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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식장 예약 했고, 사진이랑 메이크업도 됐고, 허니문도 예약 끝냈고, 신혼집도 계약해서 인테리어 업체에 맡겼다. 청첩장은 다음 주에 사무실로 배송되기로 했으니까, 이제 급한 건 결혼식 때 입을 드레스를 맞추는 것과 웨딩 촬영이다. 예은은 체크리스트를 보며 해야 할 일을 체크하다말고 눈살을 찌푸렸다. 촬영하는 데까지 가야할까? 평소라면, 갔다. 서예은이 할 일에 포함 된 거니까. 하지만…… 이건 아니잖아. 생각에 예은이 책상 위로 쓰러져버렸다. 문득 이연준한테 아직 리은이 유치원에 가서 삼촌해준 것, 고맙다는 말도 못했다는 게 떠올랐다. 그럼 가야겠다. 생각을 했다가 지은영과 같이 있는데서 그 말을 전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가지 말까. 좀처럼 결론은 나지 않는다.
“자냐.”
“아니, 좌절 중.”
창가에 기대 선 연지에게서 커피향이 솔솔 풍겨왔다.
“왜?”
“나 디오에 갈 거야.”
하나웨딩의 협력업체중 한 곳인 디오는 청담동에 위치한 최고급 드레스 숍이었다. 물론 어중이떠중이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본식 드레스 대여비만 해도 만만치 않은 가격을 자랑하는 곳으로 말이 협력업체이지 대부분의 컨설턴트들은 일 년에 채 한 번 가볼까 말까한 곳이었다. 그런 곳을 서예은이 아무렇지도 않게 가겠다고 해서 연지가 기함을 한 것도 잠시 생각해보면 못 갈 이유도 없었다. 무려 외계인들의 결혼식이었으니까.
“디오 가는 게 좌절인거야?”
“아니.”
대답했던 예은이 잠깐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한숨을 푹 내쉰다.
“응.”
그리고는 금세 자신의 대답을 정정했다. 연지의 눈에 비친 예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남들은 거기 한 번 가보는 게 소원이거든?”
“김연지.”
돌아오는 까칠한 대꾸는 귓등으로 흘려버리고 허리를 곧추세워 자세를 바로하며 예은이 연지를 불렀다. 진지한 부름에 연지가 눈썹을 치켜뜨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나 지금 맡고 있는 결혼식 끝나면 선 볼 거야.”
뜬금없는 선언에 연지가 뜨악한 얼굴이 되어버린다. 그런 연지를 말끄러미 쳐다보던 예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할 말 없어?”
묻는 예은의 팔목을 다짜고짜 잡아챈 연지가 예은을 질질 끌고 간 곳은 탕비실이었다. 마침 안은 비어있었다. 예은을 안으로 밀어 넣고 뒤따라 들어간 연지는 문까지 잠가버렸다.
“차민재는 어쩌고?”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야.”
예은의 대답은 냉정했다.
“부러뜨리기로 결정한 거야?”
묻는 연지에게 예은이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다.
“근데 선은 왜?”
“아무래도 리은이한테 아빠가 필요한 거 같아서.”
“좋은 아빠가 필요한 거라면 차민재도 괜찮지 않아?”
“못할 짓이라 그래. 내가 받은 호의를 그렇게 갚고 싶지 않아.”
“그래, 그건 그렇다 치자. 그렇게 한 결혼, 리은이한테 상처 안 주고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빠를 만들어주더라도 적어도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해야지 않아?”
“좋은 사람. 만날 거야.”
언뜻 들으면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 같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보아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과도 같은 말이었다. 예은의 말에 연지가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연지를 보며 짓는 예은의 미소는 눈가까지 번지지는 못했다.
“내 허락 맡아. 아무한테나 너 넘길 수 없어.”
뚱한 어조로 단호하게 말하는 연지를 보며 예은이 ‘응, 알았어.’라며 고분고분 답을 했다.
“내가 지금 맡고 있는 결혼식 끝나면, 웃긴 얘기 해줄게.”
그리고는 이어서 씁쓸한 어조로 덧붙인다. 무슨 얘기야. 연지의 찌푸린 눈썹이 그리 말하는 듯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예은이 입을 열었다.
“별 거 아닌 얘기.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
“지금 하지? 아직 한 달도 더 남았는데 그 때까지 기다리다 죽을지도 모르거든?”
“지금은……, 안 돼.”
“왜?”
“때 되면 알게 돼.”
알 수 없는 소리들만 늘어놓는 서예은을 말끄러미 쳐다보던 연지가 마음대로 하라는 듯 두 손을 들어 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너 오늘 뭐 잘못 먹었지?”
그러면서 툴툴거린다.
“아니.”
“오늘따라 이상해, 너. 디오 가는 게 좌절이라는 것도 그렇고 뜬금없이 결혼을 하겠다고 하질 않나, 별 거 아닌 얘기라면서 지금은 입도 뻥긋 못하는 것 까지.”
“것도 나중에 다 알게 돼.”
왠지 쓸쓸해 보이는 얼굴로 말하는 예은의 눈빛이 흐릿했다. 연지가 그렇게 느낀 순간 예은이 푸우, 하고 장난스럽게 한숨을 내쉬며 활짝 웃는다. 할 일 많아서 그만 가야겠다고 호들갑을 떠는 예은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게 슬픔이라면, 이상한 걸까? 생각에 미간에 패인 골은 그냥 두고 연지는 예은의 뒤를 졸졸 쫓았다.
8.
청담역 근처에 위치한 디오는 3층으로 된 건물 전체를 사용하고 있었다. 1층 매장은 전면유리로 되어 있어서 바깥에서 안쪽이 훤히 들여다보였는데 유리 안쪽으로 우아하면서도 화려한 웨딩드레스가 디스플레이 되어 있어 지나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한 번씩 붙들곤 했다. 2층은 직접 드레스를 입어볼 수 있게끔 되어 있었고, 3층은 일반 사무실로 사용한다고 했다.
예은은 쇼윈도를 통해 눈에 들어오는 웨딩드레스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한 달에 적어도 한번은 들리는 곳이 드레스 숍이었다. 그러니까 익숙한 곳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낯설게 느껴져 예은은 안으로 선뜻 들어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안 들어갈 수도 없지. 체념 섞인 어조로 낮게 중얼거린 예은이 크게 심호흡을 내뱉고 마치 전장에라도 나가는 것처럼 단단히 마음을 다잡고 출입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솔. 반갑게 맞아주는 직원의 목소리 톤은 정확히 솔이었다.
“안녕하세요, 전화 드렸던 하나웨딩 서예은입니다.”
“아,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어요.”
직원의 화답에 예은이 빙긋 웃으며 시계를 힐끗 쳐다봤다. 약속했던 시간에서 5분이 지나있었다. 그러니까 왜 이제야 왔냐는 말이지. 예은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데, ‘어서 오세요.’라고 다시 인사를 하는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심코 시선을 입구 쪽으로 돌리는 데, 안으로 들어서는 이연준과 지은영이 보인다.
“안녕하세요.”
지은영은 곱게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것으로, 이연준은 가볍지만 정중하게 목례를 하는 것으로 예은의 인사를 받았다. 나란히 서있는 그들을 머릿속에 새겨 넣으며 예은은 그들과 직원의 안내를 받아 이층으로 올라갔다. 은은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층의 고급스러워 보이는 벨벳 소파에 앉아 30분간에 걸쳐 지은영이 미리 언급했던 노출이 심하지 않은 우아한 스타일의 드레스를 보여주었고, 지은영은 그 중에서 세 벌의 드레스를 선택했다. 직원이 금세 지은영이 선택한 드레스를 찾아왔고, 드레스를 입어보기 위해 지은영이 피팅룸으로 들어갔다.
“리은이 유치원에 가주셨던 거……, 인사 못 드렸어요. 고맙……흠, 고맙습니다.”
연준과 단 둘이 남은 이 때가 기회라고 생각한 예은이 고맙다, 말하는 데 괜스레 목이 메었다. 당신 딸, 일곱 번째 생일이었어. 말해주지 못해서 인지도 모른다.
“억지로 그런 인사 할 필요 없습니다.”
자세한 속사정을 모르는 이연준은 그걸 또 허례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예은은 허탈한 마음에 피식 웃어버렸다.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은 속으로 꾹 삼킨 채 예은이 테이블에 펼쳐져 있는 카탈로그로 시선을 돌렸다. 곧 있으면, 결혼식. 정말 끝인 거야? 눈시울이 뜨거워지려고 해서 예은이 화장실로 잠시 몸을 피하기 위해 일어서려고 할 때였다.
“리은이 선물 하나 사주기로 했는데, 나중에 현성이한테 전해줄게요.”
무심하게 내뱉는 연준의 말에 다시 소파에 몸을 파묻듯 앉은 예은의 시선이 연준에게로 향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리은이하고 약속했어요.”
그러니까 더는 거절하지 말라는 소리였다. 시선을 다시 테이블로 내리깐 예은이 고개를 두세 번 끄덕거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근데 목걸이에 걸린 반지는 뭐예요?”
궁금해 하는 기색이 역력한 연준의 갑작스런 질문에 화들짝 놀란 예은이 손을 목에 가져다댔다. 목걸이에 걸린 실반지가 손에 잡혔다. 옷 안쪽에 있던 목걸이가 어느새 밖으로 빠져나온 모양이었다. 당황한 예은의 볼이 순식간에 발갛게 달아올랐다.
“중요한 겁니까?”
화가 난 듯 연준의 어조가 다소 거칠었다. 예은이 목걸이를 다시 옷 안쪽으로 숨기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인정하게 된다. 당신, 정말 기억 잃어버린 게 맞구나. 깨달음은 아팠다.
“사랑하는 사람이…… 준 거니까요.”
“진행형이군요.”
왠지 씁쓸하게 들리는 연준의 말에 옅은 미소를 띤 채 예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만 요.’라고 양해를 구한 뒤 예은은 도망치듯 화장실로 향했다. 금방이라도 흘러넘칠 것 같은 눈물이 터진 건 다행스럽게도 화장실 문을 닫은 뒤였다. 하지만 펑펑 울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울었다는 티가 날 게 분명하니까.
예은은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그리고 들고 온 가방에서 콤팩트를 꺼내 눈물 자국을 지워냈다. 그러다 목걸이를 꺼내어 거울에 비추었다. 아무 무늬도 없는 실반지는 오래된 것이라 빛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고 귀한 것도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흔하고 싸구려 반지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반지의 주인인 서예은에게는 아주 특별한 것이었다.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좋은 걸로 나중에 다시 해줄게. 그때까지 이걸로 대신하자.’
왼손 약지에 그 반지를 끼워주며 이연준은 좋은 게 아니라고 미안해했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던 그 때, 그는 돈 쓸 일이 없다며 겨우 차비만 들고 일을 다녔더랬다. 그러니까 그 차비를 모으고 모아서 그 반지를 샀다는 건 세 살 먹은 어린애라도 알 수 있는 일. 피곤하고 힘들었을 텐데 그런 기색 하나 없었던 이연준이 떠올라 그 반지를 받으면서 마냥 행복했던 기억이 생각났다.
아련한 기억을 더듬던 예은은 매만지던 반지를 다시 옷 안쪽으로 숨기고 콤팩트를 가방에 넣었다. 정신 차려, 과거일 뿐이야. 스스로를 질책한 예은은 창백해진 뺨을 손바닥으로 톡톡 두들기며 ‘진행형이군요.’라고 말하던 이연준을 떠올렸다. 고백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이연준, 바보. 거울을 보며 씨익 자신을 향해 웃어 보이는 것으로 예은은 다시 전쟁터로 나갈 채비를 마쳤다.
예은이 다시 자리로 돌아왔을 때,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며 이연준은 자리를 뜨고 없었다. 그 사실에 화가 잔뜩 난 지은영은 금연이라는 매장 직원의 말에도 불구하고 두 개비의 담배를 피우며 더 이상 드레스를 입어보는 걸 거부하여 예은은 그녀가 본식에 입을 드레스를 선택하게끔 하는 데 애를 먹었다. 그리고 30분 후 지은영이 본식에 입을 상체는 몸에 붙으면서 스커트 부분은 볼륨감 있게 퍼지는 벨 라인과 머메이드라인이 혼합된 실크 새틴 소재의 차이나 네크라인의 반소매 드레스를 선택하고 돌아갈 때 즈음 예은은 녹초가 되어버렸다.
*
드레스 상세 설명하고 싶어서,
웨딩 관련 잡지도 하나 사고 이너넷도 뒤졌는데,
결국은 두 세줄로 마무리 되어 급좌절 ㅜ.ㅠ
*
언제 올 지 모르겠습니다아-
당분간, 그냥 맘 놓고 잊고 계셔도 괜찮아요;;;
아직도 그 사랑이 진행중이냐는 연준의 말과
언제 오실지 모른다는 작가님의 말이 더블로. 저의 마음을 후벼파네요ㅜㅜ
아무튼튼 재충전 하셔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