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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앙!
시끄러워. 생각하며 예은의 시선이 경적소리가 나는 도로 쪽으로 향했다. 순간 날렵하게 잘 빠진 짙은 은회색의 차량이 예은의 곁에 부드럽게 멈춰 섰다. 스륵, 내려오는 조수석의 차창을 바라보며 예은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이 차를 어디서 봤는지 기억해 내려했다.
“여긴 어쩐 일이에요?”
부드럽게 물어오는 목소리에 예은은 이연준을 기억해냈다. 허리를 살짝 굽히니 인도 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그가 보였다. 예은은 뜻하지 않은 만남이 반가워 활짝 웃었다.
“아, 안녕하세요!”
그가 고개를 까닥거려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는 차에서 내려 예은의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
“여기 볼 일 있어요?”
“집 좀 보려고요.”
밀려오는 바람결에 그의 체취가 묻어났다. 두근. 심장이 설레고, 마음이 발그레 홍조를 띤다. 하지만 드러낼 수 없어 예은은 머금었던 웃음을 지워내고 담담하게 연준을 바라봤다.
“여기로 이사 오려고요?”
연준의 목소리에 깃든 반가운 기색을 예은이 읽었다.
“아뇨, 지은영 신부님이 부탁해서요. 집 알아보고 있어요.”
“아, 그래서 여기 보려고요?”
김샜다는 투의 연준의 말에 예은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점심 먹었어요?”
“여기 보고 먹으려고요. 다른 데 둘러보고 오는 길인데 지금 좀 늦었거든요.”
예은이 휴대폰 시계를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부동산 업자와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에서 10분 정도 오버된 상태였다. 먼저 가겠다는 말을 꺼내려는 데, 쥐고 있는 휴대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힐끗 액정을 쳐다보니 만나기로 한 부동산 업자였다. ‘잠시만 요.’라고 연준에게 양해를 구한 뒤 예은이 휴대폰을 받았다.
“죄송해요, 지금 거의 다 왔어요. 한…….”
연준이 휴대폰을 빼앗지 않았다면 한 오 분정도면 도착할 거라는 말을 상대에게 예은이 건넸을 것이다. 너무 손쉽게 예은에게서 휴대폰을 앗아간 연준이 예은을 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서예은 씨가 오늘 약속 취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부동산 업자와의 약속은 단호한 어조로 취소해버렸다. 싱긋 웃는 얼굴로 휴대폰을 돌려주는 연준을 보는 순간 예은은 멋대로 행동하는 그에게 화를 내야할 순간이라는 걸 잊어버렸다. 가끔 그럴 때가 있었다. 그에게 너무 화가 난 순간인데 그가 미안하다는 듯 멋쩍게 혹은 장난스럽게 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싱긋 웃어버리면 여지없이 무너져버리는 그래서 뜻하지 않게 화를 풀어버리는 때. 여전한 자신의 반응에 예은이 픽, 실소를 터뜨리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칼국수 먹으러 가요.”
그 말에 이열치열이라며 한여름에도 간혹 칼국수를 찾던 이연준이 생각났다. 것도 꼭 손칼국수집만 고집했었다. 그럴 때마다 ‘냉면’이 먹고 싶다거나 덥다는 이유로 초를 치는 건 그녀 자신이었다.
“더워요.”
예은은 그 때가 생각나 저도 모르게 덥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럼 냉면 먹으러 갈래요?”
그러자 당연하게도 연준은 아무거나 자신은 상관없다는 듯 말하였다.
“아뇨, 칼국수 먹으러 갈래요.”
“덥다더니?”
“가게에 에어컨 돌리겠죠, 뭐.”
밀려오는 옛 일들을 지워내며 시큰둥한 어조로 예은이 말했다. 연준이 ‘그래요, 그럼.’이라고 말하며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좋아서 웃는 거야. 예은이 심술 맞게 생각했다.
“밥값은 예은 씨가 내는 거죠?”
“네?”
“저번에 밥 한 번 사기로 했잖아요.”
“아, 네. 사드릴게요.”
“아, 재미없다. 한 번 정도는 좀 튕겨줘야 하는데.”
“그럼, 사주실래요?”
예은이 빙글거리며 물었다.
“그렇다고 바로 말 바꾸면 안 돼요. 오늘은 얻어먹을 거거든요.”
툴툴대던 연준이 씨익 웃으며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네에, 벼룩의 간을 빼먹으세요, 아마 세계 최고 갑부 되실 겁니다.’라며 예은이 조수석에 얌전히 앉았고 여전히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연준이 운전석으로 돌아왔다.
“아직 그렇게 안 덥죠?”
“아까 덥다고 했는데요.”
“아, 맞다. 이놈의 단기기억상실증.”
“그 정도쯤이야, 뭐.”
예은이 괜찮다는 투로 대꾸했다. 사실 그 정도는 별거 아닌 게 맞으니까 말이다. 처음 인사를 건넸을 때, 서예은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말하여 주었을 때, 지금처럼 ‘아, 맞다.’라며 기억해주지 못하기도 했으니까 이건 아주 사소한 일이었다.
“기계 바람은 아직 싫은데. 창문 여는 거 괜찮죠?”
연준의 물음에 예은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스륵, 창문이 열리고, 그 사이로 따스한 바람이 가득 밀려들어왔다. 예은은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바람이 스쳐지나가며 예은의 손에 반갑게 인사를 청했다.
“그러다 다쳐요.”
신호등에 걸려 차를 멈춰 세운 연준이 예은의 팔목을 다시 안으로 잡아끌었다. 그리고 얌전히 무릎위에 놓아주었다. 잠깐 연준의 손이 닿았던 팔목이 불에 덴 듯 뜨거웠다. 예은은 차마 연준을 볼 수 없어 시선을 창밖으로 던졌다. 멀리서 매미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이른데.
“뭐가요?”
연준의 뜬금없는 물음에 예은이 고개를 돌렸다.
“네?”
“방금 아직 이르다고 했잖아요. 뭐가 일러요?”
저도 모르게 생각을 입 밖으로 끄집어낸 모양이었다. 당황한 예은의 얼굴을 살짝 붉혔다.
“매미요. 이제 겨우 5월인데 벌써 울잖아요. 여름인 줄로 착각했나 봐요, 날이 너무 더워서.”
다시 차를 출발시키며 연준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센스 없네, 그놈.”
연준의 말에 메마르게 웃던 예은이 시선을 다시 차창 밖으로 던졌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을 손목에 차고 있던 끈으로 질끈 동여맸다.
“근데, 혹시 안도현이라고 아세요?”
차안에 내려앉은 침묵을 예은이 깼다. 예은의 시선은 그러나 여전히 창밖을 향해있었다. 착 가라앉은 목소리에 물기가 가득 배인 것 같았다.
“잘 모르겠는데요.”
“시인이에요. 그 시인이 사랑이라는 시에서 그랬어요.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게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거라고. 근데 매미가 왜 우는지 아세요?”
말을 하는 예은의 목소리는 뜨거운 한여름처럼 나른하고 그때의 공기처럼 끈적거렸다.
“글쎄요. 배운 대로 답하자면 짝짓기하려고?”
“아뇨. 매미가 우는 건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이래요.”
그게 사랑이래요, 한사코 곁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으니까 그렇게 우는 거래요.
“아아, 뭔가 근사한 대답을 기대했는데.”
싱거워요. 연준의 밋밋한 답변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거였다. 예은은 그를 향해 짧게 미소 짓고는 시선을 도로 창밖으로 던졌다. 그래서일까요, 당신이 날 보지 못하는 건? 내가 끝까지 곁에 붙어서 울었으면, 날 봤을까요? 예은은 그에게 직접적으로 던지지 못하는 질문들을 하나하나 바람결에 날려 보냈다. 같이 사는 동안 나도, 당신도 힘들었어요. 사는 게 힘이 들어서 결국 날 잊어버린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잊은 기억 애써 되찾아주고 싶지 않아요, 나는. 그래서 울지 않을 거예요. 근데, 그렇게 하면 내 사랑은 사랑이 아닌 걸까요? 곁에서 울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보이지 않았으니까 사랑이 아닌 걸까요?
소리 없이 툭, 한 방울 떨어진 눈물을 예은이 연준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하며 닦아냈다. 문득 좋아하는 시인 안도현이 미워졌다. 여름이 시작되는 길목, 예은이 다시 만난 연준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살며시 드러냈지만 연준은 알아주지 못했다. 날은 점점 더 뜨거워 질 것이고, 매미 울음소리는 기승을 부릴 것이고, 예은은 그저 뜨겁게 울 수 있는 매미를 부러워 할 것이다. 문득 예은은 궁금해졌다. 가을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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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 안도현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
매미는 아는 것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미는 우는 것이다.
+
뭔가 늘어지는 느낌.
문제가 뭘까, 혼자 또 고민하고 있어요 ㅜ.ㅠ