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8

음헤헤헤

전에 쓸때도 한 일주일동안 열심히 휘리릭 써내려간 것이다 보니
고칠 데가 많지만..

눈 꾹 감고 멀라 멀라 멀라 멀라~~



(7)

‘그가 제 팔을 칼로 잘랐습니다. 그리고는 피를 마시려고 해서 도망다니다 그의 등을 찔렀습니다. 그가 일어서서 비틀거렸기 때문에 놀란 남편이 그를 붙잡아 목을 그었습니다.’

저번보다는 말이 되는 재인의 진술이었다.

수퍼마켓에서 장진우와 같이 일하는 대학생 톰의 진술은 다음과 같았다.

‘아내가 없어졌다고 많이 상심하더니 수퍼마켓에 나타난 제리 맥켄지를 보고 난리를 쳤습니다. 우리가 다들 뱀파이어맨이라고 부르는 그라, 몇번 놀려준적이 있습니다. 그 남자 흡혈귀인데 네 아내 피를 빨아먹겠구나…. 조금 모자란 것을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인 것으로 믿는 그를 놀리느라고 그랬습니다. 어떻게 하면 흡혈귀를 죽일 수 있냐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 한명이 흡혈귀 나오는 영화를 보라고 권했을 수도 있습니다. 수퍼마켓 안에서 이런 저런 칼을 들고 슥슥 긋는 것을 본 사람도 꽤 있었지만 별 생각 하지 않았습니다.’

그 진술서를 들고 장진우에게로 향하는 셀러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단순한 장진우. 재인을 맹목적으로 따라다니는 장진우. 그가 갈때마다 재인과 집에 갈 수 있느냐고 묻는 그는 악인은 아니었다.

“장진우씨.”

그의 개구리 눈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기름이 잔뜩 끼어있던 머리는 샤워한지 얼마 되지 않은지 봐줄만 했지만 그래도 외모로 호감이 가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 그가 재인과 결혼했을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했다. 어렸을때부터 다들 그를 피해다녔을텐데, 그런 그에게 재인이란 존재는 어떠했을까.

“네.”

“흡혈귀는 어떻게 죽이는지 아세요?”

“피를 많이 흘리게 해야 돼요!”

“그렇죠. 어디를 다치면 피가 많이 날까요?”

“심장이요! 그리고 목이요!”

신나서 답하는 그가 안스러웠다. 재판까지 간다면 그가 동정표를 살 확률은 극히 미미했다. 보기에도 어느 정도는 혐오감을 불어일으키는 그라 몇십년은 선고 받을테고, 모자라지만 정신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라 감옥내에서 살아남을지도 의문이었다.

“잘 아시네요. 만약 재인씨가 위험에 처해 있다면 장진우씨는 도울거에요, 그죠?”

아주 간단한 유도심문에도 넘어오는 장진우가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재인이는 내 부인이니까, 그러니까 내가 도와줘야 돼요.”

“맞아요. 장진우씨 부인이니까. 그런데, 흡혈귀한테 홀렸어요, 그렇죠?”

“나쁜 놈이 홀려버렸어요! 피를 빨리면 그렇게 된대요.”

“그럼 돌려오는 방법은 있나요?”

“피를 빤 흡혈귀를 죽이면 돼요!”

그렇게 된거로군. 셀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재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으니 틈만 나면 그녀를 데리고 오려고 했을 것이다. 재인은 싫다고 했을 것이고, 그것을 흡혈귀에게 홀린 탓으로 돌렸을 것이다. 누군가가 놀리느라고 말을 했을 수도 있고, 영화에서 봤을 수도 있다. 그 흡혈귀를 죽이면 재인이 돌아올거라는 것.

장진우의 쓰레기통에서 피에 젖은 셔츠를 발견했다. 그의 어머니가 버렸으리라. 그가 죽인것은 확실했다.

그런데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마구 흐트러진 재인의 기억속에서,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었다. 만약 제리를 그녀가 찔렀다면 왜 찔렀는지, 그녀가 하는 말 중에 무엇이 진실인지, 그 셋의 마지막 모습은 어떠했던 것인지…. 장진우를 잡아 넣을만한 증거가 충분한데도 그는 망설이고 있었다. 어린 아이같은 진우의 모습이 안되 보여서 일 수도 있었다. 나중에 재판에 가더라도 관대한 처사를 받을 수 있는 거리를 최대한 만들어 주고 싶었다.

“장진우씨, 제리가 흡혈귀가 아니었다면 안죽였겠죠?”

그가 눈알을 뒤룩 뒤룩 굴렸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제가 안 죽였어요.”

“진우씨가 그 사람을 죽였다는 증거가 확실해요. 진우씨, 재인씨가 홀렸기 때문에 죽인거 알고 있어요. 그렇죠?”

“제가 안 죽였어요.”

“그럼 누가 죽였어요?”

장진우는 아무 말이 없이 그저 그의 눈치만 살피며 커다란 눈만 굴리고 있었다.

“장진우씨가 죽인거 아는데…, 재인이는 왜 제리를 찔렀어요?”

“재인이가… 재인이가 탈출 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그래서 그런 거에요! 재인이가 도움을 필요로 하니까, 그래서! 그래서…”

“재인씨가 탈출 하려고 제리씨를 찔렀다?”

“나쁜 놈이니까! 재인이를 아프게 했으니까 재인이가 찔렀어요! 그런데 그 놈이, 그 놈이 자꾸 재인이를 쫓아 갔어요! 그래서, 그래서 내가…”

우어어엉. 그가 울음을 터뜨렸다.

.

.

사랑해 사랑하지 않아 사랑하지 않아 사랑해

제리가 처음 화를 내었던 날, 재인은 하얗게 질려 벽에 기대어 그의 눈앞에서 사라졌으면 했다. 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렇게 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넌 정말 미쳤나봐, 피식 비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그의 말에 재인은 울어버렸다. 난 미치지 않았어, 미치지 않았어,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물을 닦아내는 그녀에게 제리가 등을 돌려버렸다.

“너때문에 나까지 미칠것 같애. 미쳐버릴것 같다고!”

재인이 훌쩍거리다 일어섰다. 그리고 그녀의 가방을 들고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겨 넣었다.

“뭐…하는 거야?”

“갈거야.”

제리가 그제야 돌아섰다.

“간다고? 어디로?”

“네가 없는 곳으로 갈거야.”

그녀의 머리속에서는 속삭임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도 너를 가둬두고 싶어하는 거야. 너를 미워하는 거야. 널 미쳤다고 생각해. 보일까봐 꽁꽁 숨겨두려 하는 거야. 그봐, 널 사랑하지 않잖아. 그렇다고 했잖아. 널 위하는 생각 따윈 없어. 널 이용한거야.

“재인아…”

“갈거야! 놔!”

앙탈을 부리는 재인을 붙잡으려던 그의 셔츠를 잡아 뜯어 버렸다. 그가 주춤하는 사이에 가방을 들고 그녀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햇빛이 쨍쨍 내비치고 있으니 그가 나올 확률은 제로였다.

“재인아!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야. 재인아!”

“못 나오지? 그 안에서 죽어버려! 혼자 죽어 자빠지라고!”

“재인아, 가지 마. 재인아…”

“죽어!!”

그렇게 발악을 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재인은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갔다. 비포장 도로가 나오는 곳에 닿아서야 재인이 뒤를 휙 돌아보았다. 가쁜 숨을 고르며 이마의 땀을 닦아내리는 그녀에게 바깥에 나와 서 있는 그가 보였다.

타 죽어버려라. 햇빛 받고 죽어버려.

그가 원망스러웠다. 은행에서 나왔다는 젊은 여자에게 그녀에게만 만들어주던 핫 초콜렛을 주던 그가 죽도록 미웠다. 빙글 빙글 웃으며 한참을 얘기하면서 그녀에게는 방에 들어가 있으라던 그의 목을 졸라버리고 싶었다. 둘이 음모를 꾸미는 것이 분명했다. 그 젊은 여자와 연인 사이니까, 그러니까 재인을 쫓아내려고 하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그 여자의 예쁜 금발머리를 쓰다듬으면서도 똑같은 말을 해주리라. 너만 사랑해. 가지말고 나와 함께 있어줘. 그 따위 말 다시는 믿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미워서, 그에게 남편에게 돌아가겠다고 심술을 부렸다. 그 말을 하면 당장 예민해지는 제리인만큼, 그를 괴롭히고 싶었다. 미워, 네가 싫어, 이제 갈거야. 그렇게 말을 던지면 그는 왜 그러느냐고 되물었고, 그게 더 미웠다. 네가 싫어져서 그렇다고 했다. 너 같은거 지겹다고, 바깥에도 못나가는 병신이라고, 징그럽다고 해버렸다. 그녀를 감싸안으려는 그를 거부했고, 같이 쓰던 침대 대신에 소파에서 잠을 청했다.

너도 떠날거야. 너도 날 아프게 할거야. 너도 내가 미쳤다고 비웃으면서 가두어 놓을거야. 그리고 그 예쁜 금발머리가 와도 내가 있다는 말도 하지 않을거야. 우리 부모님처럼, 그런 딸 없다고 우기던 그들처럼 너도 그럴거야.

나도 널 아프게 할거야. 복수 할거야. 그냥 당하지 않을거야.

그러지 마, 그가 속삭였다. 그러지 마. 내 마음 아프게 하지마. 왜 그러는 거야. 내가 그랬잖아. 가끔씩 아플때 있다고. 몸이 아플때도 있지만 나 좀 멍해 질때도 있어. 네가 싫어서 그런게 아니라고 설명해 줬잖아. 왜 그래? 왜 화가 난거야? 재인아, 날 좀 봐. 왜 화가 난건지 말좀 해봐.

재인이 잔인하게 한마디 쏘아버렸다. 네가 싫어. 징그러워. 같이 있기 싫어.

무너지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너랑 같이 갇혀 있는거 이제 질색이야. 그런 말을 뱉으면 그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고, 그러면 어느 정도 만족할 수가 있었다.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지? 내가 부끄럽지? 나 없으면 할일 생각하고 있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던지 미쳤다며 혀를 끌끌 차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정말 마음 상해 하는 것 같은 제리의 모습을 보는 것이 속이 시원했다.

“재인…”

헐떡이는 그가 재인의 팔을 붙잡았고, 깜짝 놀란 그녀가 홱 돌아보았다. 선글라스도, 긴팔도 걸치지 않은 그가 눈을 한껏 찡그리고 그녀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그런… 뜻으로 한 말 아니야. 재인아, 같이 집에 가자.”

“…싫어.”

“그럼… 언제 돌아올건지 말해줄 수 있어? 기다릴께.”

“안 돌아갈거야! 너 싫단 말이야!”

그의 입술이 살짝 열렸다 다시 닫혔다. 무슨 말이라도 하려던 것 같았다.

“싫어! 싫다고!”

“…사랑해. 이렇게 가지 마.”

사랑한다는 말에 재인이 조금 누그러졌다.

“이혼하라고 조르지 않을께. 응? 재인아, 내가 뭐 잘못했어? 왜 싫어진거야?”

“그냥… 싫어.”

그의 눈이 젖어들었다. 녹색의 눈 위로 투명한 막이 생기며 그녀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같이 있어줄 거라고 했잖아. 여름 지날때까지, 같이 있어 줄거라고 했잖아. 응? 약속 했잖아.”

“여름, 지났잖아.”

가라앉은 재인의 차분한 목소리에 그는 눈을 감아버렸다. 고여있던 눈물이 볼로 떨어져 내렸다.

“투정… 부려도 되는데, 그렇게 말 하지마. 화나서 하는 말 아니고, 진심으로 하는 말같이 들리잖아.”

“난 언제나 미친 헛소리만 하는 사람이니?”

“그런 말이 아닌거 알잖아!”

“너도 나 미친년 취급하는거 짜증나. 싫어. 왜 너한테까지 그런 소리 들어야 돼?”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고 했잖아! 재인아, 화내도 좋으니까… 돌아가자. 나 햇빛때문에 아파.”

“그럼 아파하다 죽어버려.”

그를 또 다시 뿌리치고 재인이 터벅 터벅 걸음을 옮겼다. 아파해봐. 죽을만큼 아파해봐.

하얗게 웃는 재인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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