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8

불쑥 눈앞에 들이밀어진 꽃 한 송이에 예은이 깜짝 놀라 우뚝 멈춰서 고개를 들었다. 빙글 웃는 얼굴의 이연준이 예은의 시야를 채웠다.


“놀랐잖아요.”
“받아요.”


낮은 목소리로 투덜거리는 예은의 말은 가볍게 무시한 연준이 이번엔 아예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아채더니 손아귀에 꽃을 쥐어주었다. 연준을 바라보던 시선을 예은이 얼결에 받아든 꽃으로 돌렸다. 겹겹으로 둘러싸인 꽃잎은 연보라 빛을 띠고 있었다. 리시안셔스, 꽃말은 변치 않는 사랑.


“받을 수 없습니다.”


예은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딱딱해졌다.


“왜요?”
“이 꽃…… 왜 주시는 겁니까?”
“꽃말 알아요?”


연준의 물음에 예은이 고개를 까딱이고는 연준이 그랬던 것처럼 덥석 그의 손을 잡아 꽃을 도로 건넸다. 당신이 알려준 거잖아. 말은 목 끝까지 차올랐다.


“아아, 아는 구나. 예뻐서 샀어요, 예은 씨랑 어울릴 것 같아서.”


연준이 예은의 손을 다시 잡아챘고 예은은 주먹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받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꽃 한 송이예요,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예은의 주먹 쥔 손을 펴기 위해 그가 손에 힘을 실었지만 녹록치 않았다.


“아뇨…….”
“아, 이런. 내 손 놓기 싫어서 그러는 거예요? 그 정도는 이 꽃 받아도 해 줄 수 있는데.”


가벼운 윙크와 함께 던져진 웃음기 섞인 연준의 말에 당황한 예은의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연준이 꼭 쥔 예은의 손을 펼쳐냈다.


“꽃이 주인을 찾아간 것뿐이에요.”


기어이 예은의 손아귀에 다시 꽃을 쥐어준 연준이 뿌듯한 어조로 말하였다. 예은은 그가 억지로 쥐어준 꽃을 내려다보았다. ‘너랑 어울릴 것 같아 골랐는데 마침 꽃말이 변치 않는 사랑이래. 받아, 내가 네게 주는 맹세야.’그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거짓말쟁이. 생각하며 예은이 힘주어 꽃을 반으로 접어버렸다. 뚝, 소리를 내며 힘없이 꺾인 꽃이 그제야 자신과 닮은 듯 했다.


“뭐 하는 겁니까?”
“주인을 잘못 찾아온 꽃이에요.”


단조로운 질문이었지만 이연준이 화가 난 상태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예은은 모르는 척 그 사실은 가벼이 무시하고 꺾인 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변치 않는 사랑, 믿지 않아요. 그리고 그런 의미로 이 꽃을 신랑님께 받을 수 없습니다.”


그의 에두른 고백을 단칼에 잘라낸 예은은 그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가던 길을 재촉하기 위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그의 곁을 스치는 찰나, 예은은 그에게 손목이 잡혀 자리에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받아 달라는 거 아닙니다. 그냥 알고만 있으라는 겁니다.”
“저 좋아하는 사람…… 있습니다.”


예은이 단호한 어조로 내뱉었다. 그러면서 그의 눈을 빤히 쳐다봤다. 거짓말 아니야, 진실이야. 눈은 마음의 창이라며 눈을 보면 그 사람이 거짓을 말하는 지 진실을 말하는 지 알 수 있다고 했던 이연준을 위해 기꺼이 예은은 거짓을 눈에도 담았다.


“누가 뭐라 했습니까?”
“결혼식……, 얼마 남지 않으셨습니다.”
“그 결혼식 파투예정입니다만?”


담담한 어조의 말에 예은이 놀란 눈으로 연준을 응시했다. ‘오빠가 결혼 안 하겠다고 했어요. 여자 생겼다고도 했어요. 언니, 우리 엄마가 누군지 알아내겠다고 했어요.’ 퇴근 직전 받았던 전화에서 해랑이 했던 말이 그제야 예은의 귓가를 울렸다. ‘너에게 끌리고 있어.’라던 이연준이 ‘내 선택은 너.’라고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예은은 받아들일 의향이 없었다. 만약 그가 기억을 되찾아 온다면, 그 때는 생각을 해보겠지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연준은 필요 없었다. 아무리 그녀가 그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한 번 살아봤었고, 그 생활이 얼마나 힘에 겨운지 알고 있는 이상 예은은 그를 다시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그가 살아가주길 바랐다.


“그럼 오늘이 마지막으로 뵙는 거겠네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여 예은이 인사를 하고 붙잡힌 손목을 뿌리쳤다. 황당해하는 그의 시선을 무심히 지나친 예은이 놀이터로 향했다.


“차민재…… 입니까?”


망설이듯 물어오는 연준의 말에 우뚝 걸음을 멈춘 예은이 숨을 깊게 들이켠 다음, 툭 내던지듯 ‘네.’라는 대답을 내던지고는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혹시 그가 다시 붙잡을까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다만, 걷는 걸음 내내 뒤통수가 간질거렸을 뿐이었다.



“응? 엄마, 꽃 예쁘다.”


집에 들어서서 신발을 벗는 데, 어느새 거실로 쪼르르 나온 리은이 다녀오셨냐는 인사는 뒤로 한 채 예은이 들고 있는 꽃에 관심을 두었다.


“왜 혼자 집에 있어?”
“금방 들어왔어. 할머니가 같이 있다가 올라가신 지 1분도 안 됐어.”


예은이 대답을 들으며 꽃을 건네자 리은이 환하게 웃으며 꽃을 받아들었다. 그러더니 금세 울상이 되어 예은을 졸졸 쫓아 안방으로 들어섰다.


“엄마, 근데 꽃이 꺾였어.”
“그러네, 꺾였네. 엄마 힘이 장사라서 들고 오다 꺾였나?”


예은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꾸하고는 울먹이던 리은에게서 도로 꽃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TV대 서랍장에서 가위를 꺼내 꽃의 꺾인 부분을 다듬었다.


“자, 유리컵에 생수 받아서 꽂아.”


도로 리은에게 꽃을 건네주니 리은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활짝 웃는다. 예은은 문턱에 서서 자신이 지시한대로 유리컵을 찾아 생수를 받아 꽃을 꽂는 리은을 말끄러미 쳐다보았다.


“엄마, 이러면 꽃이 살까?”


리은이 유리컵을 들어 보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래 살진 못할 거야.”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왜?”
“예쁘니까.”


리은이 꽃이 담긴 유리컵을 TV옆에 놓았다. 그리고는 흐뭇한 표정으로 미소까지 지어 보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예은이 리은을 끌어당겨 무릎에 앉혔다.


“리은아, 저 꽃 이름 리시안셔스야.”
“리시안서스.”
“리시안셔스. 셔츠 할 때 셔.”
“아이 셔 할 때 셔?”


리은이 눈을 찡긋거리더니 정말 신 것을 맛 본 것처럼 입맛까지 다셔가며 되묻는다.


“그래, 아이 셔 할 때 셔.”
“리시안……셔스. 근데 이름 어려워.”


예은이 리은의 투정을 들으며 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리은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내렸다.


“꽃말은 변치 않는 사랑이야.”
“변치 않는 사랑? 좋은 거야?”
“지켜지면.”
“안 지켜지면 안 좋은 거야?”
“그럼, 슬픈 거야.”
“알겠어. 엄마, 내가 이 꽃 사줄게.”
“많이 사줄 거야?”
“그럼 안 슬퍼할 거야?”


리은이 뒤돌아 예은의 품에 안기며 물어온다. 그런 리은을 꼭 안으며 예은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많이 사줄게. 그러니까 슬퍼하지 마.”


응. 대꾸하며 예은이 다시 리은을 꽉 안았다. 숨 막혀, 엄마. 리은의 말에도 예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 잊어버린 주제에 하는 행동은 어쩜 그리 똑같니. 그러니까 놀리는 거 같잖아. 이연준이 리시안셔스를 건네주던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던 예은이 결국 눈물 한 방울을 똑 흘려버리고 말았다.


*
아무리봐도,
리은이는 너무 조숙해요.
알겠어. 요건 제 다섯 살 난 조카의 말버릇입니다;

*
으아앙 ㅜ.ㅠ
글이 안 써져요 ㅜ.ㅠ
언제나 그렇듯, 개연성, 없습니다아-
되는대로 일단 써. 주의니까요;;

*
구준휘를 결혼시키기 위해서,
진태진을 결혼시키려고 했는데,
5월 말까지 될까, 모르겠습니다아-
태진이가 결혼해서 좋다고 해야 준휘가 결혼한댔는데-_-a


댓글 '14'

여니

2009.04.29 15:07:04

아아... 기다렸어요+_+

12

2009.04.29 15:56:10

아아...어떻해 기다릴까요.. 다음편까지..!! >,<
연준씨의 다음 반응이 궁금하네요..
기억은 언제쯤 해낼까도 궁금코..
힘내세요~ 그리고 빨리 오시길..;

버져비터

2009.04.29 17:23:23

꺅 누리님 글쓴다시더니 진짜 쓰시는 부지런쟁이!
연준이는 이제 확실히 중심을 잡네요.^^ 차민재 아니니까 헛다리 고만짚고 앞으로 이쁜짓만 하면 봐주지롱요.(에헴)
연재말고 쓰시는 애들이 말을 또 잘 안듣나봐요. 그럴때 저처럼 한두달 접<- 으라고 하면 줠님한테 혼나겠죵.
흐흐. 즈는 조숙한 아가들도 좋아라한답니다. 영악한거랑은 또 다른 느낌이라 좋아요.

위니

2009.04.30 02:10:44

아아 기다렸어요 2.....작가님 기다릴꼐요 화이팅

은새

2009.04.30 10:29:34

아이고..많이 지둘렸다눈..^^

2009.04.30 13:39:39

자주자주 오세요..

ssuny

2009.05.07 00:40:13

그 정도 상처로는 어림도 없네요 리은이 아빠
좀 더 당하셔도 된다우

판당고

2009.05.09 12:04:19

리은이는 너무 조숙해서 맘이 아파요.
근데 연준이가 언제쯤 알게 될까요? 아....

2009.05.26 14:25:41

쿠키님!!!
잊혀진 계절은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먼저 가신 그곳에서 편안하시길...

그녀는

2009.05.26 16:34:40

더이상 이 글을 읽을 수 없다는 게 넘 슬퍼요...

버져비터

2009.05.26 20:05:39

누리님 꾹꾹 찔러 연준이 기억 찾느냐 마느냐 얘길 했었는데.
벌써 많이 그립습니다.

이경화

2009.05.27 02:32:43

끝내지 못한 소설이 왜이리 마음을 아프게 할까요!?
누리님의 부재를 느끼게 하네요.
명복을 빕니다.

하늘지기

2009.07.15 17:16:53

차근차근 읽어 오면서 누리님을 기억합니다.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ßong

2010.12.19 17:57:47

다시 한 번 읽어 봅니다. 벌써 일년이 한 참 지난 건가요...하누리님 잘 계시죠?
문서 첨부 제한 : 0Byte/ 2.00MB
파일 제한 크기 : 2.00MB (허용 확장자 :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완결소설은 가나다 순입니다 Junk 2011-05-11
178 초원의 빛 (1) 베로베로 2009-09-02
177 집착 [6] ciel 2004-12-01
» 잊혀진 계절 - 21 [14] 하누리 2009-04-29
175 잊혀진 계절 - 20 [12] 하누리 2009-04-11
174 잊혀진 계절 - 19 [8] 하누리 2009-03-30
173 잊혀진 계절 - 18 [4] 하누리 2009-03-27
172 잊혀진 계절 - 17 [7] 하누리 2009-03-23
171 잊혀진 계절 - 16 [15] 하누리 2009-03-10
170 잊혀진 계절 - 15 [8] 하누리 2009-03-09
169 잊혀진 계절 - 14 [5] 하누리 2009-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