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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삼초오오오온.”
활짝 웃는 얼굴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아이를 연준은 달려가 두 팔로 가볍게 안아들었다. 그리고 아이가 달려온 방향을 되짚어 걷기 시작했다.
“리은이 잘 지냈어?”
“네!”
리은의 짧게 딱 떨어진 대답은 밝고 경쾌했다. 그 기분이 연준에게로 전이되었다.
“삼촌 보고 싶었어?”
“네.”
“얼마만큼?”
“하늘만큼 땅만큼.”
연준의 유치한 물음에 리은도 유치하게 대꾸를 해온다. 하하. 웃음을 터뜨리며 연준은 눈앞에 서 있는 앳되어 보이는 여자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리은이 삼촌 되시는 거죠? 처음 뵙겠습니다, 아까 전화 드렸던 이은정이에요.”
생긋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해오는 리은의 유치원 선생님인 은정의 안내로 연준은 여전히 리은을 안은 채 유치원 안으로 들어섰다.
“리은이 할머니가 조금 늦으실 거 같다고 리은이 걱정 많이 하셨는데, 이렇게 삼촌이라도 오셔서 다행이에요.”
“리은이 어머니는…….”
“어머, 리은이 어머님은 일 때문에 바쁘셔서 못 오신다고 했는데. 연락 안 해보셨어요?”
의아함이 묻어 난 은정의 말에 연준의 얼굴이 홧홧해졌다.
“급하게 오느라고요.”
변명처럼 뱉어낸 말에 ‘아, 그렇군요.’라며 은정이 고개를 끄덕거렸음에도 연준은 왠지 무안하기만 했다.
“리은이가 자랑 많이 했어요. 생일잔치 때 삼촌 올 거라고 애들한테…….”
“제가 언제요!”
창피한 지 얼굴까지 붉혀가며 리은이 새침하게 톡 내쏜 말에 연준이 슬쩍 눈을 치떴다.
“그럼 자랑 하나도 안 한 거야? 삼촌은 좋아서 한걸음에 달려왔는데.”
“으응, 그……, 그게 아니라…….”
연준의 진지한 말을 듣는 리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리고 금세 난처한 기색을 비춘다.
“그게 아니면?”
“마, 많이.”
“응? 잘 안 들려, 리은아. 뭐라고 그랬어?”
“많이, 많이 했다고요.”
마지못한 듯 대답한 리은의 귀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모습이 마냥 귀여워 연준은 리은의 볼을 살짝 쥐었다 놓고 쪽 소리가 나게 뽀뽀를 해주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은정이 ‘리은이는 좋겠네.’라고 놀려서 리은의 얼굴이 좀 더 붉게 물들어버렸다.
연준이 리은을 다시 ‘으쌰.’소리와 함께 바닥에 내려놓은 건 은정이 리은이 속한 반이라고 알려준 ‘미르’라는 단어가 쓰인 문 앞에 다다랐을 때였다. ‘리은이 무슨 반?’안겨있느라 흐트러진 리은의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매만져주며 연준이 묻자 리은이 또박또박 ‘미르 반.’이라고 말하였다. ‘미르가 뭔 줄 알아?’ 다시 묻는 말에 리은이 눈을 반짝 빛내며 당당한 목소리로 ‘용!’이라고 대답하여 연준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는 그렇게 마냥 귀여웠다.
교실 안은 아기자기했다. 벽에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나 삐뚤빼뚤하게 쓴 글이 붙어 있기도 했고 알록달록 색종이들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기도 했다. 각종 과일과 과자 등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간식거리로 가득찬 생일상 뒤로는 ‘생일 축하합니다.’라고 쓰인 플랜카드와 풍선이 장식되어 있었다.
연준이 내부를 둘러보는 동안 리은은 이미 한상 가득 잘 차려진 생일상 앞에 섰다. 그리고는 스스로 앞에 놓인 고깔모자를 머리에 쓴다. 그런 리은에게 다정한 미소를 지어보인 연준은 이미 와서 자리를 잡고 있는 학부형으로 보이는 여자들 곁으로 갔다. 선생님이 없는 틈을 타 생일상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는 아이들은 시끌벅적했지만 그 나이답게 활기차고 밝았다.
‘자, 이제 시작해볼까요.’라는 은정의 말로 아이들의 생일파티가 시작되었다.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리은이를 포함해 네 명의 아이들이 앞에 놓인 커다란 케이크의 촛불을 껐다. 그러자 반 아이들을 대표한 아이가 앞으로 나와 생일을 맞이한 아이들에게 축가를 불렀고, 생일인 아이들은 그에 율동을 곁들인 답가를 불렀다. 그리고 이어서 아이들이 건네주는 생일축하카드를 리은이 한 아름 받아들었다.
그러다 느닷없이 한 남자아이가 리은을 향해 돌진, 눈 깜짝할 새에 리은의 뺨에 뽀뽀를 ‘쪽’했고, 저는 이다음에 커서 리은이랑 결혼을 할 거라고 선포를 했다. 아이들 몇몇이 ‘알나리깔나리, 시유가 리은이 좋아한대요, 좋아한대요.’라며 놀려대기 시작했고, 어른들은 그저 그 상황이 왠지 귀여워 리은과 시유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 속에서 웃지 않는 사람은 딱 한명, 리은이었다. 아니 리은은 ‘으아앙.’하고 곧 울음을 터뜨렸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곁에 선 시유에게 ‘싫어.’라는 말을 내뱉고는 자리를 이탈, 연준에게로 달려온 리은은 ‘나는 크면 삼촌이랑 결혼할 거란 말이야.’라며 연준에게 꼭 안겼고 리은의 깜찍한 행동에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하지만 연준은 시유가 잔뜩 노려보는 바람에 마냥 웃을 수만도 없었다.
“그럼 리은이 잘 좀 부탁드릴게요. 리은아, 조심히 가고 내일 보자.”
유치원 문 앞에서 밝은 얼굴로 작별인사를 건네고 은정이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연준은 리은의 고사리 같은 손을 꼭 잡고 아이의 보폭에 맞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행사가 끝날 때까지 리은의 할머니가 오지 않았다. 아빠가 없다고 종종 놀림을 받는 눈치인데 오늘 같은 날, 삼촌과 함께 돌아가지 않고 유치원 차를 탄다면 분명 또 다른 놀림거리를 제공하는 거라는 생각에 연준은 기꺼운 마음으로 리은을 집까지 바래다주기로 했다.
뒷자리에 아이를 앉히고 안전벨트를 매주었다. 리은은 착하고 얌전했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웃는 얼굴로 ‘고맙습니다.’인사를 하는 리은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연준은 운전석에 앉아 벨트를 매면서야 리은의 생일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리은아, 혹시 뭐 갖고 싶은 거 있어?”
“으음, 없어요.”
“생일이잖아, 선물 사줄게.”
“삼촌 해주셨잖아요.”
리은이 고집스럽게 거절하며 이유를 댄다. 그 깜찍한 대답에 연준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질 못했다. 딸 가진 직원들의 가끔 이해 못할 끔찍한 ‘딸 사랑’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그럼 삼촌 마음대로 해야지.”
연준이 말했지만 리은은 예쁘게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도통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아이지만 속은 짐작하기 어려웠다.
집에 도착했을 때, 아이를 맞이하는 사람은 없었다. 리은의 유치원 가방에 숨겨놓은 열쇠를 찾아 문을 열어준 연준은 결국 리은을 따라 집안까지 들어서버렸다. 아무리 집안까지 아이를 데려다줬다 하더라도 아직 일곱 살 밖에 되지 않은 리은을 혼자 두고 돌아갈 수는 없었던 탓이다. 도랑 치고 가재잡는다고 아예 저녁때까지 눌러앉아 예은까지 보고 갈까, 생각을 하며 연준은 집안을 둘러봤다.
자신의 집 거실보다도 작은데도 방이 무려 두 개에 화장실까지 있었다. 정면에 보이는 방이 안방인 듯했고, 바로 곁에 붙어있는 방이 작은 방으로 쓰이는 듯했다. 현관 바로 옆에는 싱크대가 놓여있었다. 그런데, 모든 게 낯익었다. 마치 어디선가 본 듯했다. 물론 그럴 리야 없지. 생각을 털어내며 신발을 벗는데 앞서 들어갔던 리은이 불쑥 우유가 담긴 컵을 내민다.
“삼촌 주는 거야?”
“손님 오면 이렇게 하는 거랬어요.”
리은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설명했다.
“고맙습니다.”
연준이 리은의 손에서 컵을 건네받으며 말하자 리은이 배시시 웃는다. 그러더니 연준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거실에 있어도 괜찮다고 말하는데, 리은이 ‘거실은 누추해서 안 돼요.’란다. 리은의 탁월한 단어선택에 연준이 폭소하며 대체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냐고 묻자 리은은 조그마한 목소리로 할머니란다. 그러면서 그게 잘못 된 거냐고 묻는다.
“아니, 아니. 귀여워서.”
말하며 연준이 리은의 볼을 살짝 집었다 놓았다. 그리고 옷장과 책장 그리고 TV만 있는 단출한 방안을 둘러보며 자리에 앉았다. 문득 예은에게 말도 없이 집에 들어와 안방까지 차지하고 앉아있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앉은 자리가 왠지 가시방석 같았다. 그런 연준의 손에 리은이 리모컨을 쥐어주었다.
“TV라도 보세요.”
“넌 뭐 하게?”
“씻고, 옷 갈아입을 거예요.”
말을 끝내자마자 리은이 쪼르르 방을 나섰다. 손에 쥔 리모컨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연준은 리모컨을 내려놓고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예은은 무슨 책을 볼까? 궁금해진 탓이었다. 책장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매너, 화법에 관한 책부터 가벼운 소설에 이르기까지 종류는 다양했다. 책장에 꽂힌 책을 하나하나 짚어가던 연준의 손길이 순간 멈췄다. 건축계획, 건축구조, 건축시공, 건축법규. 나란히 꽂힌 네 권의 책은 꽤 오래된 것들이긴 하지만 모두 건축사 관련 서적이었다. 문득 자신의 서재에서 건축 관련 서적을 훑어보던 예은이 생각났다. 서예은, 건축학도였나? 고개를 갸웃하며 건축계획을 빼드는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준은 다시 책을 꽂고 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리은은 아직 씻는 중인 지, 화장실 문은 꼭 닫힌 채였다.
“누구십니까?”
“집주인이에요.”
“아, 잠시만 요.”
연준이 서둘러 문을 열었다. 인상이 좋은 5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서있었다.
“지금 주인이 없는데…….”
“어머, 리은이 아빠 아냐?”
뜬금없이 들려오는 놀란 목소리에 연준이 시선을 들어 다시 여자를 바라보았다. 정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여자는 연준의 손을 덥석 잡았다.
“리은이 아빠 돌아온 거야? 어이구, 이제 됐네, 이제 됐어. 이 사람아, 그 동안 애 엄마 혼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하긴, 이렇게 돌아왔으니 다 된 거지. 어이구, 이제 살았네, 이제 살았어.”
눈물까지 흘려가며 통곡하듯 말을 쏟아내는 여자를 보며 연준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다 문득 자신과 닮았다던 아이의 부친이야기가 떠올랐다.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은데요.”
“잘못보긴 뭘 잘못 봐. 그대로구만.”
착각하는 거라고 생각하여 건넨 연준의 말을 타박하며 여자는 울면서 웃었다. 그러면서 연신 연준의 얼굴을 쳐다보고 손을 쓰다듬었다. 마치 실체가 맞는 지 확인하는 것처럼.
“어, 할머니. 왜 울어요?”
화장실에서 나오던 리은이 현관 앞에서 연준을 붙잡고 있는 여자를 보고 물었다.
“아, 이분이 할머니 셔?”
연준의 물음에 리은이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할머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네 아빠 돌아와서 좋아서 그러지.”
“우리 아빠?”
“이 아저씨가 리은이 아빠야.”
난처한 표정으로 연준이 리은을 바라봤다. 리은은 아, 하고 짧은 소리를 의미 없이 내뱉더니 빙긋 웃는다.
“엄마가 우리 아빠 아니랬어. 삼촌이야, 할머니. 리은이 삼촌.”
*
ㅜ.ㅠ
*
일곱 살 치고 리은이 너무 조숙해요-_-a
+
린그레이엄은,
생각해보니까 미혼모 설정인데,
애기들은 자주 등장하지 않아요 ㅜ.ㅠ
♡
버져비터님, 웰컴백 >.<
같이 고고씡해욧+_+
궁금했어요.
리은이 잔망지다고 해야하나요?
연준이 어찌 할지 궁굼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