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8

“회사로 들어갈 거죠?”


안전벨트를 매는 예은에게 민재가 시동을 걸며 물었다.


“네.”


얌전히 대답하며 예은이 시선을 정면으로 던졌다.


“내가 와서 놀랐어요?”
“조금요.”


예은의 정직한 대답에 민재가 소리 없이 웃었다.


“반갑지는 않았고요?”
“……글쎄요.”


연준이 자신에게 했던 것과 같은 애매한 대답을 던지며 예은이 애꿎은 가방 안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휴대폰을 찾아 꺼내들었다. 최근 통화목록에서 김연지를 찾아내 감정을 잔뜩 실어 메시지 버튼을 힘주어 꾹 눌렀다. 넌 나중에 쫌 보자. 라는 문자를 보내고 휴대폰을 도로 가방에 넣었다.


“연지 씨한테 문자 보냈죠?”


넘겨짚는 민재의 물음에 예은이 애써 새침한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글쎄요.’라는 말에 그는 아까의 자신처럼 상처를 받진 않은 모양이었다. 


“나중에 보자거나 넌 죽었어, 라고 보냈죠?”


뚝심 있는 민재는 예은의 새침한 표정에 넘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문자의 내용까지 정확히 알아맞히는 기염을 토해냈다. 그래도 예은은 새침한 표정을 지어냈다.


“아니에요.”
“그럼?”
“사생활이에요. 너무 깊이 파고들려고 하지 마세요.”


예은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던진 말이었다.


“연지 씨, 갑자기 일이 생겨서 발을 동동 구르기에 내가 자진한 거예요. 마침 일도 다 끝냈고 해서.”


그 말을 민재가 진지하게 받아들인 듯 연지를 두둔한다.


“저는 별 말 안 했는데요?”
“그냥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고는 민망했는지 민재가 일부러 시큰둥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나저나 진행은 잘 되고 있어요?”
“네”
“힘들거나 불편한 건 없고요?”
“네.”


계속되는 단답형에 민재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예은 씨는 내가 불편해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불편하다는 말보다 더 상처 되는 말이에요, 그건. 불편하다는 건 내게 어떤 감정이라도 느낀다는 말이지만 할 말이 없다는 건 무관심이거든요.”


길게 한숨을 뱉어내며 민재가 말했다.


“미안…….”
“미안해 할 일은 아니에요.”


민재가 예은의 사과를 단칼에 잘라냈다. 머쓱해진 예은이 입을 꾹 다문 채 앞만 바라봤다. 그러다 힐끗 시계를 쳐다봤다. 십오 분 전 세 시. 점심을 거른 탓에 시간을 확인하니 시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장님, 식사하셨어요?”


내려앉은 침묵을 깨고 예은이 슬쩍 물었다.


“예은 씨 밥 안 먹었어요?”
“네. 회사 들어가기 전에 밥 먹고 가요.”
“그래요, 그럼. 뭐 먹을래요?”
“실장님이 사주시는 건 뭐든지 요.”


말하며 예은이 배시시 웃었다.


“아아, 애쓴다. 예은 씨.”


자신에게는 딱히 할 말이 없다던 예은이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애를 쓴다고 생각한 민재가 안타깝다는 듯 말하며 결국 예은을 따라 웃고 말았다. 그리고 예은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민재는 기꺼운 마음으로 그녀와 두 번째 점심을 먹었다.



숨이 차오를 때까지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다리가 후들거려 걸음조차 뗄 수 없을 정도가 될 때까지 뜀박질을 멈추지 않았다. 가볍게 몸을 푸는 정도로가 아니라 있는 힘껏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땡볕에서 백 여분을 연준은 그렇게 보냈다. 답답한 숨통이 그러면, 그렇게 하면 뻥하고 뚫려줄까 해서 한 순간도 쉼 없이 뛰었다. 하지만 차가운 물이 떨어지는 샤워기 아래에 섰을 때, 연준은 그 뜀박질이 헛수고라는 걸 깨달았다. 여전히 답답했고 여전히 숨통은 꽉 죄어왔다. 더는 참을 수 없어서, 더는 견디기 어려워서 연준은 아지트로 삼고 있던 바로 달려갔다.
독한 술을 세잔 쯤 마셨을 때, 그가 자리를 잡은 룸 안으로 윤현성이 들어왔다.


“밥이나 먹고 마시는 거야?”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현성이 물었다.


“학교 졸업하기 직전에 집을 지은 적이 있어.”


현성의 물음은 귓등으로 넘긴 연준이 딴소리를 시작했다.


“계속 해봐.”
“땅 매입부터 시작해서, 설계, 시공, 인테리어까지 내 손이 안 닿은 데가 없어. 건축 자재 하나하나 다 내 손으로 직접 선택했었어.”


그 때를 떠올리며 중얼거리던 연준이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스트레이트 잔의 술을 한 번에 꿀꺽 삼켰다. 그 독한 술이 식도를 타고 흐르는 동안에도 연준은 물을 삼키는 듯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왜 노래 있지?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로 시작하는. 그런 집을 지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 왜 그런 집이 짓고 싶은지, 왜 지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건지 그런 건 생각하지 않았어. 그냥 단순하게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 근데 인테리어까지 완벽하게 해놓고 나니까, 허탈해지더라. 내가 왜 이런 집을 지으려고 했는지 그제야 궁금해졌는데, 이유를 찾지 못했어. 다 지어놓은 그 집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 구석이 뻥하고 뚫린 것 같이 허전하더라. 마음 한 구석이 시리고 아프더라. 이유 없이 펑펑 울었어. 누가 보면 미친놈이라고 정신 나갔다고 생각할 정도로 크게 소리 내서 울었어. 이유도 없이 그냥 말이야.”


‘웃기지?’ 묻는 마지막 말은 굳이 대답을 요하지 않는 물음이었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낸 연준이 어느새 채워진 술을 한 번에 몽땅 털어 넣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현성이 안주로 나온 멜론을 포크로 찍어 연준에게 내밀었다. 받아든 포크를 잠시 바라보던 연준은 다시 원래 있던 자리에 얌전히 내려놓았다.


“갑자기 그 집 얘기는 왜 꺼내?”
“미련 없이 팔아버렸었어, 그 집.”
“나나주지 그랬냐!”


아깝다는 어조로 현성이 툭 던진 말에 연준이 실소를 터뜨렸다.


“근데, 오늘 그 집을 다시 봤어.”
“그래서 또 눈물 나든?”
“처음엔 어이가 없었는데 문득 갖고 싶어졌어. 내가 살아야 할 집이라는 생각까지 들더라. 근데 웃기게도 같이 살고 싶은 사람이, 지은영이 아니었어.”


연준의 발언에 무심히 안주를 뒤적거리던 현성의 손이 움직임을 멈췄다.


“지은영이 아니면?”
“글쎄.”


씁쓸히 웃으며 연준은 서예은을 떠올렸다. 그 집이 다시 갖고 싶어진 순간 생각난 얼굴이었다. 마당에 놓았던 그네의자에 앉아있는 서예은과 서리은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졌었다. 거실의 통유리 너머로 정원을 바라보는 내내 이연준은 그 장면만 무한반복 재생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결혼 상대자는 서예은이 아니라 지은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예은이 아니라면, 굳이 출퇴근하기 불편할 정도로 외곽에 자리 잡은 그곳을 선택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관여하여 지은 집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연준은 일층부터 삼층까지 건성으로 훑었다. 그건 그 집을 알아보느라 수고했을 서예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이연준!”


나지막한 현성의 부름에 연준이 뚫어지게 쳐다보던 술잔에서 시선을 뗐다. 그리고 안쓰러운 시선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현성을 마주했다.


“응.”
“누구냐, 대체.”


정말 궁금해 하는 현성을 보며 연준이 소리 없는 웃음을 터뜨린다.


“처음 연애할 때, 안 보면 보고 싶더냐?”


그러더니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던지느냐는 듯 인상을 찌푸렸던 현성이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더라.”
“끌어안으면 가슴이 꽉 차올라?”
“건 잘 모르겠고, 편안해지는 건 있더라.”
“다른 데 눈길 주면 열나고 화나?”
“아무도 못 보게 하고 싶어지던데?”
“나 지은영한테 거짓말까지 했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연준은 다른 누군가의 눈치 없이 편하게 서예은과 있는 시간을 만끽하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서예은과 함께하는 시간은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그건…… 욕심인걸까?


“윤현성.”
“말해.”


연준이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몇 잔째인지도 모를 술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입가에 흘러내린 술을 손등으로 닦아낸 연준이 앉아있던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으며 고개를 등받이에 기댔다. 그리고 팔등으로 눈을 가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어. 다른 놈한테 가는 걸 막을 자격조차도……, 내겐 없었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연준은 가는 데까지 데려다 주겠다던 자신의 말에 ‘싫은데요.’라고 거절하던 예은과 차체에 기대어 서 있던 차민재를 떠올렸다. 그러자 숨을 쉬는 간단한 일조차 괴로울 정도로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
당분간 또 잠수ㅜ.ㅠ
길면 열흘 예정이예요오.
그니까 기다리지 마세요 ㅜ.ㅠ

*
하나씩 정리할 생각이예요.
그러니까 디엔드는 잠시 잊어주세요오 ㅜ.ㅠ

*
댓글 달아주시면 감사하기야 하지만,
안 달아주셔도 괜찮으니까 부담 느끼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워낙에 제 글에는 댓글 잘 안달려서요;;
포기한 지 오~~~~~~래 됐어요, 사실...
그게, 오래 단련되다보니까, 그러려니 하게 되더라는;;;
암튼,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늘 감사합니다아 ^^


댓글 '15'

tooduree

2009.03.10 23:51:18

그 동안 너무 달려주셔서 행복했는데..ㅋㅋㅋㅋ
잘 쉬고 돌아오세요..

마리

2009.03.10 23:51:49

열쒸미 읽기만 하고 있는 저인지라...
왠지 죄송스럽다는 ㅠ..ㅠ

위니

2009.03.11 03:43:05

아,,,제가 왜 이글을 이제서야 보게 되엇을까요???

그리고 이부분에서 끝나 잠수라니요...ㅡㅠ....
기다릴께요 작가님 빨랑 오셔요

gen

2009.03.11 05:54:11

눈팅만하는 사람의 한명으로서 .....재미있는데 귀찬이즘이 마구마구 발동 댓글 쓰기를 안하게됩니다... 사실 한타두 별루 빠르지 않고...하지만 자주 자주 오세요..... 하루에두 몇번씩 오셨나 확인한답니다...내용두 좀더 많았으면 하기두 하구 아..... 속 탑니다..

은새

2009.03.11 09:27:57

에궁..무탈하게 돌아오시기만 하면 됩니다..목뻬고 기다립니다..^^

큐리

2009.03.11 13:55:45

뭔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연준의 기억속에 살짜쿵 힌트라도 주고 싶네요.

ssuny

2009.03.11 14:12:32

애고 너무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있어요^^
이사 준비로 마음이 뒤숭숭해 댓글을 건너뛰게 되더라능;;;;^^
음 드뎌 연준이 자기 마음을 인정한거죠?
혹시 연준 민재가 한판 붙을까요??
은근 바란다능

ßong

2009.03.11 14:29:53

연준이놈.....그래.. 넌 자격이 없는 녀석이란다...후후...
아놔... 멱살잡고 기억해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ㅠㅜㅜ

ggom

2009.03.11 19:33:09

열흘이건 한달이건 기다립니다~!!!! 얼른 돌아오세요 `

앨리스

2009.03.17 16:07:31

그르케 얘기하니까 댓글 달고 싶어지잖아...

위니

2009.03.17 17:10:17

저 요새 정크 맨날 들락거리고 잇어요 ^ ^ 언제오시려나..

나니오

2009.03.22 18:55:08

정말 미치도록 재밌어요.ㅜㅜㅜ!!!!!!

ßong

2009.03.24 20:14:56

아놔.... 다시 봐도 은근 찡하다는....연준이놈은 미운데 또 뭔가 찡하게 한다니까요...
미운데 은근 응원해주고 싶기도 하달까나...

그녀는

2009.05.26 16:04:18

오늘 소식 들었는데.. 슬퍼요.

하늘지기

2009.07.15 16:35:11

저 먹먹한 가슴 알아요.
숨이 쉬어지지 않는 가슴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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