

말이 튀어나와버렸다. 그녀의 대꾸에 콜야의 눈이 조금 더 커졌다.

“Вы говорите...(You speak...)”
“Ich spreche Deutsches, natürlich. (나 당연히 독일어 하지.)"

고개를 돌렸지만 쑥스러움을 커버할 수는 없었다.

“Ich sprechen nicht gut Deutsches. (나는 독일어 잘 할 줄 몰라.)”
“Ich spreche."
"Ich spreche."

고쳐주었더니 싱긋이 웃는다. 그러면서 손에 든 무언가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хлеб, картошка. я хочу есть (빵, 감자. 나는 먹고 싶다.)”

독일어로 뭐라 하려 하더니, 역시 제가 편한 말이 나오나 보다. 그녀에게 손짓을 해가면서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나는 먹고 싶다. 아마도 따라하라는 말인가 보다.

“я хочу есть”

일부러 발음을 어눌하게 하며 반복해 주었더니 좋아한다.  

“Gut."

내미는 빵 한 조각을 조금씩 씹어보았다. 물도 한 모금 마셨지만, 사실은 목욕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이른 아침이면 어떻게든 박살난 도시를 청소해 보겠다고 나서는 베를린의 여자들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뭐 하나라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은 것을 보면 역시 독일인들은 비슷한 것일까.

미군과 영국군의 공습으로 이미 많이 파괴된 도시 베를린. 어떤 병사의 말이 떠올랐다. 스탈린그라드의 전쟁 이후에 러시아 장교가 그렇게 외쳤다던가. 여길 봐! 이렇게 파괴된 내 나라를 잘 봐둬! 베를린도 똑같이 될 테니까 말야!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유럽을 뒤덮었던 Wehrmacht (독일군)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다. 나무마다 곧잘 매달려 있던 탈영병들의 시체도 베를린 안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SS 가 백기를 달아둔 집안마다 쳐들어가 다 죽여 버렸다고도 하고, 민간인 옷으로 갈아입은 wehrmacht 병사들은 다들 숨어 지낸다고도 한다. 이유가 어쨌든 간에, 이제는 독일 남자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언제 러시아 병사에게 잡힐지 몰라 두려워하는 독일 여자들뿐.

깨진 유리창 사이로 강간당하는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자주 들려온다. 동 프러시아에서 당한 여자들만큼 심하지는 않아도, 최소한 서넛 명이 윤간을 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열명, 스무명에게 윤간 당하고 나서도 결국 총살로 죽었던 많은 동 프러시아 여자들에 비하면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험한 시절을 지내면서, 강간당한 여자들은 아프다는 말도 내뱉지 못한다. 거리에 널려있는 시체들과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 앞에서, 그리고 끔찍한 전쟁을 겪고 나서 정신이 나가버린 남자들이 유령처럼 헤매이는데, 누구에게서 위로를 얻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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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병사 둘이 또 죽었어. 이것들은 정말 정신을 못 차려. 아마, 알콜 찾다가 아무거나 마시고 죽은 놈들이 전쟁 중에 죽은 것만큼이나 많을 거야. 한심해 죽겠어. 5월 1일에 파티 났던 거 알지? 도대체 뭘 마셨는지, 삼일이나 걸려서 죽는데 처참하더라고.”

엘라는 눈을 반쯤 감고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 그녀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잘 알면서도 콜야는 중얼 중얼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다. 흔하지 않은 보라색 눈동자, 그리고 도자기처럼 매끄러운 피부의 엘라는 별 말이 없다. 아까 처음으로 말을 몇 마디 하기에 신이 났던 것은 곧 사그라들었지만, 나지막한 그녀의 목소리는 그의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참 내. 독일군들 이제 무기도 없다고 하고, 싸우는 애들도 가끔 보면 열 몇 살 애들도 있어. 사십 넘은 남자들도 있고. 러시아 침공 했을 때 그 무섭다던 독일군 어디 갔나 하다가도, 왜 싸우고 나면 우리 쪽 사상자가 세 배로 많은지 몰라. 참 특이한 사람들이라고 해야 되나, 아니면 그저 우리 쪽이 개념이 없는 건지. 아무리 스탈린이 뒤에서 난리를 쳤다 해도, 주코프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거든. 뭐, 어쨌든 이제 서쪽도 조용해 진 것 같아.”

그가 천천히 말을 이어가는 동안 엘라는 벽에 기대어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간헐적으로 들리는 비명소리에 콜야는 귀를 막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귀를 막아버리면 비명소리를 인정하는 제스처가 될까 억지로 말을 이어간다.

“Der Iwan kommt. (이반이 다가온다) 그 소리 안 들으니까 좀 시원하네. 어딜 가든지 그 소리더라고. 왜 이반이라고 부르지? 우리까지 익숙해지는 것 같아. 사병놈이, 울리는 전화 받더니 Iwan ist hier. 하는 거야. 베를린 들어오고 나서는 그 말이 안 들려. 우리는 독일군 부를 때 Fritz 라고 하긴 하는데, 사실 독일 애들 중에 그 이름 가진 애들 그리 많지 않을 거야. 그렇지?”

엘라를 처음 본 것은 사병놈들에게 돌림빵을 당하고 있을 때였다. 지겹게도 봐 온 광경이라 웬만하면 참견하지 않는 그였고, 독일 여자들을 만나면 사병놈들 오기 전에 숨어 있으라고만 하고 보통 끝냈었다. 말려 봤자 별 소용없고, 술 처먹고 설치는 놈들을 붙잡고 설교 하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다. 위에서 독일 민간인들을 위한 새로운 방침이 내려오긴 했지만, 삼년 동안 독일인들에 대한 증오 교육을 시킨 데다 워낙 여자에 굶주려 있는 놈들이라 통제가 불가능했다. 게다가 한 부대가 조금 시들해 진다 싶으면 그 다음에 몰려오는 놈들이 또 다시 시작하지 않는가. 그들을 찾아와 강간 사례를 보고하는 극소수의 여자들에게 죄책감을 느꼈던 것도 어느 정도 일상화 된지 오래였다.

그런데 그 날은 왜 끼어들었을까. 사병 다섯 놈중 네 번째 놈이 바지를 벗고 달려드는 것을 보고 총을 빼들었다. 다행히 술에 만취한 상태는 아닌 사병들이 슬그머니 물러섰다. 수없이 보아온 모습의 여자는 얼굴에 멍이 심하게 들었고, 죽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얕은 출혈이 비쳤지만 생명이 위급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들에게 민간인에 대한 규칙을 설교하기보다는 총구를 흔들어대며 꺼지라 외쳐대었다. 그들끼리 무언가 중얼거리는 것은 무시하고 그녀의 옆에 주저앉아 얼굴을 살폈다.

추켜올려진 치마를 내려 하얗고 늘씬하게 뻗어 있던 다리를 감쌌지만 민망하게 그녀의 온 몸을 덮고 있는 남자의 자국은 어찌 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았다. 파랗게 멍이 들은 그녀의 볼을 살짝 두들겨 보아도 반응이 없어 난처해하던 그는 주위에 널려 있는 찢겨진 천조각으로 정액을 닦아내려 했다.

아름답다는 형용사를 마지막으로 쓴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볼가 강을 건너 독일로 넘어오면서, 독일 농가의 작은 농장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던가? 물론 신들린 듯한 군사들에게 약탈당하고 불태워지긴 했지만, 잘 가꾸어진 논밭과 놀이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녀가 눈을 뜨고, 보라색 눈동자와 마주치는 순간, 그녀를 닦아내던 손이 굳어버렸다. 짙은 보라색 눈동자, 새까만 속눈썹과 파란 멍이 너무나 대조되는 피부. 윤기 흐르는 긴 머리카락은 엉망으로 흐트러진 그녀의 모습을 더 처량하게 만들었다. 발갛게 부어오른 입술을 움직이려다, 예쁜 눈에서 눈물이 툭 하고 떨어졌다.

강간사건이야 하루에도 몇 천 번이나 일어날 텐데, 그가 보아온 피해자만도 몇 천 명은 될 텐데, 인형처럼 부서진 그녀는 어떻게든 돌봐주고 싶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저 고개를 돌려버리면 될 텐데, 사병 놈들을 쏴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데리고 가 숨겨두고 싶었다.  

“네가 지낼 곳 찾아보고 있어. 저 놈들도 좀 있으면 나아지겠지. 휴우. 이거 세계적인 망신이야. 신나있는 공산당원들, 베를린 오면 할 말이 없어질 것 같잖아. 러시아 안 사정 알면 안 그럴 놈 없겠지만, 그래도 그거야 집안 사정이라고 치면 말야. 도둑질 하는 놈들 볼 때마다 열 받다가도, 생각해 보니까 나도 내 망원경, 사병놈이 훔쳐서 하나 갖다 준 거 쓰고 있거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녀가 알아듣지 못하는데도 멋쩍어서 뒷머리를 긁었다. 엘라의 입가에 웃음이 스쳐가는 듯 했지만 확실하지 않았고,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싶지는 않았다. 불편해 할지 모르니까.

‘나, 콜야. 너는?’

숨겨 둘만한 곳에 와서야 그렇게 물었다. 멍든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그녀의 입술에서 작은 소리가 새어나왔다. 엘라.

‘Verzeihen, Iwan. (용서, 이반.)'

사병들을 대신해 사과하려는 그에게 엘라가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었다. 그리고 그는 그 때 바로 사랑에 빠져버렸다.

“내가 답답해서라도 독일어 배워야겠어. 네가 배고픈지 정도는 물어볼 줄 알았으면 좋겠거든. 아니면 뭐 먹고 싶은 거 있는지, 하루 종일 뭐 했는지, 그런 것도. 독일어 사전을 찾긴 했는데, 러시아어만큼이나 복잡한 것 같아. 사실 언어 배우는 데 그리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숨어 있기만 하면 답답할 텐데. 책이라도 갖다 줄까 해도 네가 뭘 좋아하는지 알아야지. 아, 그리고 혹시 네 가족이 있는지 제일 먼저 물어보고 싶어. 그러면 가서 찾아볼 텐데 말야. 남편이 있다면 좀 섭섭하겠지만 그래도 찾아봐야겠지. 네 부모님도 찾아봐야겠고. 혹시 아이가 있다면 아이도. 그 다음으로 뭐 필요한지 알고 싶어. 하기야 뭐 찾아보려 해도 결국 도둑질 하는 거니까 좀 뭐 하군. 휴우. 그래도 갈아입을 옷 몇 개 갖다 주고 싶거든. Du familie, leben? (네 가족, 살다?)"

엘라가 고개를 천천히 젓는다.  

“지난 몇 년 동안, 몇 백만 명이 죽었는지도 모르겠어. 너무 많이 죽음을 보다 보니까 무뎌졌나봐. 거리에 널리고 널린 시체 보면 끔찍해야 하는 게 정상이지? 열 네 살 짜리가 총 들고 설치는 게 절대로 정상은 아니란 말이야. 그래도 역시 살겠다는 마음이 제일 큰 가봐. 난 병사들 보면 그런 생각하거든. 독일군들 밀려올 때, 제 손에 총상 내고 빠져나오려는 애들 많았어. 그런 애들이나, 잔꾀 쓴다고 바로 총살시켜버리는 상관이나, 다 정상이 아닌 건데, 살아 남아야겠다고들 생각해서 그런지, 그냥 둔감해지잖아. 피신하려고 하는 민간인을 탱크로 밀어버리는 거, 나 처음 봤을 땐 되게 충격이었는데, 베를린까지 오면서 이젠 눈도 깜짝 안하게 된 것 같아. 새끼들, 죽이려면 그냥 쏴 죽이지 왜 저 짓이냐 하는 생각밖에 안 들거든.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어린애는 못 쏴 죽이겠더라. 몇 살 더 먹은 애들 있지, 스무 살 넘은 애들은 내 나이 또래라 그런지 싸우다가 죽여도 그냥 그런가 하는데, 헬멧이 눈을 가리는 열 서넛 된 애를 어떻게 쏘냐고.”  

돌려 말할 필요가 없는데도 그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정작 하고 싶은 말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전쟁통에 다들 맛이 살짝 간 거라고, 이 상태가 계속 지속되지는 않을 거라고, 이제 전쟁의 막바지이니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끔찍하게 당한 엘라를 위로해주고 싶을 뿐.

“나 네가 몇 살인지도 몰라. 나보다 나이 많이 먹은 것 같진 않은데, 내일 통역관한테 물어봐야겠다. 아, 그리고 보니 통역관 붙잡고 간단한 거 물어보면 되는구나. 외우기가 힘들면 적어야지.”

의자에 앉아있던 콜야가 엘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릎을 꼭 안고 있는 엘라는 피곤해 보인다.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고 싶지만, 머리를 감지 못하는 다른 베를린 여자들처럼 그녀는 천으로 머리카락을 덮어버렸다. 모양 좋은 눈썹 아래의 보라색 눈, 그리고 진분홍색 입술을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나버렸다. 그녀를 바라보는 눈길이 그가 한심해 하는 사병들과 그리 다르지 않을 거라는 짐작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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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Оно намеревается зима (겨울이란 뜻이래요.)”

꽤 능숙한 발음으로 엘라가 말을 건네자 숟가락을 들고 있던 콜야가 멈칫 하며 그녀를 바라본다.

“네 이름. 호주. 겨울이란 뜻.”
“아.”

아보리진 원주민의 언어로 겨울이라고 누군가에게 들었던 것 같다. 매일 듣는 러시아어이고, 그에게 어설픈 러시아어로 말을 건네는 독일인도 많지만, 엘라가 떠듬떠듬 건네는 말에는 가슴이 따뜻해진다. 물과 전기가 있는 아파트로 옮겨간 후, 저녁이 되면 그에게 밥을 해 주는 엘라에게 러시아어 책을 넘겼었다. 문화인처럼 식탁에 앉아, 포크와 칼을 들고 식사를 하는 것이 얼마만인지. 그리고 그의 앞에 여자가 앉아 빵 덩어리와 버터를 건네는 것도 참 비현실적이다. 이제는 빵, 버터도 러시아어로 말 해주는 엘라까지 있으니 수줍어 보일 웃음이 자꾸 지어진다.

“후후. 이기적이긴 한데, 네가 내 말을 다 알아들었으면 좋겠어. 나 독일어는 영 꽝인거 알지? 나름대로 노력 했는데도 그렇더라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엘라가 빙긋이 웃어준다. 멍이 가신 얼굴과 깨끗하게 씻긴 머리카락이 아찔하게 예쁘다.

“너, 참 예쁘다.”

그 말은 독일어로 할 줄 아는데, 차마 뱉을 수가 없어 러시아어로 중얼거렸다.

“러시아 험한 여자들만 봐서 그런가. 베를린 여자들 중에 참 예쁜 여자들 많아. 너보다는 덜 하지만.”
“мясо (고기)”

엘라가 접시를 내민다.

“후후. 나 배 부른걸. 밥 해줘서 고마워. Danke, für nahrung. (고마워, 밥)”

엘라는 키가 그보다 그리 작지 않다. 빈집에서 찾아 갖다 준 가벼운 서머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엘라가 그를 따라 식탁에서 일어선다. 진분홍 입술이 살짝 열리나 싶더니, 그녀가 드레스를 슬며시 벗어 내렸다. 동그란 어깨가 드러나고, 가슴 둔덕이 보이려 하자, 콜야가 그녀의 손을 부여잡았다.

“왜 그래, du, möchte, waschen? (너, 씻다, 하고 싶어?)”

문법이 엉망으로 틀렸는지 엘라가 피식 웃는다. 허리께까지 드레스가 흘러내려와 버렸고, 하얗게 빛나는 듯한 여체를 마주 볼 수 없어 콜야가 그녀를 감싸 안아버렸다. 그가 갖다 준 비누 냄새가 나고, 그녀의 건조한 피부가 그의 손바닥에 맞닿았다.

독일어로 뭐라 하는데,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하나도 없다. 그의 가슴을 조금 밀어내며 엘라가 그의 팔을 잡아당긴다. 가슴께에 손을 갖다대자 순식간에 심장 박동이 두 배는 빨리 뛰는 듯 하다.

“엘라.”

마른 몸에 비해 아직 풍만한 가슴을 꼭 쥐지 않으려 혼신의 노력을 다하던 콜야가 그녀의 눈을 마주했다. 짙은 보라색 눈에서는 아무것도 알아볼 수가 없다.

“저기, 내 나라 애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알긴 하지만, 우리 아버지 무덤에 대고 맹세하건대 이거 바란 건 아니었어.”

가슴께에서 조심스레 손을 떼어내 갸름한 얼굴을 감쌌다. 눈을 깜박거리지만 않는다면 인형처럼 보일 엘라는 아무 말이 없다.

“아아. 뭐 나 혼자 도덕적이라는 건 아닌데, 얼씨구나 하고 덤비는 건 차마 못하겠다. 솔직히 나 같은 놈한테 너 아깝기도 하고.”

민망함에 계속 중얼거리며 그녀의 이마에 잠시 입술을 갖다대었다.

“곧 우리 없어질 테니까, 그 때까지 여기 숨어 있어. 네가 밥 해주는 것만 해도 황공한걸.”
“콜야.”

엘라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아주 가까이 다가온 엘라의 입술에서 눈을 떼기 힘든 상태는 참 곤란하다. 한번만 더 불러준다면 입술을 포개어 버릴지 모른다. 이제까지 사과해 왔던 건 다 잊어버리고, 다른 강간범들처럼 덤벼들지도 모르는 거니까 그는 조심스레 엘라를 밀어내었다.

“결국 비슷한 놈들이라고. 난 어머니한테 많이 얻어맞아서 착한 척 할 뿐이야. 그러니까 시험 들게 하지 마.”

엘라의 얇은 드레스를 어깨까지 끌어올리며 시선을 그녀의 눈에 고정시키려 했다.

“Du müssen..."
"Du müsst."

그녀가 또 고쳐준다.

“Du müsst schlafen. (너 자야지.)"

그 말은 고쳐주지 않는 것을 보니 제대로 했나보다. 엘라가 가볍게 웃으며 식탁 쪽으로 돌아선다. 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향하는 엘라의 뒷모습을 확인하고야 그는 깊은 숨을 내뱉었다.

역시 남자는 어쩔 수 없다. 짐승 같은 놈들이라고 욕을 해 대었으면서도, 엘라의 반나체가 보이자마자 흥분하는 것을 보면, 군복을 다 차려입어 표시나지 않았을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사실은, 너를 구해준 댓가를 치르려 하는 것 같아서 그래. 네가 나를 좋아해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좋아라 하고 너를 안아 버린다면 왠지 꺼림칙하잖아. 빵 덩어리 흔들어 보이면서 어린 계집아이 꼬시는 병사놈이나, 네가 지낼 만한 곳을 찾아 준 후에 자랑스럽게 너를 안으려 하는 거나, 틀린 게 없어 보이거든.

네가 나를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어. 그냥 살아나려고 옷을 벗어 던지는 것이 아니었으면, 그저 다른 병사들에게 들킬까봐 나를 잡아두려는 것이 아니었으면 하는 걸로 욕심이 바뀌었나봐.    

“Du schlaft hier? (여기서 잘 거야?)”

엘라의 목소리가 부엌에서 흘러나오자 콜야는 식탁에 걸터앉았다.

“Nein. (아니)"

엘라 폰 베르너. 스물 네 살. 몇 주 지났는데도 볼 때마다 깜짝 깜짝 놀라게 하는 얼굴. 러시아어를 꽤 능숙하게 발음하는 것을 보면 머리도 좋은 것 같은, 그에게는 아주 아까운 여자. 그의 앞에서 옷을 벗을 때도 비굴하게 보이지 않는 여자.

“콜야.”
“응.”
“고마워.”

제기랄. 취소하고 싶다. 아까 그냥 모른 척 하고 안아버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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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야는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 말하는 것 때문에 그리 보이는지는 모르지만, 쉽게 웃음 짓는 그는 스물여덟보다 다섯 살은 더 어린 것 같다.

그의 두 형은 이미 전사했고, 늙은 어머니만이 남아 계신다 했다. 막내라서 더 어리게 느껴지는 것일까. 원래 이름은 니콜라이지만,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단다. 간단하게 콜야.

말을 알아듣는 것을 정말 눈치 채지 못했을까. 그가 투덜거릴 때마다 미소가 새어나오는데, 그리고 그가 더듬거리면서 독일어를 할 때마다 바로 알아듣는데도 알아채지 못했다. 통역관에게 몇 개 번역해 오긴 하지만, 여자를 숨겨두었다고 소문이 날까 두려워 사전을 자주 쓰는 편이다.

짙은 금발에 푸른 눈이 잘 다듬어진 생김새와 어울린다. 아주 키가 큰 편은 아니지만 평균은 넘는 키에 보기 좋을 정도로 다부지다. 형들은 다 키가 큰데, 혼자만 못 먹어 말랐다고 투덜거리는 콜야. 베를린 내에서도 비쩍 마른 사람들이 종종 보이기에, 그런 그의 투정은 설득력이 없다.

그녀의 저택에서 같이 도망 나왔던 부모님은 자살을 선택했다. 오빠는 프랑스에서, 동생은 러시아에서 전사했고 그녀 대신 먼저 붙잡힌 언니는 스무명이 넘는 병사들에게 윤간 당한 후, 목을 매어버렸다. 언니의 비명소리를 들으면서도 숨어있는 곳에서 나가지 않았던 엘라는 두 번에 이어 똑같이 당했지만 악몽은 가시지 않았다. 죄책감도 가시지 않는다. 피를 철철 흘리던 언니의 모습 때문에, 베를린에 도착하기 전에 붙잡혀 강간을 당하면서도 죄 값을 치르듯 참아냈다. 언니는 죽었는데, 나는 살아 있으니까.

생존본능이란 특이하다. 세 명의 병사에게 윤간을 당하고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니, 그야말로 대단한 합리화 능력이다. 한번도 모자라 두 번째로 당하면서도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니 그것도 대단하다. 며칠간 배를 곯으면 음식 찌꺼기 조금에 몸을 팔 수 있을지도 모르는 거 아닌가.

엘라 폰 베르너로 살아온 날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꽤나 멋있는 저택에서 멋있는 자동차를 타고 베를린으로 놀러오던 것이 멀게만 느껴진다. 열아홉이 된 그녀에게 청혼하던 러시아어 선생도, 갓 스무살이 되어 군대로 들어간 오빠도 희미하다.

그녀의 하루는 작은 아파트에서 콜야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를 위해 저녁을 짓고, 그가 가져다 준 옷가지 중에서 아무거나 걸쳐 입는다. 돌아온 그가 저녁을 먹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동안, 알아듣지 못하는 척 하면서도 자꾸 웃음이 나오는 것은 막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가 찾아오지 않은지 삼일이 지났다. 음식은 충분히 있고, 물이 나오는 데다 러시아군이 지나갈 일이 별로 없기에 두렵지는 않지만 그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이 된다. 첫날은 그저 조금 허전했다면, 이틀째에는 나가서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잡히면 바로 끌려가 당할 것을 알면서도, 거리로 나가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삼일째. 저녁을 해 두었는데도 그는 도착하지 않는다. 그녀가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중하게 말하는, 옷가지를 내밀면서도 버려진 집에서 가져온 거라 조심스레 설명하는 그가 보이지 않는다.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며 제발 시험에 들게 하지 말라 하던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네가 예뻐서 구해준 것 같아 죄책감 팍팍 느낀다고 농담하던 그는 살아 있을까.

그가 죽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삼일 전, 그가 수줍게 너를 좋아한다 고백했을 때, 답 해 줄걸 그랬나보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같이 무서운 여자와 새침한 여자 아이들 앞에서 주눅 들었다며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에게 웃어주어도 됐을 것을.

그가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말랐다 믿었던 눈물이 흘러내리려 한다. 쓸데없는 후회가 그녀 안을 채워가고, 엘라는 무릎을 꼭 끌어안고 울음을 토해냈다. 그가 없으면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생존의 문제보다는, 더 이상 기다려야 할 사람이 없어진 것 같아 서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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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질어질한 정신으로 겨우 엘라가 숨어있는 곳까지 찾아왔다. 등에 짊어진 보따리가 깊게 난 상처를 들쑤시는 것은 잊은지 오래다. 온 몸이 찢어진 상처로 아파오던 것은 희미해져가는 의식과 함께 가라앉아버렸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우선 보따리를 바닥에 내려놓은 후 숨을 골랐다. 병원에서 깨어난 지 며칠이 지나고서야 겨우 일어설 기운이 생겼다. 굶고 있을 엘라를 위해 음식거리를 훔쳐 숨겨두었다 일주일이 지난 후에야 보따리를 들고 그녀를 찾아 나섰다. 간호원이 보았으면 기절할 일이다.

“엘라.”

아무런 대답이 없다. 초점 없는 시야에 잘 정돈된 집안이 흔들린다. 깔끔함 외에는 그녀의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를 기다리긴 했을까. 다른 이에게 들켜 끌려간 것이라면 집이 그리 깔끔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아픔에 절은 의식을 뚫고 지나간다. 떠났을까. 그가 죽었다 믿고 그냥 가 버렸을까.

최악이다. 병원에 누워 있었으면 몇 주 후 회복 되었을 텐데, 그 꼴에 짐을 지고 오느라 기진맥진한 상태다. 오는 도중에 덮침을 당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긴 하지만, 아마도 그 아파트에서 죽지 않을까 싶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채로 그는 엘라의 이름을 다시 한번 불러보았다.

난 수류탄이 폭발하는 순간에 그 생각했거든. 앗, 제기랄. 다시는 너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는걸. 내 앞에 있는 놈은 다리가 두개 날아갔더군. 발가락을 움직여보니까 내 다리는 붙어 있어. 무지하게 아프긴 한데, 그래도 다행이란 마음 들더라. 그리고는 곧 네 걱정 시작했었어. 나 없으면 뭐 먹지. 넌 예뻐서 나갔다 하면 바로 붙잡힐 텐데. 이럴 줄 알았으면 좋아한다 말 할 걸 그랬어. 그거 독일말로 할 줄 아는데. 모른척하고 키스 한번 해 볼걸, 뭐 그딴 생각 드는 거 보면 종족 번식욕이 제일 강하긴 한 것 같아. 당장 죽어 가는데도 여자 생각이나 하는 한심한 놈.

바람에 펄럭이는 촛불처럼 불안정하던 의식은 점점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간다. 더 이상 고통이 느껴지지 않고, 두꺼운 수면이 그를 덮는다.
.
.

콜야. 콜야.

어머니의 목소리인가. 누군가가 그를 부르는데, 그는 편안한 잠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오랜만에 꿈에서 보는 그의 두 형도 가지 말라며 그를 붙잡는다. 그의 고향집의 부엌안, 따뜻한 수프와 빵 덩어리가 놓여 있다. 그가 어릴 적 돌아가신 아버지까지 그를 붙잡는다. 더 자라. 깰 필요 없다.

콜야. 눈 좀 떠봐. 괜찮아?

여자의 목소리인데, 어머니는 아니다. 일어나야겠다고 하자, 그의 큰 형이 빵 조각을 내민다. 이거 먹고 가라.

콜야. 나야. 나 알아볼 수 없니?

하도 붙잡기에 어쩔 수 없이 주저앉았던 그는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점차 그를 죄여오자 눈을 꾹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에 그의 형들과 아버지는 사라지고 없었다. 텅 빈 부엌 안에 혼자 앉아있다, 가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콜야. 니콜라이. 눈 좀 떠 봐.

너무나 사실적이었던 그의 고향집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 대신에 하얗고 갸름한 얼굴이 두 개의 보라색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

“콜야. 정신이 드니?”

생긴 건 엘라인데 러시아어를 하다니. 죽긴 죽었나보다. 딱 그가 바라던 환영식이다.
“엘라.”
“바보. 병원에 있을 것이지 왜 기어 나온 거야?”

웃음이 터져 나오려 했다. 죽는 방법도 여러 가지지만, 이렇게 다시 깨어날 수 있다면 죽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할렐루야다. 엘라가 맞아주다니.”
“바보 같으니라고. 그러니까 니네가 병신 소리 듣는 거야! 무식한 거랑 용감한 거 구분을 못해요.”

엘라가 저런 말을 하다니. 그것도 흠잡을 데 없는 러시아어로.

“나, 죽었나봐. 네가 러시아어 하는 걸로 들려.”

흐릿한 엘라의 얼굴이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리고 곧 그 분홍색 입술이 그의 뺨 위에 와 닿았다.

“네 착각이겠지. 내가 어떻게 러시아말을 하니.”
“그렇지. 내가 지금 정신이 왔다 갔다 하는 거지.”
“걱정하게 만들다니, 나쁜놈. 깨끗하게 닦아놓은 마룻바닥에 피 퍼질러 놓은 것도 미워.”
“...다음에는 뭐라도 깔고 자빠질게.”
“그래.”

그의 갈라진 입술에 보드라움이 겹쳐진다. 자꾸 수면 속으로 빠지려는 의식을 애써 끌어올리며, 힘들게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엘라의 머리카락이 그의 얼굴 위로 흘러내려와 있고, 따뜻한 혀가 그의 입술을 핥아간다.

엘라가 키스해주는 거면, 죽은 게 확실하다.
.
.

“생각나지 않아. 그러고 보니, 내가 태어난 이후로는 평화롭다는 거, 몰랐던 것 같아. 내가 태어난 해는 전쟁이 끝나고 나서 엉망이었고, 군인들을 잔뜩 봤던 것 같아. 전쟁 이야기가 곧잘 나와도 그리 힘들게 살진 않았나봐. 아무리 전쟁이 힘들었다 해도, 난 이런 생활 상상 해 본 적이 없거든. 우리 여섯 가족이었는데, 나 하나만 남았어. 그런데 정말 서러운 건, 어디 가서 사정할 데도 없다는 거야. 적군이라는 너도 가족이 거의 다 죽었고, 밖에 나가보면 훨씬 더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자리가 바뀌었다. 콜야가 약에 취해 수면의 경계를 넘나드는 동안, 엘라가 그의 곁에 앉아 이야기를 이어간다. 가끔가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그의 머리카락을 빗어 내리고, 그는 러시아말에 더 잘 어울리는 그녀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꿈속으로 잠겨든다.

“네가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했어. 죽었으면 어쩌나 했었는데, 아파트 입구에 퍼질러져 있는 거 보니까 화가 나는 거 있지. 왜 그렇게 무리해서 온 건지, 정신 나간 자식. 그냥 누워 있었으면 빨리 나았을 텐데. 참, 네가 혼자서 하던 말, 다 알아들은 거 알면 나 미워할지 모르겠다. 어렸을 적에 배웠거든. 불편 없이 잘 하는 편이야. 말 해봤자 별 득 될 일 없더라고. 미리 말 안 해서 미안해.”

서늘한 손끝이 그의 이마께를 간질였다. 팔을 뻗어서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엘라.”

그녀의 손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응.”
“...사랑해.”
“알아.”

정말인데, 라고 더할까 하다 그냥 웃어버렸다.

“Ich lieben dich."
"Ich liebe."

엘라가 얼른 고쳐준다.

"Ich liebe."
“조금만 더 자고 일어나. 맛있는 거 해 뒀거든.”
“응.”
.
.

40년 후, 1987년에 콜야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가보고 싶어 하던 고향집에 결국 가보지 못한 그 대신, 1993년 엘라가 러시아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1945년. 베를린에서 그녀를 구해주었던 콜야는 8월, 러시아에 돌아가야 할 때가 오자 탈영하는 쪽을 택했다. 새카만 밤 베를린에서 도망 나왔던 그들은 프랑스로 향했고, 결혼식을 올린 후 큰 아들이 태어난 다음에 베를린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가 자세히 그려주었던 지도를 가지고 찾아갔지만, 그의 옛 고향마을에서 그의 집을 찾을 수는 없었다. 결국 포기한 엘라가 도시 외곽의 작은 숲에 그의 머리카락과 사진이 든 상자를 묻었다. 돌아오고 싶어 했으니까, 죽어서라도 그의 고향에 돌아왔다.

이년만 기다렸더라도 동쪽 베를린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몇 년 만 기다렸더라도 같이 올 수 있었을 텐데.

병석에 드러누운 그의 옆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워섬기던 것이 버릇이었다. 더 이상 그런 그녀의 손을 잡아주던 콜야는 없지만, 나무 그루터기에 앉은 그녀는 그의 작은 상자 무덤 앞에서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콜야. 나 혼자 여기 왔어. 그 때 살아남았으니 너와 사십년이 넘게 같이 지냈는데, 그래도 네가 보고 싶어.

너를 똑같이 닮은 아들이 둘이나 있고, 손자까지 널 닮았는데, 그래도 네가 보고 싶어.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렸던 너에게 보답할 수 있는 기회가 오나 했는데, 네가 너무 일찍 가버렸어.

‘я тебя люблю (사랑해)’

나이가 들면 젊을 시적 생각밖에 안 난다더니, 무척 초라했던 결혼식 후에 네가 그렇게 고백했던 것이 떠올라. 많이 머뭇거리면서 나에게 키스해오던 것도. 이제는 그 아무것도 어울리지 않는 할머니가 되었는데도, 그래도 기억은 생생한걸.
  
콜야 네가 무척 보고 싶어.  



댓글 '2'

리체

2004.10.01 12:20:05

아아, 멋지네요..+_+;;
전쟁 중에 피어난 사랑;이라는 상투적인 수식어밖에 떠오르진 않지만, 콜야와 엘라의 사랑이 가슴에 뻐근하게 와닿습니다. 스케일이 있는 단편이라, 꼭 영화 한편 보고 나온 기분이네요.

은기

2005.01.16 07:17:34

너를 똑같이 닮은 아들이 둘이나 있고 ..........그래도 네가 보고 싶어 //
이제은 아무것도 어울리지 않는 할머니가 되었는데도, 그래도 기억은 생생하다 ,,,
.. 넘 멋진 표현 아닌가요 ㅠ.ㅠ
사랑해서 다행이라 생각해요 전쟁중 어쩔수 없이 의지하고 애를 낳았으니 살았다는 그런
서글픈 사연이 아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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