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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98
으으으 ㅡ.ㅡ;;
페인이 홈에 오시는 분들이 꼽는 "최악의 설" 1위!!
해피 엔딩도 아닌데다 워낙 좀 처참했나봐요 ㅠㅠ
딴엔 재밌다고 썼는데 ㅡ,.ㅡ;;
역시 페인이의 고질병인 수퍼 빠른 전개;; 나 이거 언제 고치나 몰라 ㅠㅠ
(음헤헤헤 쓴 그대로 올려버리기 신공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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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육만명이 조금 넘는 인구가 살고 있다는 플래그스태프. 대학교 학생 만 오천명인가를 빼면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그 도시는 미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다는 도시였다. 칠천피트 (2,100 미터) 위에 자리를 잡은 플래그스태프 뒤로는 샌 프란시스코 봉우리가 12,700 피트 (3,900 미터) 의 높이를 자랑하며 뻗어 있었다.
그 작은 도시 플래그스태프가 술렁거리기 시작한 것은 9월의 어느날이었다. 플래그 스태프 도시의 북쪽, 코코치노 아트 센터와 포리스트 도로에서도 약간 벗어난 그런 외진 곳의 통나무 집에 살던 제리 맥켄지가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스물 한살의 생일이 몇달 남지 않았던 그는, 하얗게 질린 피부와 바랜 금빛의 머리카락을 지닌 병약한 남자였다. 왜 그 곳에 혼자 있는지, 가족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듯 했다. 언제부터인가 나타나서 그 곳에 지내기 시작한 그는 낮 동안에는 바깥에 나오는 법이 없었다. 해가 지고 나면 슬며시 나와 하릴 없이 숲속을 헤매다 다시 들어가던 그는 언뜻 봐도 많이 허약해 보여 주위 사람들이 가끔씩 괜찮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럴때마다 비싯 웃으며 괜찮다고 대답하는 그의 통나무집은 약 육개월 전까지는 수퍼마켓 배달원 밖에 찾아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곳에서 어느날 여자의 찢어지는 비명이 울려퍼졌다. 머리는 산발을 한 동양 여자가 그곳에서 뛰어나와 약 오백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유일한 이웃집에 달려갔다. 경찰이 찾아갔을때, 그곳에는 칼에 목이 깊게 그인 남자가 피 웅덩이에 쓰러져 있었다. 하얗다 못해 투명하게 보이는 그의 살갗에 번진 피는 날카로운 대조를 이루었다. 그를 빙빙 돌며 괴상한 소리를 지르는 여자는 쇼크 상태여서 그런지, 아니면 정신병의 한 종류를 앓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고, 그녀가 한국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된 경찰이 통역을 구해 왔지만 “내가 죽였어” 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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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야? 어떻게 죽인거냐고 물어봐줘요.”
셀러는 신경질적으로 식탁을 두들기고 있었다. 멍한 얼굴의 여자는 이십대 초반 정도로 되어 보였다. 신분증에 의하면 이제 스물 두살인 이 재인이라는 여자였다. 플래그 스태프에 온지는 약 일년 반이 다 되어가고, 남편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왜 그 통나무 집에서 맥켄지와 같이 살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무슨 소문이던지 빨리 퍼지는 조그만 동네에서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냥… 자기가 죽였다는 말만 계속 하는데요?”
토마스 김이라는 학생도 점점 짜증이 나는지 눈을 찡그리며 이마를 슥슥 긁었다. 대학에서 다행이 한국인을 찾아 데리고 오긴 했는데 그는 시간당 페이에 투덜거리며 별 도움을 주지는 않고 있었다.
“그 남자를 어떻게 아냐고 물어봐요.”
토마스가 그녀에게 묻는 동안 셀러는 앞에 놓인 물컵을 들어 벌컥 벌컥 들이켰다.
“자기가 죽였대요. 그 말 밖에 안해요.”
“이름은 뭐냐고 물어봐요.”
“그냥 그 말만 계속 하고 있어요.”
“아참 이거 미치겠구만!”
약간 맛이 간 것같아 보이는 여자를 노려보았다. 사람을 죽여놓고 일부러 미친척 하면 빠져나갈 수 있을까 하는 쥐새끼들을 몇번 보아 온 그에게 재인이라는 여자는 그리 신빙성이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딱히 맥켄지를 죽일 수 있는 이유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아, 잠깐만요.”
토마스가 귀를 쫑긋 세우더니 그녀에게로 주의를 돌렸다.
“그 남자가 자기를…괴롭혔대요…음… 나쁜 놈이… 그 놈이… 그래서 내가…죽였어…”
그 여자가 빠른 말로 비슷한 말을 반복하는 동안 토마스는 직역 모드로 바뀌고 있었다.
“흡혈귀 같은…흡혈귀가… 나쁜 놈이…괴롭혀서…죽었어…죽었지? 죽었어…다른 놈도…죽여 버릴거야…”
“다른 놈?”
“그 자식도…죽일거야…다시는…돌아오지 못할거야…”
“잠깐!”
셀러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머리를 잡아뜯다 뭐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을 반복하는 재인의 팔을 확 잡아채자 토마스도 숨을 확 들이쉬었다. 지금까지는 눈치채지 못했던 상처가 팔에 무수히 나 있었다. 혈관 위로만 잘린 상처는 양 팔에 서른 군데는 족히 넘을것 같았다.
“이 상처, 이 상처 어떻게 났냐고 물어봐.”
마구 그를 뿌리치려는 재인의 양팔을 꼭 잡고 셀러는 놓아주지 않았다. 그 중에서 손목 근처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은 것이, 상처 입은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했다. 아픈지 소리를 지르며 발악을 하는 재인의 말을 토마스가 얼른 통역을 하기 시작했다.
“놔 달래요. 나쁜 놈이 아프게 했다고, 그래서 죽였다고, 아프게 했다고…”
“이 여자… 혹시 강간 당했는지 체크해 보라고 해. 아, 그리고 정신과 담당 의사도 있으면 좀 보내고. 쇼크 상태인지 정말 정신이 이상한건지도.”
그때 재인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난, 강간, 강간 당한거야! 미치지 않았어. 안 미쳤어. 안미쳤어.”
“뭐야? 영어 하잖아?”
셀러가 당황해서 그녀를 바라보는 사이에 재인이 그에게 덤벼들었다.
“안 미쳤어 안 미쳤어 안 미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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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세요?’
‘아저씨는…’
그날도 대책없이 도망쳐 나온 재인이 그 자리에서 꿇어앉은 채로 고개만 삐끔 들어보았다. 달빛에 사람 같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그녀의 옆에 서 있었다.
‘나 여기 살아요. 아가씨는 여기서 뭐해요?’
‘말하지 말아요. 나 여기 있다고 말하지 말아요.’
‘하하. 도망 다니는 거에요?’
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재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도 도망다니는 중이에요. 이름이 뭐에요?’
‘재인.’
‘제인?’
‘아니, 그냥 재.인.’
‘난 제레미 라고 해요. 그냥 제리라고 부르면 돼요.’
시집 와서도 그녀를 방에다 가두어 두려고만 하는 시어머니 때문에 기회만 되면 도망쳐 나오는 재인에게 그냥 그렇게 말을 걸어 오는 사람은 참 드물었다. 그래서 재인은 손톱을 자근 자근 깨물면서도 그를 흘끔 흘끔 살펴 보았다. 연한 금발에 하얀 얼굴, 그리고 녹색눈을 가진 그는 만화책에서나 나올만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하얀 얼굴과 목은 거칠어 보이는 것이 피부 트러블이 있었던 것 같았다.
‘제리 여기 어디 살아요?’
‘나 조오기 통나무집 사는데, 와 볼래요?’
신랑이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따라가지 말라고 신신 당부를 한 터라 재인은 조금 망설였다. 그렇지만 내미는 제리의 손을 잡아 보고 싶었다.
‘나 핫 초콜렛 좋아하는데, 그거 만들어 줄 수 있어요?’
‘하하. 그거 마침 오늘 사다놨는데, 만들어 줄께요.’
‘나, 그럼 핫 초콜렛만 먹고 갈래.’
‘그래요.’
오랫동안 앉아있다 일어서자 저린 다리에 피가 도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이 간지러워 발을 톡톡 치자 제리가 돌아보며 식 웃어보였다.
열 여섯살인가 부터 재인의 가족은 그녀를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재인이 생각하기에는 그녀를 질투하는 동생들의 음모인것 같았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녀가 미쳤다고만 반복했다. 동생들도 그녀를 슬슬 피했고, 그녀의 가족들은 틈만 나면 그녀를 가둬두려 했고, 손님이 오시거나 하면 절대로 나오지 못하게 해버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수퍼 마켓에서 경리라도 하려 했으나, 역시 그녀의 부모님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때는 양부모일까 해서 그들을 붙잡고 물어보았으나 차가운 눈길만 돌아올 뿐이었다.
그러다 애리조나에 살던 한 사람이 와서 그녀의 부모와 쑥덕 거리더니 그 다음해에 그녀는 어떤 남자와 결혼하게 되어버렸다. 돈을 받고 팔았다고 재인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동생들이 숙덕거리던 단어는 schizophrenia 였다. 정신 분열증. 그녀를 미쳤다고 몰아붙여 쫓아내려는 음모가 분명했다. 어쩌면 한국에 계시는 이모의 친딸인데 그녀의 부모라는 사람이 바꿔치기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기는 재인에게 그들은 정신분열의 증상에 피해망상이 들어간다며 흘려버렸다.
‘재인은 어디에 살아요?’
‘저기…밑에요. 나 다시 보낼거에요?’
‘하하. 가기 싫은가 봐요?’
‘응. 나 가기 싫어요.’
핫 초콜렛을 할짝 할짝 핥으며 재인이 웅얼거렸다. 그녀의 남편이라는 사람은 그렇게 싫지 않았지만 그녀의 시어머니는 최악이었다. 툭하면 소리를 지르며 뭔가를 집어 던지는 시어머니는 재인을 이제 가두어 두려고 했다.
‘왜요?’
‘자꾸 나보고 방에서 나가지 말래요.’
‘후후. 왜 그럴까나.’
‘나보고 미쳤대요.’
‘재인씨 미쳤어요?’
‘이씨…’
재인이 발끈 했다. 제리가 후훗 웃으며 그런 재인을 이리 저리 살폈다.
‘재인씨 괜찮아 보이는데.’
‘음… 근데 집에만 있으래요.’
‘나도 집에만 있어야 돼요.’
‘왜요?’
‘난 햇빛 보면 안되거든요. 후후.’
‘왜요?’
‘나 뱀파이어거든요. 알아요?’
(2)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여자는 정신분열증이 맞답니다. 가족들에게 연락을 해보았지만 결혼한 후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군요.”
“남편은?”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보시겠습니까?”
셀러는 걸음을 늦추지 않으며 마이크가 넘기는 폴더를 열어보았다. 장진우, 서른 네살. 스물 하나의 아가씨를 신부로 맞기에는 상당히 늦은 나이였다. 둘 사이에 아이는 없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간단한 파트 타임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했다. 여동생은 결혼해서 한국에 있었고, 아버지는 어렸을때 돌아가셨다.
“아, 셀러 형사님. 장 진우씨입니다.”
문을 쾅 열고 들어서는 셀러를 두려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사내는 목이 쑥 들어가 있었다. 보통 동양계와는 달리 눈이 아주 큰 그는 귤껍질 같은 피부에 기름낀 머리카락이 목까지 내려오는, 개구리를 연상하게 하는 남자였다.
“응. 고마워.”
문을 닫고 그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머리가 몸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큰 그는 탁자 위에 두 손을 올려 깍지를 끼고는 셀러를 살펴보고 있었다.
“장진우씨, 영어 할줄 압니까?”
“네.”
“장진우씨, 당신의 아내가 지난 몇달동안 어디 있었는지 알고 있습니까?”
“모,모릅니다.”
“확실합니까?”
“모릅니다.”
장 진우가 고개를 마구마구 흔들자 눈을 가늘게 뜬 셀러가 다시 폴더를 열었다.
-** 장애인 학교 졸업.
내용을 읽어보니, 어렸을때 뇌에 충격을 받았는지 아니면 병을 앓았는지, 정상인으로 활동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다들 곧잘 말하는, 머리가 모자란 사람이였다.
“장 진우씨. 당신 부인이 누굽니까?”
“부인, 부인 재인입니다.”
“그래요. 재인씨죠. 재인씨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몰라요.”
셀러가 그 옆에 서 있던 경찰관에게 눈짓을 했다. 그리고 그는 벌써 채취했다는 경찰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맥켄지의 집안을 샅샅이 뒤지고 있으니 이 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이었지만, 고개를 마구 흔들고 있는 장 진우를 보는 셀러는 지문 감별을 할 필요도 없이 그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데에 돈을 걸 수도 있었다.
“장진우씨, 부인을 사랑하십니까?”
“네?”
“재인을 사랑하십니까?”
“재…재인이, 예…예뻐요.”
그가 더듬거리며 그 말을 하고 나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딴에는 부끄러워 하는 것 같아 셀러가 피식 웃었다.
“장진우씨, 맥켄지 씨가 죽었습니다. 아세요? 맥켄지씨.”
“모, 몰라요.”
“제리, 라고 하면 아실라나? 제리 알죠?”
눈에 띄게 꿈틀 하며 얼굴을 찡그리는 것으로 봐서 아는 것은 분명했다.
“몰라요.”
“재인씨가 제리씨와 같이 있었어요. 알죠?”
“몰라요.”
“제리가 미웠나요?”
그 살인현장에서 발견된 칼에 찍힌 손자국은 확실히 재인의 손자국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살인현장에 보이는 발자국도 여자의 발자국이 아니었다. 물론 재인이 남자의 신발을 신고 있었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겠지만, 재인의 발자국도 뿌려져 있었던 만큼 일부러 그럴 필요는 없었을 듯 했다.
결정적으로, 제리 맥켄지의 상처가 범인은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등에도 칼자국이 있었고, 반듯하게 들어간 것으로 보아 맥켄지가 서 있었을때 찔렀을 것으로 추정이 되었다. 아니면 범인이 앉아있는 맥켄지의 바로 뒤에 앉아 있었거나. 목이 잘린것이나, 등의 상처나, 어디를 봐도 재인의 정도의 힘으로는 택도 없을 터였다.
장진우 이 남자가 죽였다는 데에 심증이 굳어지고 있었다. 모티브도 충분했다. 사랑하는 부인이 도망갔다. 그리고 그녀를 찾았을때 그녀는 제리 맥켄지와 같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질투에 제리 맥켄지를 죽여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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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시간 후 들어온 보고는 셀러를 상당히 당황하게 했다. 우선, 장진우의 지문은 현장에서 발견된 칼과 일치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바로 장진우를 체포해버리면 그만인데, 그 보고서는 이번 살인사건에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얽혀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맥켄지 집안의 곳곳에서 장진우의 지문이 발견 되었다. 컵에서, 냉장고에서, 문틀에서, 그리고 가구에서 그의 지문이 속속들이 드러났다. 지문의 상태로 봐서 그는 몇달 동안 그곳을 알고 드나든 것으로 추정되어졌다. 그렇다면, 그는 왜 몇달 후에나 맥켄지를 죽였을까? 그리고 재인은 왜 자신이 맥켄지를 죽였다고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일까?
재인과 그녀의 남편을 대면시켜봐야 할것 같았다. 정신상태가 불안정한 재인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감수해야 했다.
“응. 나야, 셀러. 이재인하고 장진우 둘다 불러와. 경찰관 셋 정도 대기시키고…”
샌드위치를 잔뜩 베어물며 셀러가 우물거렸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그는 골똘히 생각에 빠져들었다. 약간 모자란 장진우, 그리고 정신분열증의 재인. 그 둘을 결혼시키겠다고 결정한 부모들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아마도 재인의 부모는 재인의 상태를 말을 하지 않고 얼른 결혼시켰으리라. 그리고 진우의 부모도 진우의 상태를 숨기고 무조건 장가 보내고 보자는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동생들과 부모님이 그녀를 모함하려고 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재인을 보면 정신분열증의 증세가 꽤 심화된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보통 남자보다는 증세가 늦게 나타나서 이십대 후반 정도부터 증상을 보이는 것이 여자 정신 분열증 환자들인데, 재인은 빠른 편이었다. 이제 이십대 초반일 뿐인데 많이 심한 편이니 말이다. 제리 맥켄지 때문에 심화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취조실로 향했다.
“아, 재인씨 앉아요.”
깨끗하게 씻겨놓은 재인은 상당히 예쁜 편이었다. 긴 머리를 뒤로 묶어두니 십대 후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고, 불안하게 흔들리는 시선과 짓씹어 놓은 입술을 보지 않는다면 딱 노스 애리조나 대학의 신입생같이 보일터였다.
“내가 죽였어. 내가 죽였어. 그러니까 묻지좀 말아줘. 내가 죽였어!!!!”
“알았어요.”
한국말로 계속 중얼거리더니 이제는 영어로 바꿀 모양이었다. 오래 전에 이민 왔다고 했다던데, 그녀의 영어에는 아직도 어색한 억양이 담겨 있었다.
“셀러 형사님. 장진우씨 왔습니다.”
“들여보내요.”
장진우가 얼굴을 들이밀자 마자 이재인이 자리에서 펄떡 뛰어 일어났다. 그리고는 고래 고래 고함을 지르는데, 한국말이라 셀러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숨을 쉬며 그는 경찰관에게 최대한 빨리 토마스를 수배하라 일렀다. 아까 방금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는데 취조실에 내려오라는 연락을 받고도 그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살인자! 나쁜놈! 나쁜 놈!”
간간히 살인자라는 말이 들렸고, 나쁜 놈이라는 말도 들렸다. 장진우는 어쩔 줄 몰라하며 재인에게로 다가가려고 했다. 경찰관이 재인을 꼭 잡고 있었고, 장진우도 잡혀 있었지만, 장진우는 어떻게든 재인에게로 가려고 했고, 재인은 발이 닿는대로 걷어차며 소리를 빽빽 지르고 있었다.
자기가 죽였다고 했다가…이번엔 살인자란다. 셀러는 책상을 톡톡톡 두들기며 토마스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재인…재인…”
“나쁜놈!! 죽일거야!!”
그렇게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던 재인은 펑펑 울어제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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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해 미워해 미워해 미워해
죽일거야 죽였어 죽었다 죽일거야
그렇게 중얼거리며 귀를 덮은채 침대에서 웅크리고 있는 재인의 볼에는 머리카락이 눈물자국에 말라붙어 있었다. 그를 미워했는데, 정말 죽이고 싶었는데, 잠 든 그녀는 행복한 기억만 보고 있었다. 웃고 있는 제리. 헐렁한 면 셔츠만 입는 제리. 비누에 민감한 제리. 햇빛에 못나가던 제리. 뱀파이어 병에 걸렸다고 농담하던 제리. 그리고…
‘뭐가…묻었다.’
그렇게 입가를 털어주고는 시익 웃던 제리.
그녀의 천사.
햇빛에 나갈 수 없던 그녀의 뱀파이어 천사.
그의 입술이 처음 와닿았던 날, 그녀는 벌벌 떨고 있었다. 그렇게 그냥 쓰러져 죽을것 같아서. 그렇지만 만약 그가 죽인다면, 기꺼이 죽으리라며 그의 입술을 받아들였다.
‘사랑해.’
‘정말…?’
사랑한다는 그녀의 말에 반신반의하던 제리는 그녀의 눈을 한참이나 들여다 보다 꼭 끌어안아 버렸다.
‘응.’
‘나같은 사람을 왜 사랑해?’
그의 목소리 깊은 곳에까지 스며들어 있는 불안함은 거친 숨소리의 희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었다. 그의 입술은 달았다. 맨날 입에 달고 사는 초콜렛맛 우유처럼 달고도 또 달았다. 허둥대며 입을 맞추던 장진우의 입술의 기억이 키스 경험의 전부인 재인에게는 살떨릴 만큼 황홀한 부드러움이었고, 더 가질 수 없는 안타까움이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말을 반복하는 그녀의 버릇은 조금 불안할때마다 터져나왔다. 불안했던 그녀, 그리고 불안했던 제리. 그 둘의 입술이 맞닿을때마다 차가운 플래그스태프의 공기가 가벼워졌다. 따뜻해졌다.
‘재인… 돌아가야 하지 않아?’
‘가지 않아. 가지 않을거야. 안갈거야.’
‘가지 마. 같이 있어 줄거지? 낮 해가 긴 여름동안, 있어줄거지?’
도망 나온지도 삼주가 다 되어 가던 재인에게 제리가 그렇게 다그쳐 물었다. 쉴새 없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내리면서, 자잘한 키스를 눈꺼풀 위에, 뺨 위에 흩어뿌리면서 그렇게 확인하려 했었다.
‘나갈 수도 없고 답답해. 있어 줄거지?’
‘응. 있어 줄거야.’
‘떠나가지 않을거지…’
재인은 고개를 홰홰 내저었다. 저녁이면 손을 잡고 근처의 숲속을 보여주고, 이른 새벽에 기온이 떨어지면 그녀를 꼭 안고 잠을 청하는 제리를 절대로 떠나지 않을거라 굳게 다짐했다. 그녀가 사랑하게 된 사람이니까. 장진우가 찾아오면 저리 가버리라고 할 터였다. 이곳이 이제 그녀가 지내는 곳이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니 너 같은것 필요 없다고 말해줄 것이다.
‘여름은…해가 길어. 참을 수 없이 길어.’
그녀의 목줄기를 혀로 쓸어내리며 제리가 중얼거렸다.
* Junk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9-06 2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